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탐정사의 밤 : 곽재식 추리 연작소설집

사설탐정사의 밤 : 곽재식 추리 연작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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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
곽재식의 첫 추리 연작소설집!

1949년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숨 가쁜 탐정 수사 일지
2006년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가 영상화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공학박사이자 SF소설가 곽재식의 첫 추리 연작소설집 『사설탐정사의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그간 『한국 괴물 백과』(워크룸프레스, 2018),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어크로스, 2022) 등 과학ㆍ인문ㆍ교양ㆍ에세이ㆍ소설ㆍ청소년소설ㆍ역사동화 장르를 가리지 않는 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곽재식 속도(반년간 단편 네 편을 집필한다는 뜻)’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다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집필뿐만 아니라 라디오와 TV 교양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과학과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와 특유의 입담을 뽐내고 있다.
1949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여덟 편의 탐정소설 연작인 『사설탐정사의 밤』은 2015년~2022년까지 격월간 미스터리 잡지 『미스테리아』에 게재했던 추리소설을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오디언에서 올해 초 출시된 화제의 오디오북 〈1949 사설탐정사〉 수록작을 포함했다.

명멸하는 밤거리를 불안에 잠식된 채 유령처럼 부유하는 인물들이 있다. 자조 섞인 유머 감각으로 무장한 사설탐정이 그들의 뒤를 쫓고, 나는 탐정의 뒤를 쫓으며 그들과 얽힌 여덟 개의 사건을 본다. [……] 승부를 걸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사설탐정사의 조수로라도 취직해서 어서 더 사건을 맡으라고, 이야기를 더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싶은 기분이다._박대민(영화 「그림자 살인」 「봉이 김선달」 「특송」 감독)
저자

곽재식

공학박사이자작가로,숭실사이버대학교환경안전공학과교수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2006년단편소설「토끼의아리아」가MBC<베스트극장>에서영상화된이후작가로활동하기시작했다.과학적상상력과방대한과학지식을바탕으로『곽재식과힘의용사들』,『곽재식의유령잡는화학자』,『그래서우리는달에간다』,『지구는괜찮아,우리가문제지』,『곽재식의아파트생물학』,『곽재식의세균박람회』등...

목차


범인이탐정을수사하다
천사가모터사이클을타고내려오다
유령들이잔치를벌이다
도망치던사람이영화에나오다
탐정이살인하는법을배우다
쓰레기를비싼값에사다
손님이주인을내쫓다
마귀들의울음소리로음악회를열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황량한서울거리를휩쓴의문의사건들
야행에나선탐정의대추격전

저편에남선탐정사무소건물이보였다.건물안팎을들락거리는분주한사람들이있었다.일을하고들어오는힘찬발걸음,일을마치고나가는보람찬발걸음.요즘에는백범김구가직접찾아와남선탐정사무소에일을맡긴다는소문까지있어서,혹시나백범을구경해볼까하는영감님이나아이들까지괜히건물옆에늘어서있었다.
―「유령들이잔치를벌이다」에서

손님이없어파리만날리는사무소에서무명탐정은자신의처지와는대조적으로북적거리는,길건너편‘남선탐정사무소’를하릴없이바라보며시간을죽인다.북한이전기를끊어버려불을밝힐수없는그의영세한공간에도,궁지에몰린의뢰인이홀연히모습을드러내기시작한다.모종의거래가성사된후,탐문에착수한무명탐정에게비로소활력이돈다.광복후정부가수립된지얼마되지않은시기,변화의물결이거리를휩쓴당시의풍속이작가특유의시원하고군더더기없는묘사에힘입어오늘인듯생생하게눈앞에펼쳐진다.속도감넘치는등장인물간의대화,미궁에빠진사건의실마리를찾아재빠르게움직이는탐정의부지런함이더해져스릴과재미를모두잡았다.쫓고쫓기는추격과손에땀을쥐게하는수차례의위기끝에사건은종결된다.무엇보다격변기시대상을고스란히반영한각각의에피소드에서오랜시간작품을통해견지해온작가의휴머니즘적인시각이더욱뚜렷하게빛난다.

