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축복을 비는 마음

$16.00
Description
“어떤 기분 좋은 상상들이 신기루처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2021·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 「목화맨션」 「미애」 수록

중앙장편문학상·신동엽문학상·대산문학상·김유정문학상 수상 작가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김혜진 신작 소설집

‘김혜진.’ 그 이름 석 자만으로 하나의 장르를 쌓아 올린 작가. 그의 세번째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목화맨션」, 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미애」, 2022년 김유정문학상 수상 후보작 「축복을 비는 마음」 등 발표 시점부터 기대를 모아온 수작들이 함께 수록되었다.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에 이어 올 8월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후 펴내는 첫 책이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혜진은 어언 10년의 이력을 꽉 채우고 새로운 한 발짝을 떼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집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집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디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직결된다. 더군다나, 상품으로서의 집이 주거로서의 집을 압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은 계급, 젠더, 지역, 세대를 비롯한 충돌을 야기한다. 전작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다룬 주거 문제, 『경청』의 주요 화두였던 소통의 가능성, 『9번의 일』에서 거론한 노동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이 이번 소설집 곳곳에 녹아 있는 까닭이다. 그 지난한 이야기를 거쳐 작가는 지금 당신이 머무르는 집의 안녕을 빈다.

저자

김혜진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비』『너라는생활』,짧은소설집『완벽한케이크의맛』,중편소설『불과나의자서전』,장편소설『중앙역』『딸에대하여』『9번의일』『경청』등이있다.중앙장편문학상,신동엽문학상,이호철통일로문학상특별상,대산문학상,2021·2022젊은작가상,김유정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미애
20세기아이
목화맨션
이남터미널
산무동320-1번지
자전거와세계
사랑하는미래
축복을비는마음

해설마음과구조·이소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말과침묵사이의우연과오해
그빈틈을채우는상상의가능성

첫번째소설집『어비』(2016)에서“지금으로서는여기까지밖에말할수없다”(문학평론가노태훈)는입장을견지하던작가는이번소설집에서끊임없이발화하는인물들을선보인다.한편,두번째소설집『너라는생활』(2020)에서끈질기게2인칭‘너’를호명하던시선을확장해수많은3인칭‘그’들을작품속으로데려온다.정확하게도달할수없는언어의한계를실감하는동시에,바로그점이우리가소설을읽는이유라는사실을깨달은것처럼.그리하여더많은이야기를말하고또듣기로결심한것처럼.

이를테면,하고싶은말을하는사람이있다.「20세기아이」에서재개발동네로이사간‘세미’는늘심드렁한가족들에게도,중고거래를위해만난낯선외국인아줌마에게도,집을보러온부동산고객에게도해맑게말을건다.세미에게‘말한다’는것은자신의마음을외면하지않겠다는의지의표명이다.그리고해야할말을하는사람이있다.「목화맨션」의주인공‘만옥’과‘순미’는집주인과세입자의관계이지만,서로끼니를챙기고이웃으로서도움을건네며살갑게지낸다.그러나상황이어려워지자만옥은순미에게가능한한빨리집을비워달라고요구한다.순미는그런만옥에게계약기간까지살겠다며따져묻는다.두사람이함께한8년여의세월은그말들앞에서점점희미해진다.

침묵도일종의발화라면,하고싶은말을삼키는사람이있다.「산무동320-1번지」의‘호수엄마’는여러채의건물을소유한장선생대신세입자들을관리한다.그녀는시시콜콜한사정을듣고싶지않은장선생의마음을세입자들에게전하지않는다.대신,월세를독촉한후집에가던발길을되돌려얼마전모친상을당한재민엄마에게조의금을건넨다.끝내아무말하지않는사람도있다.「축복을비는마음」에서청소업체고용인과고용주로만난‘인선’과‘양사장’의관계는별다른마찰없이자연스레끝난다.인선은괜한트집을잡아일당을깎는양사장의치사한대처보다변명이나사과를내놓아야할순간,끝까지아무말도하지않는태도에실망감을느낀다.

이처럼작품속인물들이일방적으로쏟아낸말들은누구에게도닿지못하고흩어지며,꼭전해야하는말은끝내입밖으로나오지못한다.그러나“말이야말하는사람마음이”고“듣는건듣는사람자유”(「자전거와세계」)인어려움속에서도,인물들은“내말이해했어요?무슨뜻인지알아요?”하고묻는다.“너무나멀고어떻게해도붙잡히지않는”이야기를말하고듣는데에전력을다한다.재차실패하면서도또다시소통의가능성을도모한다.우리는말과침묵사이에서탄생하는우연과오해를거듭하는사이,진정한대화를나누기위해서는“이해력보다상상력이더필요하다”(「사랑하는미래」)는사실에다가서게된다.

