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어떻게 되살려낼까
궁리하다가 평생을 보낸 사람”
흐린 기억을 비집고 솟아올라
만물을 비추는 시의 형상을 되짚는 나날
본질을 꿰뚫는 투명한 마음가짐, 김광규 열두번째 시집 출간
궁리하다가 평생을 보낸 사람”
흐린 기억을 비집고 솟아올라
만물을 비추는 시의 형상을 되짚는 나날
본질을 꿰뚫는 투명한 마음가짐, 김광규 열두번째 시집 출간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후 편안하고 부드러운 서정과 문명의 이기를 살피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풍부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며 녹원문학상(1981), 김수영문학상(1984), 편운문학상(1994), 대산문학상(2003), 프리드리히 군돌프 문화상(2006), 이산문학상(2007), 이미륵상(2008), 정지용문학상(2018) 등을 수상한 바 있는 김광규 시인의 열두번째 시집 『그저께 보낸 메일』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직전의 시선집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5년 만이다. 2016년 봄부터 2022년 겨울까지 일곱 해 동안 발표한 60편의 시를 묶었다.
현실 그 자체를 가열하게 몰아세우는 정직의 세계(김주연), 유기적 공감이 빚어낸 우주적 화합의 장면들(이숭원), 일상적 진실과 본원적 가치를 파고드는 예리한 시선(우찬제), 간결하고 명징한 문장에 담긴 시대적 고찰(김우창)로 일컬어진 김광규의 시 세계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품은 자연의 온기를 전하고, 투명한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필연의 변화와 마주하여 이에 적응하며 삶을 살아가는 시인과 만날 수도 있고, 인위의 변화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시인과 만날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네 인간의 삶에 여일하게 위안과 안식을 주는 것들과 함께하며 자족의 삶을 사는 시인과도 만날 수 있다”(장경렬). 김광규의 시는 흘러가는 삶 그 자체로서 움직인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들이 고이고 맺힌 자리를 기민하게 포착한 시인이 안타까운 마음을 덧댈 때,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가 입을 벌린다. 소리 없이 진동하는 행간에 몸을 기대었다가 태연히 흐르는 시와 다시금 마주할 때, 우리는 생의 다음 국면을 엿본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김광규 시인의 전언傳言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 의미가 없거나 없어 보이는 것이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향해 심안心眼을 열어야 하는 이가 시인이다. 존재의 무의미함을 뛰어넘어 그 의미를 스스로 구현하고자 하는 진지한 실존적 인간이 그러하듯. -장경렬, 해설 「변한 것 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에서
잠든 의식과 영혼을 일으키는
끈질긴 순수의 도정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
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
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
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
- 「그 짧은 글」 부분
김광규 시에서 화자는 “가물거리는 그저께 기억/수첩을 꺼내 보지 않으면 누구를 만났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그저께 보낸 메일」)는 매일을 마주한다. 연기처럼 퍼지는 기억을 곱씹고 간신히 떠오른 편린을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쓴다. “소나무 우듬지 위로 커다란/열기구처럼 떠오르는 보름달/눈에 띈 순간 저절로 탄성이/터져 나왔다 그렇지!/ㄷ으로 시작되었어/그다음에 ㅁ이 뒤따랐지!/달…… 마…… 로 이어지는 그 이름” 석 자를 찾아 헤매는 동안 “평생 배우고 간직해온 온갖 이름들”(「달맞이」)도 덩달아 각각이 지닌 의미의 무게가 무색하게 풀썩 떠올랐다 사라진다. “한참 동안 궁리하다 못해/식구들에게 물어보았지만/단기 기억상실증이니/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타박만 받”(「혼자서 잊어버리기」)는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이 외딴 소동 속에서, 화자는 쉬이 분개하거나 묵묵한 슬픔에 휩싸이는 법이 없다. 다만 그립고 익숙한 것들이 뿌려두고 간 흔적을 되밟으며, 조각 난 의미를 그러쥔 채 지난날을 조근조근 모사模寫한다.
사박사박사박 낙엽 밟는 작은 발자국 소리…… 놈이 아직도 뒷마당에서
돌아다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자는 동안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은세계로 바뀐
겨울 아침이면, 국화빵처럼 생긴 발자국이 뒤뜰 여기저기 남아 있는 때도 있다.
