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의 피부 : 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

다른 생의 피부 : 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

$14.00
Description
프랑스 시인이자 파리8대학의 명예교수 그리고 권위 있는 시 전문지 『포에지Po&sie』의 부편집장인 클로드 무샤르의 한국 문학 연구서 『다른 생의 피부ㅡ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국 문학 전도사’로 잘 알려진 무샤르는 1999년에 처음으로 『포에지』 한국 시 특집호를 출간한 이후 2012년에도 300쪽가량의 두번째 특집호를 선보이는 등 꾸준히 한국 문학작품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이러한 그의 한국 문학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첫 책이 『다른 생의 피부』이다. 황지우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 제목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우연히 한국 문학을 접한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는 아예 다른 삶을 오롯이 문학 작품으로만 간접 경험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어는커녕 한국 문학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클로드 무샤르는 이 책에서 그는 이상, 윤동주, 기형도의 시가 내포한 예측 불허의 창조성에 관한 분석은 물론,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혜순과 나누었던 문학적 우정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책의 서문에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청준과 함께했던 남도 여행의 일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이청준은 모두가 침실로 돌아가려 할 때, 대뜸 “불 꺼지는 소리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나치리만치 차분했던 이청준의 목소리가 선명하다고 말하는 무샤르는, 이청준의 말을 듣고 오를레앙에서 들었던 폭격 소리와 공포를 기억해낸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이루어진 한국 문학 읽기는 개인의 역사와 국가적 이념을 초월한 강한 떨림을 전달한다. 그는 윤동주, 김수영, 조지훈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20세기 역사의 흔적들을 읽어나가며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작품의 구조와 시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증언문학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상황을 기록한 조지훈의 시 「절망의 일기」를 예로 들어 어떤 시는 단 한순간도 역사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매 순간 자기만의 현재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현재를 달리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클로드 무샤르에겐 지금도 이상의 시 「오감도」를 번역해 읽었던 날이 선명하다. 읽는 순간 숨을 멎게 만든 이상의 작품은 독특한 비유와 의도적 여백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재는 물론 당장에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시인의 문장이 자신의 기대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이상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폭력과 한국과 일본에서의 불행을 이채로운 시선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낯선 이상의 작품이 사실은 적나라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정착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현실은 이상의 문장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다. 그러한 이유로 춤은, 언제나 다시, 더 멀리 뛰어오르기 위해 계속된다. 한 텍스트에서 또 다른 텍스트로, 같은 텍스트 안의 한순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글쓰기의 자리 그 자체가 일어나 이동하고 증식하고, 멈추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클로드 무샤르가 『포에지』의 두번째 한국 시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자 시인 김혜순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답한다. 이후 무샤르는 그의 시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읽고 프랑스어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김혜순을 읽는다는 것은 “원초적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것”임을 느끼며 무샤르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한국 문학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김혜순의 시를 통해 기이한 환희의 상태를 경험하고 지배 세력에 대항해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도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한국 시는 언어 깊숙이 내재된 역설을 통해 가장 음울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이는 정치적 선언이 아닌 정치적 해방을 의미한다. 무샤르에게 좋은 시 또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언제나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고 이는 한국 문학작품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남은 시대적 과업임을 강조한다. 그가 한국 문학작품을 역사적·예술적 관점에서 폭넓게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탐닉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작품과 작가를 자신의 문학적 동지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에 끌어안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 『다른 생의 피부』는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목에서 묵묵히 길잡이 역할을 했던 클로드 무샤르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저자의 고향인 오를레앙과 한국 시를 처음으로 접한 파리, 한국 작가들과의 우정의 장소 역할을 했던 서울, 그리고 시(時)에 이르기까지 클로드 무샤르와 소중한 인연을 나눈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으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무샤르 선생의 ‘신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의 특별한 면모에 대한 무샤르 선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발견을 보편적 동의로 만들고 그 이해를 심화,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으로 이어감으로써 값진 결과들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결국, 변방의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독자적인 한 단위로 등록시키고자 하는 오래된 염원에 중요한 초석을 놓는 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
저자

클로드무샤르

시인,문학평론가,파리8대학비교문학부교수이자프랑스의권위있는시계간지『포에지Po&sie』의부편집장.1941년프랑스오를레앙에서태어났으며,파리8대학교수로재직하던당시,한국유학생들을통해한국작가들을접하고이후여러차례한국과프랑스를오가며다양한방식으로문학적우정의교류를이어왔다.1999년과2012년,두차례에걸쳐『포에지』한국현대시특집호를발간하며프랑스독자들에게한국문학을본격적으로소개했다.

목차

무샤르,서쪽에서온고운스파이│추천의글4

한국의희미한불빛언어들21
불꺼지는소리가무섭소27
세상의습곡이여,기억의단층이여48
그속에잠시머물다가타버린64
불란서에가더라도88
고요히세상을엿듣고있다96
복숭아나무라는예민한사건109
미쳐버리고싶은,미쳐지지않는112
입속에서굵은모래가서걱거렸다115
내가그바다에서걸어나올시각127
예측할수없는한국문학143

유령들│옮긴이의말161

출판사 서평

모든것은문학적우정에서비롯된일이었다

시인이자문학평론가클로드무샤르의
프랑스에서한국시읽기

프랑스시인이자파리8대학의명예교수그리고권위있는시전문지『포에지Po&sie』의부편집장인클로드무샤르의한국문학연구서『다른생의피부ㅡ오를레앙,파리,서울그리고시』가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한국과프랑스를오가며‘한국문학전도사’로잘알려진무샤르는1999년에처음으로『포에지』한국시특집호를출간한이후2012년에도300쪽가량의두번째특집호를선보이는등꾸준히한국문학작품을알리는데힘써왔다.

