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 극소

문헌학, 극소

$14.00
Description
“문헌학은 단어 곁에서의 기다림이다.”
독일 이론가 베르너 하마허의 국내 첫 번역, 새롭게 탐구하는 헌獻-문헌학의 길
문학과지성사의 인문 에세이 시리즈 ‘채석장’의 아홉번째 책은, 독일의 영향력 있는 문학이론가 베르너 하마허의 『문헌학, 극소』이다. “Minima Philologica,” ‘극소’의 문헌학을 표방하는 표제 아래 하마허의 대표적 저작인 「문헌학을 향한 95개 테제」와 「문헌학을 위하여」를 하나로 묶었다.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하마허는 철학, 문학, 해석학, 정치학 등 폭넓은 관심사와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변별되는 독자적 노선을 구축하여 서구 학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어온 인물이다. 별개의 독립된 소책자이던 두 편의 글을 한데 모은 이 책은 하마허가 천착했던 문헌학 이념의 결실을 보여준다. 하마허는 문헌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혹은 그에 답하기 위해, 미로처럼 굴곡진 사유의 행로를 에둘러 나아간다. 저자는 문헌학을 하나의 보편적이고 제한된 의미로 한정시키거나 제도적 (분과)학문의 지식 규범으로 위치시키려는 시도를 배격하고, 끊임없이 말하고 변주하고 해체하고 덧붙이면서 언어와 문헌학에 관한 근원적 성찰을 유도한다.
저자는 플라톤과 슐레겔, 니체, 벤야민 같은 문헌학적 사상가들과 횔덜린, 파울 첼란, 르네 샤르와 같은 시인들을 참조하는데, 이를테면 르네 샤르의 시 「도서관이 불탄다」를 놓고 글쓰기의 도래를 정밀하게 탐색하거나, 문헌학적 인식을 위한 성찰의 매체로 일컬어지는 파울 첼란의 시를 벤야민과의 영향 관계 속에서 독해하며 필리아phil?a의 운동, 폭력의 탈력脫力과 언어의 탈언脫言 등의 주제를 깊이 고찰해나간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조효원 교수(서강대 유럽문화학과)는 칼 슈미트, 아감벤, 대니얼 헬러-로즌 등의 저서를 번역, 소개해온 문학비평가이자 인문학자로서, 책 말미에 붙인 역자의 함축적이고 파편적인 9.5개의 주해는 하마허 이론의 핵심을 밝히려는 ‘나머지’로서 기능하며 보다 확장된 독서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저자

베르너하마허

WernerHamacher(1948~2017)
독일최초로비교문학과를창설한베를린자유대학에서당대를풍미한문학이론가페터손디의지도아래횔덜린시에대한논문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이후자크데리다의초청을받아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철학을공부했다.1976년헤겔의청년기저작『기독교의정신』을편집·출간하면서일종의주석으로집필한논고「충만:헤겔의독서개념에대하여」를베를린자유대학에박사학위논문으로제출했다.당시심사위원중한명이던폴드만은“단순한헤겔주석에그치는것이아니라그자체로독립적인권리를주장할수있는중요한작품”이라고평했다.1984년부터존스홉킨스대학독문과와인문학부에재직하며피터펜브스,게르하르트리히터,대니얼헬러-로즌등의걸출한제자들을길러냈고,1998년프랑크푸르트대학으로옮겨가비교문학과를창설했다.스위스에위치한유럽대학원학교의에마뉘엘레비나스교수직을겸했으며,2003년이후비정기적으로뉴욕대학독문과에서방문석좌교수로일했다.자크라캉의『세미나』와폴드만의『독서의알레고리』를독일어로번역했으며,1993년부터작고할때까지스탠퍼드대학출판부에서간행하는〈자오선:횡단하는미학〉총서책임편집자로활동했다.2000년이후데리다의해체주의와변별되는독자적인노선을구축하면서‘문헌학’의이념에깊이천착했으며,이노력은『문헌학,극소』를통해하나의작은결실을맺게된다.이에하마허의제자와친구들은합심하여2019년『언어를주기:하마허의문헌학을향한95개테제에대한응답들』이라는논문집을펴냈는데,거기에는하마허의장대한답변도함께실려있다.그의많은유작가운데『언어정의Sprachgerechtigkeit』『함께없이함께MitohneMit』『단한번도한번에Keinmaleins』『남아있는할말Waszusagenbleibt』등이출간되어있다.절친한벗이었던철학자장-뤽낭시는그를이렇게추모했다.“하마허는[하찮은]벌레앞에서몸을굽히는강력한거인이다.”

