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멜랑콜리

토리노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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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모든 길은 토리노로 통한다, 적어도 20세기에는”

멜랑콜리에 사로잡힌 도시
혹은 그 자체 거대한 사회정치적 실험실이었던
토리노의 장대한 초상
“이 도시의 본질적인 성격은 멜랑콜리이다.” 이탈리아의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자신이 성장하고 생활했던 도시 토리노에 대해 한 말이다. “한낮인데도 황혼 녘처럼 느껴지는 잿빛 도시,” 멜랑콜리가 항상 안개처럼 감싸고 있다는 토리노는 대체 어떤 곳인가? 누군가에게 이곳은 철학자 니체가 마부가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말을 부둥켜안고 정신을 잃은 장소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시인 파베세와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토리노는 100년 동안 자본과 노동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 도시, 반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자유를 위해 위대한 싸움을 벌였던 도시였다. 20세기의 부유하는 기표들인 기업가와 노동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계급투쟁과 혁명, 이윤과 착취가 토리노만큼 깊고 굵게 역사에 기입된 사례는 흔치 않다. 이탈리아사 및 유럽현대사를 연구해온 서울대 서양사학과 장문석 교수는 『토리노 멜랑콜리』에서 20세기 역사의 강렬한 발전과 투쟁의 경험을 응축하고 있는 토리노의 들끓는 모습을 서사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한편, 이탈리아 변방에 자리한 한 도시의 과거를 지금 되새긴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반추해본다.
저자

장문석

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영남대학교역사학과교수를거쳐현재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이탈리아를중심으로유럽현대사를연구하고있다.저서로『민족주의길들이기』,『피아트와파시즘』,『파시즘』,『민족주의』,『근대정신은어떻게탄생했을까?』.『국부의조건』(2인공저),『자본주의길들이기』등이있고,역서로『만들어진전통』(2인공역),『제국의지배』,『래디컬스페이스』,『스페인은의세계사』,『현대유럽의역사』,『파시즘의서곡,단눈치오』,『인간의어리석음에관한법칙』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작은덕,큰덕
프롤로그:모든길은토리노로통한다.적어도20세기에는

1장이탈리아의디트로이트,이탈리아의페트로그라드
2장멜랑콜리여안녕
3장가난한자의포드주의
4장내생애최고의해

에필로그:트라우마틱하고드라마틱한
나오며:작은자유,큰자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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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결국에우리의도시는본성상멜랑콜리하다.”이탈리아작가나탈리아긴츠부르그NataliaGinzburg는자신이성장하고생활했던도시토리노에대해이렇게쓰고있다.그것도같은곳에서같은말을두번씩이나반복한다.“이도시의본질적인성격은멜랑콜리이다.”그리고토리노에대한다음과같이아름다운묘사를통해멜랑콜리의감성을표현하려고한다.그렇게작가는한낮인데도황혼녘처럼느껴지는잿빛도시토리노의특징을멜랑콜리하게드러내고있다._9쪽

이책에서쓰려고하는것도바로토리노역사의뒤안길로밀려나잊힌덕성들과자유들이다.특히고베티PieroGobetti와그람시AntonioGramsci,그리고무엇보다고베티로부터거대한지적·도적적영향을받은토리노의반파시스트자유주의지식인들의자유에대한끝없는열망에대해쓰려고한다.그런자유에의열망으로부터긴츠부르그의“큰덕들”도생성되었을것이다.이지식인들은진정자유주의적인만큼혁명적이었고,진정혁명적인만큼틀에박힌규칙과관례를혐오하고새로운변화와모순을환대하며진실을추구하고자했다._16쪽

토리노는그런이야기들로넘쳐나는도시이다.그런점에서이피에몬테의주도는이탈리아성당들을밝히고있는스테인드글라스와같다.스테인드글라스는문맹자들에게성경의내용을보여주는수단이었다.20세기토리노의스테인드글라스들도오늘날의문맹자들에게근대성의성경을보여준다.여기서현대의문맹자란20세기역사의강렬한발전과투쟁의경험들을기억하거나이해하지못하는사람을가리킨다.토리노교회에발을들여놓는순간,스테인드글라스가20세기역사에내재하는전형성과다양성,그예외적인성공과실패를환히비춰줄것이다._25쪽