평생 살던 곳 떠나지 못하고, 놈은 아직도 우리 집 마당을 바장이고 있는가.
- 「개 발자국」 부분
이때, 화자가 취하는 방식은 고통이나 슬픔 등 심정적 결과 대신 대상의 동선을 좇아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을 다루지도 않을뿐더러 철저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술하지도 않는다. 화자의 진술이 둘러싼 중심을 파헤치면 심심하리만치 일상적인, 나 아닌 다른 생이 있다. 생의 부재가 있다. 시인이 이미 40여 년 전 데뷔작에서 선보인 ‘있음과 없음’의 세계(「有無」 연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학과지성사, 1979)가 유장히 흐른다. 머물다 간 개별 존재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닌데 광막한 울림을 주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대상의 존재 의미를 부풀리는 것은 진술 주체의 비만한 자의식을 부각할 뿐이다. 반면 김광규의 시에서 화자와 대상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독자의 이입을 어렵지 않게 끌어내고, 담담한 묘사로서 영혼의 겸양과 진실을 산뜻하게 드러내기에 감동적이다. 어제 혹은 그저께의 존재가, 오늘인 듯 생생한 풍경으로 돌연 눈앞에 나타날 때 생과 사, 실재와 허구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아늑한 정감이 흘러넘친다. 기억의 끈질긴 힘에 의지해 시인은 안갯속 혼란을 버티고 오늘, 이 순간의 생기를 가다듬는다.
곡선을 그리는 그윽한 유머와
중력에 굴하지 않는 너른 기세
영웅전을 제외한 문학작품은 대부분이 패배한 자들이나 애석하게 죽은 이들이 남긴 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성공담보다는 슬픈 실패담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문학의 숙명이며 본질이 아닐까. -뒤표지 시인의 산문에서
김광규의 시 세계는 필연적으로 생몰을 거치는 존재의 애사哀史에 바치는 다정한 기록이다.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미물의 양태에 진지하게 몰두하며 진실로 감탄하고 격 없이 소통하는 태도는 고스란히 시적 어조에 묻어나 때로 그윽한 유머를 낳는다. 화자는, 귀성하는 기숙사생들을 먼눈으로 바라보며 “한바탕 놀고 나면 모조리 잊어버리고/기숙사 생활도 새삼 낯설어질걸”(「내일은 평일」) 하고 짓궂게 말을 걸거나, 어미의 고생은 나 몰라라 그악스럽게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비둘기들을 관찰하며 쓴소리를 건네기도 한다(“첫째 놈이 받아먹으면 둘째 놈이/왜 나는 안 주느냐고/어미의 등에 올라 어미 머리 쪼아대고/둘째 놈이 받아먹으면/첫째 놈이 어미 머리 쪼아댄다/불효자식들 같으니라구”-「비둘기 세 마리」). “옆집 담”을 타고 들어가 매달린 “연두색 호박”을 지켜보며 몰래 “따 먹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자 “옆집 영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피할 수 없을걸/요즘도 호박 도둑이 있는 모양이여……”(「호박 그 자체」) 하고 지레 상황을 예견하며 스스로 마음의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렇듯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 발화는 드넓은 공감의 저변을 드러내며 그 어떤 위화감도, 불편도 초래하지 않고 미소를 자아낸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장경렬의 말처럼 “오래 생각하고 깊이 짚어본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언”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과 눈으로 삶과 삶의 주변에 눈길을 주고 이를 향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냄으로써 김광규의 시가 도달하는 지점은 불완전한 삶의 변수를 대하는 겸허함이다. 화자는 산속에서 “나를 힐끗 쳐다보고 유유히/길 건너 동네쪽 언덕길로 사라”진 “멧돼지”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나 요즘도 거기 지나갈 때면/혼자 속으로 생각”(「멧돼지 생각」)한다. “약속한 필름을 보내주지 않”고 사라진 “사진사”와 우연히 재회했지만 그가 “다시 한번 사진 보내주겠다/약속하고 십수 년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다만 “언젠가 또 만나면 어떻게 하나”(「그녀 생각」) 생각할 뿐이다. 남은 생이 기약 없듯 만남도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어렴풋한 기억 속 그네들의 심중을 헤아리며 안부를 전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동체적 연민을 담아.