목차

문헌학을향한95개테제
문헌학을위하여

옮긴이해제『문헌학,극소』에붙이는9.5개의단편적주해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문헌학은묻는다,세계를손수파낸다”

“문헌학이라는이름은로고스─언설,언어혹은공표─에대한지식이아니라,그것을향한호의,우정,사랑을뜻한다.이명칭에서필리아에해당하는부분은일찍이망각에빠지고말았는데,이로인해문헌학은점차로고스학,즉언어에관한학문,다시말해박학으로간주되었고,급기야언어자료,특히문헌자료를다루는학문적방법으로이해되기에이르렀다.그러나문헌학은지식의언어보다앞서그것에대한소망을먼저일깨우는운동,그리고[기존의]인식속에서[정말로]인식되어야하는것이제기하는요구에주의를기울이는운동이다.”(17쪽)

그렇다면문헌학은무엇인가?이책에서저자는문헌학의특성과대상등에관한명제를부단히제시하지만문헌학이무엇인가를규정하기는쉽지않아보인다.저자에따르면,문헌학은주어진언어를넘어서는말하기의불안정한운동이다.문헌학은통용되는규정에저항하고질문한다.만약문헌학이어떤주장을내세운다해도,그렇게하는이유는계속질문하기위함이다.질문하기속에서모든확실성은언어에내맡겨지며,‘언어’와‘말할수없는것’사이에존재하는불균형때문에언어는척도가없는것이된다.그리고척도를찾을수없는문헌학은,횔덜린의언어가그렇듯자유로운리듬속에서말할수있게된다.슐레겔의표현대로“모든선을끊고,모든원을폭파하며,모든점을뚫고,모든상처를찢는”것이문헌학적실천의길이다.즉규정된형태로실행될수있다해도결국문헌학은비-규정한다.“문헌학이‘너는대체무슨일을하느냐’는질문에대답할때느끼는당혹감은자신의정체성에대한구원적규정을기대하는여느분과학문이으레한번씩앓고지나가는홍역같은것이아니다.자신이무슨일을하는지모르고,또결코알수없기에느끼는당혹감,바로이것이문헌학”이라는말또한이맥락에붙일수있을것이다.
저자는틈새없이촘촘한설명의체계를구축하는것을오히려논리를마비시키는것,언어를방해하는것으로간주한다.그리하여이책은명석판명하고질서정연한언어를향하는대신,서로분절되어있고열려있는가능성을문헌학의본령으로서사고한다.“문헌학은우선,그리고다른무엇보다,간격의반복이다.모든앞선말로부터자신의말을분리하고또이말을다시그것보다앞선말로부터분리하는간격.문헌학,이것은언어에대한극진한사랑속에서우선언어로부터분리되는경험을끝없이반복하는것이다”(200쪽).
“끝없는질문의수렁에제발로걸어들어가는것이야말로헌-문헌학자의일이다.아무것도제대로해결될수없고,어떤것도바라는대답이될수없음을지나칠정도로잘알면서도기어이,기꺼이,부답의심연으로뛰어드는것.그것이바로문헌학의일이다.프란츠카프카는이렇게말했다.‘질문에대답하지않는자는시험에통과한것이다.’이진술에눈곱만큼의역설도수수께끼도들어있지않다는사실을선연히실감한자는이미문헌학자라고할수있다.‘무엇-질문’에서‘어떻게-질문’으로의이행을포월하여마침내,어느새,‘질문-질문’에도달한것이므로.”(「옮긴이해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