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 - 문학과지성 시인선 584

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 - 문학과지성 시인선 584

$12.00
Description
“무게들은 흩어진다 단어가 없는 아침으로”
고요의 틈새로 쏟아지는 꿈의 감각, 심지아 두번째 시집 출간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심지아 시인의 두번째 시집 『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우울하면서도 따뜻한 독을 품고 있”(이장욱)다는 평을 받으며 꿈결 같은 언어 겹겹을 직조해나가는 시 세계를 펼쳐 보였던 『로라와 로라』(민음사, 2018) 이후 5년 만이다. 총 7부로 구성된 시 62편과 함께 시집을 완성하는 산문 1편을 엮었다.
“꿈의 자동기술법을 내세웠던 초현질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자세로 잠든 사람”(김행숙)이 쓴 이야기가 전작의 주축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현실과 몽중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한층 심화시킨 것은 물론 이미지를 좀더 선명하게 빚으며 심지아식 시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냈다. 0부에서 시작해 0부로 끝나는, 남은 다섯 개의 부가 0에 둘러싸여 마치 영원의 궤도를 맴도는 듯한 구성처럼 끝없이 펼쳐진 아름답고 모호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지루함도 없이/겨울이 열어놓은 문장”들 사이로 “설탕 가루처럼 졸음이 내”리는, 신발에 자꾸만 눈이 쌓이는 곳이 배경이다.
저자

심지아

시인심지아는2010년『세계의문학』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로라와로라』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0부
직물의연결

1부
가연성
바닷가
헤엄
상자들
네가밤을사랑하듯이
혼자쓰는일기
눈사람
삽깨뜨리기
악몽일기

2부
표정의고양이
신발의눈을꼭털어주세요
책장넘기기
생활의다짐
체조를저장한단어
여름
빈공간
토마토는토마토의열매다
바닷가
잉여
토르소

3부
읽기의회복
여덟의젤리
모국어는끝나지않는다
눈보라
잠의등고선
눈사람
두부
장소의어림
플라나리아
손잡이가없는장면들
겨울과겨울아닌일
밤과비
해부학교실
겨울의빛

4부
겨울에쓰는시
쇄빙선
찻잔하나를깨뜨렸다
불이꺼지는순간
바다
프랑켄슈타인
토르소
복도식아파트
네게줄의복처럼이야기를뜨개질하며

5부
시소
볕과부스러기
빗자루의기도
가을은
지평선그리기
이야기
나의엎드린한나
레몬
싸움도없고고양이도없지
눈사람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
우연한문장
공원의배치
유리창깨뜨리기
사물들은시간을소중히하지

0부
가연성
암전
주소가적혀있다

산문
나는단한번도한눈에

출판사 서평

“여름의과육처럼부드러운모음들”
계절의정점에서한층더깊어지는감각의세계

『신발의눈을꼭털어주세요』의시편곳곳에는다양한계절들이등장한다.“겨울을들여다보며여름을씻”(「가연성」)기도하고상자속에“온갖크기의겨울이”담기는가하면“상자를따라다른겨울이이어”(「상자들」)지기도한다.“해변에는/여름을닮은문장들”(「바닷가」)이놓여있으며,골목에내리는“폭설의감정”(「네가밤을사랑하듯이」)으로시작詩作되고“지루함도없이/겨울이열어놓은문장”으로끝맺는다.한계절의중심에서도물론이거니와계절이다른계절로제몸을넘겨주는때에도시인의시는피어난다.
계절의풍경들은주위의물건이나현상을잠의세계로유인하거나꿈바깥으로벗어나도록돕는다.「여름」에는“물을오래바라보”다기척없는“공간의죽음에실”리기도하고,토마토가익어가는것을보고“화덕에서는여름이구워”지는현상을발견하기도하며,「잉여」라는제목처럼쓰고남은모든것이갖는“이상한해방감”은“수분과당분으로기록되는/여름의맛”으로재현되기도한다.“머랭의녹는맛”은“겨울의흰눈속에붉은혀를내미는맛”(「눈사람」)으로조금씩전이되어간다.계절에따라우리몸속에서도조금씩변화가일어나듯이시인이마주친사소한일상은그계절의온도와함께꿈결처럼감각적인모습으로탈바꿈한다.

