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허밍을 한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587

미래는 허밍을 한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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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상상할 수 있다면 모두 가능한 이야기”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서머-핑크의 미래

‘밤팔러’들이여, ‘허밍이’들의 행렬로 오라
죽음에서 건너온 사랑의 얼굴
‘폴짝’ 미래로 향하는 강혜빈 두번째 시집 출간

미래와 시는 닮았다. 종결되지 않는 상태로서, 미완의 상태로서 다만 거기 있다.
-산문 「미래, 가능성, SF, 미완성, 뉴 노멀, 바이러스, 연결과 단절」, 『시 보다 2021』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자 빛과 색감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여온 사진작가 ‘파란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는 문단계의 ‘프로 N잡러’. 그리하여 ‘뉴 노멀이 될 양손잡이’. 강혜빈의 두번째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87번째로 출간되었다. 2020년 첫 시집 『밤의 팔레트』를 펴낸 지 3년 만이다. “속으로 버석버석 우는 토끼”(「하얀 잠」, 『밤의 팔레트』)가 되어 세계의 비밀을 수집하던 시인은 이제 “토끼처럼 가볍게” “폴짝”(「미래 돌연변이」)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로 향한다 “블루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어떤 시절의 기분과 세계”(박상수)를 통과해 산뜻하고 경쾌한 서머-핑크의 미래를 펼쳐 보인다.
대부분 팬데믹 시기에 씌어졌을 시편으로 가득한 이번 시집은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프롬 강혜빈’)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 『밤의 팔레트』는 지난 3년간 10쇄를 거듭하며 일명 ‘밤팔러’라 불리는 팬덤을 만들어냈다. 두터운 호응에 힘입은 첫 시집 이후에도 시인은 여덟 권의 앤솔러지에 참여했고 메일링 서비스 ‘프롬 강혜빈’을 운영했으며, 팀 ‘분리수거’ 활동을 이어왔다. 단절의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노력했던 시인은 이제 “우리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잡은 손은 따뜻하”(「시향기」)다고 말한다. 다채로운 상상력과 함께 재편된 세계를 새로이 감각하는 미래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아니, 자신이 가진 양손을 모두 내밀며 스스로 먼저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표준, ‘뉴 노멀’이 되고자 한다.
저자

강혜빈

저자:강혜빈
시인강혜빈은2016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밤의팔레트』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햇빛생활자
낮의예고편
먼지와질서
이비
모조새
익선동
겨울나기
검은문
희망없는산책
불꺼진집들
참외주스가있는테이블
폴의생활
재구성
숙아,하고부르면
잘모르는호두
다가오는점심
망고와성실
시향기
여름의형식
사과의분위기
내가아는연희
오야소의기쁨

2부비물질실험―사랑발명가
미래는허밍을한다
녹음
눈사람을보면이상해
열과裂果
대공원
프랑스사람수잔
딩동댕지난여름
슈크림토마토
돌아오는우연
줄리아
잔망과무튼
체리와사건
신도시新都市
호두정과正果
퐁피두센터
녹음과미도리
가스등
신비와뼈
리미널스페이스
옥수
슈톨렌

3부뉴노멀
사이퍼텍스트Ciphertext
낙과落果
오늘밤은신비로움이너무없어서하나만만들고싶어요
버추얼스쿨
케이크자르기
옛날사람
딥러닝
늘같음상태
미래돌연변이
지속가능모드토이
이벤트호라이즌
딕테Dictee
대저짭짤이토마토의미래
슈뢰딩거의상자
미래아기얼굴
0.00
데드포인트
멀티버스의지은이
미래에서온편지

해설
미학적현존과감각적계시·박신현

출판사 서평

SF세계를모험하는인류세의선각자
디스토피아시대를준비하는사랑의실험

마지막이겠군요
절벽에서뛰어내리고싶어요
다른사람으로살아보고싶어요

생선파는사람으로
생선아래깔린
얼음가는사람으로
잘못갈린얼음
배달하는사람으로
-「옥수」부분

“옥상에서떨어지기직전에”“다시태어”난(시인의말,『밤의팔레트』)사람은무엇이든될수있다.생선파는사람에서출발한상상은몇차례의연상을거쳐얼음을배달하는사람으로이어진다.사람과사람사이,팔리기위해죽어있는생선과끝내녹아없어질얼음의이미지는‘나-너’사이의공동체감각을‘인간-비인간’을넘어‘물질-비물질’로확장시킨다.화자는잠든낚시꾼주변에서강변을바라보며피자를먹는다.강혜빈의시에서‘물’은어디에나있고어디로든갈수있는사랑의속성을상징한다.그것은때론눈물처럼직접적인형태로드러나고,때론호수나강변처럼하나의풍경으로존재한다.

만약정말로다시태어난다면그는무엇보다비가되고싶어할것같다.“긴비,둥근비,뾰족한비,달아나는비,가로지르는비”,바로“이비를기다렸다”고말하는시인은똑같아보이지만모두다른물방울에고유한정체성을부여한다.이물방울은“지붕이반만달린주차장”에세워진“찌그러진자동차의보닛”(「이비」)위로내려앉는다.파랗고축축한어둠의시간이그에게무엇이든사랑할수있는초능력을준것일까(“무엇이든사랑해버려요/무엇이든지……”,「먼지와질서」).뼈와근육의이음새가헐거워지면비가오는것을미리알아차리듯,그의예고된사랑은가장낮은곳에웅크리고있는존재들에게평등하게내려앉는다.