수백 번의 조탁을 거친
심안이 그려낸 인생 조감도
어둠을 헤치고 낮은 계단을 더듬더듬 올라가 현관문을 노크했다.
한참 만에 조용히 문이 열렸다. 안은 바깥보다 더 어두웠다.
토치가 없어서 성냥으로 가스 불을 켰다.
어둠이 차츰 물러가는 방 안을 화초 나무 몇 그루가 지키고 있었다.
고무나무와 사철나무, 벽오동과 게다리선인장이 소리 없이 눈을 비비며
밤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일천삼백만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도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시간이 어둠 속에 멈춰 있었다. 불면증을 모르고 살아온
70년 동안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고요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수도꼭지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가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올 뿐, 인간과 사물 사이의 온갖 언어와 음향이 사라진
정일한 시공 속에서 아무런 용건도 없이 나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송과선 여사의 부군이 침묵한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나. 얼마 전에
나온 시집을 한 권 전하고 말없이 속세의 캄캄한 밤 속으로 되돌아 나왔다.
어두운 기억 속에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 「송과선 여사댁」 전문
김광규의 시는 수백 번의 조탁을 거친 단순한 어휘로 깨달음을 전한다. 단순성 너머엔 세계와의 화해를 향한 의지와 소통을 이끄는 매혹이 자리 잡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한 사회의 윤리적 문제를 꼬집는 정치한 견해마저 부드러운 노랫말 같으며(「로봇 한 마리」), 뇌 속 내분비기관의 노후로 인한 불면의 고통마저 신비로운 전설처럼 그려진다(「송과선 여사댁」). 그의 시편들은 어느 한 방향에서 대상을 바라보거나 명명하지 않고, 대상의 기원과 내력에 대한 수많은 추측을 포괄하며 조심스레 작성된 조감도鳥瞰圖다. 일상의 한 자락에서 출발해 유감없이 펼쳐 보이는 인간사의 희노애락. 김광규의 시 세계는 삿된 편견 없이 세상 만물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어준다. 앞서간 이들의 뒤를 단정하게 따르는 이가, 훗날 그 자리를 이어받을 이들의 고독을 한 줌 덜어내기 위해 쓴 안내서로서 깊은 울림을 준다. 나고 드는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오늘 이 순간을 있게 하는 문학의 원초적인 힘. 우리가 김광규의 시를 읽는 이유다.
현실 그 자체를 가열하게 몰아세우는 정직의 세계(김주연), 유기적 공감이 빚어낸 우주적 화합의 장면들(이숭원), 일상적 진실과 본원적 가치를 파고드는 예리한 시선(우찬제), 간결하고 명징한 문장에 담긴 시대적 고찰(김우창)로 일컬어진 김광규의 시 세계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품은 자연의 온기를 전하고, 투명한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필연의 변화와 마주하여 이에 적응하며 삶을 살아가는 시인과 만날 수도 있고, 인위의 변화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시인과 만날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네 인간의 삶에 여일하게 위안과 안식을 주는 것들과 함께하며 자족의 삶을 사는 시인과도 만날 수 있다”(장경렬). 김광규의 시는 흘러가는 삶 그 자체로서 움직인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들이 고이고 맺힌 자리를 기민하게 포착한 시인이 안타까운 마음을 덧댈 때,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가 입을 벌린다. 소리 없이 진동하는 행간에 몸을 기대었다가 태연히 흐르는 시와 다시금 마주할 때, 우리는 생의 다음 국면을 엿본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김광규 시인의 전언傳言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 의미가 없거나 없어 보이는 것이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향해 심안心眼을 열어야 하는 이가 시인이다. 존재의 무의미함을 뛰어넘어 그 의미를 스스로 구현하고자 하는 진지한 실존적 인간이 그러하듯. -장경렬, 해설 「변한 것 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에서
