혁명의 넝마주이

혁명의 넝마주이

$20.00
Description
“역사의 대기실”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혁명기 모스크바,
혁명의 넝마주이가 되어 그 흔적을 건져 올렸던 벤야민을 경유하여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재발굴해내다
발터 벤야민은 1926년 12월에서 1927년 2월까지 약 두 달간 모든 것이 변화의 와중에 있던 혁명 후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벤야민에게 이 모스크바 방문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 책 『혁명의 넝마주이』는 벤야민의 모스크바 방문 기록인 『모스크바 일기』를 경유하여 벤야민의 사유에 드리운 소비에트의 흔적을 추적하고, 더 나아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지적·예술적 유산을 새롭게 발굴해낸다. 모든 해방의 기획은 ‘비현실적’인 이상일 뿐이거나, 결국 스탈린식 ‘현실 사회주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를 야기하는 사고 회로만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오늘날,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다지 환영받는 주제는 아닐 것이다. 한동안 이 유산은 정치적 맥락을 탈각시킨 채, 미술관의 안온한 벽 안 ‘혁명 섹션’에 포함되어 있을 때만 상속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통속화된 서사에 갇힌 이 소비에트 혁명의 ‘과거’를 캐내 다시금 해석 투쟁의 무대에 올려놓는다. 모든 과거는 현재와 새롭게 만나 다시 쓰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죽은 세대의 전통은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는 망령’(마르크스)이 될 수도,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불씨’(벤야민)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기만적으로 현실을 변형시키는 ‘연속체로서의 역사’에 균열을 내기 위해 버려지고 망각된 역사 지식을 구제해내려 했던 벤야민의 텍스트에 의거해, 벤야민의 방식을 따라 혁명기 소비에트 사회 안에 존재했던 온갖 가능성들을 꼼꼼하게 되짚어본다. 이를 통해 역사의 잘려나간 페이지에 온당한 자리를 돌려주고, 우리가 붙들려 있는 ‘현재’라는 지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등의 책을 발표하고, 유리 로트만, 보리스 그로이스, 미하일 얌폴스키, 알렉세이 유르착 등의 사상을 번역·소개해온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김수환 교수의 세번째 단독 저서.
저자

김수환

저자:김수환
러시아과학아카데미문학연구소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한국외국어대학교러시아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책에따라살기’로대표되는러시아의극단적인원칙주의적태도에주목해‘현실’에사로잡혀있는오늘날의상황을재성찰하게한『책에따라살기』와문화기호학자유리로트만의사상과이론을집대성한『사유하는구조』등이,옮긴책으로『<자본>에대한노트』(공역)『모든것은영원했다,사라지기전까지는』『코뮤니스트후기』『영화와의미의탐구』(공역)『문화와폭발』『기호계』등이있다.

목차

서문

1부
들어가는말.『모스크바일기』,어떤혁명의기록
1장.장난감마니아발터벤야민:혁명의시간성에관하여
2장.혁명적연극이란무엇인가:메이예르홀트와브레히트사이에서
3장.혁명이후의문학:생산자로서의작가
4장.영화(적인것)의기원으로서의모스크바:촉각성에서신경감응까지

2부
5장.러시아아방가르드의사물론과히토슈타이얼의이미지론:트레티야코프와아르바토프를중심으로
6장.러시아우주론재방문:시간성의윤리학혹은미래의처방전.
[부록]안톤비도클·김수환대담:뮤지엄,그믿기지않는이상함에관하여
7장.아방가르드뮤지올로지:폐허에서건져올린다섯개의장면들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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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소비에트아방가르드의맥락에서새롭게읽는『모스크바일기』
넝마주이가건져올린파편적이미지속에담긴혁명의기억들
벤야민의『모스크바일기』는다소기이한기록으로,혁명기모스크바를방문했던벤야민이‘혁명의넝마주이’가되어‘인상’이라는집게로걷어올린일종의누더기텍스트라고말할수있다.러시아어를몰랐던그는보고느끼는것이외의수단을갖고있지않았다.벤야민의마르크스주의적전환의배경에이모스크바경험이모종의역할을했을거라는느슨한추정이없었던것은아니지만,그럼에도『모스크바일기』는면밀한연구의대상이기보다는사적인벤야민의모습을보여주는참조자료,특히아샤라치스라는여성과의관계를중심으로읽혀왔다.김수환은『모스크바일기』를다른각도에서독해할것을제안한다.그는이텍스트가벤야민사상의성좌를형성하게될온갖파편들이흩뿌려져있는사상의보고이자한시대가종말을고하고새로운시대가목전을이룬상황,이른바‘역사의대기실’풍경을보여주는빼어난문헌자료라고이야기한다.즉사상가벤야민을보여주는만큼이나혁명기소비에트사회를들여다보기위한탁월한이중의도큐먼트로서기능할수있다는것이다.

