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장 (김선오 시집)

세트장 (김선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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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부재하는 ‘너’를 통해 사랑의 영원성을 길어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시집에서 김선오는 타자를 향한 인식의 전환을 도모한다. “보는 이의 시선을 조금씩 배반하는 방식”(「돌과 입맞춤」)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위치에서 이 세계를 경험하고자 한다. 주체와 객체라는 이항대립적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모두가 “투명한 유령”(「농담과 명령」) 같은 상태로 동등하게 연결되기를 꿈꾼다. 그러므로 『세트장』은 규정될 수 없는 존재들만이 비로소 실현할 수 있는, 일말의 차별과 위계조차 없는 관계를 이뤄낸다. ‘나’라는 틀을 벗어나야만 오롯이 결성할 수 있는 ‘우리’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저자

김선오

시인김선오는1992년서울에서태어났다.2020년시집『나이트사커』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하농연습/무수한놀이/세트장/돌과입맞춤/범세계종/투어/질문들/침범,노이즈,산성/증거/청킹맨션/익사하지않은꿈/조용한가게/풀의밀폐/사랑을위하여

2부
R을제외한해변의전체/루시드서머/농담과명령/부드러운반복/시퀀스/여름의새/무한구역/섬짓기/비/커피나마실까/십진법/너의나라에서/한글자동물

3부
침묵의푸가/세트장/복원/미동/나무에기대어/목조호텔/동전없음/목측/석조호텔/진화/핀/모빌/조립/벽의편/가정용피아노

4부
현대사공부/가출/휴가/봄/전단지들/불러오기/말로/면식범/정물/생태계/레가토/껌종이/열차진행의반대방향으로

해설
나를제외한너의전체ㆍ전승민

출판사 서평

“멀리서네가달려온다.이곳으로살아난다”

존재의경계를무화하는시
투명한결속으로완성되는사랑

감각적이고아름다운시어로주목받아온김선오의두번째시집『세트장』(문학과지성사,2022)이출간되었다.“사랑이끝났다고집요하게말함으로써오히려사랑의불가능을파괴하려는것같다”(시인황인찬)는추천사와함께첫시집『나이트사커』(아침달,2020)로문단에등장한이후2년간꾸준히쓰고다듬은시55편을한데묶었다.
부재하는‘너’를통해사랑의영원성을길어냈던전작과달리이번시집에서김선오는타자를향한인식의전환을도모한다.“보는이의시선을조금씩배반하는방식”(「돌과입맞춤」)으로‘나’아닌다른존재의위치에서이세계를경험하고자한다.주체와객체라는이항대립적경계를무너뜨림으로써모두가“투명한유령”(「농담과명령」)같은상태로동등하게연결되기를꿈꾼다.그러므로『세트장』은규정될수없는존재들만이비로소실현할수있는,일말의차별과위계조차없는관계를이뤄낸다.‘나’라는틀을벗어나야만오롯이결성할수있는‘우리’의사랑으로충만하다.

김선오에게사물은하나의장소또는물질이된다.그리하여기존세계에서는주어자리에올수없던명사들이행위주체가되어살아난다.주체와객체의위계를거부하는인식론의지평위에서우리는그들이서로접속하고연결해제되고,또다시연결되는장면을목격한다._전승민(문학평론가)


“너는설계된다.꿈으로,빈터로”
모두가무엇이든될수있는세트장

『세트장』에서‘나’는단일한주체에머무르지않는다.시적대상의입장으로이세계를온전히추체험하고자한다.여기서대상의범주는인간에한정되지않고사물까지포괄한다.

물소리가나를흐르게한다.햇볕이나를하얗게거두어들인다.몸은다사라지고나는물이되었구나.물이되었구나.아무것도아프지가않다.
-「나무에기대어」부분

나무에기대어물소리를듣던‘나’는그아름다운리듬에부지불식중자아를흘려보낸다.햇볕에증발되는방식으로물이된다.흥미로운점은시인이그려내는무아와전이의과정에서고통이나상실감은조금도발생하지않는다는것이다(“아무것도아프지가않다”).그것은마치순리를따르듯자연스러워보인다.그렇다면‘나’가물이될때물은무엇이될까.

내안에방이앉아있다
방이나를어지른다

바다가바다밖으로헤엄친다
-「목조호텔」부분

주체가대상이될때대상은주체가된다.‘나’가방이되면방이나를어지를수있는것처럼“바다가바다밖으로헤엄”치는일도가능해진다.이처럼『세트장』에서‘나’가대상으로접속해들어가는순간,대상은주체로서자유롭게움직이기시작한다.“어느날창문이날아와돌을깨뜨”(「복원」)리는상황처럼기존의질서는역전되고모두가무엇이든될수있는세계가열리는것이다.

“누군가는우리를안개라고부릅니다”
서로를훼손하지않는무규정의사랑

그렇다면모두가무엇이든될수있는세계에서시인이이루고자한바는무엇일까.이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전승민은‘나’와대상의구분이무효화될때“논바이너리non-binary주체가현현하는역사적인순간”이발생한다고말한다.“이분법을뒤흔들고무화시키는역능을지닌행위주체”들이일말의타자성도훼손하지않는관계맺기를실천할수있다고본다.그러므로우리는『세트장』에서스스로를무엇으로도특정하지않아무엇과도사랑할수있는존재들을만날수있다.그들은모든면이“유리로되어있어”“밖으로넘실대는세상”을비추지만결코“깨지지않”는형상으로서언제까지나서로를빛나게할것이다(「농담과명령」).

나를기다리던사람을잃는다

그러나그가손을들어
나를부르고
여기라고이쪽이라고말하면

나는금세되찾는다
-「전단지들」부분

■뒤표지글

밤의유리창,이차원평면위에내모습이흐리게떠있습니다.저상(像)의입장은알수없지만내가웃으면따라웃고울면따라웁니다.이곳에서엿보는이차원의질서입니다.
그러나이차원에는생각이없습니다.생각은삼차원의부피에담긴것입니다.그러므로평면위얼굴은자신이나의반영이라는사실을모릅니다.그렇다면삼차원에는사차원에존재하는무엇이없습니까.어쩌면삼차원세계에사는나는사실사차원속누군가의반영인지도모릅니다.사차원의그가지닌무엇이내게는결락되어있기에나는그를인지하지못하는지도모릅니다.그렇다면사차원의그는오차원에사는누구의반영입니까.그렇다면오차원의그는,육차원의그는,어쩌면모두가자각할수없는존재의표정을따라웃고따라울고그렇게계속됩니까.
유리위얼굴은빛과어둠의대립하에발생합니다.실내보다바깥이어두운시간,내가창의근처에머무를때에.날이밝거나콘크리트벽쪽으로몸을옮기면반영은소멸합니다.사차원의커다랗고지저분한창,모서리를향해걸어가는누군가,유리위에서끌려가는반영-우리들,그위에남겨진사차원의숱한손자국.그시간동안이삶이라면,그가마침내불투명한곳으로몸을옮기는순간을,선명한낮이우리를지우며찾아오는장면을우리는영영볼수도지닐수도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