이번시집에는특히“숙아/숙아”(「숙아,하고부르면」),“오,줄리아”(「줄리아」),“지가모토/지가모토씨”(「지속가능모드토이」)하고누군가의이름을호명하는대목이자주등장한다.강혜빈시의화자들은“오늘같은날에는아무나/이름을불러주었으면좋겠”(「익선동」)다고생각하며,누구도이름을불러주지않아“자신의이름을알지못했”던“그”를찾아가“나의다정한아내,당신의이름은미도리……”(「녹음과미도리」)하고속삭인다.사랑을이루는최소단위가‘둘’이라는것을아는시인은“누구도소외되지않도록”이세계를“감시하”는(「지속가능모드토이」)일을기꺼이자처한다.

이번시집의해설을맡은박신현평론가는물리적인이동이제한된비대면시기에“시인의의식은오히려미래와사이버공간과저멀리우주로확장해나가며비인간과디지털세계의실존을적극적으로탐색”했다는점에주목하며3부의시들을엮어읽는다.「0.00」은퇴근후캔맥주를마실때조차“멀리서/빙산녹는소리”를들어야하는기후위기시대의현실적딜레마를담아낸다.「대저짭짤이토마토의미래」는첨단과학기술의발달로획일화된인간의마음을염려한다.「슈뢰딩거의상자」는‘슈뢰딩거의고양이’라고불리는유명한사고실험을빌려,상자에담긴반사반생의고양이상태에인류세시대를살아가는인간의운명을빗댄다.

강혜빈은두번째시집에서자신의시가씌어지는시공간을한층확장하지만,이러한배경이단순히현실을대체하는유토피아로활용되는것은아니다.오히려기계가점점정교해지는세상에서납작해진인간성에의문을제기하며,디스토피아시대의지속가능한사랑을실험하고자한다.따라서시속의인물들은“토마토박스로살아가는일이/인간의삶보다근사하다면”“기꺼이/덩그러니”남고자하고,차라리“아날로그기계가되고싶은/디지털인간”(「익선동」)으로살아간다.

세계의끝에서나아가는허밍의합창
빈괄호를채우는강혜빈식세리머니

20미터아래에서는
아포칼립스의시나리오를준비해

기계들의웃음소리가
벽에부딪힐때

빗소리보다
작은노래를줄게

[……]

지상의나는
허밍을멈추지않을게
-「미래는허밍을한다」

표제작「미래는허밍을한다」에서인류는다가올아포칼립스를대비하여기계로가득한“빛의벙커로내려간다”.이또한미래를기약하는한가지방법일수있겠으나,시인은“차가운밀실안에서/인류를구하”는대신,지상에남아“빗소리보다/작은노래를”부르기로한다.첫시집의“내가너의용기가될게”(시인의말)라는전언을기억하는독자라면,“그대의빈집이될게”라는약속이미래에접속하기위한초대장이란사실을눈치챌지도모른다.

그가마련한이빈집은무한한가능성으로열려있다.「리미널스페이스」의연인은“불꺼진건물들”과“텅빈마트와호텔/식당과놀이터”를지나“경로를이탈”하며어두운도로를질주한다.익숙하고도낯설게느껴지는도시의풍경은같은공간의다른가능성을꿈꾸게한다.「이벤트호라이즌」에는‘트루퍼’라는가상의모자가등장한다.트루퍼는“넓은귀를가”졌으나“과묵하”여바깥에서는모자안에서벌어지는일을알수없다.이기이한모자는작지만온전한미지의영역을구축한다.빈공간은“아내의잠속”(「슈크림토마토」)에도“깍지낀손안”(「녹음」)에도“양말구멍”(「슈톨렌」)에도있다.시집곳곳에남겨진빈괄호들.읽는이에따라다르게채워질이자리는소멸의미래를종말이아닌희망의목소리로가득채운다.

디스토피아의도래가머지않게느껴지는이땅위에서,강혜빈이“미리보기로슬쩍”(「미래에서온편지」)내다본미래는허밍을하며나아간다.‘허밍’은입을다물고부르는콧노래로합창에많이쓰이는창법이다.가사를알수없고큰발성을내기어려우며음정과박자도제멋대로인듯하지만,함께부를때비로소완성된다.우리의미래가함께허밍을할때,그노래는슬픔과절망,죽음까지모두껴안은채폐허의낭떠러지로울려퍼진다.“미래는우리에게무관심하다”(‘시인의말’)는단언뒤에는어떤희망이숨어있다.이를테면이런말.“그럼에도불구하고,세계의끝에서허밍을.”그렇다면이시집을‘사랑발명가’강혜빈이한여름의초입에서당신에게보내는편지라고불러도될까.시집을덮고이편지의바깥으로걸어나갈당신의이름은“미래”일것이다.

당신이편지의바깥으로걸어나갑니다
무엇이되지않아도되는사랑을입력합니다

총총,
제이름은미래입니다
-「미래에서온편지」부분

■시인의말

미래는우리에게무관심하다

2023년여름
강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