잠든 의식과 영혼을 일으키는
끈질긴 순수의 도정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
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
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
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
- 「그 짧은 글」 부분
김광규 시에서 화자는 “가물거리는 그저께 기억/수첩을 꺼내 보지 않으면 누구를 만났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그저께 보낸 메일」)는 매일을 마주한다. 연기처럼 퍼지는 기억을 곱씹고 간신히 떠오른 편린을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쓴다. “소나무 우듬지 위로 커다란/열기구처럼 떠오르는 보름달/눈에 띈 순간 저절로 탄성이/터져 나왔다 그렇지!/ㄷ으로 시작되었어/그다음에 ㅁ이 뒤따랐지!/달…… 마…… 로 이어지는 그 이름” 석 자를 찾아 헤매는 동안 “평생 배우고 간직해온 온갖 이름들”(「달맞이」)도 덩달아 각각이 지닌 의미의 무게가 무색하게 풀썩 떠올랐다 사라진다. “한참 동안 궁리하다 못해/식구들에게 물어보았지만/단기 기억상실증이니/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타박만 받”(「혼자서 잊어버리기」)는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이 외딴 소동 속에서, 화자는 쉬이 분개하거나 묵묵한 슬픔에 휩싸이는 법이 없다. 다만 그립고 익숙한 것들이 뿌려두고 간 흔적을 되밟으며, 조각 난 의미를 그러쥔 채 지난날을 조근조근 모사模寫한다.
사박사박사박 낙엽 밟는 작은 발자국 소리…… 놈이 아직도 뒷마당에서
돌아다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자는 동안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은세계로 바뀐
겨울 아침이면, 국화빵처럼 생긴 발자국이 뒤뜰 여기저기 남아 있는 때도 있다.
평생 살던 곳 떠나지 못하고, 놈은 아직도 우리 집 마당을 바장이고 있는가.
- 「개 발자국」 부분
이때, 화자가 취하는 방식은 고통이나 슬픔 등 심정적 결과 대신 대상의 동선을 좇아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을 다루지도 않을뿐더러 철저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술하지도 않는다. 화자의 진술이 둘러싼 중심을 파헤치면 심심하리만치 일상적인, 나 아닌 다른 생이 있다. 생의 부재가 있다. 시인이 이미 40여 년 전 데뷔작에서 선보인 ‘있음과 없음’의 세계(「有無」 연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학과지성사, 1979)가 유장히 흐른다. 머물다 간 개별 존재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닌데 광막한 울림을 주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대상의 존재 의미를 부풀리는 것은 진술 주체의 비만한 자의식을 부각할 뿐이다. 반면 김광규의 시에서 화자와 대상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독자의 이입을 어렵지 않게 끌어내고, 담담한 묘사로서 영혼의 겸양과 진실을 산뜻하게 드러내기에 감동적이다. 어제 혹은 그저께의 존재가, 오늘인 듯 생생한 풍경으로 돌연 눈앞에 나타날 때 생과 사, 실재와 허구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아늑한 정감이 흘러넘친다. 기억의 끈질긴 힘에 의지해 시인은 안갯속 혼란을 버티고 오늘, 이 순간의 생기를 가다듬는다.