섣부른이해보단솔직한오해를
집에관한이야기이자집을둘러싼마음들의이야기

등장인물이놓인다양한처지는전세사기대란,기혼유자녀여성의우울증,청년‘니트족’의증가등우리사회에만연하나애써외면해온문제를연상케한다.개개인의슬픔과고통이사회적현상과맥을같이할수밖에없는현실에서,이소설집의미학은통계학적수치와뉴스보도너머의진실을알려준다는데있다.작가는소설속인물들에게‘집주인’‘세입자’‘고용주’‘고용인’이라는간단한칭호를붙이거나,‘엄마’‘애인’‘친구’라는통념상의역할을부여하는대신,그들이한사람으로서겪는내밀한어려움에주목한다.“어쩌자고서로의사정을이렇게속속들이알아버렸을까”(「목화맨션」)싶지만,서로의입장과사정이얽히고설키며발생하는역학관계에주목한다.

이번소설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이소는‘부동산’의형태로집약되는우리사회의구조적모순을지적하며,주택을의미하는하우스house와가정을의미하는홈home사이를오가는‘집’의역동성을설명한다.이모든층위를통틀어‘과정으로서의집homeasprocess’개념을제시하고,이와더불어외부의마찰과압력에따라변하는마음을‘과정으로서의마음’이라명명한다.김혜진의소설에서마음의변화를보이는건늘외부와접촉하는인물이다.「산무동320-1번지」에서골머리썩고싶지않아세입자관리를일임한‘장선생’이나「미애」에서아파트철문을굳게닫고안온한삶을유지하는‘선우’에겐마음이변할만한일이생기지않는다.마음의변화가늘선한쪽으로향할리는없겠지만,한발짝나아가기위해선충돌을감행해야한다.

철저히예측가능한범주안에서일상을보내던주인이마크를만난후“텅비고적막한공간”대신“짐작할수없고,도달할수없는미래에속한”장소를얻은것처럼,“뭔가를더알게되는게불편”하여눈과귀를닫고살던인선이경옥의낯선말을듣고서야바로그런말을“자신이내내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깨닫게되는것처럼,현재에구속된우리가미래를만날수있는유일한방법은기꺼이충돌을감행하는것이다.혹은적어도마찰을차단하지않는것이다.그리하여무해함보다유해함이,차단보다충돌이우리에게훨씬자연스러운삶의방식이라는걸믿어보는것이다.
_이소,해설「마음과구조」에서

작가는“이책에실린소설은모두집에관한이야기”이지만,어쩌면“집에관한이야기라기보다는집을둘러싸고있는어떤마음들에대한이야기”(‘작가의말’)라고밝힌다.대부분의인물은상대의고통앞에서이해나공감을표하기보단,누가더불행한지겨루는사람들처럼자신의처지를변호하고항변하기바쁘다.그럼에도현실에선좀처럼발언권을얻지못하는이들이자신의이야기를마음껏내뱉는장면은어떤해방감을선사한다.그것은김혜진의소설들이줄곧말해온바,타인을이해하기위해서는솔직한오해가섣부른이해보다효과적이란사실을시사한다.‘나’에대해이야기하는것은‘너’에대해말하는일이기도하며,이는곧세상에대한책임을지는일이다.결국우리는한시절머물렀던‘과정으로서의집’들을거치며‘과정으로서의마음’을체득하게되고,그리하여“미래를향해나아간다”(「사랑하는미래」).

티끌만한가능성을움켜쥐는절박함
가능할리없다는의심속에피어나는진실한소망

여덟편의이야기는남루한현실속에서기어코희망의조각을건져올린다.‘미애’는독서모임엄마들과어울리며평범하게살수있겠다는희망을떠올리고(「미애」),‘세미’는길바닥어딘가중고로팔만한물건이있기를희망한다(「20세기아이」).‘만옥’은남편의병이호전될수있으리란희망을품고(「목화맨션」),‘남우사모님’은부동산임장을다니며좋은기회가찾아오리란희망을놓지않는다(「이남터미널」).‘현지’는한때친했던‘정민’과다시화해할수있으리란희망을가지며(「자전거와세계」),‘주인’은사랑하는애인을보러가는길에희망적인확신에사로잡힌다(「사랑하는미래」).이런크고작은희망을빌미삼아,그들이얻는것은약속된미래가아니라현재를버티는힘이다.잠깐떠올랐다사라지는신기루일지언정누군가에겐지금을살게하는아름다운불빛이다.

흥미로운것은이소설에어른들의눈을피해어딘가로사라진아이들이두번등장하는점이다.「미애」에서미애의딸‘해민’과선우의딸‘세아’는아직녹지않은눈을보러간다.「20세기아이」의‘세미’는물난리후의모습을보여주겠다며,자신이사는집을보러온아줌마의딸‘지우언니’를은목다리로데려간다.아이들은재개발동네와깨끗한동네를가르는다리앞에서,“다리건너면21세기,여긴20세기”(「20세기아이」)라고말할만큼어른들의시선을체화하고있지만,무엇이더좋고나쁜지에대한경계는희미하다.소설은어른들이한눈판30분남짓의시간동안,아이들이무엇을보았는지알려주지않는다.그것은아직녹지않은희망또는여전히남아있는희망의모습이었을까.우리의삶에언젠가‘미래’와‘축복’이주어질수있을까.김혜진이정공법으로던진질문이이제우리앞에가로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