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그녀를슬픔으로이해할겁니다.”
부영사는말한다.
‘고통’이라는이세계를가로지르는3악장의불협화음!
마르그리트뒤라스의작품세계를관통하는
상실과파괴,외침과눈물의서사
세세계,세인물,3악장의불협화음
작품에는철책밖의걸인소녀,철책안의부영사와프랑스대사부인안-마리스트레테르,이들세인물의이야기가무질서하게,때로는서로뒤섞여전개된다.광활한평원의굶주린길위를걷는소녀는어린나이에애를배고집에서쫓겨났다.그녀의가장큰기능은‘길을잃기위해’걷는것이다.굶주림에허덕이며아이를백인에게팔고,기억도길도잃은채음식쓰레기가풍성한대사관철책에도착한다.그녀는마침내걸인과문둥병자의무리에서구분되지않는,익명의‘그녀’가된다.
이들무리와단절되어보호철책안에갇힌백인사회에는무수한소문을나르며정보와서술을일부담당하는익명의‘그들’로구성된또다른무리가있다.그들은문둥병을두려워하며원주민과의어떤접촉도시도하지않는다.때로는호기심으로,철책앞까지가는백인들도있으나혼비백산해도망쳐되돌아온다.그들의관심은추상적이고접촉이없다.
상호침투가불가능한두세계에접촉과소통을시도하는인물들이있다.라호르의샬리마르정원에무리지어있는문둥병자들에게총질을해캘커타로불려와다음임지를기다리는프랑스부영사장-마르크드아슈.그는익명의백인무리가철책밖의세계만큼이나도외시하며피하는인물이다.끝으로중년여인안-마리스트레테르.대사관저의남은음식물을철책밖걸인들을위해내놓으라고지시하는대사부인이자두딸의엄마이며,무수한연인과친구를둔신비한여인이다.
이세인물은제각기,그러나철책을넘어타자에게향한다.걸인소녀는백인사회의심장에까지들려오는외침으로,부영사는총질로,안-마리스트레테르는남은음식물을철책밖으로내어놓는행위로혹은백인사회로부터스스로를소외시킴으로써.이셋을연결짓는표면적유사성은거의없다.서사적얼개가이셋을묶는다.이무질서에질서를부여하고,상이한세인물사이에근본적유사성을추출해내는것은독자의몫이다.
이세인물은각기하나의악장을이룬다.걸인소녀가자기상실로가는보행이만들어내는단조로운행진곡,파괴적행동을예고할듯내지르는광시곡에가까운부영사의고함,그리고안-마리스트레테르Stretter의이름에이미내포되어있는둔주곡strette.이음악들은독서내내번갈아돌림노래처럼독자들의귀에울린다.
고통이라는우주,상실과파괴와눈물의이야기
『부영사』는뒤라스전공자이자프랑스문학연구자,소설가최윤의번역으로1985년국내에처음소개되었다.소설가최윤이우리말로옮긴단하나의문학작품이기도한『부영사』는요즈음에맞게번역을전면수정,새로운옷을입고독자들앞에선보이게되었다.특히역자는이작품에대해작가의내면과외면,과거와미래의작품,개인성과역사성등“한쪽에서다른쪽으로넘어갈수있는,다른쪽에서들여다보아야이쪽이보이는,그러나통과해야만양쪽이다보이는창틀”이라고평하기도했다.
실제로뒤라스글쓰기의후기적특성이부각되고있는이작품에서부터서사는파편화되기시작한다.작품속그누구에게배당되어도상관없는동일한문장들이끊기거나조각나반복되는가하면,질문은던져지나대답은돌아오지않는다.말없음표,침묵,짧은문장,띄엄띄엄이어지는느린리듬의행들.시각적으로도점차비어가는혹은정화되어가는뒤라스의언어를독자들은확인할수있다.
이처럼작품의언어와구조가빚어내는의도적인모호성과혼란은세주인공의교집합이얼핏없는것처럼보이게도만들지만,오랫동안뒤라스의작품세계를관통해온주제들을여러각도에서흥미롭게드러내고있다.그러나『부영사』이전작품들에나타나는뒤라스의인물들이존재의고통을일깨우는사건들을통해새로운인식에눈을뜨며존재적변화를겪었다면,이작품의세주인공은모두나름의고통스러운과거를지니며삶의모든것을재로만드는그고통이라는화재현장에서빠져나왔다는공통점이있다.그리고그들은인도차이나라는작품의배경이자,그배경으로상징되는존재적·세계적고통과마주한다.그렇게작가는이작품이정치적소설이자존재적가치관의소설로서읽히기를요청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