살아움직이는입체적캐릭터의향연
온정어린시선을간직한곽재식표누아르

광복직후미군정시대(1945~1948)를거치며한국사회를잠식한급격한인플레이션,남북분단과정세의혼란속에서서민들의살림은을씨년스럽기그지없었다.일본인소유의공장이가동을멈추고노동자는대량해고되었으며생필품은부족해지고적산敵産불하에한몫챙기려는친일파가곳곳에서기승을부렸다.『사설탐정사의밤』은경제적궁핍과환란이극에달한그즈음의생활상과변화하는세태에적응하기위해발버둥치는민간인들의모습그리고그틈을타고벌어지는암투와소극을그린다.

여수순천십일구사건의소용돌이에휘말리자숙청을피하려살인범으로신분을위장한인물들(「범인이탐정을수사하다」),겨레와동포를위하는대의에눈이멀어사사건건사고를치는왕년의독립운동가들과그들과의의리를지키려거짓으로사건을의뢰한여성정치가(「천사가모터사이클을타고내려오다」),백범김구를저격할목적으로탐정사무소를사용하기위해무명탐정을외부로유인하는무리(「유령들이잔치를벌이다」),일제의앞잡이노릇을하던형사였다가광복후자신을유명경찰학자로홍보하며요설을곁들여사람들을현혹시키는사기꾼(「탐정이살인하는법을배우다」),기자생활을관두고인쇄소를차려재산을불린사업가(「마귀들의울음소리로음악회를열다」)등은역사적격변기에저마다의방식으로생계를보전하며탈출구를모색한민중의삶을대변한다.곽재식은평범한인간내면에담긴욕망과이익을둘러싸고교차하는군상의상상력을촘촘히다룬다.동시에,거대한운명의파도에휩쓸린작은존재를향한연민을놓지않고이해를목전에둔끈질긴접촉을시도하며인간적인결말에도달한다.

아스라이빛나는영광뒤편의허무
격변기시대상을반영한미스터리드라마

적산불하제도이야기였다.해방이되고일본사람들이빠져나가면서,주인이없어진일본사람의공장이나건물이곳곳에널려있었다.정부에서는심사를거쳐서그런공장을운영하기에가장적합한한국사람을찾아넘겨주었다.미군이들어왔을때부터시작된일이지만,며칠후국회에서새로법이통과되고나면더많은공장이새주인을찾게될거라고했다.
“새법이통과되면대동산업에게유달리유리해지는일이있는가?”
“유리하고불리하고할게있습니까?국회의원들이야해방전까지서당훈장이나하던영감님들이고,해방되고나서는동네애들몰고다니며영어로‘웰컴,웰컴’할줄밖에모르던양반들인데요,뭘.법만들고폐지하고하는것도이제갓돌지난정부에서투닥투닥애들소꿉장난하듯이하는일이죠,뭘.”
“대동산업이일본군술공장을넘겨받기에적합해보일만한자격은있나?”
“적합한지안적합한지공무원들이알게뭡니까?일본애들밑에서머릿수세는일만하던사람들이나사못하나만드는일이나알겠습니까?그냥친한사람한테넘기는거죠,뭘.”
―「쓰레기를비싼값에사다」에서

오귀스트뒤팽,셜록홈스,드루리레인,푸아로등세계문학사적으로널리알려진명탐정의신경질적인날카로움과대비되는이사설탐정사의정직하면서도관대한정신은일견브라운신부를닮아있지만그보다는훨씬소시민적이다.여느평범한삶에서발견되는번민의당사자로서,두다리를쉴틈없이움직여몸소생활전선을파고들고많은순간주변인물과의연대를거부하지않는다.타인의표정과몸짓을순식간에파악하는관찰력과어지러운인간의심상을직관하는탐정의통찰력은묵직한울림을전한다.총여덟편이수록된이번추리연작소설집은1949년대한민국의시대상을세밀하게그려역사적호기심을충족시키고긴박감넘치면서도위트가풍부한서사구조로독자를단번에사로잡는다.

