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적 숲 ; 더 멀리 도망치기 : 문학과지성사 × 국립현대미술관 시·소설 앤솔러지

전자적 숲 ; 더 멀리 도망치기 : 문학과지성사 × 국립현대미술관 시·소설 앤솔러지

$17.00
Description
문학과지성사×국립현대미술관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도망치고 싶었다.”

탐닉의 시대, 평정을 얻기 위해 스스로
전자적 숲에 들어서는 현대인의 초상

#피로 사회 #우울 사회 #마음 챙김
#명상에서 칠 아웃 #전자 명상 #유튜브에서 명상
현대 사회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피로 사회, 성과 사회, 과잉 사회, 하이텐션 사회…… 각 명칭이 짚고 있는 문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모든 면면이 삶의 가속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과연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시·소설 앤솔러지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는 고도의 경쟁을 독려하는 동시에 정신 건강을 위한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는 기묘한 현실 속에서 마음 챙김을 부추기는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전자적 숲’은 과잉 자극에 맞서 휴식을 취할 때조차 전자 매체와 온라인 플랫폼에 둘러싸인 환경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숲속 한가운데서 요가 자세를 취하거나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 ‘불면증에 좋은 숲 소리 ASMR’ ‘내 인생을 바꾸는 100일 마음 챙김’ ‘누워서 하는 10분 명상’ 따위의 플레이리스트는 터치 몇 번 만에 정제된 자연의 소리를 귓가에 재생시키고, 유명한 심리상담자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계적인 구루까지 눈앞에 데려다준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한국인 세네 명 중 한 명이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전자적 숲으로 도망치는 현대인의 삶이 여전히 행복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는 멀리, 더 멀리의 어딘가를 꿈꾸는 시대, 동시대 감수성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발명해온 작가 13인의 글을 선보인다. 피로 사회, 우울 사회, 전자 명상, 칠 아웃 등의 키워드에서 출발한 6편의 시와 7편의 소설을 3부로 나누어 엮었다.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3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2023년 5월 26일~2024년 2월 25일)과 연계한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여러분은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그 노력은 괜찮은 시도였나요?”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책은 그에 대한 13편의 문학적 응답이다.
저자

이미상,임솔아,김리윤,박세미,서이제,손보미,위수정,강성은,송승언,김연수,

2018년웹진〈비유〉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이중작가초롱』이있다.2019·2023젊은작가상,문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로사르믹제
이미상상담방랑자
임솔아퀘스트
김리윤조명하지않는빛
박세미아사나를향하여

2부소진된인간
서이제더멀리도망치기
손보미빚
위수정제인의허밍
강성은미니멀라이프
송승언영원의고향같은숲,옛친구,그리고음률이붙지못할다크포크DarkFolk를위한몇편의짧은시

3부어두운곳에서홀로
김연수신의마음아래에서
한유주작별하는각별한사람들
안미린첫눈의미래
이제니맑은물은맑은물을만진다

출간의말

출판사 서평

1부로사르믹제─이미상임솔아김리윤박세미

‘로사르믹제’는티베트어로‘새로운마음의눈을여는말씀’을뜻한다.주어진‘퀘스트’를완수하듯살아가는일상에서당면한문제를해결하기위해구하는‘말씀’이어떠한환상에서비롯한건아닌지,심리상담이나명상이진정한위안을가져다줄수있는지묻는작품을담았다.

1부에수록된두편의소설에는잠들지못하는인물들이등장한다.이미상의「상담방랑자」에서‘나’는상담과명상,동료‘환자’와의만남을거치며정신건강의거처를찾아다닌다.소설은‘고백―저항―수용―확장’의빤한사이클을순환하다가자신의이야기를털어놓는‘환자’의고백과함께다시시작된다.임솔아의「퀘스트」에는캠핑을떠나는네친구가있다.이들은“무슨얘기라도좋으니아무얘기나계속들려달라고”부탁하고,캠핑장에서도“어떤얘기라도나눠야할것같”은불안을느낀다.눈을감지못하는이들에겐쏟아지는걱정을소화시키기위한고백또는이야기가필요하다.

