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따뜻한 블랙 유머의 달인, 이갑수의 두번째 소설집!
넘치는, 그리하여 모자란
모든 현상의 기원과 유래를 뛰어넘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
넘치는, 그리하여 모자란
모든 현상의 기원과 유래를 뛰어넘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갑수의 두번째 소설집 『외계 문학 걸작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문학과지성사, 2018), 장편소설 『#킬러스타그램』(시월이일, 2021)을 펴내며 정평이 자자했던 이갑수식 블랙 유머가 진하게 녹아 있다.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물리적으로 한층 더 확장된 세계를 배경으로, 특유의 부조리극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감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인간 존재의 이유를 들여다본다.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의 등장인물과 장면 들이 소설집 곳곳에서 재등장해 퍼즐과도 같은 묘미를 더한다.
이갑수의 소설 세계는 과학적 사실과 물리학 이론, 각종 수학 공식으로 가득하다. 이성적 사고를 드러내는 간결한 수식 덕에, 인간의 행동심리를 다루는 작가의 분석은 그 즉시 묘한 “설득력”(작가가 첫 소설집에서 다룬 바 있는)을 갖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완벽한 인간’의 상을 구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작동 원리를 살피는 데 쓰인다. 작가는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인간성’이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산업구조를 바꿔놓은 오늘날 어떤 위상에 놓이는지, 따뜻한 감동과 위트를 버무려 흥미롭게 전한다.
처음에 ‘나’는 이와 같은 인간의 태도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과정을 방해하는, 그 과정을 흐리게 만드는 불순물과 같은 것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 불순물과 같은 것이 한 인간의 핵심임을, 그리하여 그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반복’함으로써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종국에 이르러 “Q . E. D. ”를 선언하며 새로운 지식 체계를 확립한다. 혹은, 좀더 인간적인 언어로 말해보자면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 그것은 마치 사랑과도 같아 보인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외계로 구축된 소설 바깥의 현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에 대한 고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레고리 잠자는 벌레가 되었을 때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이미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사람은 갑자기 벌레가 되어도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지 않는다.
-「시간의 문법」 중에서
“수요일 오후 2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반복되는 일주일에 갇힌 주인공 ‘나’는 두어 번의 시간 순환 끝에 “아! 식상해” 하고 중얼거린다. ‘나’의 타임 루프를 접한 가족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거 뭔지 알아. 드라마에서 봤어”라고 반응하는 엄마와 이모는 급기야 “열심히 해봐” “힘들겠네” 하며 격려까지 건넨다. “이번 주 로또 번호가 뭐냐?”라고 묻는 이모부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시간의 문법」). 그런가 하면 “이 나라에는 이제 지식인이 없”느냐는 질문에 “네이버”에 있다고 덤덤히 말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이 있으며(「수문장」), 지구 멸망을 예감하고 앞서 회사를 떠난 재봉사들처럼 “스티븐 호킹이 죽었어. 그래서……”라고 전화로 어렵사리 퇴사 결심을 털어놓는 ‘나’에게 “올 때 쿠킹호일 좀 사” 오라는 아내가 있다(「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이갑수의 소설 세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실소는, 독자가 독자로서의 역할-읽는 행위-을 진지하게 이행하는 그 찰나를 노린 일격과 같다. 때때로 과연 이것이 소설일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인물을 둘러싼 현실은 허구fiction와 사실fact 정보가 뒤섞인 채 촘촘한 결을 유지한다.
소설에서 인물의 행동에 관한 ‘당위’는 심리가 노출되기에 앞서 앞뒤 맥락이 충분히 설명될 때에 성립된다. 여러 장치를 통해 소설 바깥의 독자로 하여금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수시로 일깨우는 것 또한 효과적일 테다. 당위는 공감과 맞닿아 있으므로. 반면 이갑수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작금의 현실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벌어졌거나 훗날 펼쳐질, 과거나 미래에 관한 가정이 없기에 결연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당위적이진 않아. 그냥 하고 싶은 것도 있어. 이유를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이해학 개론」) 그 자체로 소설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을 가볍게 무시하며-현실에 지친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은 듣기에 퍽 놀랍다. 그것이야말로 소설 바깥에서 현실을 겪으며 삶을 ‘읽는 자(독자)’의 깊은 동조를 이끌어내는 고찰이므로.
이렇듯 허구의 기능에 기댄 전통적인 소설의 화법과 간극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갑수의 소설은 독특한 공감의 지평을 연다. 눈앞에 벌어진 당혹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며, 어떤 식으로든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헤쳐나가는, 주어진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어쩌면 그것이 인간 삶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고 이갑수의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성공이다. 그 실패로 인해 외계의 범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크기와 형태는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만큼이 세계다.
