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코는 없다 (최윤 중단편선)

하나코는 없다 (최윤 중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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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시리즈 〈문지작가선〉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는 어제의 문학, 〈문지작가선〉이 2019년 7월 첫발을 떼었다. 또 한 번의 10년을 마무리하는 2019년, 문학과지성사는 한국문학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가려 뽑아 문학성을 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갈 목록 구성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 하여 현재까지, 진지한 문학적 탐구를 감행하면서도 폭넓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한국문학의 중추로서 의미 있는 창작 활동을 이어온 작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작품을 비평적 관점에서 엄선해 독자들에게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또한 권별 책임 편집을 맡은 문학평론가들의 해제를 더하여 해당 작가와 작품이 지니는 문학적ㆍ역사적 의미를 상세하게 되새긴다.

〈문지작가선〉의 시작점은 억압된 시대 속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문학의 언어로 표현한 ‘4ㆍ19세대’ 작가다. 최인훈, 김승옥, 서정인, 이청준, 윤흥길, 김원일의 중단편선과 한국 현대 여성소설의 원류인 오정희, 박완서에 이어 최윤의 중단편선을 선보인다.
저자

최윤

1953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강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프로방스대학교에서불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1978년『문학사상』에평론을,1988년『문학과사회』에소설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저기소리없이한점꽃잎이지고』『속삭임,속삭임』『열세가지이름의꽃향기』『첫만남』『동행』,장편소설『너는더이상너가아니다』『겨울,아틀란티스』『마네킹』『오릭맨스티』『파랑대문』,산문집『수줍은아웃사이더의고백』『사막아,사슴아』등이있다.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이효석문학상을수상했다.서강대학교프랑스문화학과명예교수다.

목차

회색눈사람
당신의물제비
워싱턴광장
속삭임,속삭임
하나코는없다
열세가지이름의꽃향기
밀랍호숫가로의여행
굿바이
동행
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

해제
부재증명의우정|조연정

출판사 서평

“그리고미로속으로들어가라.그것을두려워할수록길을잃으리라.”

부재의자리에서완성되는우정에대하여
최윤중단편선『하나코는없다』

“독백의형태로말해지는‘부재증명의우정’을통해지난30여년간가장완벽한방식의우정을탐색해”(조연정)온소설가최윤의중단편선『하나코는없다』가문지작가선아홉번째로출간되었다.이번중단편선에는1994년제18회이상문학상을수상한표제작을비롯해「회색눈사람」(1992년제23회동인문학상수상작)「당신의물제비」(1992)「워싱턴광장」(1994)「굿바이」(1999)「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2015)등작품활동초기부터최근까지펴낸최윤의대표작10편을수록했다.수록작가운데「워싱턴광장」「속삭임,속삭임」(1993)「열세가지이름의꽃향기」(1995)등8편은2018년,문지클래식6으로출간되었던최윤의소설집『저기소리없이한점꽃잎이지고』에미수록된작품들이다.
책임편집과해제를맡은문학평론가조연정은몇가지분류를거쳐최윤의소설을다시읽는다.타인의비밀한삶을목격한자의‘증언’이담긴「회색눈사람」「속삭임,속삭임」「워싱턴광장」,가족의불가해한죽음을둘러싼고통스러운경험을‘독백’으로재구성한「당신의물제비」「밀랍호숫가로의여행」(2002)「굿바이」「동행」(2012).나아가“누군가의죽음에대한유일한증인이되어주는남다른우정”을그린「회색눈사람」「분홍색상의를입은여자」가있다.최윤의소설에서“부재의자리에서완성되는”우정은다시말해,결코완벽하게헤아릴수없는타인의삶으로건너가부재를더듬어봄으로써,살아남은‘나’가혼자인불행을딛고이후의삶을스스로구원하는것까지포함한다.최윤은타인의부재속에“확인불가능한자신의부재를미리경험하”(조연정)는화자를등장시키며그로부터작가자신의소설쓰기의윤리를확장한다.고통한가운데에선화자의‘애도’는증언이나독백을통한‘대신쓰기’의방식으로죽은자를향하고있을뿐아니라,기록과정에서복기하는화자자신의한시절과상처마저보듬는다.이는시대의야만은냉철하게인식하되그안에서피고지는인간의삶을,끈질긴생명력을주의깊게들여다보는최윤소설이지닌가장큰특징이다.

