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묵시록적인 비전을 들고
현대시의 전경에 새롭게 등장한 판타지
멸망 이후에도 세계라는 꿈은 계속된다, 변혜지 첫 시집 출간!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묵시록적인 비전을 들고
현대시의 전경에 새롭게 등장한 판타지
멸망 이후에도 세계라는 꿈은 계속된다, 변혜지 첫 시집 출간!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남다른 사유의 깊이,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심사위원 김영남·이학성)을 지녔다는 평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변혜지 시인의 첫 시집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힘이 넘치는 상상력을 유감없이 휘어잡는 문장력이 돋보이는 총 45편의 시를 묶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걸출한 개성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본문에서 작은 크기로 처리된) ‘나’의 탄생을 알리며 시는 시작된다. 곰비임비 쌓여 끝없이 이어지는 꿈속 이야기. 차원의 문을 넘나들며 숨바꼭질하는 ‘나’와 아이들과 그 모든 등장인물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부를 나누지 않고 흐르는 시편들은 알레고리의 반복과 변주를 보여주며 긴 호흡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서사처럼 읽힌다. 시집의 제목은 2010년대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웹 소설 시장을 주도했던 『전지적 독자 시점』(싱숑, 문피아와 네이버에 시리즈 연재, 2018~)에 등장하는 판타지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에서 따왔다.
“끝이야, 모두 끝났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런 말은/하고 싶어도 해서도 안 되는”(「대과거」) 세계의 비정非情을 가리키며 시인은 독특한 시적 판타지 공간으로 독자를 밀어넣는다. 이미 세상에 태어난 나,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나, 넘지 못하는 나, 소외와 절망과 체념의 굴레 속에서 정체를 잃어버린 나 그리고 셀 수 없는 멸망을 목격하고 또 한 번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나. 변혜지의 시는 이세계異世界 혹은 아포칼립스물로 분류되는, 전술한 웹 소설의 세계관-순식간에 생존 게임에 걸려든 주인공의 이야기-과 궤를 같이하는 듯하나, 그에 못지않게 냉혹한 현실의 정조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독자의 몰입을 끌어낸다. 밝음으로 치장된 서정적 풍경 대신 암흑 속에서 희박한 가능성만이 점멸하는 세계를 매우 뚜렷한 상으로 제시함으로써, 가망 없는 현실의 벼랑 끝에 선 화자의 표정을 다각도로 비춘다.
변혜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미 완료된 대과거와 아주 작은 수정의 가능성이 있는 미래와의 관계다. 그리고 시인에게 현재는 레고 같은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꾸고 있는 엄청난 재앙이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꿈이기 때문에 시인(독자이자 주인공이자 작가)이 예측 못 할 만한 사건은 없다. 대참사는 꿈이 자신의 긴 팔을 뻗는 것과 같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거의 같다. -박판식, 해설 「묵시록의 성찬」에서
(본문에서 작은 크기로 처리된) ‘나’의 탄생을 알리며 시는 시작된다. 곰비임비 쌓여 끝없이 이어지는 꿈속 이야기. 차원의 문을 넘나들며 숨바꼭질하는 ‘나’와 아이들과 그 모든 등장인물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부를 나누지 않고 흐르는 시편들은 알레고리의 반복과 변주를 보여주며 긴 호흡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서사처럼 읽힌다. 시집의 제목은 2010년대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웹 소설 시장을 주도했던 『전지적 독자 시점』(싱숑, 문피아와 네이버에 시리즈 연재, 2018~)에 등장하는 판타지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에서 따왔다.
“끝이야, 모두 끝났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런 말은/하고 싶어도 해서도 안 되는”(「대과거」) 세계의 비정非情을 가리키며 시인은 독특한 시적 판타지 공간으로 독자를 밀어넣는다. 이미 세상에 태어난 나, 현실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나, 넘지 못하는 나, 소외와 절망과 체념의 굴레 속에서 정체를 잃어버린 나 그리고 셀 수 없는 멸망을 목격하고 또 한 번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나. 변혜지의 시는 이세계異世界 혹은 아포칼립스물로 분류되는, 전술한 웹 소설의 세계관-순식간에 생존 게임에 걸려든 주인공의 이야기-과 궤를 같이하는 듯하나, 그에 못지않게 냉혹한 현실의 정조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독자의 몰입을 끌어낸다. 밝음으로 치장된 서정적 풍경 대신 암흑 속에서 희박한 가능성만이 점멸하는 세계를 매우 뚜렷한 상으로 제시함으로써, 가망 없는 현실의 벼랑 끝에 선 화자의 표정을 다각도로 비춘다.
변혜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미 완료된 대과거와 아주 작은 수정의 가능성이 있는 미래와의 관계다. 그리고 시인에게 현재는 레고 같은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꾸고 있는 엄청난 재앙이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꿈이기 때문에 시인(독자이자 주인공이자 작가)이 예측 못 할 만한 사건은 없다. 대참사는 꿈이 자신의 긴 팔을 뻗는 것과 같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거의 같다. -박판식, 해설 「묵시록의 성찬」에서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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