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 문지 푸른 문학

레아 - 문지 푸른 문학

$14.00
Description
청소년들의 감수성에 눈 맞추며 그들의 예민한 성장 과정을 보듬어온 김혜정 작가의 성장소설집 『레아』가 ‘문지 푸른 문학’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코로나19로 뒤숭숭한 학교에 ‘학폭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창백한 머리 박쥐’가 출몰한다면,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강력한 바이러스에 감염되길 바라는 친구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레아』에는 난관에 맞닥뜨린 청소년들이 서로에게 의지해 인생의 파고를 넘어가는 이야기 여섯 편이 오롯이 담겼다. 반납해버리고 싶은 10대의 마지막 고비를 그린 『18세를 반납합니다』와 죽음에 관한 여섯 개의 이야기를 다룬 『모나크 나비』 등에 이은 네번째 성장소설집이다. 겪어본 적 없는 고난과 시린 상처를 대하는 아이들의 방황은 여전하지만, 묵묵한 위로와 지지를 통한 연대 의식은 이번 소설집에서 더욱 돋보이는 주제 의식이다.
저자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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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물풀의아이
코끼리의방식
물범의시간
별들의장소
신이내린날
레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살날이얼마남지않았다는친모를찾아가는린영에게는먼저입양된언니가곁에있고(「물풀의아이」),조로증으로투병중인다훈에게는꿈속에찾아와소원을들어주는코끼리시누가있으며(「코끼리의방식」),해체된가족과결별한친구로인해방황하는‘나/지연’에게는‘별’이라부르던동생을호수에묻어야했던‘그애’가있다(「별들의장소」).이성이거나동성인것과는무관하게친구를잃고싶지않은은형과민기는진서의방황을기다려주기로하고(「물범의시간」),학폭바이러스에맞서기로결심한미주에게는아빠가외국에서만들어보낸안드로이드레아가있다(「레아」).성장소설집『레아』는곁에서보내는묵묵한지지와위로가청소년기의고난과상처를치유하는데얼마나큰힘이되는지를잘보여준다.옆에있어주는것,그리고오래도록기억하는것,그것이면충분하다는것을.

“이제나는네안에서영원히살게될거야.눈에보이지않는다고내가없는건아니야.”
〔……〕
“미주야,난네게아름다운기억으로남고싶어.그러니까제발!”
“넌아름다웠고,지금도앞으로도그럴거야.”
미주가저지했음에도레아는기어이나비를눌렀다.순간,레아의숨이사그라지고몸에서섬광이일었다.미주는자신이어딘가로빨려들어가는걸느꼈다.아니,몸안으로무언가가훅들어오는걸느꼈다.(「레아」,199쪽)

표제작이기도한「레아」는코로나시국이라는혼란기를틈타번지는‘학폭바이러스’퇴치기로서,SF혹은판타지상상력이돋보인다.“학폭바이러스로부터자신과친구들을구하는레아는파란줄무늬나비가득한정원을꿈꾸게”(한길자,함현고교사)하는데,“작가는바이러스,폭력,고통,슬픔,상처가난무하는아이들의세계에서감히불가능의가능성을욕망”(이찬,시인)한다.안드로이드인레아는미주를폭력으로부터구제하는대신,미주가폭력의원천을스스로제거하도록돕기만한다.따로따로입양된자매의아름다운우애(「물풀의아이」)나소중한누군가를잃은사람끼리의이심전심(「별들의장소」),그리고친구를잃지않기위해사랑하는방식과무관하게연대하는청소년(「물범의시간」)의모습은곁에서함께하는존재의소중함을일깨워준다.방황하는청소년기를잘넘어가는데는그것만으로도충분할것이기에.
작가는『레아』를묶으며“가만가만찾아온문장들이있었다”라고고백한다.“괜찮아,좀더이렇게있어도”“네가나와같은곳을보고있으면좋겠다고생각했어”“눈에보이지않는다고내가없는건아니야”같은문장들.이런문장들과의“만남은우연하고사소하게일어난것같지만지극한마음이이룬일”이고,“어떤문장은한없이낮고쓸쓸한이들을견디게해줄거라고믿”는다.『레아』속주인공들곁에누군가가있어준것처럼,그리하여막막하고힘겨운시간을견딜수있게해준것처럼,독자들곁에『레아』가함께하기를바란다.

■작품속으로

「물풀의아이들」

나와린영은입양되어자란자매다.어느날병원에입원해있는린영의친모가만나고싶다는연락을취해오고,나는린영과함께그녀를만나러간다.버스안에서린영은자신이버려졌던베이비박스에다녀왔던눈오는날에대해이야기하는데……친모를만나고온린영은비문증으로보이는것이날파리가아닌눈송이라는것과,자신은버려진게아니고지켜진것이었다고말한다.

