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없다 - 대산세계문학총서 183

왕은 없다 - 대산세계문학총서 183

$18.00
Description
“망할 놈의 인생이지만 기막히게 아름답네요”
베트남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
짧은 문장에 담은 절제된 표현과 대담한 묘사
근대적 개인에 천착한 불온하고 도전적인 작품들

20세기 베트남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의 소설집 『왕은 없다Không có vua』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83번으로 출간되었다. 『왕은 없다』는 베트남 전후 문학을 대표하며 개혁 ㆍ 개방 시대의 베트남 문학을 견인한 작가로 손꼽히는 응우옌후이티엡의 단편소설 15편을 모은 것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집이다.
돈 잘 버는 가장이지만 밥 먹듯이 사람들과 다투고 며느리를 훔쳐보는 끼엔 영감(「왕은 없다」), 예편 후 돌아온 집에서 목격한 비인간성에 무력감을 느끼는 퇴역 장군(「퇴역 장군」), 원숭이 사냥에 나섰다가 암컷 원숭이의 집요한 추격에 쫓기며 인간의 이중성에 시달리는 노인(「숲속의 소금」) 등. 전쟁과 민족 같은 거대 담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벗어나 마침내 발현된 응우옌후이티엡의 소설 속 ‘개인들’은 급변하는 세상을 방황하며 욕망, 고독, 권태, 부조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어부, 농사꾼, 소수민족, 군인, 거지, 사냥꾼, 유랑인, 벌목꾼, 교사, 시인, 똥 시장 주인 등, 작가는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 양면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잃어버린 개인과 인간성 회복의 시작을 보여준다.

“응우옌후이티엡의 「퇴역 장군」을 얻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을 모조리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_응우옌카이(호찌민상, 동남아문학상 수상 작가)
저자

응우옌후이티엡

베트남하노이의타인찌현에서태어났다.출생직후프랑스식민군대의폭격을피해피란길에올라열살무렵까지어머니,외조부와함께북부평야지대의농촌마을을유랑하며살았다.외조부에게학문과시를배웠고,수년간천주교마을에서지내며천주교교리와성경을공부했다.1970년에하노이사범대학교역사학과를졸업하고하노이북서쪽산간지역에서교사생활을했다.1980년이후부터교육양성부와지도국의지도측량기술회사에서근무했으며,하노이에서식당을운영하기도했다.

1986년서른여섯의늦은나이에첫단편을발표했고한해뒤인1987년에「퇴역장군T??ngv?h?u」을발표하면서평단의주목을받으며이른바‘응우옌후이티엡현상’을일으켰다.‘베트남단편소설의왕’이라는별칭답게50여편의단편소설을발표하여큰성공을거두고,해외에서도좋은반응을얻어프랑스의‘예술문화훈장’(2007),이탈리아의‘노니노문학상’(2008)을받았다.2021년3월,뇌졸중으로투병하던중에작고했다.2022년‘베트남문학예술분야국가상’과‘하노이작가협회평생문학공로상’을수상했다.

목차

흘러라강물아
왕은없다
퇴역장군

숲속의소금
강건너기
수신의딸
벌목꾼들
농촌의교훈들
후어땃의바람
도시의전설
핏방울
사는건참쉽지
몽씨이야기
우리호앗삼촌

옮긴이해설·왕이없는땅에서인간을돌아본작가응우옌후이티엡
작가연보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불온한문학으로시대의요구에부응한작가,응우옌후이티엡

“1986년에문학예술분야의개혁개방정책이시행된후새로운작가들이다수등장하여독창적인작품들을속속발표했지만,그들중문학적완성을이룬걸작이라고평가받을만한작품은응우옌후이티엡의작품이유일하다.”_라응우옌(문학평론가)

응우옌후이티엡은기나긴사회적암흑기에억압되어온개인의모습을가감없이묘사하면서제도권이아니라시대에부응한‘불온한문학’을선보였다.등단다음해인1987년에발표한「퇴역장군」은민족해방전쟁의주역이었던한장군이퇴역후시장경제사회로돌아와목격하게되는비인간성과그속에서견디지못하고결국전장으로되돌아간다는내용을담은작품으로,‘응우옌후이티엡현상’을불러올정도로반향이컸다.표제작인「왕은없다」또한전통적인가족의붕괴와무너져가는가장의권위,인간의도덕적타락을풍자적으로보여준작품으로,여러차례연극으로상연되기도했다.이외에「숲속의소금」은원숭이라는대상을쫓아사냥에나서면서선과악사이를오가는줄타기를계속할수밖에없는주인공의모습을통해인간의이중성과복잡한내면을잘보여주고,「강건너기」는함께나룻배를타고강을건너는승려·연인·모자·골동품상인·교사·시인·도둑등인물각각에대한세밀한묘사를통해인간과사회의부조리를폭로하며,「도시의전설」은복권당첨에집착하다정신병원에갇히게된가난한청년의심리를밀도있게그려내며도시인들의욕망과모순을적나라하게드러낸다.
응우옌후이티엡의이와같은불온하고도전적인면모는사회주의리얼리즘과정치·사상의제약에서벗어나베트남문학이잃어버린개인,붕괴된인간성의회복을향한시작을열어주었다고평가받고있다.

