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 아닌 것

말과 말 아닌 것

$26.00
Description
최소한의 자리에서 ‘평론가’라는 개인이
‘미지의 세계’를 상대로 최대한의 질문을 하는 것
“유려하고도 섬세한 문체는 비평적 글쓰기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라는 찬사와 함께 데뷔한 문학평론가 김나영의 첫번째 평론집 『말과 말 아닌 것』(문학과지성사, 2023)이 출간되었다. 200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된 ‘김선우론’은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부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 ‘새로운 비평적 호명’을 달성해냈다는 평과 함께 당대 문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이후로도 김나영은 탁월한 비평적 감수성과 텍스트의 맥락을 발견해내는 발견술을 통해 단연 뛰어난 해설들을 발표해왔다. 문학 비평을 해석한 지 햇수로 15년 차에 접어든 저자는 그 시간 동안 한국 사회의 중대한 사건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다. “차벽과 물대포와 촛불 광장을 마주했고, 여러 번의 참사를 목도”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문학 비평이 지켜야 할 자리에 대해 고민하며 “그에 맞선 목숨을 건 투쟁들을 빠짐없이 알고자” 했다. 이렇듯 평론가 김나영에게 문학 비평이란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는 동시에 매 순간 타자의 세계를 탐문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한 다짐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김나영은 자신의 첫 책, 『말과 말 아닌 것』에서 비평의 특성과 숙명에 대해 다시금 짚어나간다. 이는 비평이 작품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머무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둘러싼 변화를 유연하게 수긍하고 확장시키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이렇듯 김나영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비평이 가져야만 하는 ‘책임감’이었다. 텍스트를 분석하고 해체하여 다시 그 속의 의미를 헤아리는 작업은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갖췄을 때야 비로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더 창조적인 텍스트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돌봄’의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히 “좋아해서” 시작했던 문학 비평은 삶에 관한 탐구와 질문으로 이어졌고, 평론가 개인과 세계를 온당하게 책임지려는 시도가 되어주었다. 이렇듯 나와 타인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이어가는 평론가 김나영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과 성실을 다하고자 노력할 것”(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왔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문학으로 삶의 궤적을 그려온 작가의 첫 책은, 오랜 약속에 대한 응답이자 한국 문학이 오래도록 지켜오고자 했던 순수한 열망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말과 말 아닌 것’은 언어의 방법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간단히 분별하고자 하는 의도로 붙인 제목이라기보다는, 문학이 애초에 언어로 씌어졌으나 언어에 미달하거나 초과하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나의 믿음에 대한 표현이다. 문학은 말을 통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언제나 문학은 이 밖의 것을 거듭 말의 안으로 껴안아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_「책머리에」
저자

김나영

1983년구미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문예비평을공부하여박사학위를받았다.2009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에당선되어비평활동을시작했다.현재계간『자음과모음』편집위원이다.

목차


책머리에

1부일상과문학

시는일상이다―이성복시의일상성
시를짓고,‘나’는산다―신해욱과김언의시
시작을전복하는2000년대의여성시
통감하는주체,유무의경계너머의말들
본의가아닌본의로―동명이설(同名異說)의동상(同相)들
도시에대한상상,이방인을대하는태도―구병모와김사과의장편소설
소설의사실―2010년대한국소설의한동향
현실과문학의현실―문학이공론장에서활용되는방식들

2부시의얼굴들

일기가되지못한노래―이성복론
비법(非法)의비법(秘法)―김언론
그,말을오래중얼거리다―이장욱론
시인이여,불참(不參)에참여하라―서효인론
어떻게탄생할것인가―이원론
아름답다고어떻게말할수있을까―이수명론
시의가능,사라진마을의복기―백은선론
현실의이면을투영하는시―김리윤론

3부소설의시간

시간의길이와소설의깊이―윤성희,「이틀」
구원하며구원되는실감―김애란,「물속골리앗」
위로,마음을되짚는길―정소현,「돌아오다」
당신은누구십니까―편혜영,「야행(夜行)」
한계없는이야기의방법―손보미,스타일이라는동력
죽음과얼음―『연대기』에이르는한유주소설의연대기

4부문학의무늬

삶,다른시간들의접속사(史)
속수무책(束手無策),그럼에도불구하고
어떤여지들
얼굴도이름도없이

출판사 서평

타인을존중함으로써가능한문학의자리,비평

김나영은등단직후한일간지와의인터뷰에서자신이생각하는문학이란무엇이고,어떤글을쓰고싶냐는기자의물음에“계속질문하는글을쓰고싶”다고답한다.이렇듯그의문장끝에는언제나작은물음표가그려져있었다.아마도‘그런게아닐까’하는물음에는눈에잘띄지않는마침표가단정하게찍혀있지만,그이면에는언제나여전히화자의마음과세계의질서를향한궁금증이담겨있는것이다.세상속으로단숨에파고든사람,이책은세상이궁금한이의부지런한사랑이남긴흔적이다.