그런점에서토리노는혁명이있는디트로이트이자산업이있는페트로그라드였다.디트로이트의은유에서보듯이토리노에는피아트라는거대한자동차기업이포드의본보기를따라새로운생산조직을실험하고있었고,페트로그라드의은유에서보듯이러시아볼셰비키들을우러러보는토리노의다부진혁명가들과노동자들이혁명적선동을시도하고있었다.그렇기에1920년을전후한시기에토리노는도시자체가하나의거대한사회정치적실험실이었다고말할수있다._29쪽

그러나진짜중요한것은링고토의‘옥상’이아니라‘바닥’이었다.압도적인건물과옥상의시험주행로를질주하는자동차들,그배경이되는숨이멎을듯한알프스의장관에만눈을빼앗기지않은예민한관찰자들이많았다.그들은특히새로운건축물이그안에서일하는노동자들의심리와정신상태에미치는영향에주목했다.그런관심에집중한방문자들은링고토가구현한내적원리와그것이노동자들과맺는관계를더욱놀라운시선으로관찰했다.예컨대나폴리출신의예술비평가인페르시코는링고토공장이보여주는형태의명료함과단순성이완벽하게“질서의원리”를구현한다고보았다._61~62쪽

이처럼10년의세월동안공장의갈등이지속된것은역사상유례를찾아보기어려운경우이다.이“영구갈등”의시기에새로운투쟁형태들이현란하게등장했다.당시미라피오리에서투쟁을선도했던노동자인팔코네GiovanniFalcone에따르면,피아트는“그시절자동차를생산하는공장이아니라투쟁의대학이었다.”이“투쟁의대학”이라는표현이무척이나의미심장하다.특히‘대학’이라는표현은노동자들이‘공장’안에고립되지않고학생운동과의연대를모색한다는의미도상기시키는가하면,노동자들이자신들의요구와욕망을새롭게배워가는공간의이미지도연상시킨다._165쪽

그렇다면1980년침묵의가을은1969년“뜨거운가을”에종지부를찍으며피아트경영진이헤게모니를획득한순간이라고하겠다.이제피아트는자본과노동의관계에서완벽한힘의우위를바탕으로새로운전환을시도할것이었다.반면,노동은패배의후유증에시달려야했는데,1980~83년에피아트해고노동자중300명이상이자살했다는충격적인사실이그런패배의비극성을드러낸다.노동의패배는가히총체적이고영구적이었다.노동은자본과의세력관계속에서벌인권력투쟁에서정치적으로패배했을뿐만아니라시민사회의동의를얻는경쟁에서도문화적으로패배했고,자본은1980년이후로결코세력관계의역전을허용하지않았다._189쪽

트라베르소는이른바“좌파멜랑콜리”의창조성에주목하면서우리가상실한것을애도하는한편,애도에도불구하고남아있는잔여공간을회복된전투성으로채워야한다고주장한다.특히역사학자들은“목격자”이자“망명자”라는이중적위치에서한편으로상실을애도하고다른한편으로전투성을회복하여기억을역사로다시쓰는일에나서야한다고제안한다.그는역사가기억으로치환되면서어떤것은기억되지만다른것은망각되는오늘날의현실에서,이를테면혁명과반파시즘에대한망각에저항하고그에대한기억들을역사로변환하는작업이필요하다고역설한다.만일멜랑콜리가결여를응시하며실패한지점으로되돌아가려는충동이강하다면,결여를채우고실패한지점을기억하려는욕구가그런작업의출발점이될것이다._201쪽

이런결여와상실로부터아마겟돈을겪은토리노의멜랑콜리가유래하는지모른다.즉가져보지못한헤게모니에대한결핍감,그리고지금아무도없다는고립감이토리노를안개처럼감싼멜랑콜리의근원일지모른다.그런점에서토리노는통념과는달리보편적인“실험실”이기보다는예외적인“자유구역”에가깝다고포아는말한다.다른경우에적용될만한모델이아니라“하나의모순이요영감의요소”라는말이다.핏빛전투의흔적이역력한이도시에서는“갈등과무질서를통한질서의창출,다양한소요와효율성사이의충돌”이선명하게부각되었다.그런창조와파괴의어지러운반복은다른어떤도시에서도반복될수없는성질의것이었다._208~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