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우리의 환대

$14.00
Description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장희원의 첫번째 소설집이다. “마음의 온기가 삭막한 이 시대의 희망처럼 읽힌다”(오정희·성석제)라는 심사평과 함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희원은 일상 속 소외된 마음과 그 이면에 남아 있는 희망을 정확한 문체와 사려 깊은 묘사로 꾸준히 그려왔다.
“모두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환대〉는 타인을 환대하는 용기야말로 자기 자신과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랜 시간 세공하듯 다듬어진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부재’인 것 역시 지나간 시간과 흩어진 마음마저 껴안으려는 작가의 선하고 단단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볼 수 있다.
장희원의 소설에서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딸이 엄마에게로 가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펄펄 내리는 눈을 맞을 수도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부재를 확인하고 더 밝고 선명한 세계로 나아간다. 이미 사라진 대상과 시간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을 증명하는 게 문학이라면 신예 장희원은 이러한 작업을 그 어떤 부침 없이 감각적으로 또 믿음직하게 해낸다.

저자

장희원

1993년대구에서태어났다.201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폐차」가당선되어등단했으며2020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폭설이내리기시작할때7
우리[畜舍]의환대37
폐차71
혜주99
Givemeahand123
남겨진사람들137
작별167
기원과기도175
우리가떠난자리에195

해설│그날이후,우리는,이소212
작가의말229

출판사 서평

저기눈부신햇빛아래
서로가온힘을다해부둥켜안고있는것같은기분

등단작「폐차」는소외된이들을작품속에등장시키는것에머물지않고더나아가이들이내몰린현실과선택의순간까지빠짐없이조명한다.폐차장에서일하는정호에게친구의차를폐차하고싶다며동생정기가찾아온다.“잘생겼던인상이조금씩볼품없어”보이는동생을바라보며정호는정기야말로노모의끈질긴생명을지켜보는유일한목격자이자보호자임을상기하게된다.자신들의엄마와어린형제가살던다세대빌라를벗어난이는자기자신뿐이란생각에정호는어쩐지동생을“제대로”마주하지못할것같은기분에휩싸인다.그런데정기가대뜸자신이몰고온차트렁크에살아있는고라니가들어있다면서“저걸받지않고는”“도저히갈수가없었”다고고백한다.도시를배회하다정기의차에부딪힌고라니는그자체로도연약한생명이자소외된이들을상징하며동시에노모에대한형제의이중적인감정을나타내기도한다.

두형제는어둔찻길을빠져나와허공에대고컹컹짖는들개를지나외다리트럭기사가어린아들을데리고폐차장의철근을훔치는장면까지목격하게된다.두사람은그가필요한만큼의철근을다챙겨서돌아갈때까지꿈쩍않고지켜보다가고라니가들어있는차를폐차압축기로납작하게누른다.장희원의탁월함을증명해낸등단작「폐차」는두형제를통해타인에대한연민과마음깊숙이남아있는인간성을저버려야만또다른희망으로나아갈수있단지점에서우리사회의처절한현실과희망을동시에조명한작품으로단편소설이주는즐거움을맛볼수있는수작이라할수있다.

모두가자신의세계를의심하지않았으면좋겠다.
당신이기쁨을느끼는곳이옳다.옳다.

우리는자신이구축한세계가무너질지도모른다는두려움에타인을환대하는일을망설이곤한다.내가아닌상대를인정하는순간자신의존재가부정당할지도모른다는생각에기쁨과슬픔을마주하지못한채흘려보내는것이다.「우리[畜舍]의환대」와「Givemeahand」의부모는호주의남서부끝에있는퍼스와미국뉴욕에서아들을잃는다.아니,정확하게는이미오래전에아들을떠나보냈다는사실을뒤늦게인정하는것이다.「우리[畜舍]의환대」의재현은아내와함께아들영재를만나기위해호주로간다.그는스물일곱씩이나된아들이새로운장소에서학업을이어간다는것을도무지이해하지못한다.하지만이것역시인생의과정중하나로여길뿐깊이관여하려하지않는다.과거재현은영재가게이포르노를본다는사실에격분해곧장아들에게달려들어“더러운놈”이라울부짖으며아들이“납작엎드려소리내어울”때까지주먹을휘두른적이있다.그때도그는아들의상처는외면한채자신에게일어난모든일을우연이라여기며그기억을도려내기에바빴다.