작가자신의숙원이었고‘작가의말’에서언급했듯,“1940년대,1950년대에나온옛날흑백영화중에범죄를다룬이야기들을보면그시기에유행했던탐정이주인공으로나오는것들이여럿있다.특히하드보일드탐정이라고하는,도시의뒷골목을쓸쓸히헤매다가가끔범죄자들과껄렁한싸움에엮이기도하는데,그런싸움에서도두려움보다는피곤함을먼저느끼는탐정들이나오는이야기”그자체인『사설탐정사의밤』은다정한유머로세상살이의고독을보듬으며소재의기발함과강한흡인력으로눈을뗄수없게만드는곽재식표소설의진수로다가올것이다.

작가의말

작가들은필생의과업을저마다하나씩갖고있는경우가많다.너무거창하게들리는것같다면,자주떠올리지만실행에는잘옮기지않게되는집필계획을거의대부분갖고있다고생각해도좋다.‘내가언젠가이런소설은한번써보겠다,그런것써보면참재미있을것같은데’싶은구상을각자마음속에품고있다는뜻이다.‘역사상참놀라운사건이었던그사건을소재로엎치락뒤치락하는인간군상을다룬이야기를소설로써보면참재미있을텐데’라든가,‘그때가봤던그해변의아름다운풍경을배경으로기막힌사랑이야기를써보면멋지겠지’라든가하는생각이흔한예시다.

일전에글쓰기방법론을다룬산문집나는『삶에지칠때작가가버티는법』(북스피어,2019)이라는책에서도그에대한이야기를쓴적이있다.그때도했던이야기인데그런필생의과업같은구상일수록의외로실천에옮기게되기란쉽지않다.한번꼭써보고싶은소설이라고마음속에서긴시간품고있었던이야기인만큼,멋지게잘쓰고싶다는생각이너무앞서기때문일수도있다.훌륭한글을긴분량으로담아내려면많은여유가필요할것같다.그러나그만한여유가있는때는잘다가오지않는다.또작가라해도항상훌륭한글,아주멋진글을쓸수있는것은아니기에욕심에걸맞은준비를하기도쉽지않다.그러다보면나중에,언젠가시일이지난후에,여유가충분할때쓰자고미루게되기쉽다.다른방향에서생각해보자면이렇게설명해볼수도있다.이런부류의꼭한번써보고싶은이야기일수록잠깐잠깐상상속의훌륭한소설을구상하는것이너무달콤하다.그에비해실제로글을써나가는것은피곤한작업이다.공상으로‘이런글써보면좋겠지’하는시간의즐거움과실제글쓰는어려움의차이가너무크기에,공상만하게되고실천에옮기기란쉽지않다.

그러다가나는그런거창한소설을쓸수있는시간적여유가영영생기지않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하게되었다.멀리보면그런날이올가능성이야있기는있을것이다.그러나과연그때가지금보다훨씬더소설을잘쓸수있는시기일까?그역시의심스러운문제다.

필생의과업,꼭써보고싶은소설일수록,너무꿈만꾸지말고당장한번써보는편이오히려낫지않을까?그게답이아닌가싶었다.고민해볼수록그게맞는것같았다.작가생활을몇년하는동안나는한가지지혜를얻었다.완벽한글을쓰는것은불가능하다는것이다.적어도내가완벽한글을쓸수는없다.일단그때그때최선을다해서쓰고,좀마음에안들면다음번에는더좋은글을쓸수있도록노력해야한다.완벽의경지를애초에노리면안된다.그렇게생각하면,필생의과업이라고해서꼭엄청난결심을하면서오래오래때를기다리며그런글을쓰게될날을상상만할이유가없다.일단지금한번열심히써보고,나중에시간나면더좋게또써보면될일이다.