곡선을 그리는 그윽한 유머와
중력에 굴하지 않는 너른 기세
영웅전을 제외한 문학작품은 대부분이 패배한 자들이나 애석하게 죽은 이들이 남긴 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성공담보다는 슬픈 실패담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문학의 숙명이며 본질이 아닐까. -뒤표지 시인의 산문에서
김광규의 시 세계는 필연적으로 생몰을 거치는 존재의 애사哀史에 바치는 다정한 기록이다.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미물의 양태에 진지하게 몰두하며 진실로 감탄하고 격 없이 소통하는 태도는 고스란히 시적 어조에 묻어나 때로 그윽한 유머를 낳는다. 화자는, 귀성하는 기숙사생들을 먼눈으로 바라보며 “한바탕 놀고 나면 모조리 잊어버리고/기숙사 생활도 새삼 낯설어질걸”(「내일은 평일」) 하고 짓궂게 말을 걸거나, 어미의 고생은 나 몰라라 그악스럽게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비둘기들을 관찰하며 쓴소리를 건네기도 한다(“첫째 놈이 받아먹으면 둘째 놈이/왜 나는 안 주느냐고/어미의 등에 올라 어미 머리 쪼아대고/둘째 놈이 받아먹으면/첫째 놈이 어미 머리 쪼아댄다/불효자식들 같으니라구”-「비둘기 세 마리」). “옆집 담”을 타고 들어가 매달린 “연두색 호박”을 지켜보며 몰래 “따 먹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자 “옆집 영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피할 수 없을걸/요즘도 호박 도둑이 있는 모양이여……”(「호박 그 자체」) 하고 지레 상황을 예견하며 스스로 마음의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렇듯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 발화는 드넓은 공감의 저변을 드러내며 그 어떤 위화감도, 불편도 초래하지 않고 미소를 자아낸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장경렬의 말처럼 “오래 생각하고 깊이 짚어본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언”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과 눈으로 삶과 삶의 주변에 눈길을 주고 이를 향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냄으로써 김광규의 시가 도달하는 지점은 불완전한 삶의 변수를 대하는 겸허함이다. 화자는 산속에서 “나를 힐끗 쳐다보고 유유히/길 건너 동네쪽 언덕길로 사라”진 “멧돼지”를 떠올리며 “어떻게 하나 요즘도 거기 지나갈 때면/혼자 속으로 생각”(「멧돼지 생각」)한다. “약속한 필름을 보내주지 않”고 사라진 “사진사”와 우연히 재회했지만 그가 “다시 한번 사진 보내주겠다/약속하고 십수 년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다만 “언젠가 또 만나면 어떻게 하나”(「그녀 생각」) 생각할 뿐이다. 남은 생이 기약 없듯 만남도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어렴풋한 기억 속 그네들의 심중을 헤아리며 안부를 전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동체적 연민을 담아.
수백 번의 조탁을 거친
심안이 그려낸 인생 조감도
어둠을 헤치고 낮은 계단을 더듬더듬 올라가 현관문을 노크했다.
한참 만에 조용히 문이 열렸다. 안은 바깥보다 더 어두웠다.
토치가 없어서 성냥으로 가스 불을 켰다.
어둠이 차츰 물러가는 방 안을 화초 나무 몇 그루가 지키고 있었다.
고무나무와 사철나무, 벽오동과 게다리선인장이 소리 없이 눈을 비비며
밤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일천삼백만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도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시간이 어둠 속에 멈춰 있었다. 불면증을 모르고 살아온
70년 동안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고요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수도꼭지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가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올 뿐, 인간과 사물 사이의 온갖 언어와 음향이 사라진
정일한 시공 속에서 아무런 용건도 없이 나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송과선 여사의 부군이 침묵한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나. 얼마 전에
나온 시집을 한 권 전하고 말없이 속세의 캄캄한 밤 속으로 되돌아 나왔다.
어두운 기억 속에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 「송과선 여사댁」 전문
김광규의 시는 수백 번의 조탁을 거친 단순한 어휘로 깨달음을 전한다. 단순성 너머엔 세계와의 화해를 향한 의지와 소통을 이끄는 매혹이 자리 잡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한 사회의 윤리적 문제를 꼬집는 정치한 견해마저 부드러운 노랫말 같으며(「로봇 한 마리」), 뇌 속 내분비기관의 노후로 인한 불면의 고통마저 신비로운 전설처럼 그려진다(「송과선 여사댁」). 그의 시편들은 어느 한 방향에서 대상을 바라보거나 명명하지 않고, 대상의 기원과 내력에 대한 수많은 추측을 포괄하며 조심스레 작성된 조감도鳥瞰圖다. 일상의 한 자락에서 출발해 유감없이 펼쳐 보이는 인간사의 희노애락. 김광규의 시 세계는 삿된 편견 없이 세상 만물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어준다. 앞서간 이들의 뒤를 단정하게 따르는 이가, 훗날 그 자리를 이어받을 이들의 고독을 한 줌 덜어내기 위해 쓴 안내서로서 깊은 울림을 준다. 나고 드는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오늘 이 순간을 있게 하는 문학의 원초적인 힘. 우리가 김광규의 시를 읽는 이유다.
그저께 보낸 메일 - 문학과지성 시인선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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