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옌

에리옌

$20.00
Description
“이 시대엔 살인만 아니면
뭘 해서 돈을 벌든 다 괜찮아”

역사 천착에서 현실 성찰로 전환한 내몽골 대표 작품
분단의 현장인 내몽골 국경도시 ‘에리옌’
그에 얽힌 욕망과 소시민들의 이야기
‘초원의 향수와 거시적인 해방 투쟁의 역사’가 주된 소재였던 몽골 문단에서 당대 현실을 성찰한 소설을 발표하며 내몽골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가 항타고드 오손보독의 장편소설 『에리옌』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77번으로 출간되었다. 『에리옌』은 1990년대 말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국경도시 에리옌에서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에리옌’은 북쪽으로 몽골국과 국경을 접하고, 베이징(중국)에서 울란바타르(몽골국), 모스크바(러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철도가 지나며 몽골과 중국 간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작은 국경도시다.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로 에리옌의 시민들은 온갖 혼란과 부조리, 불의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년 시인 숨베르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애인 아리오나를 따라 고비사막 중앙에 자리 잡은 국경도시 에리옌에 오지만, 그에게 에리옌은 파렴치한 거짓말과 속임수, 혼란으로 얼룩진 낯선 세상이다. 숨베르가 어렵게 구한 장사 밑천은 애인의 아버지가 탕진해버리고, 애인의 어머니 역시 숨베르 친구의 물건을 뻔뻔하게 빼돌려 이득을 챙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숨베르는 결국 애인의 집에서 쫓겨난다.

가족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에리옌에 온 지 3년째인 철멍은 체육대학에 들어가 유명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천대받는 삼륜거꾼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순수하던 철멍은 ‘에리옌식’으로 변해간다. 작가 오손보독은 당대의 몽골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그동안 내몽골 문학의 주류였던 역사소설과 차별화되는 참신함을 선보였다. 몽골 소설 하면 떠오르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대신에, 다양한 계층의 ‘현대 도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내몽골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저자

항타고드오손보독

杭圖德ㆍ烏順包都嘎(1969~)
중국북동부내몽골지역의농촌나이만에서태어났다.14세에첫작품인산문「꿈아닌‘꿈’」을잡지『처머를릭』에발표했다.고등학교졸업후농사를짓다가1994년에국경도시에리옌으로가중국국적을가진중국인이자몽골인이기도한내몽골의중개업자들이중국어를모르는외몽골상인들을속여중간에서폭리를챙기는행태를보게된다.이때의체험과고민,성찰을바탕으로단편소설「에리옌남부시장에서」(1995)와중편소설「에리옌,에리옌,에리옌」(1996)을발표하고장편소설『에리옌』(2000)을출간했다.도시‘에리옌’에대한르포르타주로보일만큼당대의현실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에리옌』은그동안내몽골문학의주요소재였던‘초원의향수와거시적인해방투쟁의역사’가아닌,욕망에찌든도시소시민들의현재를보여주어‘새로운’이야기에목말라하던몽골독자들의큰호응을얻었다.
주요작품으로중편소설「이장(移葬)」「나이만의몽골위인들」,몽골족민요연구서『너건자야』,동시집『동생이그린세계』등이있다.

목차

에리옌
옮긴이해설ㆍ역사에서현실로,영웅에서서민으로
작가연보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청년작가의감수성이포착한에리옌의민낯
에리옌에물들어가는불의한욕망들
“에리옌은밤에길을잃기쉬운곳을의미합니다.그런곳으로가면아침이올때까지그주변을헤매다가목적지에도착하지못하게되죠.”_항타고드오손보독

