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zeppa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7

Mazeppa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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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안

저자:김안

1977년서울에서태어나인하대학교한국어문학과및같은대학원박사과정을졸업했다.2004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아무는밤』등이있다.김구용시문학상,현대시작품상,딩아돌하우수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Mazeppa|시인의말|코케인|말과고기|신년회|여닫이문|뒤풀이|무의식|피붙이|피붙이|당신의눈먼아들이되어|그누구도죽지않았네|천장天葬|끽다거喫茶去|입춘|백수광부|귀신의맛

2부
붉은귀|귀신통|종언기|동백|유전|아오리스트|대학시절|눈이야기|카스토르|물과자전|Purgatorium|죽음의집의기록|우연|젖은책|마흔|이문장을끝내지못한곳에서|엘레지

3부
우나코르다|마중|도깨비불|기일|엠페리파테오|소리경|불이과不貳過|간절곶|여름의빛|마차타고고래고래|숭고|회문|마음전부|선으로부터|니힐리스트|대설大雪

해설
연옥煉獄으로의한걸음·류수연

출판사 서평

“나는실패하고,
나는전진하기에,
이것은나의몫이므로.”

세상의고통을받아쓰는시인의숙명
익숙한지옥에울려퍼지는광기의노래
김구용시문학상·현대시작품상·딩아돌하우수작품상수상시인김안의네번째시집

2004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해올해로시력20년을맞이한시인김안의네번째시집『Mazeppa』가문학과지성시인선597번으로출간되었다.문단의유행이나세간의기조에연연하지않고자기만의속도로정직하게써내려온50편의시를3부로나누어묶었다.마지막부에수록된「숭고」는“꾸밈없는언어로현실을직시하며세계와인간존재에대한근원적성찰을보여”준다는평과함께딩아돌하우수작품상을받은바있다.2000년대초치열하고관능적인언어실험을선보이며문단에데뷔한젊은시인.세계와불화하는자아로서자폐적인절망을쏟아내던소년은어느덧중년의사내가되어“피와먼지가엉긴거울들로가득한방”(「아오리스트」)에서서스스로를마주한다.
이번시집의표제작이자서시의자리에놓인「Mazeppa」는우크라이나의독립영웅,이반스테파노비치마제파IvanStepanovichMazepa의삶위에시인의얼굴을겹쳐놓는다.귀족가문의견습기사였던마제파는백작부인과금지된사랑을나눈죄로광야에버려졌으나,오직광기만으로살아남아두고두고회자되는전설적인영웅으로거듭난다.그러나이시에서새로씌어진마제파의서사는위인의일대기라기보단나약한한사내의이야기에가깝다.이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류수연은그것을“항상실패하지만,그럼에도전진해야하는숙명을지닌자,바로시인자신의얼굴”로읽어낸다.가장깊은바닥까지파고든자만이볼수있는풍경,시인김안이도달한지옥이이곳에펼쳐진다.

“나는나의귀로듣는다,모든마음이내것인양”
듣는몸으로대신말하는사람

나는듣는다,
토끼가겨울나무를파먹는소리,
얼어버린눈동자가물결처럼갈라지는소리.
나는듣는다,술로
연명하다굶어죽은시인의창밖으로계절처럼
전진하던기차소리,
그소리에밤하늘의불꽃이흔들리고,
낭만과폭력을구분하지못하던시절과,
죽은이의입속으로들어가는벌레의날갯소리,
듣는다,
음독이묵독이되는소리,
기억을잃은이들이거울앞에서는소리,
―「Mazeppa」부분

