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문학 걸작선

외계 문학 걸작선

$14.27
저자

이갑수

1983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1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소설집『편협의완성』,『첨벙』등이있다.앤솔러지『식스센스』에참여했다.

목차

외계문학걸작선
이해학개론
수문장
시간의문법
달인
대통령의검술선생
영구적팽창으로부터의부드러운탈출
우주시점
인류애

해설│성실한인간들의‘짠한’분투기·임지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외계로구축된소설바깥의현실
시공간을넘나드는사랑에대한고찰

한가지확실한것은나처럼평범한사람은타임루프에갇혀도놀라거나당황하지않는다는것이다.이유는간단하다.이런종류의텍스트를많이알고있으니까.그레고리잠자는벌레가되었을때무기력하게당했지만,이미카프카의『변신』을읽은사람은갑자기벌레가되어도아버지가던진사과에맞지않는다.
―「시간의문법」중에서

“수요일오후2시까지8층으로오시면됩니다.”반복되는일주일에갇힌주인공‘나’는두어번의시간순환끝에“아!식상해”하고중얼거린다.‘나’의타임루프를접한가족들의반응역시크게다르지않다.“그거뭔지알아.드라마에서봤어”라고반응하는엄마와이모는급기야“열심히해봐”“힘들겠네”하며격려까지건넨다.“이번주로또번호가뭐냐?”라고묻는이모부의모습은지나치게현실적이어서웃음을자아낸다(「시간의문법」).그런가하면“이나라에는이제지식인이없”느냐는질문에“네이버”에있다고덤덤히말하는어린이대공원의수문장로봇이있으며(「수문장」),지구멸망을예감하고앞서회사를떠난재봉사들처럼“스티븐호킹이죽었어.그래서……”라고전화로어렵사리퇴사결심을털어놓는‘나’에게“올때쿠킹호일좀사”오라는아내가있다(「영구적팽창으로부터의부드러운탈출」.“이갑수의소설세계에서맞닥뜨리게되는실소는,독자가독자로서의역할―읽는행위―을진지하게이행하는그찰나를노린일격과같다.때때로과연이것이소설일까?하는의심마저불러일으킬만큼,인물을둘러싼현실은허구fiction와사실fact정보가뒤섞인채촘촘한결을유지한다.

소설에서인물의행동에관한‘당위’는심리가노출되기에앞서앞뒤맥락이충분히설명될때에성립된다.여러장치를통해소설바깥의독자로하여금‘나라면?’이라는가정을수시로일깨우는것또한효과적일테다.당위는공감과맞닿아있으므로.반면이갑수의소설속주인공들은자신이처한작금의현실을별다른저항없이받아들인다.그들에게는‘나아닌다른사람’의생각에대한관심은물론이거니와,이미벌어졌거나훗날펼쳐질,과거나미래에관한가정이없기에결연하다.“그렇게모든것이당위적이진않아.그냥하고싶은것도있어.이유를잘모르지만한사람을사랑하기도하고.”(「이해학개론」)그자체로소설의시작점이될수있는사건을가볍게무시하며―현실에지친우리가흔히그러하듯―내일을향해나아간다.“평범한사람은타임루프에갇혀도놀라거나당황하지않”는다는‘나’의말은듣기에퍽놀랍다.그것이야말로소설바깥에서현실을겪으며삶을‘읽는자(독자)’의깊은동조를이끌어내는고찰이므로.
이렇듯허구의기능에기댄전통적인소설의화법과간극을드러내는방식으로,이갑수의소설은독특한공감의지평을연다.눈앞에벌어진당혹스러운상황을받아들이며,어떤식으로든자율적으로,주체적으로헤쳐나가는,주어진대로살아갈수밖에없는삶.어쩌면그것이인간삶의‘진짜’모습일지모른다고이갑수의소설은말하는듯하다.

어떤의미에서그것은하나의성공이다.그실패로인해외계의범위가확장되었기때문이다.세계의크기와형태는인식하는주체에따라서바뀌는것이다.당대의사람들이인식하는것만큼이세계다.
―「외계문학걸작선」중에서

이성과합리성너머온기를간직한
포스트휴먼의얼굴

하지만사실새로운이야기같은것은없고,결국에는어떻게쓸것인가를
고민하는수밖에없는것같습니다.소설은논리적구조물이고,그게유기적으로짜여진거라면거기에서어떤원리를찾을수도있을겁니다.
―『채널예스』7문7답작가인터뷰(2021.10.28.)에서