이어지는두편의시중김리윤의「조명하지않는빛」은눈을감아도언제나환한방에있는인물들을그린다.끊임없이고해상도의디테일을바라봐야하는피로속에서,보기를중단함으로써그것을극복하기보다끝까지봄으로써얻게되는새로운동력을상상한다.박세미의「아사나를향하여」는“따라하다,라는수행이난무”하는시대에무엇이든너무쉽게이뤄지는화면속의세계까지신체의일부로감각한다.눈빛의단순성끝에따라오는고요하고도고유한합일의세계를기다린다.

2부소진된인간─서이제손보미위수정강성은송승언

‘소진된인간’은들뢰즈의에세이에서따온제목이다.들뢰즈에게‘피로’가무언가를실현할수없는상태라면,‘소진’은더이상아무것도가능하지않은상태다.이책의바탕이된전시제목〈전자적숲;소진된인간〉이‘MeditationonYoutube(유튜브에서명상)’로번역되었듯,2부의인물들은자신을둘러싼세계의가능성을무화시키기위해‘유튜브’라는거대플랫폼으로상징화된유희에천착한다.

서이제의「더멀리도망치기」에서‘나’는폭력적인인물‘종’으로부터도망치는대신,유튜브쇼츠영상을밤새재생한다.이소설에서‘쇼츠감상’은극심한스트레스상황에서목적없는행동을반복하는동물의정형행동에비유된다.손보미의「빚」과위수정의「제인의허밍」은인기유튜버와그들의‘친구’가번갈아화자로등장한다.「빚」의‘그녀’는유튜브채널명‘하나의완전한삶’과다를바없는옛친구의모습이자신에게빚지고있다는사실에묘한우월감을느낀다.반면,「제인의허밍」에서유튜버로활동중인‘한나’는영상속의자신이친구‘규희’의모습을흉내내고있는건아닌지의식한다.두소설의초점화자는다르지만,각작품에서‘그녀’와‘규희’의존재는마치카메라를연상시키는또하나의‘렌즈’가되어유튜브프레임속의공간을재프레임화한다.

세작품에등장하는‘소진된인간’의초상은다음두편의시를통해모든것이소진된이후찾아올새로운가능성으로나아간다.강성은의「미니멀라이프」에서인간조차제거된무인無人세계의‘나’가“비로소숨을쉬”게되자“손톱과모발이무섭게자”라는장면은송승언의시에서“주어진삶을끝까지누리”며“우리의세상을위해서죽어갑시다”하고촉구하는대목과궤를같이한다.송승언의작품은「영원의고향같은숲,옛친구,그리고음률이붙지못할다크포크DarkFolk를위한몇편의짧은시」라는긴제목아래여섯편의작은시를묶었다.

3부어두운곳에서홀로─김연수한유주안미린이제니

3부의제목은‘어두운곳에서홀로’이다.모든것이소진된공간은어둠으로가득하다.‘명상(冥想)’의사전적의미는‘고요히눈을감고깊이생각함’이다.이어둠속에서무엇을볼지는오로지관객의선택에달려있다.

김연수의SF소설「신의마음아래에서」는‘명상’의거리두기방식을차용해,몸과분리된‘인공마음’개념을만들어낸다.밤하늘에오로라가관측된후로,피해자의치료를돕기위해복원된범죄자의마음이초기화된다.그마음을찾아내고제거하려는과정을통해,우리의마음이타인의행동과결부될때이뤄지는연대의방식을강구한다.한유주의「작별하는각별한사람들」은새벽녘의어스름한풍경속에서저도모르게만나고스치고그리하여영원히작별하는인물들을그린다.정처없이흐르는시선으로아슬아슬하게외줄타기를하듯살아가는우리곁의평범한이들을좇는다.

3부를맺는두편의시는어두울때더욱선명해지는과거-현재-미래의시간을그린다.안미린의「첫눈의미래」에서화자는“불을켜지않”고“생일을기다”린다.암흑속에서하얀케이크위에서있는촛불의이미지는“어둠에매설된작고우주적인빛”처럼다가오는미래를예감한다.한편,이제니의「맑은물은맑은물을만진다」는눈을감고호흡에집중하는장면에서시작한다.반복되고변주되는문장들속에서‘나’와내안에서태어난타자들이무한히서로를되비추는모습은모든것이‘나’에서출발한다면,모든것이연결되어있으리란감각으로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