과거의실패한가능성들과현재와의조우
“장난감이가득들어찬커다란가방만을갖고돌아온벤야민,
그는진정그밖에아무것도가져오지못했던것일까?
이책은모스크바에서장난감들을잔뜩사들고돌아왔던벤야민의독특한행적에대한질문에서출발해,『모스크바일기』에담겨있는혁명의흔적들을하나씩끄집어내그것을둘러싼온갖기억과이후의궤적들을이어붙여나간다.벤야민은혁명기모스크바에서구시대의유물을상징하는장난감,바로그‘사라져가는과거’를붙잡으려그토록동분서주했던것일까?장난감의시간성을바라보는벤야민의입장과그의역사철학사이에모종의상동성이존재하는것은아닐까?벤야민의장난감론을경유해‘혁명은자신의과거를어떻게취급하는가’라는관점에서소비에트아방가르드의입장을되짚어볼수있지않을까?저자는이런식으로지금껏공백으로남아있던부분에대해해석의실마리를제공하거나낯익은장면을새롭게볼것을제안하면서벤야민에대한그동안의상투적이고제한적인이해와대결한다.그렇게‘소비에트없이이해하는벤야민’과‘그것을염두에두고이해하는벤야민’은엄청나게다른모습으로나타날수있다.또한『모스크바일기』속소비에트의흔적들을벤야민사상의전체지도를완성해내기위한퍼즐조각으로서만활용하는것이아니라,소비에트아방가르드그자체를새롭게조명하기위해탐색의범위를넓히고,더나아가과거의실패한가능성들이어떻게현재와조우할수있는지모색한다.
흥미로운점은이책이‘미학의혁명’과‘혁명의미학’이조화롭게공존할수있다고여겨지던아방가르드의전성기인1910~20년대가아니라스탈린식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대변되는1930년대로이어지는아방가르드의쇠퇴기(1927~32년),즉그것이무언가다른것으로뒤바뀌기직전의‘문턱의시간’에집중하고있다는것인데,저자는다름아닌바로이시간을직시하고새롭게해석하는일이야말로아방가르드에대한동어반복적서사를벗어나는데있어결정적이라고이야기한다.따라서이책의또다른주인공의자리는샤갈이나,칸딘스키,로드첸코같은아방가르드의잘알려진스타들이아니라,전환기의풍경을제대로보여줄수있는메이예르홀트와가스테프,트레티야코프,아르바토프같은미지의이름에할애되고,과거(의문화유산)를바라보는태도의변화,해방된‘대중’의잠재력,생산주의미학,팩토그래피운동,‘작동적작가’모델같은주제가본격탐구의대상이된다.

이책의구성
1부에는벤야민의『모스크바일기』를따라1920~30년대소비에트라는과거의시공간을탐구해나가는네편의글이실려있다.저자는이텍스트를‘넝마주이’가수집한조각들의몽타주로간주하고,그파편적이미지들속에담긴혁명의문화적기억들을되살려보고자했다.벤야민이모스크바에서크게관심을기울였던장난감,연극,문학,영화를징검다리삼아혁명의빠른물결을거슬러올라가본다.
벤야민의인상기를따라가다가마주치게된발굴의우연한부산물들이담겨있는2부에서는소비에트아방가르드의감춰진페이지를보다깊숙이파고들어가그상실된과거가현재와만나어떻게다시쓰여질수있는지고찰한다.5장은현대영상작가이자저술가인히토슈타이얼의‘이미지론’과소비에트아방가르드의‘사물론’을병치시켜아방가르드의실험적기획이오늘날의예술영역에서흥미롭게전유되는양상을살펴본다.6~7장은소비에트혁명을전후로한시기에일군의사상가및예술가들에의해전개되었던‘러시아우주론’이라는독특한사상적담론에주목한다.죽은자들까지되살리는‘모두를위한불멸’을주장했던러시아우주론의유산은최근뮤지올로지(박물관학)나인류세,포스트휴먼담론등과연계되어이를이론적돌파구나예술적영감의단초로삼아보려는다양한실험들이시도되고있다.저자는이독특한사상과오늘날의담론사이의근본적인차이를식별해봄으로써러사아우주론을유토피아적상상력의위기를겪고있는우리시대의지표로서전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