1부에는1990년대이후끊임없이논의된‘문학의일상성’에대해되짚으며이성복이그리는평범한일상속에서“우리가단한번도살아본적없는기이하고도낯선자리”를발견해낸다.새로울것없는삶속에서전혀다른의미를도출해내는시인들의세계에서김나영은다시금신해욱과김언의시를호명하고,2000년대의이후부각된여성시와그이후에도결코고정될수없는시적주체의뜨거운이마위에손을얹은후찬찬히촉진해나간다.그외에도구병모와김사과의장편소설,2010년대한국소설의동향등.1980년대거대담론에서벗어나개인과일상에대해말하는한국문학의변화과정을면밀하게분석하고재조명한다.

2부「시의얼굴들」에는이성복,김언,이장욱,서효인,이원,이수명,백은선,김리윤에이르기까지아름답게탄생한문장들로현실을투영하는시를쓰는각시인의세계에관해다각적으로읽어낸다.

3부「소설의시간」은윤성희,김애란,정소현,편혜영,손보미,한유주의소설속인물들이살아내는시간을시간에서부터죽음에이르기까지.허물어진삶을다시봉합하고조합하는과정들이담겨있다.

4부「문학의무늬」는문학이남긴잔상들을다시해체하여견고하게분석해내는텍스트들을담아냈다.이렇듯김나영의비평은일상과비일상,진실과허구,사랑과몰이해를이분법적으로구분하지않고이모든것에살며시물음표를달아전혀다른관점으로작품을해석해낸다.

견고하게지어진문장앞에서독자는자신이살아오지못한세계를만나고,이때평론가는어두운방안에앉아자신이오래도록궁리해왔던물음의촉수를높인다.이렇듯우리는잘알지못하는세계를,시인을,소설가를김나영의글을통해사랑하게될것이다.

책속에서

이제는나의삶이오로지내것만이아니라는것을,내가누군가의삶을책임지고있고동시에다른삶에내가빚지고있다는것을온몸으로알고있다.당연한말이지만이렇게나의안팎에서일어나는일을‘어떤일들이있었다’고말하고그발생과변화에관한의미를찾을수있게된것은곧나의변화를의미한다.앞서‘그것들’을통해문학비평의문을열게되었다고고백할수있었던차원에서나는여전히개인의경험에갇혀있었다.이후비평의방식을통해서변화한것은,나를사유하고감각할때에도개인성에국한되지않(못하)는지점과그연원을질문하게되었다는점이다.무엇인가를비평할때는분명한관점과태도가요구되기도하지만분명함이란자기를거듭단속하는와중에유연한변화를수긍하는데에서지속되는것이기도할것이다.내삶속에서문학비평은자기목소리를지키면서도또다른자기를무시하지않는것,매순간타자의세계를탐문하고함께살기를다짐하는일이되었다.
---「책머리에」중에서

지금여기서,모든시는서정시라는전언을되새겨본다.시를지배하는것은일차적으로시인의정서가아닐수없고,시의화자는시인자신이아니고서는존재할수가없다.혹여알수없는힘에이끌리는순간에도시인은시를짓는이가‘나’라는자명한사실에서벗어날수없다.그러나한편의시가누군가에게읽힐때만큼은시인의존재는장막에가려진다.누구도시속의‘나’를시인이라고말하지않는다.다만지금여기서,장막에비치는그림자를주목해보려한다.그그림자는무엇보다도시의무대에등장한화자의존재를의심하게한다.다시말해,이의심은시인이어떤의도로화자를시의표면에내세운것인가이다.
---「시를짓고,‘나’는산다―신해욱과김언의시」중에서

