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만으로도가려지는틈에서
길을잃고,헤매이고,나아가는세계
다열려있지만손과발이닿지않는곳
비와걸레가닿지않는곳
벽과바닥사이로들어가나오지않는곳
하루종일있지만하루종일없는곳
한낮에도보이지않는곳
흐르지않는공기가모서리세워박힌곳
―「구석」부분
이번시집의시적공간을표명하는‘구석’은평소인지하지못했던장소와사물을나타낸다.이곳은한낮에도다른사물들에가려져부재하는것처럼보이는사물들의거처이자사람들이더는나아갈수없는모서리가박힌곳이다.하지만이작은틈을후벼보고,긁어보고,빨아보는아기에게‘구석’은더없이안전한공간이기도하다.“아직제가태어나지않은것같은표정으로”(「아기앞에서」)스스로를방어할어떤몸짓도하지않고편한자세로앉아있는아기앞에서시인은이내자신의두려움을들키고만다.그와동시에“구석에숨어있는구석마다콧구멍을들이대”(「털이날리고지저분해지기에」)며자신의풍성한털을찾는몰티즈의눈빛에서알수없는가련함을느끼기도한다.아기가손가락으로탐미하고,몰티즈가콧구멍으로감지하는‘구석’이라는공간은발견은커녕쉬이상상하기도어려운곳이다.타인에게둘러싸인이세계에서인간이가장두려워하는것이바로소외이기때문이다.이‘구석’을상상하는일은순간순간튀어오르는호기심을억누르고,고유함을내재한사물의형태를비트는것만으로이루어지지않는다.그것은사물을,식물을,동물을,인간을배척하며자기안의모서리를세우는일에불과할뿐이다.이시집의사물주의자는막연히세계의끝이절벽이라여겨온독자에게틈을통해틈너머의세계와교감하는일이야말로사물들의세계가도래하는것이라말한다.그리고이모든것이자기자신과의화해라고덧붙인다.
오지않는슬픔을들여다보고있을때
시인은기꺼이사물주의자가된다
똑똑눈이땅바닥을두드린다
팔에서길게뻗어나온눈이땅을두드린다
땅속에누가있느냐고묻는듯이
곧문을활짝열고누가뛰어나올것만같다는듯이
눈은공손하게기다린다
땅이열어준길에서한걸음이생겨날때까지
―「눈먼사람」부분
사물은자신의주위를에워싼공기의투명함마저번거로워하고,고양이는제몸의털가죽이답답한나머지벗어던지려한다.이렇듯시에서의사물은태초의모습으로회귀하려하는데,오로지사람만이가만히멈춰선채로더많은것을갈망한다.이때강아지와고양이그리고아기의천진함에아무런주석도붙이지못했던시인은휠체어를탄사람을바라본다.그가모두가지난자리에서서아직닥치지않은슬픔에관하여염려하기때문이다.모서리에아슬아슬하게서있는사람이무언가가만히들여다보고있을때,그게자기자신의슬픔과닮아있을때시인은기꺼이사물주의자가된다.이때시인이재창하는것은사물에대한공경과예의로돌아가자는것이다.“눈이닿은자리,오직눈이만진자리만을”(「눈먼사람」)보는사람은자신의몸가짐을정돈하고한평생의체중이실린걸음을힘겹게내디딘다.인간보다먼저길을두드리는지팡이의말에귀를기울이듯단한발자국만열리는길을향하여나아가는일.여기에는눈앞의사물을볼수만있을뿐감각하지못하는사람에게는존재하지않는공손함이깃들어있다.“스스로일어설수없어서/서지못하고앉아있”(「공원의의자」)는네다리의의자역시머리가없기에명상에잠겨있다고말하는시인은,자신이본것을단언하기보단일상속우연에기대어독자들에게보여주는것을택한다.
대부분의사물이화자가되는김기택의시에담긴시선은미덥기만하다.타인이구축한지배질서의세계가아닌모두가자신만의고유함을되찾는평등한사회를지향하기때문이다.이때시인은사물로부터구원받는순간을공손히기다리는일을수행한다.충분히들여다보고,기다리고,그자리에머물렀음에도시인은“아직쓰지않은시,어딘가숨어나를기다리고있을것같은시”에대해생각하다“시가부끄러워지는순간”(‘시인의말’)에대해상상한다.사물주의자가토로하는부끄러움이란사물이사물답게,인간이인간답게살아갈이시대의희망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