이러한그의한국문학에대한사랑이오롯이담긴첫책이『다른생의피부』이다.황지우의시구에서가져온이제목은한국인유학생들을통해우연히한국문학을접한프랑스시인이자문학평론가가자신이살아온생애와는아예다른삶을오롯이문학작품으로만간접경험했음을내포하고있다.한국어는커녕한국문학에대한정보가전무했던클로드무샤르는이책에서그는이상,윤동주,기형도의시가내포한예측불허의창조성에관한분석은물론,소설가이청준,시인김혜순과나누었던문학적우정에대해서도진솔하게털어놓는다.책의서문에는처음한국을방문했을때이청준과함께했던남도여행의일화가고스란히담겨있다.자신이겪은한국전쟁의참상에관한이야기를털어놓던이청준은모두가침실로돌아가려할때,대뜸“불꺼지는소리가두렵”다고말한다.지금도지나치리만치차분했던이청준의목소리가선명하다고말하는무샤르는,이청준의말을듣고오를레앙에서들었던폭격소리와공포를기억해낸다.유년시절의기억과함께이루어진한국문학읽기는개인의역사와국가적이념을초월한강한떨림을전달한다.

그는윤동주,김수영,조지훈의시에서발견할수있는20세기역사의흔적들을읽어나가며과거의경험이어떻게작품의구조와시간의구성에영향을미치는지에대해연구한다.하지만이는단순한증언문학에관한연구가아니다.그는한국전쟁발발직후의상황을기록한조지훈의시「절망의일기」를예로들어어떤시는단한순간도역사의폭력에휘둘리지않고매순간자기만의현재를만들어낸다고강조한다.현재를달리바라보는것이상으로“우리를움직이게하고,우리의시선을변화”시키는작품도있다고말하는클로드무샤르에겐지금도이상의시「오감도」를번역해읽었던날이선명하다.읽는순간숨을멎게만든이상의작품은독특한비유와의도적여백을통해혼란스러운현재는물론당장에가늠하기어려운미래에대해서도상상의나래를펼쳤기때문이다.시인의문장이자신의기대보다훨씬더먼곳에서,“우리를움직이게하고,우리의시선을변화”시킨다고말하는그는,이상이어린시절겪어야했던폭력과한국과일본에서의불행을이채로운시선으로분석한다.

우리는낯선이상의작품이사실은적나라한현실과연결되어있음을느낀다.그러나그것은정착할수있는,그어떤곳에대해서도알려주지않는다.현실은이상의문장들,그속에잠시머물다가타버린다.그러한이유로춤은,언제나다시,더멀리뛰어오르기위해계속된다.한텍스트에서또다른텍스트로,같은텍스트안의한순간에서또다른순간으로,글쓰기의자리그자체가일어나이동하고증식하고,멈추지않는리듬을만들어낸다.
-「그속에잠시머물다가타버린」

당신이당신자신을믿지못하기에
나는당신을믿습니다

서울의한카페에서,클로드무샤르가『포에지』의두번째한국시특집호를준비하면서느낀두려움에대해털어놓자시인김혜순은“당신이당신자신을믿지못하기에나는당신을믿는”다고답한다.이후무샤르는그의시를영어번역본을통해읽고프랑스어로옮기는작업에참여하게된다.김혜순을읽는다는것은“원초적감각에몸을맡기는것”임을느끼며무샤르는하나의고정된형태가아닌끊임없이변화하고생동하는한국문학에깊이매료된다.그는김혜순의시를통해기이한환희의상태를경험하고지배세력에대항해굴복하지않는용기가무엇인지도다시금깨닫는다.이렇듯한국시는언어깊숙이내재된역설을통해가장음울한상황가운데에서도희망을노래하며,이는정치적선언이아닌정치적해방을의미한다.무샤르에게좋은시또는좋은문학작품이란언제나고정된형태에서벗어나관념으로부터탈피하는것이었고이는한국문학작품의주요한특징이기도하다.

그는시를읽는것은하나의저항의식을드러내는것이며이를어떻게수용할지논의하는것이야말로미래세대에게남은시대적과업임을강조한다.그가한국문학작품을역사적·예술적관점에서폭넓게분석할수있었던것은,단순히예술작품을탐닉한것에그치는것이아닌작품과작가를자신의문학적동지로삼고끊임없이자신의삶속에끌어안고나아갔기때문이다.이책,『다른생의피부』는한국문학이세계로뻗어나가는길목에서묵묵히길잡이역할을했던클로드무샤르의생생한목소리를담고있다.그속에는저자의고향인오를레앙과한국시를처음으로접한파리,한국작가들과의우정의장소역할을했던서울,그리고시(時)에이르기까지클로드무샤르와소중한인연을나눈이들과의만남과헤어짐이있으며그시간의중심에는언제나한국문학이라는새로운가능성이꿈틀대고있었다.

이모든일이무샤르선생의‘신심’과‘열정’에서비롯된것이었다.이는무엇보다도한국시의특별한면모에대한무샤르선생의발견으로부터비롯된것이지만,궁극적으로는자신의발견을보편적동의로만들고그이해를심화,확장하고자하는의지의실천으로이어감으로써값진결과들을얻게된것이라할수있다.그의헌신은결국,변방의한국문학을세계문학의독자적인한단위로등록시키고자하는오래된염원에중요한초석을놓는일로문학사에기록될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