나에게도이렇게오랜시간마음에품고있었던‘언젠가한번꼭써보고싶은이야기’가몇가지있었다.그중하나는해적모험담이었다.특히나는한국의신라시대를배경으로한해적모험담을쓰면개성이있을거라는공상을오랫동안해왔다.결국나는해적소설을몇편썼는데,단편으로,장편으로,인터넷오디오소설로세가지정도를완성했다.모두반응은나쁘지않았고,몇몇대목은내가보기에도무척마음에들었다.

다른하나는바로1940년대흑백누아르영화분위기를담아낸소설을써보자는생각이었다.1940년대,1950년대에나온옛날흑백영화중에범죄를다룬이야기들을보면그시기에유행했던탐정이주인공으로나오는것들이여럿있다.특히하드보일드탐정이라고하는,도시의뒷골목을쓸쓸히헤매다가가끔범죄자들과껄렁한싸움에엮이기도하는데,그런싸움에서도두려움보다는피곤함을먼저느끼는탐정들이나오는이야기다.이런영화에서는고독하고과묵한탐정이나오기마련이지만,그런사람이또이상한비유법으로가득한독백,내레이션을읊조리는장면을무척많이보여준다.나는이점이또굉장히운치있다고생각했다.어두운도시의밤거리풍경이대조가강한흑백화면으로잡혀있고,묘한재즈트럼펫소리가들려오는가운데,탐정역할을맡은주연배우가내레이션으로“내가이도시를사랑하는까닭은사랑에빠진멍청이들이내는우는소리가밤마다노래처럼거리에울려퍼지기때문이다”라고말하는것이깔린다.

나는이런이야기를쓰면서배경을한국으로하여독자에게가깝게와닿을수있도록펼쳐보되,실제이런이야기들이유행했던1940년대라는시대는그대로살리면개성이강한이야기를만들수있지않을까생각했다.1940년대후반,광복후대한민국제1공화국정부가생긴뒤에혼란스러웠던여러가지도시풍경을범죄소설소재와결합하면인상적이면서도진지한생각을같이잘담아낼수있을것같았다.이런구상을나는몇년동안이나마음속에만품고있었을까?몇년이나실제로글쓰는것을미뤄왔을까?

다행히실행에옮길기회가그리늦지않게찾아왔다.2015년에『미스테리아』라는미스터리전문잡지가창간되면서,나에게소설원고를청탁해온것이다.나는어떤추리소설을쓸까,생각해보다가이때다싶었다.더는미루지않고1940년대대한민국을배경으로하는옛날흑백영화시대의필름누아르,하드보일드탐정이야기라는구성을실행에옮기기로했다.그렇게해서처음쓴추리소설이『미스테리아』2호에실린「범인이탐정을수사하다」라는단편이다.그것이인연이되어나는2호이후로,소설,기획기사,서평,옛날실화사건에관한이야기등등지금까지한호도빼놓지않고『미스테리아』에꾸준히글을기고하고있다.

나는흔히SF작가로소개되는편이고,나역시SF단편,장편을가장많이썼다고생각한다.그러나정작잡지,문예지지면에청탁을받고실린소설중에서는이상하게다른어떤장르보다추리소설을쓴것이가장많다.나자신도이상할정도다.그러나어릴적부터추리소설을좋아했고,지금도추리를다룬영화를즐겨보는지라,돌아보면뿌듯하기도하다.그리고바로이책『사설탐정사의밤』이잡지에실렸던내추리소설단편을전부모아놓은것이다.필생의과업으로마음속에품고있는커다란꿈이있는데,거기에한작가가어떻게현실속에서조금씩도전해보았는지,그애쓴기록이남아있는책이라고볼수도있겠다.

유일하게빠져있는추리단편은1940년대대한민국이배경인탐정소설이아니라현대를배경으로쓴,탐정이나오지않는소설한편이다.이이야기는언젠가또비슷한소설끼리묶어낼기회가있을때다시책으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2023년아산에서
곽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