이쯤에서다시확인하고싶은것은이런문학의기능이다.한편의소설을구성하는수백개의문장가운데절묘한하나가우리삶의한지점을정확하게짚어낼수도있지만,그렇지못하는경우가훨씬많고,그때문에소설은하나의사건을다루는경우에도수백가지인간의삶의장면을상상하고그각각에구체적이고개별적인경험의대입이동원된다.문학이공론장의역할을할수있다면이처럼한편의작품이그속에서내가수많은삶을살아보는경험을통과해서나로다시돌아오는경험이가능하도록씌어졌기때문이다.한편의소설을하나의강력한주제에동원되어해석될때,공론장으로서의문학은납작하게접혀서또다른공론장에끼워넣을만한책갈피가될뿐이다.
---「현실과문학의현실―문학이공론장에서활용되는방식들」중에서

개인들이‘우리’가될수있는이유는모두에게심장이있기때문이다.한계절이가도록누군가의얼굴을그리워해보고,새벽내내편지를적어본적이있는자라면,또한마음을놓듯누군가의얼굴과이름앞에흰국화를두고온적이있는자라면이시의도입부에서부터반복해서말하는“우리의심장을풀어”라는구절이무엇을의미하는지를경험으로부터알게된다.그단단하게맺힌것이풀어져,흰눈처럼쏟아지고,그다음에는푸른새싹을틔울수있기를기원했던마음들이이긴시를이루는짧은구절과구절,그사이에풀어져있기때문이다.
---「어떻게탄생할것인가―이원론」중에서

이수명의시는,사랑에관한것이든사물에관한것이든,가장평범해짐으로써가장특별해진다.이때평범함이란비범함을간직한평범함이다.모든것의표본이될만한것으로서의평범함은얼굴과팔다리가없는몸통[torso]처럼사실적이면서도현실의문법에서어긋나있는존재의방식이다.이시는그러한존재의방식을,거두절미하고보여줌으로써,현실에놓여있는시의존재가어떤방식으로목격되는지를스케치한다.
---「아름답다고어떻게말할수있을까―이수명론」중에서

“여름이니까그럴수있다.전에도이런날이있었다.”이처럼애매하고도그럴듯한말을통해문제의외연이갖고있던심각성이벗겨지고그것이내포하고있던낯선기운이소설의전면에만연하게되는것이다.그낯선기운이란이를테면각자가체험으로획득한삶의속성이기도하다.매순간누구나저마다의편견으로세상을보고있지만,또다른순간저와다른입장에동화됨으로써놀랍게도누구의것도아닌하나의마음을만난경험이있을것이다.어떤윤리적인당위나논리적인설득도해내지못하는그완전한동감은소설속의한문장처럼사소하고도개별적인마주침으로서전체를움직이는동력이된다.
---「구원하며구원되는실감―김애란,〈물속골리앗〉」중에서

소설속‘나’는거듭철학적인사유로빠져들려는찰나의자신을거짓말과농담으로잡아챈다.말하는나와그런나를부정하는또다른나의만남은‘거짓말이다’와‘농담이었다’라는자기부정의진술속에서발견된다.이자기부정은결국소설을쓰는자신과소설속에나타나는자신의모습의불화에서비롯되기도할것이다.다시말해,자신의생각과느낌을온전히말로써표현할수없다는것을,자기말의한계를인식한나는나를부정함으로써자기존재를긍정하게된다.나의죽음으로써나의삶을계속하는것이다.
---「죽음과얼음―『연대기』에이르는한유주소설의연대기」중에서

몸의다른부분들과비교해보아도손만큼의미심장한것은없어보인다.하물며몸에관련된대부분의비유들은중의를가질수밖에없다.가령‘손을씻는다’는말에는팔목에달린손가락과손바닥의부분을씻는다는의미에더불어어떤관계를끊는다는의미가있다.그러나무엇보다도손이의미있는이유는하나가다른하나와포개져서온기와마음을나눌수있는유일한신체부위이기때문이아닐까.
---「속수무책(束手無策),그럼에도불구하고」중에서

저시의화자는“너”라는대상을호명하면서,그리고너에게몇가지질문을던지면서자신이하려는이야기,혹은“얼룩진얼굴”에대해서말하고있다.범박하게말하면그얼굴은시인의얼굴이다.시를짓는시인자신의얼굴은일면“거울”속에서발견되는상인동시에,시에들어있는대상의얼굴이기도하다.가령달을시의대상으로삼았을경우에화자에게자신의얼굴은그달이된다.또한달속에서발견되는얼룩들이얼굴이된다.시인은시를통해서,화자의목소리를통해서자신의얼굴을확인하는자이다.
---「얼굴도이름도없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