-「외계 문학 걸작선」 중에서
이성과 합리성 너머 온기를 간직한
포스트 휴먼의 얼굴
하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 같은 것은 없고, 결국에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논리적 구조물이고, 그게 유기적으로 짜여진 거라면 거기에서 어떤 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채널예스』 7문 7답 작가 인터뷰(2021.10.28.)에서
‘인간이 무엇이냐’는 현대사회의 질문은 자연스레 첨단 과학기술의 그늘 아래 ‘소설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는 문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갑수의 소설은 매우 산뜻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힌트를 드러낸다. 가령, 「수문장」에서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 (대체) 인력이다. 한때 인간이었던 그는 놀이공원의 안전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어린이날에 펼쳐진 테러 현장에서 그가 내린 판단은 ‘오류’에 가깝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문장이 씌어진 발판을 달고 있는 소파 방정환의 동상은 3억이 넘는 코끼리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값싼 ‘물건’임에도, 수문장은 “(방정환) 선생이 아니라 (어린이를 공격하며 주차장에서 날뛰는) 코끼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기로” 결심하고 칼을 휘두른다. 여전히 수문장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에 따른 가치가 아닌, ‘존재의 의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주 시점」에서 외계인이 천만 명을 제외한 인류를 무작정 죽이기로 한 시점에, ‘나’는 아버지와 안전한 자리를 운 좋게 확보하고 남은 태호 형을 염려한다.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가 물으면 망설임 없이 우주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태호 형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오랜 시간 동경을 품었지만 정작 미래에 목숨이 보장된 것은 ‘나’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을 만치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는 동안에도 곁을 지키며 “컴퓨터의 랜덤 추첨에서 태호 형이 뽑힐 가능성”을 점쳐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처럼 이갑수의 세계에서는, 이야기의 물꼬마다 이정표처럼 세워둔 물리학 이론과 수학 공식을 걷어낸 즉시 인간사의 드라마-숱한 의혹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을 갈구하는 얼굴들-가 또렷이 보인다. 그들은 불가해한 현실에 쉽게 압도되지 않고,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특정한 지식의 관점에서 소화시킬 수 없는 불순물이 바로 그 지식의 관점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 ‘인간의 이유’인 것”이라는 임지훈의 해설이 가리키듯,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인류애」)아 골몰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나름의 믿음에 도달한다. 그러니 이갑수의 소설 공식에 따르면 그 무엇이 인류의 미래를 덮치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우주 시점」)
이갑수의 소설 세계는 과학적 사실과 물리학 이론, 각종 수학 공식으로 가득하다. 이성적 사고를 드러내는 간결한 수식 덕에, 인간의 행동심리를 다루는 작가의 분석은 그 즉시 묘한 “설득력”(작가가 첫 소설집에서 다룬 바 있는)을 갖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완벽한 인간’의 상을 구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작동 원리를 살피는 데 쓰인다. 작가는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인간성’이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산업구조를 바꿔놓은 오늘날 어떤 위상에 놓이는지, 따뜻한 감동과 위트를 버무려 흥미롭게 전한다.
처음에 ‘나’는 이와 같은 인간의 태도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과정을 방해하는, 그 과정을 흐리게 만드는 불순물과 같은 것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 불순물과 같은 것이 한 인간의 핵심임을, 그리하여 그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반복’함으로써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종국에 이르러 “Q . E. D. ”를 선언하며 새로운 지식 체계를 확립한다. 혹은, 좀더 인간적인 언어로 말해보자면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 그것은 마치 사랑과도 같아 보인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외계로 구축된 소설 바깥의 현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에 대한 고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레고리 잠자는 벌레가 되었을 때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이미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사람은 갑자기 벌레가 되어도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지 않는다.
