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과틈새가만드는장소들의몽타주
“그것은조그만얼룩이고,작게난흠집이고,
찔린자국이고,부식된쇠붙이이고,우연한구멍이다.”
이책은연인들의시간이장소를어떻게바꾸는지에관한생각에서출발한다.“사랑이라는사건은두사람을사랑의무대에올려놓고질서에균열을일으킨다.”사랑이라는사건이벌어지면특정한이름을갖던장소,그목적과정체성이분명하게규정되어있던장소는임의적이고잠재적인것으로변모한다.우연한장소가연인들의시간을통해무엇과도바꿀수없는개별성을갖게된다.장소는사회와제도가부과하는법칙과물질적중력에서풀려나다른공간으로발명되고변환된다.연인들은장소의유랑자가되고,항해사가되고,일시적인침탈자가된다.
그런데이연인들의장소는사랑의행위가지나간이후에는그모습으로머물러있지않는다.연인들의장소의특징은필연적인사라짐에있다.따라서연인들의장소에대한상상은일종의애도의방식이된다.저자는푸코의‘헤테로토피아’나블랑쇼의‘연인들의공동체,’롤랑바르트의‘아토포스’등의철학적개념들을경유해연인들의공간이갖는이러한특성들을설명해나가는한편,다양한소설텍스트및‘나’와‘그’라는익명의픽션적존재사이를활보하며독특하면서도아름다운글쓰기의실험을수행해나간다.
그렇다면연인들의장소또는사랑이라는사건의급진성은어디에있는가?저자는사랑이라는사건의수행성이장소를변형하는데만그치는것이아니라,장소의시간자체를변화시킨다고말한다.장소들의마주침과틈새가만드는장소의몽타주는장소에다른리듬을부여하고,장소의상상력은기억너머의남겨진시간의목소리를듣게만든다.연인들의장소는일상의시간,고착화된역사의시간이아닌,과거와현재와미래의구분을넘어서는잠재적이고징후적인시간을대면하게한다.사랑의장소에대한상상력이정치적,미학적리듬을갖게된다면,바로이런대면의순간에서일것이다.
도래하는장소로서의연인들의장소
저자의오랜독자라면짐작하겠지만『장소의연인들』은하나의독립된책이면서도,고착화된역사에반해잠재성으로서의사랑과문학의(불)가능성에대한사유쪽에내기를걸어왔던저자의전작들과흥미로운방식으로연결되어있다.연인들의장소와사랑에대한짧은텍스트들과사유가파편처럼새겨져있는이책은,도래할시간속에서일시적으로만열리는어떤가능성에다가가기위한길을안내하는색바랜지도이자,현실에서는도저히축조할방법이없는페이퍼건축물처럼보인다.우리는이부표를영원히길을잃는다는전제하에서만의지할수있다.어쩌면이것은연인들의공간을유랑하는이야기인동시에글쓰기자체의모험에대한이야기일지도모른다.
책의구성
책은4부로구성되어있다.1부는장소와연인들의공동체를둘러싼개념에대한여러탐구를담고있고,2부,3부,4부는각각‘내밀한’연인들의장소와‘개방적인’연인들의장소,그리고보다‘원초적인’연인들의장소에대한상상적탐색을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