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 문학과지성 시인선 566

도시가스 - 문학과지성 시인선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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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시의 급진적 전위를 개척해온 이수명 신작 시집
“우리에게는 가스가 있다…… 도시가스 보급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전위의 최전선에서 현실 언어의 질서를 허무는 시인 이수명의 여덟번째 시집 『도시가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도시가스”라는 이름의 시는 총 여섯 편이 일련번호 없이 수록되었는데, 연작시가 으레 가질 법한 특징인 연속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이수명은 전작 『물류창고』(문학과지성사, 2018)에서도 “물류창고”라는 동명의 시 열 편을 수록해 명확한 고유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공간으로서의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인간마저도 사물처럼 배치되어 있는 평면적인 세계 속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차단된 상태의 ‘소진된 인간’이 등장한다. 내면의 감정을 빼앗기거나 기회를 부정당한 것이 아니라 행위의 목적을 잃은 존재, 행위의 이유 자체를 상실해버린 존재로 그에겐 돌아갈 과거도 앞으로의 미래도 부재한다. 말 그대로의 ‘무無’가 곳곳에 편재되어 있는 『도시가스』의 세계. 그러나 이수명은 이러한 세계 안에서도 여전히 장악되지 않은 장소, ‘도시가스 사용 고지서’와 같은 형태로 수치화되고 관리되지 않는 장소를 드문드문 발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제안한다. 시집을 따라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한 걸음씩 떠오르는 것처럼 걸어”(「해피 뉴 이어)」)가다 보면 “갑작스럽게 눈앞에 부상하는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강동호 문학평론가)할 것이다.
저자

이수명

저자:이수명
1965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대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중앙대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94년『작가세계』로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시집『새로운오독이거리를메웠다』『왜가리는왜가리놀이를한다』『붉은담장의커브』『고양이비디오를보는고양이』『언제나너무많은비들』『마치』『물류창고』,산문집『나는칠성슈퍼를보았다』,연구서『김구용과한국현대시』,평론집『공습의시대』,시론집『횡단』『표면의시학』,번역서『낭만주의』『라캉』『데리다』『조이스』등이있다.박인환문학상,현대시작품상,노작문학상,이상시문학상,김춘수시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
꿈에네가나왔다/6월/창가에서있는사람/도시가스/무단결석/주기적여름의교체//도시가스/물류창고/비가내리는데/도시가스/옥상/물류창고/빛을세워도좋을까/도시가스/차를세우고/물류창고/밖에있는사람/도시가스/연못에들어가면안돼요/로비에서보기로했다/올해의마지막날들/겨울/가스관

2부
이노을/처음부터다시/해피뉴이어/유령처럼/같이비가내려요/철물점/즐거운여행/눈오는날/명랑한커피/페이크삭스/최후의산책/풀위에서웃었다/완전한나무들/음소거/4단지/다른날/비와춤을춘다

3부
티타임/잠자는책/조용한생활/적당한사람/에티오피아식인사/물푸레나무/정적이흐른다/내일은더추워진다고해요/흑맥주마시러가는오후/팝콘/근린공원/아파트공사장/확실한것은아니야/운동을시작해볼까요/그냥내버려두었다

해설│무의광장·강동호

출판사 서평

가스가있다.우리에게는가스가있다.가스는색깔이없고냄새가없고무게가없고가스는소리가없고보이지도않고그러나가스는부드럽고가스는온화하고가스는은은하게순조롭게우리에게흘러들어오고가스는우리를어루만지고우리의생각은온통가스로가득차있다.도시가스보급이전국으로확대되었다.

책속에서

그는지금아무것도아니고아무의사람도아니고아무생각도아무계획도없이그냥아무창가에서있고

창은네모난창마주보는변의길이가같은창마주보는각들이평온한창거꾸로세워도똑같은그러나오늘은전보다조금넓어진듯보이고

안녕,지나가는사람들이말을건네면안녕,대답하고요즘좋아보여,하면요즘좋아,똑같이말하고
―「창가에서있는사람」부분

아침에는읽던책의페이지를찾을수없었고저장했던파일을찾을수없었다.
지금은왜이낯선거리를걷고있는지알수없었다.
아주긴그림자가둥둥떠다니는데
거리가흔들리는느낌이었고
오픈한상가의스카이댄스인형이펄럭펄럭춤을추고있었다.
―「주기적여름의교체」부분

바닥에서벽에서잘보이지도않는실부스러기들이나온다.보이지도않게옮겨다닌다.

자꾸말이끊기고있다.끊어진말사이에서청소를한다.청소사이에가구가있다.가구사이에올해의마지막날들이있다.마지막날들의실오라기를집어올린다.이날들에서조금더지나면다른것이끊어질것이다.이를테면새로운소식이완전히끊어질것이다.
―「올해의마지막날들」부분

당신이가고나무를태웁니다.당신이가고당신을태웁니다.너무환합니다.같이식사를해요같이풀밭을건너요풀밭에서왜우냐고당신이물어봅니다.당신이가고사람들이합창을합니다.같이여기를떠올려요같이잔을들어요착한술을기울여조금마시면죽어가는피부가여기있습니다.
―「같이비가내려요」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