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장례법 (신종원 장편소설)

습지 장례법 (신종원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조부는 이 책들을 족보라고 발음했지만,
당신은 그물로 알아들었잖아요.”

늪의 시간, 안개의 일부가 되는 길…
그 지독한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 위의 진혼곡
소설의 처음, 그 생의 음악적 질서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종원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습지 장례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이 단편소설 세 편과 에세이로 이루어진 비교적 적은 분량의 소설집임을 감안하더라도, 데뷔 후 2년 남짓한 시간에 소설집 『전자 시대의 아리아』와 『고스트 프리퀀시』를 연달아 출간하고, 이후 다시 1년이 채 되지 않아 첫 장편소설을 펴낸 것은 그 속도와 필력이 단연 남다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순서상으로는 그의 세번째 책이지만,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집 출간 전인 2021년 3월 25일에 씌어졌다. 그러나 씌어진 시기와 상관없이 이 이야기는 어쩌면 작가 신종원의 소설, 그 가장 처음에 이미 놓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만 뒤를 따라가는 음향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을 모방하는 노래다”라고 밝힌 그의 신춘문예 당선 소감은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남겼던 일기의 일부를 가져와 조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기는 앞서 죽은 집안의 어른들을 떠올리며 자신 역시 같은 죽음을 맞을 거라는 사실, 나아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적어 남긴 기록이었다. 고증조부와 증조부, 조부의 사인이 뇌질환으로 정확히 같았다는 데에서 아버지와 자신의 미래를 앞당겨 그려보았던 작가는 생이 카논처럼 흐른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그러한 생의 음악적 질서 속 어떤 마지막의 지점마다 일일이 코다를 찍고자 했다. 이는 소설과 별개로, 세상을 인지하는 일종의 연장 신체로서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들의 삶을 뒤따르며 그것을 닮아가는 것이 생에 부여된 자연의 흐름이라면 그 굽이마다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것. 하여 유령처럼 부유하는 음악적 질서를 붙잡아 가청주파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일, 그렇게 은폐된 음향 패턴을 들려주는 일이 신종원의 소설 쓰기였다.(인터뷰 신종원x강동호, 『소설 보다: 가을 2020』, 문학과지성사)

대대로 집안 어른들이 죽으면 잠기는 늪, 그곳에서 조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혈족의 역사를 전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수장의 전통을 이행하는 늪지기의 마지막 책임으로 남겨진 ‘당신’은, 늪에 가라앉아 있는 선조들과 오차 없이, 결락 없이 포개어지는 이목구비를 가진 ‘당신’은, 그러나 대를 이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모습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작가의 가계를 엿볼 수 있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분이 흐릿한 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바로 소설 이전부터 작가를 관통해 흐르는 생의 음악적 질서, 카논으로 이루어진 삶의 악보이자 코다를 찍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한 소설의 기원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신종원의 첫 장편소설 『습지 장례식』을 조심스레 그의 소설, 그 처음에 놓아보는 이유이다.
저자

신종원

소설집으로『전자시대의아리아』『고스트프리퀀시』가있다.

목차

1부.임종臨終
2부.수시收屍
2-1.작은몸
2-2.붉은몸
2-3.뒤집힌몸
2-4.목잘린몸
3부.안치安置
4부.발상發喪
5부.삼우三虞

시|못·박지일
에세이|번역의시간·이소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장례이후다시시작되는삶,그리고사랑
소설은장례의절차에따라「임종」「수시」「안치」「발상」「삼우」총5부로나뉘며.그중「수시」에서다시,거두는시신에따라「작은몸」「붉은몸」「뒤집힌몸」「목잘린몸」네가지로나뉜다.
어떤목소리에의한이인칭으로서술되는이작품에서‘당신’을늪으로이끈것은어둠속에서걸려온전화이다.찰랑……찰랑……느닷없는물소리로찾아온전화의건너편에선“여보세요?”하고묻는이편의질문에도아무응답이없다.가만히답을기다리는사이,물소리는‘당신’의머릿속에외딴곶끄트머리에선무인등대를떠올리게한다.“사설극장의무대바깥,텅비어있는스탠드라운지를혼자지키고서있는1인관객”의모습을한그등대에서다시,신종원의신춘문예당선소감“(나는)비어있는콘서트홀에홀연히떠오르는음성이다”가겹쳐지는것은자연스럽다.이제부터‘당신’이라는‘음성’이흘러가야할길을비춰줄등대가전화기저편에있다는예감때문일것이다.심각한통신장애속에엉킨채,신호가미약한장소에서가까스로녹음된소리처럼‘당신’에게닿은전화기저편의목소리는결국영영떠나버리고만다.“길잃은음성들이흘러가사라지게될안개같은죽음속으로.”‘당신’이조부의‘임종’을받아들이는순간이다.그러니까이이야기는조부의죽음을비로소실감하고나서혼자치르는,‘당신’의뒤늦은장례에관한것이다.
그러나조부의장례는조부한사람의장례로그치지않는다.목소리는“천년의질서와전통에따라”“엄선된시신네구를죽음에서다시한번일으켜세웠”다.이‘수시’를이행하는것역시‘당신’의역할.수시이후‘안치’를마치며‘당신’은조부에게다짐한다.“천년의핏줄을이어가지않을것이고,당신의자손으로남지않을것”이라고.결국‘당신’이이뒤늦은장례를혼자치를수밖에없었던이유가여기에있었던것아닐까.이어지는‘발상’이더욱구슬프게들리는것은그때문일것이다.
‘삼우’에이르러다시이야기는응답없이물소리만들리던그날의‘전화’로돌아간다.전화기에서전해지던소리,그것은죽은조부가아닌조부에게물려받은늪이보내온소리일지도모른다고.조부에게서물려받은땅이있다는공통점을가진시인박지일과나눈대화에서나온이야기였다.그목소리를돌려주는일을소설로서수행하는것.장례는그렇게치러지게되었다.그렇다면거기서다시,독자들은소설의처음으로되돌아가게될것이다.그것은같은이야기의반복일테지만결코같지않을것이다.이장례가“이미살았던삶을살고있는모든사람들”,구원을기다리는조상들이모여있는림보를불태우는일이었다는것을알게되었기때문이다.
하지만이것은자신의가계를부정하고선조들과의단절을의미하는것이결코아니다.작가는“림보가불타없어진자리에서도삶은계속될것이”라고말한다.열매가되기위해서는꽃을죽여야만하고,종족과시대를막론하고생명은언제나위쪽으로검을겨눠왔으니,림보를불태우는것역시생의음악적질서가아니라고말할수있을까.작가는또한그질서를따라흐르는음향신호이다.하여대물림에서벗어나고자애쓰지만,또한어쩔수없이조상들을모방하는노래이기도하다.‘사랑’때문이다.‘사랑’이그를“죽은영혼들의목소리를엿듣기위해엉금엉금무덤가로되돌아가”게한다.하여그의진혼곡은눈물없이흥건하고슬픔없이사무친다.

이책의뒤에는앞서이야기한것처럼신종원작가와공통점을가진박지일시인의시와신종원작가의작품을누구보다애정어린시선으로읽어온이소문학평론가의에세이가실려있다.죽은영혼들과긴밀하게엮여흐르는생의질서를다양한목소리로듣는독서의경험은이작품을하나의특별한집안이야기가아닌,읽는‘나’의이야기로까지확장시켜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