-「시간의 문법」 중에서
“수요일 오후 2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반복되는 일주일에 갇힌 주인공 ‘나’는 두어 번의 시간 순환 끝에 “아! 식상해” 하고 중얼거린다. ‘나’의 타임 루프를 접한 가족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거 뭔지 알아. 드라마에서 봤어”라고 반응하는 엄마와 이모는 급기야 “열심히 해봐” “힘들겠네” 하며 격려까지 건넨다. “이번 주 로또 번호가 뭐냐?”라고 묻는 이모부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시간의 문법」). 그런가 하면 “이 나라에는 이제 지식인이 없”느냐는 질문에 “네이버”에 있다고 덤덤히 말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이 있으며(「수문장」), 지구 멸망을 예감하고 앞서 회사를 떠난 재봉사들처럼 “스티븐 호킹이 죽었어. 그래서……”라고 전화로 어렵사리 퇴사 결심을 털어놓는 ‘나’에게 “올 때 쿠킹호일 좀 사” 오라는 아내가 있다(「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이갑수의 소설 세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실소는, 독자가 독자로서의 역할-읽는 행위-을 진지하게 이행하는 그 찰나를 노린 일격과 같다. 때때로 과연 이것이 소설일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인물을 둘러싼 현실은 허구fiction와 사실fact 정보가 뒤섞인 채 촘촘한 결을 유지한다.
소설에서 인물의 행동에 관한 ‘당위’는 심리가 노출되기에 앞서 앞뒤 맥락이 충분히 설명될 때에 성립된다. 여러 장치를 통해 소설 바깥의 독자로 하여금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수시로 일깨우는 것 또한 효과적일 테다. 당위는 공감과 맞닿아 있으므로. 반면 이갑수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작금의 현실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벌어졌거나 훗날 펼쳐질, 과거나 미래에 관한 가정이 없기에 결연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당위적이진 않아. 그냥 하고 싶은 것도 있어. 이유를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이해학 개론」) 그 자체로 소설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을 가볍게 무시하며-현실에 지친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은 듣기에 퍽 놀랍다. 그것이야말로 소설 바깥에서 현실을 겪으며 삶을 ‘읽는 자(독자)’의 깊은 동조를 이끌어내는 고찰이므로.
이렇듯 허구의 기능에 기댄 전통적인 소설의 화법과 간극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갑수의 소설은 독특한 공감의 지평을 연다. 눈앞에 벌어진 당혹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며, 어떤 식으로든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헤쳐나가는, 주어진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어쩌면 그것이 인간 삶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고 이갑수의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성공이다. 그 실패로 인해 외계의 범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크기와 형태는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만큼이 세계다.
-「외계 문학 걸작선」 중에서
이성과 합리성 너머 온기를 간직한
포스트 휴먼의 얼굴
하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 같은 것은 없고, 결국에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논리적 구조물이고, 그게 유기적으로 짜여진 거라면 거기에서 어떤 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채널예스』 7문 7답 작가 인터뷰(2021.10.28.)에서
‘인간이 무엇이냐’는 현대사회의 질문은 자연스레 첨단 과학기술의 그늘 아래 ‘소설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는 문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갑수의 소설은 매우 산뜻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힌트를 드러낸다. 가령, 「수문장」에서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 (대체) 인력이다. 한때 인간이었던 그는 놀이공원의 안전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어린이날에 펼쳐진 테러 현장에서 그가 내린 판단은 ‘오류’에 가깝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문장이 씌어진 발판을 달고 있는 소파 방정환의 동상은 3억이 넘는 코끼리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값싼 ‘물건’임에도, 수문장은 “(방정환) 선생이 아니라 (어린이를 공격하며 주차장에서 날뛰는) 코끼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기로” 결심하고 칼을 휘두른다. 여전히 수문장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에 따른 가치가 아닌, ‘존재의 의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주 시점」에서 외계인이 천만 명을 제외한 인류를 무작정 죽이기로 한 시점에, ‘나’는 아버지와 안전한 자리를 운 좋게 확보하고 남은 태호 형을 염려한다.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가 물으면 망설임 없이 우주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태호 형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오랜 시간 동경을 품었지만 정작 미래에 목숨이 보장된 것은 ‘나’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을 만치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는 동안에도 곁을 지키며 “컴퓨터의 랜덤 추첨에서 태호 형이 뽑힐 가능성”을 점쳐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처럼 이갑수의 세계에서는, 이야기의 물꼬마다 이정표처럼 세워둔 물리학 이론과 수학 공식을 걷어낸 즉시 인간사의 드라마-숱한 의혹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을 갈구하는 얼굴들-가 또렷이 보인다. 그들은 불가해한 현실에 쉽게 압도되지 않고,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특정한 지식의 관점에서 소화시킬 수 없는 불순물이 바로 그 지식의 관점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 ‘인간의 이유’인 것”이라는 임지훈의 해설이 가리키듯,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인류애」)아 골몰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나름의 믿음에 도달한다. 그러니 이갑수의 소설 공식에 따르면 그 무엇이 인류의 미래를 덮치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우주 시점」)
외계 문학 걸작선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