그뒤로도그녀는늘린영의주변을맴돌았다.눈먼물고기를에워쌌던물풀처럼.그래서기어이물고기로하여금물풀의숨을기억해내게했으리라.
린영이내품에와락안겼다.나는린영의등을도닥이며마법에걸린눈송이에대해생각했다.소르르소르르눈송이가녹아내리는소리가낮게들려왔다.어쩌면내일이나모레,혹은눈이쏟아지는어느날린영에게말해줄것이다.“괜찮아,좀더이렇게있어도.”(「물풀의아이들」33쪽)

「코끼리의방식」

다훈은빨리늙는희귀병을앓고있는데,그진행이빨라져이제시간이많지않다는걸알게된다.꿈속에찾아오는코끼리시누가죽기전에하고싶은걸할수있도록도와주겠다고하자,그러면더빨리늙는다는걸알면서도유치원친구였던지유를만나「호두까기인형」을공연하던시절로잠시돌아간다.마침내떠나야할때가되었을때,다훈은시누와함께대평원으로탐험을떠난다.

요정들이나와지유를둘러쌌다.나는지유를과자의나라로안내했다.「꽃의왈츠」가흘러나오고리듬에맞춰요정들이춤을추었다.하늘한모서리가열리더니달빛이지유에게쏟아졌다.나는몸을굽힌채손을내밀었다.지유의손이내손에닿는순간,심장박동이빨라졌다.우리는손을잡은채리듬에몸을실었다.지유의심장이뛰는소리가들리는것같았다.나는간절히시간이멈추기를바랐다.(「코끼리의방식」53~54쪽)

「물범의시간」

은형은고등학교입학때부터눈길이가던진서에게빠져든다.진서는백령도에서살다가인천으로유학왔는데,동성친구였던민기의고백에혼란스러워하다가도망쳐왔던것.그리고진서는도저히빠져나갈수없는심연에대해이야기한다.진서의소개로알게된은형과민기는진서에대해많은이야기를나누게되고,‘털갈이’중인진서를이해하기로한다.

무엇보다진서가마지막으로했던말이선명하게떠올랐다.그냥널알고싶었어.
순간의갈피마다담긴진서의마음이내안에서소용돌이쳤다.그것은나를지탱하게해준힘이었다.진서가지나온물범의시간도그어디쯤에있지않을까.네가나와같은곳을보고있으면좋겠다고생각했어.멀리아득한심연에서자맥질하는진서의모습이떠올랐다.(「물범의시간」85쪽)

「별들의장소」

나는엄마와함께호숫가별장에서휴양중이다.나를향해있던행운들이줄줄이낙하하는것을보는느낌.아빠가떠나고,사생대회에서는상을받지못했고,최근에는남자친구인윤우와다퉜다.나는카페와별장에서우연히만난‘그애’와많은이야기를나누게된다.그리고그애가초대한별들의장소에서별이라불렀던보육원동생을호수에묻어야했던이야기를듣게된다.나는내안에들어온별들로인해오래도록내가되어갈것을예감한다.

“별들이네안으로들어가고있어.”
나는말했다.
“왠지이젠혼자가아닌것같아.별과더불어내가될수있을것같아.”
그애가말했다.
그애를통과해온별들이내안으로들어오는걸느꼈다.
“별들의장소에초대해줘서고마워.”
잊지못할거야,라고나는속으로덧붙였다.그래,세월이잊게한다고해도별들은기억해줄거야,라고그애가눈으로말했다.(「별들의장소」109쪽)

「신이내린날」

개교기념일이라서게임과쇼핑을하며자유의몸이될걸기대하는나에게이란성쌍둥이인시아가제안을한다.나대신우리학교에좀가달라고.그러면5만원과함께,내가좋아하는걸그룹출신의배우를볼수있다고.여자친구인단비와의100일을위해돈이필요했던나는화장과가발과마스크로변장을한채여자중학교로향한다.그런데,거긴내가생각했던세상이아니다.

여자로사는일이얼마나힘든줄아냐?생리때면엄마와시아는모든일에서손을놓은채이거해라저거해라,아빠와나를머슴처럼부렸다.여자들의고통과인내덕분에인류가유지된다나.아빠와나는남자들의피눈물이없었다면오늘의인류는씨가말랐을거라고말하고싶었지만,입도뻥끗못했다.(「신이내린날」129~130쪽)

「레아」

연재무리에게괴롭힘을당하는미주는자퇴하기로맘먹고학교에갔다가희영을본다.학교창고에서나온희영은얼룩처럼번져있는반점과붉은흰자위,광기어린눈빛을하고있었다.미주를찾아온레아의말에따르면창백한머리박쥐가퍼뜨리는‘학폭바이러스’때문이라는것.연재에대항하기위해스스로감염된희영의바이러스는더강력한것이되어있었다.학교를구하기위해서는창백한머리박쥐가성년이되기전에제거해야만했다.의구심을품었던미주도결국레아의계획에동참하기로하고……학교창고에불을지른다.

미주는가슴을활짝열고연재의눈을뚫어져라바라보면서숨을크게들이켰다가내쉬었다.순간,가슴이부풀어오르는걸느꼈다.거짓말처럼두려움도사라졌다.그래,할테면해봐.이제나도예전의내가아니야.내옆에는레아가있거든.레아는나를위해서라면뭐든할수있다고했어.천군만마를얻은기분이어떤건지알아?게다가난연재네가왜그렇게변했는지알고있어.중요한건내가널예전의너로돌려놓을수있다는거야.아니,꼭돌려놓고말거야.그방법을찾았으니까,그때까지만나쁜짓하지말고기다려.제발!(「레아」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