잠이없는나는/너무졸려서//나는또/잠든다//눈위로쌓이는눈의사태처럼//잠위로덮이는잠의사태처럼//마음이생겨나/발이녹으면//나를깨우러와도된단다
―「눈사람」부분

“슬픔이조금씩사라지는맛”
졸음이꺼낸농담처럼허술한듯견고한작은기적

괄호의안으로도괄호의밖으로도그녀의잠은늘더작은조각으로흩어지기를좋아한다.그녀는그것을붙일아교를찾지않는다.그녀는잠의조용한의지가되풀이되는장소다.잠으로부터함부로꺼내지는장소다.함부로꺼내져그녀는그녀의조용한삶을아교없이이어간다.
―산문「나는단한번도한눈에」에서

“잎과줄기와뿌리의구별이없는이야기들”(「악몽일기」)라는시구가암시하듯심지아의시는언뜻읽으면진짜속내가무엇인지가늠하기어려운장치들로가득하다.「볕과부스러기」에서“침대는있지만잠은없”고“동사는있지만꼼짝없”는상태에놓이는가하면「혼자쓰는일기」는“우리는일곱사람이고여섯은나뭇가지다하나는수수께끼”라는모호한명제로출발한다.이불투명해보이는시들은자꾸곱씹을수록선명해질뿐,시인은“오늘본것들을오늘다말하지는않”(「주소가적혀있다」)는다.이따금꿈결같은상상력의저변에서“하나가충분히존재한다는건뭘까”와같은의문이떠오르더라도“그것은고통이결여된문장인가고통을포함한문장인가고통이길들여진문장인가”(「잉여」)와같이되묻을뿐이다.
「네게줄의복처럼이야기를뜨개질하며」에서의문을구체화하는집요한질문들은계속된다.“밤에게도겉이라는것이안이라는것이있을까[……]겉도안도밤의것이아니라면나는밤의어디를걷고걷고걷다가다걷지도못하고돌아오게되는것일까”.그러다이내“꿈밖으로,그것은어쩐지추방의감정을일으키”더니“멸종위기의잠을보호”하는것을생각할정도로‘밤’은“그모든틈새속으로”용해되어버린다.시인은“아름다운저울처럼흔들리고있는우리의고독을열어보”(「해부학교실」)도록슬며시손을건넬뿐어떠한규범도강요도없다.그러므로우리는“눈송이들의순간은겨울을함부로헤집지도겨울을비좁게파고들지도않”듯이,그저“눈송이들을따라나의질량이흩어”지는순간을받아들이면된다.그가목격한어떤날의현상에대해,꿈을꾸듯유영하기좋은심지아의세계에서.

시인의말

집으로돌아가
불을밝혔다

우리가가진것을낭비하리

2023년5월
심지아

책속에서

풀밭에앉아
이도저도아닌생물이되어가는일
구름위로엉뚱한말들이발견되다가
그보다는신선한구름을
갓지어허물어지는구름의산책과이별을
나는또다시이상한사람이되고말겠지
―「공원의배치」부분

귤의껍질을벗길때귤은소리낸다
얼마나많은사이를가지고있는지를들으려는것처럼

그곳의사람들은귤을줍지않았다
매달린열매와떨어진열매들로겨울이이어졌다
―「눈사람」부분

슈티젤씨는노트를펼치고그림을그린다슈티젤씨는노트를닫고그림을그린다그가그림을그리기때문에그는노트를지닌다세계가노트를지니기때문에세계는노트속에서그들의알려지지않은삶을이어간다노트는대부분의시간닫혀있다얇고가벼워지니기좋은세계가그의주머니속에닫혀있다
―「싸움도없고고양이도없지」부분

레몬을주워레몬냄새를맡는다레몬이내는냄새가좋아더깊이들이쉰다코에서레몬이자란다면매번향기로운숨일것이다그렇지만코가무겁겠지레몬냄새만을맡는다면세계는레몬한알만큼일까그것은세계를생략하는일이되어버릴까레몬한알을주워냄새를맡는일은향기롭다가무서운것이된다생략된세계를상상하는일은신체를슬프게한다
―「레몬」부분

밖이들어간단어들을떠올려본다창밖을보라창밖을보라흰눈이내린다단어들은창문인가창밖인가창안인가창으로보게되는지금여기,나리고있는지금여기,녹고있는눈송이인가썰매를타는어린애들은해가는줄도모르고,손발이얼어붙는줄도모르고,밖은들려오는노래인가,그노래는아름다운가
―「내게줄의복처럼이야기기를뜨개질하며」부분

천사는5월의나뭇가지를흔들고있다.아직닿지않은시간을흔들고있다.천사가차려놓은음식은벌써식었고크림의테두리는말라간다.천사의접시위로지나간다.하루의낮과밤이.하루보다도많거나적은그림자의세계들이.천사의접시위로지나간다.낮과밤을적어가는가느다란글씨들이.덤불사이로들어가그의작고신비한세계에대하여호두알보다도작은머리로짓는새의갸웃함이.
―산문「나는단한번도한눈에」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