‘인간이무엇이냐’는현대사회의질문은자연스레첨단과학기술의그늘아래‘소설의역할은무엇이냐’하는문학적고민으로이어진다.이갑수의소설은매우산뜻한방식으로그에대한힌트를드러낸다.가령,「수문장」에서어린이대공원의수문장로봇은누구보다성실하고원칙을준수하는모범(대체)인력이다.한때인간이었던그는놀이공원의안전을철저하게관리하며합리적인결정을내린다.그러나어린이날에펼쳐진테러현장에서그가내린판단은‘오류’에가깝다.“어린이는우리의희망이다”라는문장이씌어진발판을달고있는소파방정환의동상은3억이넘는코끼리와비교되지않을만큼값싼‘물건’임에도,수문장은“(방정환)선생이아니라(어린이를공격하며주차장에서날뛰는)코끼리를고통에서해방시켜주기로”결심하고칼을휘두른다.여전히수문장의정신을지배하는것은자본에따른가치가아닌,‘존재의의미’임을증명이라도하듯.「우주시점」에서외계인이천만명을제외한인류를무작정죽이기로한시점에,‘나’는아버지와안전한자리를운좋게확보하고남은태호형을염려한다.“아직꿈을포기하지않았”고“누가물으면망설임없이우주에가고싶다고”말하는태호형을보며부러움을느끼고오랜시간동경을품었지만정작미래에목숨이보장된것은‘나’이다.그러나어처구니없을만치절망적인현실을마주하는동안에도곁을지키며“컴퓨터의랜덤추첨에서태호형이뽑힐가능성”을점쳐보며희망을버리지않는다.

이처럼이갑수의세계에서는,이야기의물꼬마다이정표처럼세워둔물리학이론과수학공식을걷어낸즉시인간사의드라마―숱한의혹과갈등에도불구하고매순간의미를부여하며행복을갈구하는얼굴들―가또렷이보인다.그들은불가해한현실에쉽게압도되지않고,쉽게긍정하거나부정하지않는다.“특정한지식의관점에서소화시킬수없는불순물이바로그지식의관점에서그토록찾아헤매던진리,‘인간의이유’인것”이라는임지훈의해설이가리키듯,어려운길을택함으로써“변하지않는본질을찾”(「인류애」)아골몰하고실패를거듭하며나름의믿음에도달한다.그러니이갑수의소설공식에따르면그무엇이인류의미래를덮치더라도걱정할것없다.“우린답을찾을것이다.늘그랬듯이.”(「우주시점」)

책속에서

―눈앞에서아버지가죽는모습을봤으니충격이컸을겁니다.
의사가말했다.아주틀린말은아니었다.나는분명커다란충격을받았다.생명,삶,죽음에서어떤패턴을발견했기때문이었다.그것은음악과유사했다.어떤리듬이세상을움직이고,또모든생명의근원에자리잡고있었다.나는생성과소멸,‘살아있다’라는것의의미……그런것들에대해서생각했다.더살아봐야알수있을거라는것이외의별다른결론을얻을수는없었다.
―엄마,나배고파요.
다시말을한순간에,나는‘나’가무엇인지깨달았다.‘나’는인칭대명사일뿐이었다.그이상도이하도아니었다.「외계문학걸작선」

다음날,하급생아이가혼자서당신을찾아온다.
―왜도와주지않았죠?아저씨때문에새로산신발을뺏겼어요.
아이가말한다.
―저,나는경찰이아닙니다만.
당신이말한다.
―그래도도와달라는신호를감지했으면도와줬어야죠.
아이가말한다.크게억울한모양이다.
난감한일이다.아이의신호는명확하지않았다.도와주면도와준대로또다른원망을들었을지도모른다.당신은여섯번이나직장을옮기면서인간에게는결정적으로한가지가결여되어있다는것을깨달았다.
일관성.
분명책임지고맡아서일하라고해놓고,며칠후에는그렇게마음대로할거면당장그만두라고소리친다.「수문장」

―말도안돼.
환상적이거나초현실적인일이벌어지면텍스트안의인물은그렇게말한다.그러나텍스트를아는사람은비현실적인가능성이라도그것이비현실적이라는이유만으로부정하지는않는다.
―그거뭔지알아.드라마에서봤어.
실제로엄마와이모는내가타임루프에갇혔다고하자그렇게말했다.그리고각각이렇게덧붙였다.
―열심히해봐.
―힘들겠구나.
그러니까내가도서관에간이유는무엇이힘든지,뭘열심히해야하는지알아보기위해서였다._「시간의문법」

―너매일게임만한다고엄마가걱정하더라.
―4차산업혁명못들어봤어?이제기계가일하고인간은노는세상이올거야.
―그래.그런세상이오면정말좋겠다.
나는아들이순진하다고생각했다.기계가일을하는세상이올지는모르지만,그런형태는아니다.기계가일하고기계의소유자들이노는그런세상이다.자기대신일할기계를소유하지못한대부분의사람들은기계로할때보다돈이덜드는일을찾아헤맬것이다._「영구적팽창으로부터의부드러운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