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김경욱 소설집)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김경욱 소설집)

$14.00
Description
“제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한 분은
하루빨리 자수하여 광명 찾기를 권합니다”
나에 대해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내 자전소설을 쓴 이는 누구인가

나의 안팎에서 ‘나’를 섬세하게 뜯어보는 김경욱의 새로운 시선!


진화하는 ‘소설기계’에서 고민하는 ‘배트맨’이 되어 돌아온 김경욱!
저자

김경욱

1993년작가세계신인상에중편소설「아웃사이더」가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바그다드카페에는커피가없다』『베티를만나러가다』『누가커트코베인을죽였는가』『장국영이죽었다고』『위험한독서』『신에게는손자가없다』『소년은늙지않는다』『내여자친구의아버지들』,중편소설『거울보는남자』,장편소설『아크로폴리스』『모리슨호텔』『황금사과』『천년의왕국』『동화처럼』『야구란무엇인가』『개와늑대의시간』『나라가당신것이니』등이있다.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김승옥문학상,이상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
돼지가하는일
그분이오신다
타인의삶
튜브
하늘의융단
가브리엘의속삭임
윗집남자
이것은내가쓴소설이아니다

해설|이것은당신이쓴소설이다ㆍ허희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올해로데뷔29년째를맞은30년차소설가김경욱의열여덟번째책이자아홉번째소설집『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가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바그다드카페에는커피가없다』『베티를만나러가다』『누가커트코베인을죽였는가』『장국영이죽었다고?』등데뷔이후출간한일련의소설집제목에서도알수있듯,그는1990년대를대표하는‘신세대’작가로불리며당대젊은세대의모습을다양한문화적코드들과함께절묘하게포착해냈다.하드보일드한문체는이러한그의작품세계를더욱독보적으로만들었다.“그는영화처럼슬퍼하고,음악처럼외로워한다.그래서영화나음악은인용이아니라체험이된다.김경욱은그것들을보거나듣는것이아니라그것들과함께산다”는문학평론가김미현의말처럼,일찍이독자를전혀다른차원으로끌어들이는김경욱월드가있었다.작품활동을이어오는동안그는늘‘젊은작가’였다.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김승옥문학상,이상문학상등을수상한작가이기에그작품성에대한신뢰는말할것도없거니와,1~2년에한권꼴로소설집이나장편을출간하는성실함과꾸준함이‘김경욱’이라는브랜드를‘믿고읽게만드는’강력한힘아닐까.‘필력’이라는말로도다채울수없는작가김경욱의힘말이다.

하여그에게는많은별명이있다.가장유명한별명은다섯번째소설집『위험한독서』의해설에서문학평론가서영채가언급한‘진화하는소설기계’.오직쓰고또쓰는것으로자신만의독창성을이루고있다는의미에서붙여진그별명은일곱번째소설집『소년은늙지않는다』에와서또다른옷을입는다.어떤하나에얽매이지않고늘새로운소설과‘잘연애하는바람둥이’(문학평론가백지은)가그것.그러나무엇보다그에게어울리는별명은뒤마의장편소설『몬테크리스토백작』의옛번역제목인‘암굴왕’일텐데,자신의암굴에서소설을쓰는평소생활과맞닿은별명이기때문이다.이번소설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허희는여기서한걸음더나아가작가김경욱을들여다본다.“당대,자기가살고있는공동체에대한질문”이소설이라생각하는김경욱은“암굴(작업실)에서자기외부를샅샅이살펴”보는사람이고,이때그가보유한집요한관찰력,예리한통찰력,꾸준한실행력이진가를발휘하는데,마찬가지로이러한능력을겸비한영화계인사가‘브루스웨인-배트맨’이라는것이다.이렇게‘소설기계’가진화를거듭하여‘바람둥이’에서‘암굴왕’을거쳐‘배트맨’이되어돌아왔다.집요한관찰력,예리한통찰력,꾸준한실행력의결과물『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로!


‘세상과어떻게연결되어나는내가되는가’
김경욱이던지는지금-여기,우리에게필요한질문들

그간김경욱의소설에서그의독특한상상력은“타자에게집중하는”(백지은)방식으로이루어져왔다.한데이번소설집은『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라는제목에서부터그시선이‘나’로향해있다.게다가이전작품에서는볼수없던‘소설가소설’에이어,책의마지막에이르러서는그소설이자신이쓴소설이아니라는소설까지실려있다.이렇게김경욱의소설세계가또한번낯설어진다.김경욱이변했다고?

