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언어가 될 때

경험이 언어가 될 때

$14.00
Description
페미니즘적 시각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면서 훈련되고 학습된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2015년 이후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N번방 사건 등 여러 국면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둔감했던 문화와 관행에 맞서 여성들은 집단적 목소리를 냈고 이제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백래시 역시 만만치 않았을뿐더러 우리의 삶은 여전히 많은 질문과 과제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책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관한 책이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연대와 공존이라는 가치를 실천해나가기 위해 애쓰는 분투의 기록이다. “경험이 언어가 될 때”라는 제목은 기존의 남성 중심의 언어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일상화된 폭력을 분별해내고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하게 되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모먼트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이소진(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이라는 두 가지 주요 가치를 토대로 나로부터 세상으로 시선을 확장해가며 계급, 여성, 자본, 시간, 소비 등의 주제를 하나씩 교차시키며 사유해나간다. 저자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면, 그런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질문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누군가의 고통에 무감한 것은 아닌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떤 문제를 어떻게 제기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고 치열하게 고민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나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부딪히고 깨지고 또 깨뜨리는 데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런 치열한 자기성찰의 결과물이다.
저자

이소진

블루칼라노동자가정에서태어나자랐다.동국대철학과에진학했으나학과공부보다는중앙동아리‘맑스철학연구회’와학생운동모임‘달려라진보’에서학생운동에전념하다간신히졸업했다.졸업직전학과내성폭력사건해결에나선것을계기로여성의삶,그리고엄마의삶과나의삶을이해하는언어로서여성학을연구하게됐다.2019년참여관찰연구인「표준노동시간단축이중년여성의일과생활에미치는영향:B대형마트캐셔를중심으로」로이화여대에서여성학석사학위를받았고,우수논문상을수상했다.『시간을빼앗긴여자들』은이논문을재구성하고보완해펴낸첫책이다.현재는연세대사회학과박사과정에재학중이며,마트캐셔직을비롯한블루컬러여성노동과중년여성노동자,청년여성등기존노동연구에서조명받지못했던여성들과여성들사이의차이를주목하며노동연구를이어가고있다.

목차

들어가며

파트1
1장보편×특수
2장지식×권력
3장나×너

파트2
4장계급×여성
5장자본×시간
6장생산×소비

나가며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여성들이다양한삶을살아가고있는현재의사회에서여성의존재를인정하라는요구는어떠한의미인가?여성들사이의차이,그차이들에서비롯된목소리크기의차이는여성을단일한존재로빚어냄과동시에어떤여성들의억압을지워낸다.쉽게말해,여성이라는단일한존재를말할때부유한엘리트여성의목소리가여성을빚어낼위험이있다는의미다.그렇다면여기에서한번더지워진여성들은자신을인정하라는투쟁을해야하는것인가?(1장「보편X특수」40쪽)

나는우리가지식을생각할때,그지식의옳고그름을판단하기보다는그러한지식이어떠한존재들을없는존재로가려내어그들의목소리가들리지않게하는지에대해서사유해야한다고생각한다.성찰이란어떤것이옳고그르냐를끊임없이생각하는것이아니다.우리가생각하고말하는특정한방식을되돌아봄으로써,내가어떠한맥락에서권력자로서지식과영합하는지사유하는것이다.그리고너무나뻔하지만되돌아보고되돌아보는과정속에서우리의외연이넓어질수있다.소수자의숙명이다.억울해도어쩔수없다.결국나부터바뀌어야남이바뀌는법이다.(2장「지식X권력」65쪽)

내가말을하면할수록구렁텅이에빠지는느낌을받은것은그때가처음이었다.나는언제나말을꽤잘하는사람이었는데,사람들이페미니즘에대해질문할때면그리고그질문에답할때면늘문제가발생했다.나는이런상황이몇번이고반복되고나서야,사람들이나에게진실로궁금한것을물어본것이아니었으며,‘나’는그저정해진답을인정받기위한도구에불과했다는사실을깨달았다.그들은페미니즘의항복을받아내고싶었을뿐이다.그들은성폭력이권력의문제인지에대해서는관심이없었고,그저나를궁지로몰아‘남성은여성에비해성욕이크다’는둥의구닥다리논리를페미니스트의입으로,페미니스트의목소리로들어냄으로써항복을받아내고싶었을뿐이었다.(3장「나X너」76쪽)

마찬가지로여성들사이에존재하는다양한차이들을묵인할때,우리는어떤여성만을대변할수있게된다.남성중심성을폭력의문제로만받아들일때흔히발생하는문제다.그러나우리가간과하는사실은성폭력이계급을가로지른다는것이다.돈이많은사람은안전한동네에서살수있고,안전한이동수단(예를들어자가용)을이용할수있다.집값이비싼동네일수록보안이잘되어있고폐쇄회로카메라도더잘관리된다.폭력이후의상황도다르게펼쳐진다.폭력이후어떤사람들은폭력이발생한공간을떠날수있지만,떠날수없는사람도존재한다.(4장「계급X여성」111쪽)

노동에대한연구는시간을가로지른다.자본주의사회에서우리는노동을노동의양으로측정한다생각할지모르지만,사실은시간으로측정되며시간으로계산된다.과거와달라진점은과학기술의발전으로우리가과거잠에들어야만했던그시간들,그리고일을할수없었던그공간들에서도일을하거나소비를할수있다는사실이다.24시간노동시대가도래한것이다.(5장「자본X시간」122쪽)

그러나돌봄은결코빨라질수없다.돌보는행위는그자체로이미‘느린속도’를전제하고있기때문이다.걸음마를뗀지얼마되지않은아이에게빠르게움직일것을재촉할수없다.모든세상이신기한아이에게,길가에시선을두지말고앞만보고걸으라며재촉할수없다.걸음이불편한할머니에게엘리베이터에좀빨리타라고타박할수는없는것이다.돌봄은타인의상황에나를맞추고,주의를기울여타인의욕구를읽어내고,제공해야하는일이기에본질적으로느린행위다.(5장「자본X시간」142쪽)

결국문제는생산이고,판매하는구조에달려있다.소비자는물건의값을지불하는사람이지만,구조의패러다임을변화시킬수는없다.아무리우리가친환경적소비를한다하더라도,친환경한소비를하지않는수만명의사람들이존재할때,우리는패러다임을변화시킬수없다.따라서우리는생산의변화를요구해야한다.단기적인이윤에치중하지않는생산의방식을상상해야한다.우리의이윤을돈그자체에둘것이아니라,돈으로계산될수없는가치들에두어야한다.그리고그과정에서‘지속가능한소비’를찾을것이아니라,가능하다면소비를줄여야한다.그래야구조를변화시킬수있다.지속가능한소비란없다.(6장「생산X소비」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