예리한통찰과비판적사유,
짧은문장속절제된표현과대담한묘사

응우옌후이티엡의작품들은짧은문장속에절제된표현과대담한묘사가돋보이며,이야기속배경과등장인물및소재가무척흥미롭고다양하다.농촌·산간·도시를가리지않는작품속배경과어부·농사꾼·소수민족·군인·거지·사냥꾼·유랑인·벌목꾼·교사·시인에똥시장주인까지다양한인물군상을등장시키는한편,민간신앙·불교·유교·천주교를넘나드는종교와관련한이야기,베트남의전통풍습·문화·역사등이어우러지는이야기,작가의의도를함축적으로전달하는짧은시등,작가는다채로운‘개인’을문학속에발현하면서독자들이함께사유할수있도록유도한다.
사람이되고자했으나끝내사람이되지못한남자의짧은생을그린「꾼」,늘‘사는건참쉽다’고말하던교육시찰관의녹록지않은사회생활을보여준「사는건참쉽지」는‘사람’의의미와‘사는것’에대한생각을다시한번돌아보게한다.「흘러라강물아」에서는신비한검은물소를찾아나서지만냉소와잔인함만을마주하게되는소년의절망을,「수신의딸」에서는세상을구원할성모와같은존재를찾아길을떠나지만결국사회의모순과암울함을깨달으며길위에서헤매는주인공을통해변화하는세상을표류하는고독한개인의모습을가감없이보여준다.
응우옌후이티엡의작품은이처럼인간이라는보편성에닿아있기때문에베트남을넘어세계여러나라의독자들과소통할수있는힘을지닌다.각작품마다짧은문장속에녹여낸예리한통찰과비판적사유가진한감동과여운을선사할것이다.

책속에서

“내가들고있는이술잔은바로인생입니다.술은달기도하고쓰기도하죠.인생을받아들인다면잔을들어주십시오.망할놈의인생이지만기막히게아름답네요.저기새로태어난아기를위하여,녀석의미래를위하여.”(54쪽)

“저는못생겨서아무도혼인하려고하지않을거예요.게다가남의말도쉽게믿어버리는걸요.”아버지는목이메었다.“얘야,너남의말을쉽게믿는다는게바로살아가는힘이라는걸모른단말이더냐?”그러한것들이아버지가이길로나가서돌아오지않을거라는전조였다는사실을나역시알지못했다.(80쪽)

내가살던시대는힘겹고고통스러운시대였다.전쟁은지나갔고,모두들새삶을건설하기시작했다.오랜상처들은점차아물었고새살이돋아났다.사람들은분주하게일거리를찾았고희망을찾았다.사람들의물결은농촌에서도시로셀수없이많이흘러넘쳤고,‘표산민漂散民’계층을만들어냈다.나는자기운명에대한,그리고몇몇농민의운명에대한불안하고걱정스럽거나또는가장궁핍하거나,가장갈망과환상이가득한마음을품고이사람들속에섞여서갔다.저기등뒤에남겨두고온것들은무슨가치가있을까?말없는고향의강,마을입구에늘어선대나무들,이끼덮인홍토조각상그리고어머니의그림자가오후의햇살속에쓰러질듯비스듬히찍혀있었다.제기랄!나는추억에대고토악질을했다.그것은재물을낳지도못했고,나에게아무미소도가져다주지못했다.그곳에는희망이없었다.(177~78쪽)

나는숲속으로들어가씻을물을찾았다.샘은말라있었다.돌틈에서흰나비의날개가어릿하게흩날렸다.샘을따라거꾸로계속올라가다겨우몸을씻을수있는물구덩이를찾았다.나는벌거벗은채물소가몸을담그는것처럼물속에몸을담갔다.물밑바닥에썩은잎사귀들이많아서물빛이짙푸른색이었고약간끈적거렸다.나는아플까,열병에걸릴까두려워오래씻을수없었다.스물한살이되어죽는다면정말인생이아까웠다.살아야만했다.비록인생이수천번비참하고,추악할뿐아니라고달픔이가득하다할지라도.(213쪽)

“[……]배운자들의어리석음은평범한사람들의어리석음보다만배는더역겹죠.”내가물었다.“왜요?”찌에우씨가말했다.“왜냐하면그것들은변장을하기때문이에요.그것들은양심,도덕,미학,사회질서의이름을취하죠.심지어는민족의이름까지취하기도해요.[……]”(252쪽)

가난한이들이먼저죽고나서부자들이죽었다.착한이들이먼저죽고나서비열한자들의차례가왔다.반달동안후어땃마을에서서른명이죽어나갔다.사람들은서둘러구덩이를파고사람을묻은후그위에석회가루를뿌렸다.저승사자가황토빛달무리아래에서쏘애춤잔치를여는밤이찾아왔다.후어땃사람들은강한술과잘게찧은생강에마늘과고추를섞은것으로콜레라에저항했다.사람들은엄마젖을물고있는어린아이들의입에그물을몇그릇씩이나들이부었다.아이들은간과창자가긁히고찢어지는고통에울부짖었다.무슨상관이란말인가,어쨌든삶을살다보면간장이야여러번긁히고찢어지지않던가.(313쪽)

“그날도오늘처럼월초였어요.초승달이마치참담한그림처럼공중에차갑게매달려있었죠.지금아름다웠겠다고하신거예요?왜그렇게헛된아름다움과거짓풍경만생각하세요?선생님은높은분이시라충분히먹고잘입는데익숙해서그런식의감정이생겨나는거예요.가난한사람들에게는요,아름다움이란번식같은거예요.달은반드시둥글어야하고나무에는열매가가득해야하고주머니에는돈이두둑해야하는거죠.그러니까뭐든지이맥주잔처럼꽉차야하는거라고요.”(43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