어쩌면그는일관되게타자에게집중하는경로를영유하여자기를탐색해오지않았을까.고담시가사실상브루스웨인-배트맨의확장된자아인것과마찬가지로.그가집단주의사고에서벗어나고유한‘나’의목소리를강조한90학번신세대작가의기수로꼽히면서도자기외부세계에몰두한까닭이여기에있다.그는‘하나를위한모두(Allforone)’라는집단주의를‘모두를위한하나(Oneforall)’라는공동체주의로전유한다.‘세상이어떻든나는나로서오롯이존재한다’라는요즘세대의의식과는대별되는방식으로,그는‘세상과어떻게연결되어나는내가되는가’를물어왔다.(해설「이것은당신이쓴소설이다」,pp.283~84)

표제작이자소설집가장처음에놓인「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는드러낼수없는비밀을안고있는은둔형외톨이‘김중근’의이야기이다.“누군가자신에대해말할때면”“통째로삼켜지”고“옴짝달싹할수없이숨통이조여드는느낌”을받는김중근.그는스스로를삼인칭‘김중근’으로지칭하며‘바라보는나’와‘활동하는나’를분리하는데,모두가바이러스와거리를두어야하듯스스로와거리를두는이진술은자신의이야기를효과적으로고백하는방법이된다.독을품어포식자의접근을막는‘코스타리카블루진’처럼눈에띄는외모에서부터원활하지못한소통방식까지,타인이다가오지못하도록무장된그의격리된삶을독자들역시‘사회적거리’를둔채따라읽을수있다.
‘나’에대한고백은「돼지가하는일」에서도이어진다.연평도포격사건나흘뒤,이를취재하러온외국인저널리스트산체스를태우고임진각으로향하던택시기사‘조원배’는언어도다르고서로에대한이해가전혀없는이외국인에게한국전쟁때“지뢰를대신밟아준것으로도모자라영혼의한사발까지내어준대길이”이야기를들려준다.누구에게도해본적없이혼자만간직하던이야기를꺼내놓은그는갑자기찾아온정적에“만취상태로소변을보면나도모르게한쪽다리가들려”라고엉뚱한말이나와버린상황에서목젖이튀어나오도록웃는산체스를보며“내6·25든,내대길이든,내인생이든,그무엇이든”존중받는느낌을갖는다.오히려같은나라젊은이들에게는없는사람취급을받기까지하면서소통이불가능했던조원배는산체스와연평도까지가려하지만이루어지지않고,마치허리에서끊긴속담의뒤를끝내알길이없어궁금해하듯산체스를궁금해한다.
「그분이오신다」는김경욱의작품에서그동안볼수없었던‘소설가소설’이다.단한줄,단한단어도써지지않는시간을보내던‘나’는이사를위해계약한집에서바로전에흉사가있었다는이야기를들은뒤,불안해하는아내와달리소설쓰기의물꼬를튼다.그것이말을전한다른부동산의착각에서비롯되었다는말을듣고도,소설을다시쓸수있게한‘흉사’에대해미련을버리지못한‘나’는결국그단서를찾기에이르고,아직이사를하지않은그빈집에서다시‘그분’이오시기를기다린다.
2021년이효석문학상우수상수상작「타인의삶」은아버지의임종뒤에자신이몰랐던아버지의모습을하나둘알게되면서그속에서아들인자신의얼굴을발견하게되는이야기이다.밤새아버지의간병을하고돌아온지두시간만에아버지가임종을앞두고있다는연락을받은‘나’는다시돌아간병원에서“형은,내형은?”이라는아버지의마지막말을듣고혼란에빠진다.그가장남이었기때문.‘나’는과거에집에잠시머물렀던형에대한기억을불러들이고,다른가족들에게그에대해물어보기도하지만진실을알길이없다.그러나막상진실을알수있는기회가왔을때,‘나’는아버지가자신이알던대로비밀이하나도없는아버지일까봐차마확인하지못한다.이작품은「돼지가하는일」과함께노인의삶과존엄에대한작가의관심을엿볼수있다.
2014년4월세월호참사를떠올리게하는작품「튜브」는혼자크루즈여행을떠난‘주영광’의혼란을담고있다.자신의이름이적혔지만자신의것이아닌선내분실물튜브의진짜주인을찾는과정은자연스레‘주영광’의아들을찾는일로바뀐다.그의아들을보았다는크루즈승선객들과아들이집에있다고철썩같이믿고있는‘주영광’의진실공방은마침내그의아들이선박침몰에서목숨을잃었고,그가아들의죽음을받아들이지못하고스스로가짜현실속에살게하고있다는것을드러낸다.
