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굿

$16.00
Description
“소나기라도 내리려는 것인가, 바람기마저 가을하다”
생生의 병리를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한국 소설의 정수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적 작가 전상국 열두번째 소설집 출간
사실 소설 쓰기야말로 삶의 방식 중 가장 야비하고 던적스러운 광기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불쑥 치밀 때가 많았다. 그러할 때 나는 아무런 미련이 없이 문학을 버리곤 했다. [……] 그러나 손가락을 자른 도박꾼이 다시 도박장으로 돌아오듯 나는 어느새 글쓰기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한국일보』 2002년 7월 25일 자

전상국의 열두번째 소설집 『굿』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는 1963년 등단한 그가 작가 활동을 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전상국은 『우상의 눈물』 『아베의 가족』 『우리들의 날개』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문단 안팎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명실상부 한국 대표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신작은 2011년 『남이섬』 이후 소설집으로는 12년 만의 출간인 만큼 의미가 깊다. 초반에 실린 세 단편소설 「춘천 아리랑」 「봄봄하다」 「가을하다」는 김유정과 황순원을 기리며 쓴 오마주 작품이다. 이 천진하고 고즈넉한 이야기 뒤편에는 전쟁 이후 남겨진 상처, 부재의 자리가 주는 내면의 고통,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서사들이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에 배치된 중단편작 「굿」은 ‘한국전쟁의 악령’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며 전쟁의 뼈아픈 기억은 곧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무게감 있는 소재들을 긴장감 넘치게 풀어내며 해원(解冤)의 굿판으로 인도한다.
저자

전상국

1940년강원도홍천에서태어나춘천고,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1963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소설「동행」당선으로등단했다.소설집『바람난마을』,『하늘아래그자리』,『아베의가족』,『우상의눈물』,『우리들의날개』,『외등』,『형벌의집』,『지빠귀둥지속의뻐꾸기』,『사이코』,『온생애의한순간』,『남이섬』과장편소설『늪에서는바람이』,『불타는산』,...

목차

춘천아리랑―동백꽃오마주
봄봄하다―봄·봄오마주
가을하다―소나기오마주
오래된나무는나무가아니다
집을떠나집에가다
어디에도없고어딘가에있는
저녁노을
조롱골우리집여인들
굿

해설|서스펜스의해원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비극이라는현실의안팎으로펼쳐지는삶의끝과시작

물음과여운에입각한부재의형식은결코간명한결론이나의미화로수렴되지아니하는문제를독자들로하여금온몸으로끌어안고고민하게만드는위력을지녔다.그렇게전상국소설이도입하고제기하는문제의식은결코끝나지않는결정불가능성에한없이계류되고그리하여현재에도여전히유효한것이된다.(조형래문학평론가)

표제작「굿」은“죽은사람이살아왔다”는문장으로시작된다.“자신이분명오래전둔짓골에서마을사람들의쇠스랑에찔려죽은”“전부귀리인민위원회위원장”최용호라고주장하는인물의정체는무엇일까.마을사람들은그를‘한청단’출신이라며피한다.부귀리에서자라부귀학교교장이된‘나’는그의이름을듣는순간유년시절기억속‘정대수’가떠오른다.전쟁중비교적고립되어있던부귀리산속에서국군통신병이었던그와모스부호놀이를했던장면이었다.‘나’는그가인민군에게잡혀가는악몽에매일같이시달리고있었다.마을사람들은‘정대수’가납북됐으리라여겼지만자칭‘최종호’는그가죽었다고주장한다.당시인민위원회였던자신때문에그원혼이“구천에서떠돌았다”고덧붙인다.이후동생‘정배’와의통화에서아무리세상이바뀌어국정원이간첩을잡아가지않는시대라해도어떻게마을에빨갱이가나타날수있느냐는우문에‘나’는현답을내놓는다.“이제전쟁이끝날때도됐다,그런거아닐까?”