항타고드오손보독은중국내몽골자치구의농촌나이만에서태어났다.1994년부터에리옌에서잠시머물렀는데,이때의체험을바탕으로에리옌과관련된일련의작품들을썼다.단편소설「에리옌남부시장에서」(1995)와중편소설「에리옌,에리옌,에리옌」(1996)에이어장편소설『에리옌』을완성했다.오손보독은특히중국국적을지닌중국인이면서몽골족인중개업자들이중국어와몽골어에모두능통하다는이점을활용해중국어를모르는몽골국(외몽골)상인들을속이며폭리를챙기는행태를지켜보며크게괴로워했다.이와같은문제의식은작품안에서일관되게나타난다.
소설속에서가장많이언급되는인물유형도중개업자들로,돈이라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부류들로묘사된다.옛친구후브치를만난철멍이신뢰를바탕으로한중개업을해보자고말하자,후브치는이렇게충고한다.“넌에리옌에서몇년이나산놈이여전히정직하게살생각을하냐?!하하하……이시대엔매춘부한테빌붙지않고,살인만안하면뭘해서돈을벌든다괜찮아.”(243쪽)철멍의형인만라이는일찌감치에리옌식생활방식을습득한중개업자다.그는몽골국상인에게산염소털에무게를늘리는약을섞어한족에게팔아넘기거나,철멍이학교진학을위해모아둔돈을가져가신혼집을짓고,아내와가족들사이에갈등이생기자철멍을비롯한가족들을쫓아내는일들도서슴지않는다.주인공숨베르의장모가될구일레스,친구인척질과룽단화르역시남을등쳐먹는일에익숙한중개업자다.
이들외에도뜨내기장사꾼과떠돌이시인,삼륜거꾼,호텔경비,매춘부,갑부,특권층,폭력배,식당종업원등에리옌에서살아가는각계각층의인물들과그들의관계망을다각도로그려낸묘사는‘지금에리옌’의무자비한현실을있는그대로보여준다.작가의실제체험과직접취재한많은양의자료를바탕으로완성한이소설은도시‘에리옌’에대한르포르타주라고도할수있을정도로심도있고사실적인작품이다.

현실속나약하고무력한주인공의등장
순수성을향한열망이남긴흐릿한희망

『에리옌』의주인공들은이전의내몽골문학작품에서보여준인물들과다른특징을보인다.전통적인몽골영웅서사시의주인공이나오손보독이전의현대소설에서많이등장한의적이나투사,혁명가와달리‘매우평범’하다.숨베르는자기감정을이기지못해여자친구집에서쫓겨나는소인배에가까운데다,돈버는재주도없는무능하기까지한인물이다.철멍역시운동선수가되겠다는꿈은있지만,별볼일없는삼륜거꾼일뿐이다.건장한체격에힘센청년이면서도폭력배들을피해도망다니다유일한돈벌이수단인삼륜거마저포기하는무력한소시민이다.그럼에도이무기력하고비참하기까지한주인공들과소시민에불과한주변인물들은부조리한현실에대해끊임없이고민하는모습을보인다.숨베르는내몽골의몽골족과외몽골상인들간갈등을우려하고,숨베르의친구인토그치역시풍부한지식과식견으로에리옌의세태를비판하며,정치적·지리적단절로외몽골과내몽골간에언어의이질성이커지는현상이나외몽골사람들이같은민족인몽골족들을더싫어하게된상황을걱정하는모습을보인다.
오손보독은에리옌에서벌어지는수많은갈등과충돌에도불구하고동족간의순수한동경과그리움,정신적유대감과동질성을지켜나갈수있다는희망을찾는다.숨베르가식당이나시장에서만난외몽골사람들과이야기를나누고싶어하거나몽골국시인순달라이와순수한우정을나누는모습,토그치를배웅하러기차역에왔다가몽골국의수도울란바타르에가고싶다는생각을하는장면들이그렇다.조건없는사랑을보여준바양달라이의정부더르너체첵역시몽골인들속에남은순수성을발견하게하는인물이다.일방적으로연락을끊은바양달라이를만나기위해국경을넘어온더르너체첵은가정을지키고자인연을정리하며다른남자를찾아가라는바양달라이의말에항변한다.“사랑이란것이아무한테나줄수있는게아니에요.준사람에게서돌려받을수있는것도아니고요.”(457쪽)홀로딸을키우며생계마저걱정해야하는처지임에도,환자가된바양달라이에게받은돈을돌려주고떠나는더르너체첵의뒷모습은안타까울정도로순수하고이타적이다.
소설속에서에리옌은디스토피아에가까운도시이지만,작가는숨베르와토그치,더르너체첵같은순수성을지키려는인물들을통해희망이아직남아있다고기대하게만든다.소시민들의현실에대한성찰이미래를열어줄단서임을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