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모던의 건축 - 채석장 시리즈

오프모던의 건축 - 채석장 시리즈

$14.00
Description
“결코 존재한 적 없는, 하지만 존재할 수도 있었을”
모더니티의 추론적 역사 다시 쓰기

“타틀린의 기념탑은 연극적 파편으로서, 종이 건축의 미완성 모델로서,
미래의 폐허를 닮은 유토피아적 비계로서 태어났다.”
2015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 출신의 미국 인문학자이자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인 스베틀라나 보임의 에세이 『오프모던의 건축』이 출간되었다. 보임은 좁은 학제의 경계를 넘어 예술과 건축, 문학과 철학, 그리고 기술의 상호 교차를 흥미롭게 탐색하는 저술과 창작을 통해 지성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그녀는 모더니티, 자유, 유토피아, 기억, 노스탤지어, 아방가르드, 키치, 낯설게하기, 폐허 등의 토픽을 넘나들며 매력적인 개념들을 창안해왔는데, 특히 ‘성찰적 노스탤지어’와 ‘복원적 노스탤지어’를 구분하는 그녀의 저명한 노스탤지어 유형론은 연구자들과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며 우리 시대를 고찰하기 위한 흥미로운 해석적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이 책 『오프모던의 건축』에서 다루고 있는 “오프모던”은 보임의 지적 여정의 마지막 시기를 대표하는 탐구 주제 중 하나로, 비판적 근대성의 옆 골목을 탐색하고 그것의 측면적 잠재성들을 추적하기 위한 기획을 가리키는 보임의 신조어다. 그녀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중 하나인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타틀린 탑)의 역사와 후생을 추적하는데, 실현된 적 없는 현대 건축의 추론적 역사를 상상해봄으로써 근대성에 관한 대안적 계보학, 이른바 “제3의 길의 지성사”를 새롭게 써나간다.
저자

스베틀라나보임

1959년구소련의레닌그라드(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태어나게르첸사범대학을다니던중21세에미국으로망명했다.보스턴대학에서스페인문학을전공하여석사학위를,하버드대학에서비교문학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하버드대학교수로재직하던중암에걸려2015년56세의나이로사망했다.보임은30여년간의저술과창작을통해21세기지성사에적지않은족적을남겼다.특히2001년에출간된책『노스탤지어의미래』는학자들이‘기억’을바라보는방식을결정적으로바꿔놓았으며,그녀의이름을영원히‘노스탤지어’개념과연결시킨다.그녀는또한사망하기직전까지근대성에대한대안적계보학을탐사하는“오프모던”이라는기획에매달렸는데,끝내건설되지못한러시아아방가르드의기념탑<제3인터내셔널기념비>의역사와후생을탐사하는짧은에세이『오프모던의건축』에서보임이이제껏발전시켜온탐색의줄기들이오프모던이라는개념을통해통합되어가는과정을엿볼수있다.그밖의주요저서로박사학위논문을책으로출간한『인용부호속의죽음:현대시인의문화적신화들』(1991),『공통의장소:러시아,일상의신화들』(1994),『노스탤지어의미래』(2001),『또다른자유:이념의대안적역사』(2010)등이있다.

목차

모험의건축과오프모던
타틀린의테크네와혁명적폐허
낯설게하기의건축과자유의커브
서스펜션건축과프로젝트시학
설치건축과현대의폐허애호주의

[오프모던선언문]

도판
옮긴이해제|김수환

출판사 서평

상실된기회들의유령과도같은
러시아아방가르드의아이콘타틀린의기념탑을경유한
근대성에관한“제3의길”의지성사

“제3인터내셔널에바치는기념비는극단적인반-기념비가되어야만했다.건축혁명의선언문으로서타틀린의탑은“부르주아적인”에펠탑과미국의자유의여신상양자모두에도전했다.철과유리로만들어진그탑은회전하는세가지의유리몸체,즉정육면체와피라미드그리고원기둥으로구성되었다.세계인민위원회가자리할정육면체는일년에한번,제3인터내셔널수뇌부와행정위원회를위한피라미드는한달에한번,정보및선전본부가될원기둥은매일한차례씩회전하게될것이다.라디오전파가탑을하늘로연장한다면,3층에자리한타이포그래피작업실은그날의모토를구름을향해투사한다.실제로탑은“혁명”이라는단어에포함된수많은명시적·함축적의미들을구현하고있었다.”(20)