앞선표제작에서“나는듣는다”로시작하는반복적인선언은,말의관절을비틀며유례없고파격적인언어를구사해온시인의발자취를떠올릴때다소놀라운변화다.그는“내질문들은자꾸만어리석어지고,어리석어지니입을틀어막”(「뒤풀이」)기로결정한듯이“입을다물고입속으로들어가다시입을다문채”(「젖은책」)가만히들을뿐이다.“언어의팔을휘두르는게한때제직업이었”던시인은이제“나는나의귀로듣는다,모든마음이내것인양”(「Mazeppa」)듣는다.
그말들의행방이궁금하던차에시시각각변하는신체들이눈에띈다.이시에등장하는화자의몸은불현듯늘어나고(“여보,나는당신을생각하며조금더길어진다오”,「백수광부」),움푹패거나부풀어오르며(“움푹팬얼굴에손을넣었더니아무것도없었다”,「코케인」),짐승의신체부위가몸의일부가되기도한다(“머리에솟은부드러운뿔을기르며”,「아오리스트」).시인이들은말들이그의몸에흡수되고뼈와영혼에각인된다.그리하여신체의일부가된다.그가시집에부려놓은말들은외부의말에대한내부의현상학인셈이다.
이렇듯타인의말을먹고태어난김안의화자들은시와생활사이에몸을반쯤걸쳐둔채로삶을조망한다.「여닫이문」에는번잡한술자리를벗어나밖으로나가던중문사이에낀화자가등장한다.“문은정확히내몸을길게반으로갈라놓고선꿈쩍도하지않”는다.이러한처지는“서로밀어주지못할바엔조금씩나누면서살아야”겠다는체념혹은깨달음으로이어진다.「소리경」에서그의몸절반은생의“한때들”을쏟아낸다.때로는흐리고,때로는비바람이부는“한때들이만드는,한떼의폭음”을듣는다.“되뇌는건내가아닌광기의몫”이기에시인은그것이“텅빈소리뿐”이라할지언정다시들을수밖에없다.

“이것이끝나지않을것이라는사실은이미알고있다”
광야로나아가는아늑한광기

시와삶,삶과시사이의위태로운균형감각은술에취해휘청휘청걷는사람을연상시킨다.“사람이었듯시인인”화자는“서로의술잔을채”(「코케인」)우며흥청망청취한다.마치맨정신으론살기어렵다는듯이“취해나뒹굴며황망하게흘러”(「입춘」)다니며부끄러움을잊으려한다.이러한술자리는그에게일상의이면에감춰져있던지옥을자각게한다.“돼지속살이타오르는리듬에/부딪는술잔”(「시인의말」)을마주하거나“기름진테이블에둥글게모여앉아”(「뒤풀이」)“고기나뒤집다가마흔이넘”(「말과고기」)어버린사내는당면한현실의문제를잊기위해술을들이켜지만,오히려그곳에서지옥의민낯을더선명하게목격할뿐이다.
철없던소년은성장하며세계의진의를의심하게된다.지난시절의야욕은사그라들고사랑했던사람은남이된것만같다.시인은그럼에도쓰는수밖에없고,쓰는것밖에할수없는스스로를낯설어한다.“이또한사랑이고삶이라고해봤자/변명과술수로한없이/부끄러운연옥일뿐이라서”(「시인의말」)한없이회의하고괴로워한다.그로인한부끄러움과죄책감,분노와환멸은은은한광기로변모한다.그는“생활,생활속에서그저용서받는광기만을/아늑한광기만을구하고있었”(「소리경」)다며반성하지만,그것은동시에여전히남아있는광기의흔적을보여주는것이기도하다.이번시집『Mazeppa』는바로그광기를되찾아가는여정을담고있다.
그의곁에는딸이자라고있다.시인은딸과함께산책길을걷는다.길위의수많은죽음앞에사로잡힌그와달리,어린딸은있는그대로그것을받아들인다.절망의광기에사로잡혔던시인은그런딸의손을잡고다시지옥의문을열어젖힐용기를얻는다(“울던딸아이를달래그네에태우고힘껏밀다보면집집마다뿌옇게등켜지고”,「이문장을끝내지못한곳에서」).아빠와나란히앉아아는“이름들”과“이름모를것들을”(「간절곶」)적는어린딸의모습에서한때시인의것이었던얼굴이겹쳐보인다.언제나어린아이의눈으로세상을바라보는시인,길들지않는귀로타인을듣고자하는시인김안.그의시는오래오래광야를누빌것이다.

바라보는일은끝나지않을것이다.놀이터에서뛰어노는아이들,개를데리고산책을나온사람들,아이의무릎에난흉터,잠든아내에게붙어있는생활의악몽,겁먹은채부유하는흰종잇조각들,그입구에서동동거리는내뒷모습.빗소리거세지고잠이오지않아서유일한바깥인양책을펼치면,난이미비의어두운눈.이것은끝나지않을것이지만,마음전부로눈먼비유하나얻고돌아와반듯하게누우면,

마음을다쏟은어리석은귀신이내옆에물처럼하얗게누울것이다.
―「마음전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