하지만호주에서한국인친구들과살고있을줄알았던아들이흑인노인한명과허벅지에커다란문신을한여자아이와사는걸보고당혹스러움을감추지못한다.아들의새로운식구는그들부부를누구보다환대하지만,그의눈에들어오는건“누렇게빛바랜러그위에탁자”와“벗어던진옷가지와다마신맥주병”이널브러진모습뿐이다.아들의새로운집에서반나절도버티지못한그는자신이과거에알던아들을영영되찾을수없을거란사실을직감한다.“상식적인기대가얼마나세속적이며,또타자적인것들을억압하기쉬운마음무늬들인가를생각하게한다”(문학평론가우찬제)라는평처럼재현은자신이아들에게기대했던상식은결국자기가사는세상의것이었음을끝내받아들이지못한채아들이사는곳을도망치듯빠져나온다.

「Givemeahand」의엄마는아들이자해를시도하다자메이카룸메이트에게들켜체포되었다는소식을듣고곧장뉴욕으로향한다.그녀는아들이구금된상황에서도여느관광객처럼평범한하루를보낸다.하지만세계적인전염병으로인한봉쇄로아들을만나기가좀처럼쉽지않다.마침내아들이있는곳까지왔으나그아이가자신을해치려하는이유를짐작하지도,직접물어보지도못한다.하지만뉴욕의길한복판에서한소년으로부터급소를맞아쓰러졌을때,아무도자신을도와주지않는극한의상황에놓이고서야아들이타지에서느꼈을외로움을조금이나마짐작하게된다.두작품속아들들은부모의기대와억압에서벗어나각자의삶을각기다른양상으로꾸려나가는모습을보여준다.부모의울타리에서벗어난이들은끝끝내기성세대가사랑이라여겼던비뚤어진마음을뒤로하고더크고단단한환대로자기자신의삶을증명해낸다.

앞서두작품이자식의변화를끝끝내받아들이지못한부모의입장을보여준다면,그런부모가늙고병들었을때누구보다애처롭게바라보는자식들도있다.「혜주」의화자인‘나’는한때좋아했던중고등학교동창혜주를그녀의아버지가입원한대학병원에서만난다.혜주는매일같이아버지가탄휠체어를밀며공원을돌곤한다.“기어이날힘들게하는게좋은가봐”라며늦은시간병원한구석에서속마음을털어놓는혜주는“오래오래잠든아버지를지켜보면서,화가나미칠지경”이라면서도잔뜩골이났다가무해한얼굴로잠든아버지를가만히내려다본다.나는“그런혜주와혜주의아버지를생각하다마음이착잡해지곤”하지만때때로죽고싶다는혜주를살게만드는것역시그녀의아버지라는걸선선히받아들이고“혜주가여전히그곳등나무아래벤치에앉아있는”것같다고느낀다.

「기원과기원」은이미세상에서사라진‘나’가자신의제사를준비하는엄마와동생현수의하루를가만히따르는이야기이다.엄마보다세상을먼저떠난딸은젊었던엄마가화가나면벼르듯이“너희만크면.진짜너희만다크고나면”이라고했던걸떠올린다.어린나이였음에도엄마가어딘가로간절히가고싶어한다는걸느꼈던아이는시장에서“엄마가건넨짐이아무리무거워도내색하지않고”뒤를따른다.이따금‘나’의마음을아는것인지엄마는낯선이들에게“지금도현주가여기있는것같아”라고고백하고,나역시“왜나는아직이곳일까”“왜이곳에마음을두고있을까”자문하며엄마와현수가탄차에서“무표정한얼굴로말없이그풍경을마주”한다.「우리[畜舍]의환대」로제11회젊은작가상을받은작가는당시작가의말에서“모두가자신의세계를의심하지않았으면좋겠다.당신이기쁨을느끼는곳이옳다.옳다”라고여러번힘을주어말했다.누구도타인의삶을자기의얕은생각으로잣대삼아옳고그름을따질수없다.이때세계와개인이세운‘기준’은모두무용하다는것을잊지말아야한다.그것이우리의세계에서‘환대’가절실히필요한이유이자,장희원이그린세상의편견마저아름답게읽히는이유이다.

잠깐이라도자기를봐주길바라는마음
그들이함께보고자했던바로그풍경

모두가떠난자리에그대로남아깨끗한마음으로떠난이를그리워하는이들도있다.「폭설이내리기시작할때」의‘나’는시골에서새로운삶을시작한여정의아버지로부터놀러오라는초대를받는다.또다른친구재희와함께여정의아버지가사는시골로간‘나’는“여정의유치원시절사진이나운동회에서딴메달,여정의부모님의결혼식사진”들에서여정의흔적을눈으로좇는다.혼자여행을떠난여정이철원의야산아래매립돼발견되었을때,“여정은앞좌석을최대한뒤로젖힌채잠든듯이누워있”었다고했다.사고이후“많은것이바뀐듯했지만변한게없기도했다”는말처럼‘나’와재희는평범한일상을나름대로꾸려갔지만“이따금아무이유없이잠든듯누워있는여정”을떠올리곤했다.가끔,아무거나태우곤한다는여정의아버지가“밤도태우고,은행도태우고,모아놓은폐지도”태웠던것처럼익숙하게타들어가는일상을‘나’와재희도보내고있었지만,그누구도그당시의마음에대해털어놓지않았다.여정의아버지의배웅을뒤로하고돌아가는길,“재희와나는눈을감은채서로의손을놓지”않음으로써비로소여정을그리워하게될것임을감각한다.

