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위가 (전예진 소설집)

어느 날 거위가 (전예진 소설집)

$14.00
Description
“저기요, 치킨집에 거위가 말이 돼요?”
출구 없는 슬픔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
발랄한 상상력이 뒤덮이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평범한 일상에 한 방울의 상상력을 떨어뜨린다면
어떤 무늬의 이야기가 나타날까?
그에 대한 다채로운 대답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최진영(소설가)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위트 있지만 시니컬하게 서술”한다는 평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전예진 작가의 첫 소설집 『어느 날 거위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꾸준하게 순문학과 환상소설의 접점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에 고스란히 담겼다. 팬티가 매달린 나무, 숨통을 달고 고래가 된 오빠, 그림이 된 직장 상사, 대홍수 속 잠수부 아르바이트생, 팔다리가 동강 나도 죽지 않는 남편까지…… 슬픔으로 가득 찬 현실은 그의 소설에서 아름답고 이상한 환상 세계로 탈바꿈한다. 특히 작가의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어느 날 거위가」는 사람이 거위로 변해 치킨집에 기거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인상적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작가의 말) 쓰는 작가의 성향은 담담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로 구성된 환상 세계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더욱 명확하게 비춰낸다. 그 속에서 슬픔에 침잠할 뻔했던 인물들은 다시 부표를 발견하고 헤엄쳐 나갈 힘을 얻는다.

『어느?날?거위가』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에 응전하는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우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슬픔을 예민하게 감지하되 그것을 과장된 감정으로 휘발시키지 않는다. [……] 왜소한 인생들을 억누르고 있는 세계를 직시하면서, 그것이 침범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를 열심히 상상한다. 이것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슬픔과 기쁨일 테고, 전예진식의 삶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 이지은(문학평론가)
저자

전예진

2019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팬티
어느날거위가
귀경
숨통
파도를보는일
점심같이먹을래요?
우리집에놀러와
좋아질거예요

해설|이상한나라의‘웃픔’·이지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고요한슬픔을안고유쾌하게걸어가는상상력의바다유영하기

아파트담벼락너머로웅성대는소리가들렸다.여러사람의발소리,사진을찍는소리,이것봐,외치는소리가들렸다.그녀의발걸음이빨라졌다.후문으로들어서자그녀가사는1003동의살구색벽이나타났고단풍나무와둥근화단을둘러싼사람들이보였다.나무에는알록달록한천이걸려있었다.강상미는바람을타고흔들리는그것들에서눈을떼지않은채나무로다가갔다.
그녀가나무를올려다봤다.
확실했다.
그녀가눈을느리게감았다떴다.
팬티가분명했다.「팬티」

『어느날거위가』를펼치자마자눈길을끄는것은세태를반영한‘상상력’이다.
처음배치된소설「팬티」는강상미가사연이적힌라벨을단채나무에걸려있는팬티를발견하는장면으로시작한다.마치밈(meam)처럼전국수천그루의나무에티팬티,사각팬티,망사팬티를매달아놓은사건은이렇게정리된다.“이게외설적인게아니고요.[……]마음속깊은감정을표현하는거예요.”이말에느낀명랑한당혹감은고령임에도해외여행과인스타그램서핑을즐기는강상미의가치관을뒤흔든다.미관상좋지않은것이집앞아름다운나무에걸려있다는불쾌함과유행을따라가지못하고늙어버린자신의모습이충돌한것이다.결국강상미는옆집여자와함께나무에걸린팬티떼기를감행한다.
「점심같이먹을래요?」에서신입사원김지은이입사후발견한것은로비엘리베이터옆에걸린커다란그림,그속으로들어가근무시간의대부분을보내는유차장이다.15층영업팀의잘나가는일원이었지만어느날문득권고사직통보를받은그는퇴사하지않고버티다1층로비로좌천당하고말았던것.결국누구와도말섞지않고그림이되는편을선택한다.유차장은그림밖으로나올때마다,훈장처럼몸에붙은마른물감을털어낸다.
관찰자의영역에서숨막히는현실을그려낸「숨통」의‘김수민’은바다로들어가는것이꿈인중학생이다.상체가유난히발달했고수영에재능이있지만공부에는관심이없다.학교에서는집단괴롭힘을당하고집에돌아오면부모의눈치를보며강제로공부해야하는현실을벗어나기위해‘김수민’은수중학습참가자모집광고를보고지원한다.해양기관의최고실험체로선발된그는수차례수술을통해몸에숨통을달고인간고래가되어바다로사라진다.
이소설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이지은의말처럼『어느날거위가』는“황당하고발랄한세계”로가득하다.“그나름의방식으로현실에응전하는”노력과“삶에대한애착”(작품해설)이담겨있다.작가의상상력은갑갑한또는부조리한현실을벗어나기위한장치가아닌어떻게든잘살아내기위한장치로작동한다.이제우리는있을법하지만쉽게만날수없는사건들이어떻게바깥세계에서자라고몸집을불려결실을맺는지지켜보기만하면된다.