이책은끝내건설되지못한러시아아방가르드의아이콘,제3인터내셔널(1919년모스크바에서창립된공산주의인터내셔널)을기념하기위해‘모형’으로만만들어진바있는블라디미르타틀린의전설적인기념탑(1919~25년)의형상을현재의상트페테르부르크네바강변에투사해보여주는한영화의스틸이미지로부터출발한다.스베틀라나보임은이신화적건축물의건축적·철학적인변모과정을탐구해나가겠다고말하며,타틀린의탑이근대성에관한“제3의길”의지성사,즉자신의대안적계보학을위한초석이될것이라고주장한다.그리고이런대안적계보학에“오프모던”이라는명칭을붙인다.

“포스트”“네오”“아방”“트랜스”같은,전진하거나너머로나아가겠다고선언하면서도결국엔필사적으로“안”에머물러있고자골몰하는온갖포스트-비판의접두어들대신,보임은“빗겨나off”서서,“무대뒤편off-stage”에서,“엇박자로off-beat”바라보고생각할수있는“off”라는단어를택한다.그러면서진보의직선로가아니라옆길이나뒷길을탐색하는오프모던,근대적조건에대한비판적성찰의전통이실제로존재한다고이야기한다.그리고그러한예를설명하기위해끝내건설되지못한아방가르드건축물타틀린탑을소환한다.왜타틀린의탑인가?그보다도왜‘건축’인가?

사유의건립으로표상되는철학은체계와구조의상징이라할건축에특권적인지위를부여해왔으며,건축적은유는서구철학의전역사를압도해온수사법이라할수있다.하지만보임이건축에관심을갖는것은체계를세우는일보다는그것이“세계에질감을부여하는포에시스의형식”(10)이될잠재력을갖고있기때문이다.보임은20세기의직선적내러티브를농락하면서“제3의길”을꿈꿔왔던지크프리트크라카우어,발터벤야민,한나아렌트,게오르크짐멜,프란츠카프카와같은저자들의근대성에관한철학적담론속에건축적형상이스며들어있다고지적한다.보임은짐멜의“모험의현상학”개념에기대어오프모던의건축을“모험의건축”으로규정하는데,여기서타틀린의기념비는“건설의기술적가능성이아니라[…]가능성의건축이라불릴법한새로운차원을여는하나의모델이자기획”(66)을대변한다.

모험의건축과오프모던
“이것을폐허의경관으로간주할지아니면
유토피아적건설의현장으로간주할지는우리에게달렸다.”

타틀린탑은처음부터부동의건물이아닌일종의움직이는기계로설계되었다.탑을구성하는내부의세몸체는각기다른속도로돌아가게되어있었고,이는천체궤도의운행,즉반복과회전을가리키는혁명의어원적의미를구체화한것이다.기울어진구조와나선형태(“최적의마르크스-헤겔적형태”)로무한히열린상부는건물의몸체를중력을거슬러대지로부터밀어올리는역동적인에너지를낳는다.타틀린자신의말에따르자면“순전한예술적인형식을공리적인목적들과결합”시킨결과물,즉창조자의의도에따르면유용하지만실제로는거의기능하지못하는이탑의영구한비완결성은그것에부여된유토피아적성격의이면처럼보인다.타틀린의슬로건인‘삶속으로들어간예술’이나‘기술속으로들어간예술’은결코“삶이나기술을위해봉사하는예술이나정치적·사회적혁명에봉사하는삶을제안하는것”이아니었다.그것은“종이건축의미완성모델로서,미래의폐허를닮은유토피아적비계로서태어났다.”(31)

타틀린의기념탑은또한복원적노스탤지어(상실된대상의초역사적인재건을시도하면서집단적·민족적성격을띠는정치적통일체에집착)와성찰적노스탤지어(상실의근본적인회복불가능성과아이러니적인거리를인정하면서역사적경험의개인적차원을지향,창조적감정이될수있다)라는보임의저명한노스탤지어유형학을보여주는실례로서읽을수있다.전자가제3인터내셔널의꿈을대체할수있는궁극의건물인소비에트궁전건설프로젝트로이어졌다면,후자는종이건축과개념주의설치라는,20세기중반이후소비에트예술사의독특한흐름속에서끝없이환기되어재작동하는불멸의유령같은두번째실존을얻게되었다.

