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프랑스 시인이자 파리8대학의 명예교수 그리고 권위 있는 시 전문지 『포에지Po&sie』의 부편집장인 클로드 무샤르의 한국 문학 연구서 『다른 생의 피부ㅡ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국 문학 전도사’로 잘 알려진 무샤르는 1999년에 처음으로 『포에지』 한국 시 특집호를 출간한 이후 2012년에도 300쪽가량의 두번째 특집호를 선보이는 등 꾸준히 한국 문학작품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이러한 그의 한국 문학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첫 책이 『다른 생의 피부』이다. 황지우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 제목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우연히 한국 문학을 접한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는 아예 다른 삶을 오롯이 문학 작품으로만 간접 경험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어는커녕 한국 문학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클로드 무샤르는 이 책에서 그는 이상, 윤동주, 기형도의 시가 내포한 예측 불허의 창조성에 관한 분석은 물론,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혜순과 나누었던 문학적 우정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책의 서문에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청준과 함께했던 남도 여행의 일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이청준은 모두가 침실로 돌아가려 할 때, 대뜸 “불 꺼지는 소리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나치리만치 차분했던 이청준의 목소리가 선명하다고 말하는 무샤르는, 이청준의 말을 듣고 오를레앙에서 들었던 폭격 소리와 공포를 기억해낸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이루어진 한국 문학 읽기는 개인의 역사와 국가적 이념을 초월한 강한 떨림을 전달한다. 그는 윤동주, 김수영, 조지훈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20세기 역사의 흔적들을 읽어나가며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작품의 구조와 시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증언문학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상황을 기록한 조지훈의 시 「절망의 일기」를 예로 들어 어떤 시는 단 한순간도 역사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매 순간 자기만의 현재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현재를 달리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클로드 무샤르에겐 지금도 이상의 시 「오감도」를 번역해 읽었던 날이 선명하다. 읽는 순간 숨을 멎게 만든 이상의 작품은 독특한 비유와 의도적 여백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재는 물론 당장에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시인의 문장이 자신의 기대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이상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폭력과 한국과 일본에서의 불행을 이채로운 시선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낯선 이상의 작품이 사실은 적나라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정착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현실은 이상의 문장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다. 그러한 이유로 춤은, 언제나 다시, 더 멀리 뛰어오르기 위해 계속된다. 한 텍스트에서 또 다른 텍스트로, 같은 텍스트 안의 한순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글쓰기의 자리 그 자체가 일어나 이동하고 증식하고, 멈추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클로드 무샤르가 『포에지』의 두번째 한국 시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자 시인 김혜순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답한다. 이후 무샤르는 그의 시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읽고 프랑스어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김혜순을 읽는다는 것은 “원초적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것”임을 느끼며 무샤르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한국 문학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김혜순의 시를 통해 기이한 환희의 상태를 경험하고 지배 세력에 대항해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도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한국 시는 언어 깊숙이 내재된 역설을 통해 가장 음울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이는 정치적 선언이 아닌 정치적 해방을 의미한다. 무샤르에게 좋은 시 또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언제나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고 이는 한국 문학작품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남은 시대적 과업임을 강조한다. 그가 한국 문학작품을 역사적·예술적 관점에서 폭넓게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탐닉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작품과 작가를 자신의 문학적 동지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에 끌어안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 『다른 생의 피부』는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목에서 묵묵히 길잡이 역할을 했던 클로드 무샤르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저자의 고향인 오를레앙과 한국 시를 처음으로 접한 파리, 한국 작가들과의 우정의 장소 역할을 했던 서울, 그리고 시(時)에 이르기까지 클로드 무샤르와 소중한 인연을 나눈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으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무샤르 선생의 ‘신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의 특별한 면모에 대한 무샤르 선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발견을 보편적 동의로 만들고 그 이해를 심화,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으로 이어감으로써 값진 결과들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결국, 변방의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독자적인 한 단위로 등록시키고자 하는 오래된 염원에 중요한 초석을 놓는 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
이러한 그의 한국 문학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첫 책이 『다른 생의 피부』이다. 황지우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 제목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우연히 한국 문학을 접한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는 아예 다른 삶을 오롯이 문학 작품으로만 간접 경험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어는커녕 한국 문학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클로드 무샤르는 이 책에서 그는 이상, 윤동주, 기형도의 시가 내포한 예측 불허의 창조성에 관한 분석은 물론,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혜순과 나누었던 문학적 우정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책의 서문에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청준과 함께했던 남도 여행의 일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이청준은 모두가 침실로 돌아가려 할 때, 대뜸 “불 꺼지는 소리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나치리만치 차분했던 이청준의 목소리가 선명하다고 말하는 무샤르는, 이청준의 말을 듣고 오를레앙에서 들었던 폭격 소리와 공포를 기억해낸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이루어진 한국 문학 읽기는 개인의 역사와 국가적 이념을 초월한 강한 떨림을 전달한다. 그는 윤동주, 김수영, 조지훈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20세기 역사의 흔적들을 읽어나가며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작품의 구조와 시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증언문학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상황을 기록한 조지훈의 시 「절망의 일기」를 예로 들어 어떤 시는 단 한순간도 역사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매 순간 자기만의 현재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현재를 달리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클로드 무샤르에겐 지금도 이상의 시 「오감도」를 번역해 읽었던 날이 선명하다. 읽는 순간 숨을 멎게 만든 이상의 작품은 독특한 비유와 의도적 여백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재는 물론 당장에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시인의 문장이 자신의 기대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이상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폭력과 한국과 일본에서의 불행을 이채로운 시선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낯선 이상의 작품이 사실은 적나라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정착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현실은 이상의 문장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다. 그러한 이유로 춤은, 언제나 다시, 더 멀리 뛰어오르기 위해 계속된다. 한 텍스트에서 또 다른 텍스트로, 같은 텍스트 안의 한순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글쓰기의 자리 그 자체가 일어나 이동하고 증식하고, 멈추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클로드 무샤르가 『포에지』의 두번째 한국 시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자 시인 김혜순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답한다. 이후 무샤르는 그의 시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읽고 프랑스어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김혜순을 읽는다는 것은 “원초적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것”임을 느끼며 무샤르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한국 문학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김혜순의 시를 통해 기이한 환희의 상태를 경험하고 지배 세력에 대항해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도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한국 시는 언어 깊숙이 내재된 역설을 통해 가장 음울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이는 정치적 선언이 아닌 정치적 해방을 의미한다. 무샤르에게 좋은 시 또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언제나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고 이는 한국 문학작품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남은 시대적 과업임을 강조한다. 그가 한국 문학작품을 역사적·예술적 관점에서 폭넓게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탐닉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작품과 작가를 자신의 문학적 동지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에 끌어안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 『다른 생의 피부』는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목에서 묵묵히 길잡이 역할을 했던 클로드 무샤르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저자의 고향인 오를레앙과 한국 시를 처음으로 접한 파리, 한국 작가들과의 우정의 장소 역할을 했던 서울, 그리고 시(時)에 이르기까지 클로드 무샤르와 소중한 인연을 나눈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으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무샤르 선생의 ‘신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의 특별한 면모에 대한 무샤르 선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발견을 보편적 동의로 만들고 그 이해를 심화,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으로 이어감으로써 값진 결과들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결국, 변방의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독자적인 한 단위로 등록시키고자 하는 오래된 염원에 중요한 초석을 놓는 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
다른 생의 피부 : 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