이작품은좌나우로나뉘는정치적이념없이,그저남과북으로쪼개져서로에게총구를겨누고억울하게죽어간피해자들의울분과회환을감싸안는다.부귀리사람들의아픈기억을억지로꺼내러온듯한수상한인물최용호도“복수를위해귀향한것이아니다”.“모두가피해자일수밖에없었던시대에관한해원(解)의제의를주관하”(조형래문학평론가)러온것이다.결국최용호의증언을토대로전쟁당시돌아가신선친들의묘를이장하는행사가거행된다.이때치러지는의식이‘굿’이다.‘굿’은또한땅이움푹하게파인구덩이,즉묫자리와영어형용사‘good’을함축하고있다.이세가지의미를정교하게녹여낸이작품을통해우리가마주하게될감정은이것이다.“통일이된거가터.[……]아이고됴타.”

부재의흔적이남긴상처와고통을
예측바깥으로전복시키는힘

아무튼난춘배걔상판때기만쳐다봐두되우좋다.근데증말이상한건춘배만보면그리절로흥이솟으면서도괜히맘한구석이짠하다는거다.그건울아부지가나시집갈때됐단얘길할때마다「춘천아리랑」그서러운한대목을흥얼거리게되는거와도같다.(「춘천아리랑―「동백꽃」오마주」」)

한편이책에서작가는김유정과황순원의대표작인「동백꽃」「봄봄」「소나기」결말이후를이어쓰며“각각의소설이남기고있는부재의자국에관한경외어린천착의방식”(조형래문학평론가)을보여준다.「춘천아리랑―「동백꽃」오마주」는‘춘배’앞에서보란듯이닭싸움을붙이던‘점순’의시점으로그려진다.“노란동백꽃덤불에서[……]울어머니가날불렀으니망정이지하마터면춘배하고밸맞췄을”것이라며「동백꽃」이후를자연스럽게그려나간다.그러나‘점순’은부모님에의해곧시집을가야하고,작심한듯춘배에게마지막으로마음을표한다.“우리도망갈래?”「봄봄하다―「봄·봄」오마주」에서는원작속점순네데릴사위인‘나’에게‘칠보’라는이름이생긴다.데릴사위라며머슴처럼부리기만하고정작점순과혼사시킬생각은없는아버지처럼,점순도자꾸만“야학당선상님”한테눈길이간다.「가을하다―「소나기」오마주」에서는중학생이된‘현수’가개울가에서조약돌로물수제비를뜨며“5학년단발머리소녀”를여전히그리워하는마음을담았다.죽음이후에도늘현수의곁을따르는소녀와나누는대화문은원작의여운을그대로이어냈다.

「오래된나무는나무가아니다」부터이어지는작품들은부재에서오는상처와사회부조리,전쟁이후의삶에대한작가의시선이담겨있다.「오래된나무는나무가아니다」의주인공‘나’는회사에서주변인을자처하다어머니의죽음으로모든것을정리하고떠나고자한다.극심한멀미탓에탈것없이걷고또걷다산속에당도한다.그곳에서만난오래된굴참나무를바라보는것은또다른부재의대상인아버지를떠오르게한다.「집을떠나집에가다」의‘나’는‘유인수’가가출한것을의아하게생각하지만부인은“집떠난사람이에요!”라고말할뿐이다.‘나’는그부재의흔적을찾아다닌다.산속에서여러사람의환시를만나이야기를나누고,비로소‘유인수’를매개로좇던문제를결론짓는다.조형래문학평론가의말처럼“떠남에대해의미부여하고달관의매듭을짓는”일일터이다.「저녁노을」에서는전쟁으로인해가족은물론팔까지잃어학교폭력에시달리던동창이노인이된후동창회에등장한다.「조롱골우리집여인들」은강원도산골에여성들이모여사는“조롱골우리집”이라는공간에서출발한다.‘로즈박’은‘유선달’이라는기자가과거자신의첫사랑이다시나타난것이라믿고“조롱골우리집”의취잿거리를제공한다.하지만자극적인오보를쓰고도당당한‘유선달’을보며여인들은시원하게가래침을뱉어버린다.
각작품속인물들은오래전의상처를마치어제의일처럼또렷하게기억한다.그들의이야기속에서기억해야하는진실과감정들을외면하지않고끝까지고민해봐야한다는전언이묵직하게다가온다.기억하는한치유할수있는희망이있으므로,전상국이그린『굿』의울림은지금더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