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없는시쓰기
i에대해서시를쓸때마다
그나마음악도들었고약도챙겨먹었는데
오늘은i가왔는데
나는태어날수있었는데
i를위해이불과베개를꺼냈다
자고가라고말했다
i는우편함에서자겠다고
그곳에서같이자자고했다
나는그렇게하겠다고대답했다
이미i는잠들었고
나는i몰래i없는시를쓰러갔다
―「머리말」부분
안으로숨어드는,내면깊은곳에자리한자아인소문자i는시인의전작(『i에게』)에서이미보아익숙한존재다.잊을만하면찾아오는i의방문으로시작되는위의시에서작고보잘것없는존재로서의자아를다시한번떠올리게된다.동시에i의방문으로시적자아가태어나고그로인해김소연의시가탄생했음을알수있다.그런데시인은이번엔“i몰래i없는시를쓰러갔다”.이제는i가없어도시쓰기가가능한것일까.그시는어떤모습일까.
앞서다섯권의시집에서탁월한감각으로극에달한내면의풍경을담아내었던시인은이번시집에서한발더나아가i마저모르는,더욱깊어진어둠으로독자들을이끈다.그리고그곳에서이극단이끝이아님을,이내면의풍경이끝나지않는도정속에놓여있음을한없이끝으로치닫는밤을통해보여준다.
일괄소등버튼을누르면모든것이검정속으로사라질것같은밤모서리로밀려나는밤가속이붙는밤귀한것들을벼랑끝에세워둔것처럼기묘하고능청스러운밤벨벳같은부드러움을한껏가장하는밤단한순간도고요가없는지독히도와글대는밤무성해지는밤범람해지는밤꿈이얼씬도하지못하도록눈을부릅뜨고누워있기푸른얼음처럼지면서버티기열의를다해잘버티기어둠의엄호를굳게믿기온갖주의사항들이범람하는밤에게굴하지않기
―「푸른얼음」부분
밤에대한깊은사유가두텁게덧칠되어펼쳐지는이시에서,그러나“온갖주의사항들이범람하는밤에게굴하지않”는다는모종의의지는여기가결코끝이아니라는것을다시상기시킨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김언시인은“끝났다고생각하는지점에서도다시생겨나는끝이여력을만들고의지를만들고또믿음을만든다.이믿음을받아주는곳에다시‘밤’이있다.‘푸른얼음’처럼모종의권능을지닌밤이마지막으로기다리고있다”라고이번시집에나타나는‘밤’에대해설파한다.“하나의극점을넘어,일종의경계선이되는것도넘어,어떤거대한지대를향해가는끝의의미를품”은것이이번시집에서말하는밤이라는것이다.
“끝이보이는맑은날”(『극에달하다』)에시작된시인의여정은30년을지나“촉진하는밤”에이르렀으나아직끝이아니다.이렇게우리는김소연시인과그림자를끌고,“차분하고투명하며열렬”(『눈물이라는뼈』,‘시인의말’)한눈물을따라,아침을맞고,밤으로향하면서극에달해갈수있게되었다.밤에굴하지않고우정을나눌수있게되었다.기다림에값하는소중한결실이다.
시인의말
우리는너무떨어져살아서만날때마다방을잡았다.
그방에서함께음식을만들어먹었고파티를했다.
자정을훌쩍넘기면한사람씩일어나집으로돌아갔지만,
누군가는체크아웃시간까지혼자남아있었다.
가장먼곳에사는사람이었다.
건물바깥으로나오면
그방창문을나는한번쯤올려다보았다.
2023년9월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