“모두어디론가가고있습니다.누군가를싣고서요.”

전예진의소설에서발견할수있는또다른포인트는‘단순함’이다.불필요한수식이없는단문과복잡한문제상황을단순하게생각하는작품속인물들이그러하다.이는내일로밀고나갈수없을것만같은오늘에생동감을불어넣는다.
「귀경」은‘주영’이엄마를차뒷좌석아래에싣고가는도로위에서시작한다.가족을위해26년간희생했지만아빠‘박영식’이그노고를인정하기는커녕모든부당한책임을엄마에게넘겨온것에화가난딸이엄마를구출하는방법은말그대로자신의집으로납치하는것이다.
「우리집에놀러와」의배경은일주일째내린비로6층베란다난간까지물이찬아파트다.고립된듯한‘김율’의집에서고층아파트로이사했어야한다고한탄하는아빠와는달리‘율’은베란다에서하얗고반짝이는물고기찾는것에혈안이고,취업에실패한듯보이는고모는산소통을메고잠수부로일한다.홍수와침수관련보도로떠들썩한와중에도율은친구에게이렇게말한다.“놀러와!”
「파도를보는일」에서‘지우’는돌아가신할머니의빈소에서슬픔에빠지는대신초등학생때떠난할머니와의여행을떠올린다.당시‘지우’의부모는이혼서류를앞에두고싸우는바람에여행에합류하지못했지만할머니와단둘이떠난바닷가에서의경험이지우에겐우울하기보다유쾌한추억으로남아있다.
마지막수록작인「좋아질거예요」의주인공은남편‘호진’과함께대학동창‘지운’의집들이에참석한다.그곳에서‘지운’이본인명의로집을샀다는자랑을들은‘호진’은상에놓인마파두부를불편한마음으로마다한다.집에돌아온뒤‘호진’은갑자기쓰러진다.이후다시깨어나지만노트북을들다오른손목이꺾이고왼쪽무릎이스쿼트기구에걸려떨어져나갈정도로약해진다.‘나’는이모든것이그날마파두부대가가만든음식을먹지않아서임을깨닫고레시피를구하러나서는데,오히려‘호진’은좀비유튜버로전향할결심을한다.

매일의무게를짊어지는것을두고전예진작가는이렇게표현한다.“나가고는싶은데이유없이동네를걷는게머쓱해또비슷한하루를지낸다.낮동안혼자시간을보내다보면누구라도붙잡고이야기하고싶어혼잣말을중얼거리거나글을쓴”다고.작가는이고독의시간을거쳐부조리한현실을통찰하고극복할수있는상상력을빚어냈다.복잡하고울적한생각을단순하게정리해서말이다.이렇게이소설집은어려운현실을살아가는독자들에게“함께이야기하고싶어지는소설”(작가의말)이된다.

호진은회사를그만두기로했고나는출근시간이들이닥쳐제대로씻지도못한채집을나왔다.호진이유튜브스타가되면그돈으로회사를차려서사장이되고,아니그건좀부푼꿈일지라도,일단은회사를때려치우고새로운인생을살것이다.우리의미래는핏빛이다.장밋빛보다붉은핏빛!「좋아질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