하나코와는자존심이상할일이없었다.하나코와는일이덧나도별두려움이없었다.그일이있고도그는이렇게출장을핑계로그녀를찾아보려고하지않는가.왜일까?
“우리는친구잖아요.”
언젠가그의실언앞에서그것을무마하느라하나코가한말이었다.어떤실수였는지는물론기억에없었다.그렇지만그말이야기한불편한파장은생생하게기억에남았다.「하나코는없다」(p.178)


표제작인「하나코는없다」(1994)는책에실린대부분의작품들과달리남성화자의시각에서씌어졌다.어딘지신비로우면서도관대하고,친밀하면서도신중한하나코의성격은또래남자들에게대상화되어멋대로소비된다.결국그들이걷잡을수없는폭력성과충동으로일으킨소동에휘말렸던하나코는화자를비롯해무리에속해있던남자친구들과멀어진다.세월이흘러동반자이자동업자인여자친구와인테리어디자이너로국제적인명성을얻은그녀는화자의눈에마치모르던이처럼생소하다.남성의동물적인욕망의더께에가려져있던진짜하나코,장진자의모습을마주한화자의둔감한시선과자신이받은충격을해석할줄도모르는화자의무지는,작품을읽는독자의객관을일관되게자극함으로써서늘한울림을던진다.

소설뿐아니라쓰는자의삶또한삼인칭이된다.개인적인차원에서는,‘나’의것을포함한모든개인적삶이객관화되는것은소설가에게주어진선물이라고생각한다.그렇지않다면이민감함이라는천형을어느정도부여받은작가라는범주에속하는사람이,격렬하고변덕스럽고무질서하며자주추함에더가까운인간이만들어내는삶의격랑속에서살아남을길은없었을것이다.
[……]
소설을잘쓰는일은‘나’라는이삼인칭의균형을얼마나잘유지하느냐에달려있다고생각한다.이균형은넓은의미에서윤리적균형이라고부를수도있다.이삼인칭의균형이소설을쓰는자에게겸손함을요청한다.(최윤,「나는어떻게쓰는가」,『사막아,사슴아』,문학과지성사,2024,p.45)

작가는5월광주의비극을다룬중편소설「저기소리없이한점꽃잎이지고」(1988)를발표하며“가장뛰어난증언의문학”(김병익)이라는수사로각인되었다.소설은영화「꽃잎」(장선우감독,1996)으로도제작되어오랜시간대중에게사랑받았다.유신체제하에검열이극에달했던1970년대를배경으로한「회색눈사람」과민족분단과이념갈등의아픔이스민「속삭임,속삭임」등에서읽듯현대사의비극을평생에걸쳐껴안은개인과다양한관계의심부를들여다보며작가가말하고자한것은무엇일까?최윤의소설은기억을되살린다.‘나’의기억속에서타인을,타인의기억속에서‘나’를되살린다.기억을한바퀴돌아,혼란한시간의구속에서벗어난인물들은과거에서,현재에서,미래에서새로씌어진다.최윤의많은작품에서보듯,죽음과도같은고독상태에서그리움과갈구로시작된화자의기록은타인을향하고타인을이해함으로써끝내‘나’를찾는여정이다.
작품의해제를쓴문학평론가조연정은말한다.“누군가의비밀같은삶을기억해주는,누군가의부재를영원히고통속에서잊지않는,서로를살리는우정을나누는관계”,그리하여“최윤의소설이우리에게내내보여준것은이러한돌봄의마음이라고해도틀린말은아닐것이다.최윤소설의독백들은자신에대한말하기를통해결국타인의마음을더듬고있는것이다”.오늘날다시읽는최윤의소설은삶의비극뒤에감춰진사랑의힘을돌이켜다시금세상으로나아가게하는간곡한우정의지표다.

때로사람들로하여금무언가쓰도록만드는이유는이토록지독히단순하다.매순간죽음이엿보이지않는데도꼭쓸필요가있을까.누구나완전히사라져버리지는않을지도모른다는착각을가지고쓴다.(최윤,「왜쓰는가」,『수줍은아웃사이더의고백』,문학동네,1994,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