「남겨진사람들」의유진은함께사는재우와누구보다평온한일상을보내던중훌쩍상주와함께갔었던강원도로간다.이제는상주는죽고없는그곳으로.“오직이세상에너와나,단둘이있는것”같았던조용한곳으로.차라리헤어지는게낫지않을까싶은시기를보내던두사람은,갑작스러운상주의제안에겨울바다를보러갔다.“우리진짜아무것도하지말자”라는다짐과함께.유진은그곳에서“아주아주눈이많이내리는곳”그러니까“니가타나삿포로나뭐그런곳”에서눈을보고싶다던상주를떠올리고,아주오랫동안그를그리워했다는걸실감한다.그리고이내자신이“간절한마음으로무언가를바라고”있었음을“상주와보고싶어했던것,정확히말하면그들이함께보자고했던바로그풍경”을보고싶어했음을깨닫는다.

「폭설이내리기시작할때」와「남겨진사람들」모두사랑하는이를잃고,이내자신이상대방을사무치게그리워했음을깨닫는과정을담담히그리고있다.두소설에서주인공들은각각낯선장소에서낯선노인을만나게되고그들로부터큰위로를받는다.「폭설이내리기시작할때」에서‘나’와재희는여정의아버지와이웃인할머니로부터밤을받고,「남겨진사람들」에서유진은사찰에서만난할머니로부터귤과과자를받는다.이들앞에기척없이나타난노인들은모두삶에서중요한것이오로지‘환대’뿐이라는것을일찍이체득한이들이다.젊은사람들의시간과마음을누구보다아까워하고마음을쓰는이들은앞서나온기성세대인부모와달리젊은이들을억지로바꾸려하거나자신들의기준대로평가하지않는다.그저텅빈손바닥을꼭쥐고서웃지도,울지도못하는이들의손에밤이나귤을쥐여주는것만으로충분하다여긴다.실상이들역시사회로부터소외되고번번이배척당했다는점에서소외된슬픔을소외된대상에게서위로받는아이러니가드러난다.물론낯선노인의한번의호의로문제가해결되거나갈등이해소되는건아니다.하지만마음을가누지못하는이들을위로하는게결국에는소외된이들이었다는점은이작가를더욱미더운마음으로보게만든다.

『우리의환대』는자기자신을향한환대의증표이자
삭막한시대에맞서는희망

앞선작품이특정인물의부재를다루었다면,마지막수록작「우리가떠난자리에」는인물들간의단절을직접적으로보여준다.화자인‘나’는여느날과다름없이약속시간보다조금늦게도착한선재를기다리면서,사귀는내내자신이선재를기다렸음을깨닫는다.두사람은같이살던집을함께정리하면서간단한근황을주고받지만내밀한사정에대해서는털어놓지않는다.그저“잠이오지않는밤이면소파에나란히앉아아까시나무들을구경하며밤을새웠”던것이나“따뜻한술을홀짝홀짝마셨”던날들을가만히되뇔뿐이다.둘이서구조한비둘기새끼가야생동물에먹히고남은잔해를치웠던일들도.집을정리하고나오던두사람은“마치기다렸다는듯”자신들도모르게새어나오는순간들을“계속해서간절히기다리고있었”음을알게된다.

두사람이서로의부재를받아들이고비로소자신들의관계를긍정할수있게되었단점에서이소설은완벽히부재에서환대로나아간다.우리의관계는깨끗이허물어지고나서야비로소선명해지고,모든크고작은우연들에빗금이그어졌을때,그모든순간이‘우리’였음을깨닫기때문에.장희원은산산이조각난채부유하는마음들이허물어지지않게끔모아오랜시간빚어냈다.그뿐만아니라타자의부재를통해자기자신의마음을재확인함으로서더나은방향으로갈수있음을훌륭하게보여주었다.“장희원의소설은단한번도‘우리’가지켜질수있다고환호하거나확언하지않는다.다만‘우리가떠난자리’를담담히바라보며,과장하거나봉합하지않고정직하게이야기하길희망한다.”(문학평론가이소)장희원의첫번째소설집『우리의환대』는이별과슬픔이야말로삶을더사랑할수있는가능성임을증명하며,자기자신을향한환대의증표이자삭막한시대에맞서는희망처럼독자에게다가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