그리고차마자신을고백하지못하는이도있다.「하늘의융단」의‘곽춘근’이다.스스로지어준이름‘곽도연’으로살고싶었던그의삶은자신의뜻과다르게흘러갔다.임업교사에서영어교사로,사랑하는딸과는연락이끊어진채로.그런데정년을얼마남겨두지않고학생을성추행했다는혐의를받아교단을내려와야하는상황에처한다.그는스스로불순한의도는물론피해학생이말하는신체접촉도할리가없다고생각하지만,그것을증명하고해명하기위해자신을고백할수없다는것또한안다.그리고그러한고백은진상조사위원회가아닌자신의딸에게먼저라는것을깨닫는다.
「가브리엘의속삭임」은성경학교에서일어난성추행논란의진실을그날같은자리에있었던여러인물의진술을통해밝혀가는이야기이다.귓속말로성경구절을옮기면서왜곡되고변형되는‘가브리엘의속삭임’이라는게임처럼이사건을보는시각에따라진술의내용이달라지면서,사건은진위를가리고그에합당한조취를취하는해결의방식으로부터점점멀어진다.고백뒤에이어지는사람들의말이다시어떤방식의공격이될수있는가를,혹은그반대의경우로서고백이진실한지를어떻게판단할수있는가를생각하게하는작품이다.
『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에서그누군가가‘자신’의경우라면,그것은고백이라할수있을것이다.이고백은각각의작품에서다양한모습으로나타난다.「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의김중근은‘바라보는나’와‘행동하는나’로자신을분리하고,「하늘의융단」에서는고백을하기위해용기를내어보는‘곽춘근’의모습으로끝을맺는다.「윗집남자」의경우는조금다르다.의외의상황에서발견하는전혀다른‘나’의모습에서숨겨진얼굴에대한고백을읽을수있다.그리고이고백은진짜‘나’의얼굴이무엇인지알수없게한다.육아휴직중인‘수영’의생활은전적으로아이에게맞춰져있다.하루중온전히자신의시간을누리는때는아이가잠든사이나갔다오는잠깐의외출이전부다.그러던어느날의외출에서그는우연히어떤여자와동선이겹치게되고,자신을두려워하는상대의기색을느끼자“정체모를비릿한열기에”휩싸여뒤를쫓는다.상대에게위협과폭력이될것이분명한그추격은“생명의경이.그신비로운조화속주인공”이던그를순식간에괴물로바꿔버린다.
끝으로「이것은내가쓴소설이아니다」는김경욱작가본인이앞서썼던‘소설가소설’「그분이오신다」를자신이쓰지않았다고반박하는또하나의‘소설가소설’이다.이작품속에서「그분이오신다」는‘소설가소설’을넘어자전소설로분류되지만정작작가는자신의SNS에공개수배를내릴만큼자신이쓰지않은소설이라확신한다.이소설이소설가A씨의작품인가아닌가의논쟁은다시,‘사람들이소설가A씨에대해하는말’로정리될수있다.결국이소설을쓴이는누구인가,라는원래의질문은중요하지않게되고,사람들이소설가A씨에대해한말만남게된다.그것은정말소설가A씨일까?

『누군가나에대해말할때』에는‘나’에대해말하는다양한이들이있다.이들은스스로에대해말하는소설속화자이기도하고,화자가우연히만난타인이기도하고,부재함으로써그존재를절감하게하는가족이거나멀찍이떨어진자리에서서로에대해잘알지못한채말을옮기는누군가이기도하다.뿐만아니라그실체를알수없는미지의무언가,혹은실제로모습이드러나지않은익명의존재일때도있다.하지만그들을경유해결국‘나’에대해말하고,‘나’를안팎에서입체적으로뜯어보는이는결국‘나’이다.이렇게김경욱은‘세상과어떻게연결되어나는내가되는가’를묻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