보임은콘스탄틴보임에서시작해레오니드소코프,유리아바쿠모프에이르기까지이제는폐허가된유토피아와관계하면서1920년대의유토피아의꿈을기억하고재활용하는소비에트비순응주의예술이라는일련의개념적시도를따라가는데,특히올해5월말에작고한저명한소비에트출신망명예술가일리야카바코프의“총체적설치”는오프모던을대변하는주역들중하나로등장한다.카바코프의작업은“모든종류의유토피아적체계의바탕에놓인이런저런틈새와절충,당혹과검은구멍에대한신중한환기가된다.[…]카바코프는근대유토피아의기원으로소급해들어가두가지모순적인인간적충동을드러낸다.모종의집단적인동화속에서일상을초월하려는열망과,기억을보존한채로살아남음으로써가장살아가기힘든폐허속에거주하려는열망.”(104~105)미국의큐레이터로버트스토의말에따르면그것은“환상의상실과그것을발명하려는억제할수없는욕구사이의긴장이며,이는20세기의꽤훌륭한요약”이다.카바코프는망각/폐기대복원/건설이라는이원적선택지사이에서제3의길을내고자한다.보임은이러한오프모던의시선이인간적시간과역사적시간그리고자연적시간사이의양가적관계와부조화를인정한다고말한다.그것은“유토피아적프로젝트들을변증법적인폐허로서프레이밍할수있게허용한다.”

보임은책의말미에서‘전문적사유’와체계성과일관성의요구가아닌경외감에의해인도되는‘열정적사유’를구분할것을제안했던한나아렌트의말을인용하면서오프모던을최종적으로정의한다.“오프모던의사유는이론과실천,상상적건축과물리적경험사이의이중적운동에관여하는열정적사유의한형식이다.”

스베틀라나보임의지적여정

스베틀라나보임은2019년에번역된『공통의장소』와두편의글을통해국내에소개되었지만,그녀의저작전반을아우르는체계적인소개는여전히미흡한형편이다.구소련에서미국으로건너간망명자-이방인신분에더해소비에트의해체로고향을영원히상실한경험을통해,어찌보면모든것을낯설게볼수밖에없는조건에처해있었던보임은상투적인개념들에새로운조명을비추어(그녀의이름스베틀라나는‘빛’이라는뜻이다)새롭게보이도록만드는비상한재능을지닌연구자였다.특히2001년도에출간된책『노스탤지어의미래』는우리가‘기억’을바라보는방식을결정적으로바꿔놓았으며,그녀의이름을영원히‘노스탤지어’개념과연결시킨바있다.한나아렌트,빅토르시클롭스키,게오르크짐멜등을동원해‘자유’를철학적이념도정치적권리도아닌제3의방식으로이론화한시도역시자유에새로운의미를기입시키며학문적·예술적으로흥미로운참조점으로활용되고있다.

2015년보임의때이른사망으로인해오프모던을둘러싼말년의작업들은온전한결실을맺지못했다.하지만보임이지금까지탐색해온주제들과긴밀하게연결되어있는이개념은우리시대에관한새로운사유와해석과연구를자극할무한한가능성을품고있다.이책을옮긴한국외국어대학교러시아학과교수김수환은해제에서우리시대의정초적사상가중한명인보임의위상을제대로음미할수있도록하기위해보임의학문작업전체를상세하게살펴보고,특히오프모던개념을둘러싼담론적지형을점검,그녀의지적여정에서이기획이차지하고있는각별한의미를보여준다.또한보임이오프모던의개념을적용하며집중적으로분석하는있는네명의인물과관련해이론적배경및선행연구들을소개함으로써책의풍부한독해에도움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