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삶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8

순진한 삶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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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얼마나 아름다워 아무것도 아닌
이 모든 거짓말과 옛날이야기 들”
끊임없이 재생되는 아름다운 지옥의 시간
막다른 경계에서 미래로 확장되는 사랑의 굴곡

우리, 소설처럼 죽을 수 있겠니/복잡 미묘하게, 어쩌면 단순하게/기괴하게, 산뜻하게/ 모두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가지/그것은 축복일까
-「카페 ‘편집’」부분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국 시의 또 다른 마녀’ 장수진의 세번째 시집 『순진한 삶』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시인은 “강력한 자기파괴적 힘을 발”(문학평론가 이광호·강계숙)한다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격정적인 언어를 통해 내면의 순수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해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지난 자취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아름다움, 사랑, 죽음, 자유, 인간의 민얼굴 등과 같이 그가 열망한 것들에 관한 진솔한 감정을 여러 화자의 목소리로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2부로 엮인 총 60편의 시에서 내면의 감정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쉽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졌고, 다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들여다보는 순진하고도 용감무쌍한 마음은 한층 더 격정적으로 다가온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윤경희 평론가는 “어느 특정한 시간대에 진자의 진폭을 고정시키고 그것의 감각을 재차 확인”하며 “저물녘의 세계에 고유한 풍경을 층층이 인화해나”간다고 말한다. 시집의 첫 시 「불과 장미」속 “파티에는 언제나 도전적인 측면이 있”다는 시구로 그 서막이 열렸음을 알린다.
저자

장수진

저자:장수진
시인장수진은2012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사랑은우르르꿀꿀』『그러나러브스토리』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전율과휴식
불과장미|밤의기원|전율과휴식|기중기에매달린중산층모임|악마는시를읽는다|겁먹은개|도망쳐|보호와교육|개헤엄|그는프롤로그이며에필로그이고|무사|강을따라생선을먹으러갔다|막사의시간|당신은당신의것|사랑은거실의것|빛의방문|로콘트라스트|달의표적|통곡의나무|진지한행동|애정어린도살퍼포먼스|화해|아픈사람|타입|가여운눈보라|입속스콜|단순한공놀이|할퀴|당신을어쩌죠|카페‘편집’|소설인간|앙코르TV문학관|영화를만드는법

2부순진한삶
순진한삶|상담사와의추억|매|안타까운헛소리|주인없는모자|호시절|글로리아|구오의일기|낮의소년에게서이어지는밤|침대선생님|신경|이런질문은가능한가|새는없지만|농부혹은바울드기너씨의수상소감|대사없음|귀여운지옥|줄넘기|부탁하는마음|타인의삶|하루|졸업|청춘|소풍|작별|안락의자아래놓인발목|얼굴의저술|솔리스트

해설
저물녘의다중인화·윤경희

출판사 서평

“얼굴은모든이의완전한몰입을요청한다”─무수한경험과목소리를가진얼굴들의이면을폭로하기

“위대한예술은어쩌면그것들을그려내는것일수도있겠습니다만,인간과세계의비밀을폭로하는일에는중독성이있어서,예술은예술을갱신할뿐”
―「농부혹은바울드기너씨의수상소감」부분

장수진은시인으로등단하기전서울예대연극과를졸업한후극단골목길,크리에이티브바키에서활동한연극배우이다.무대에서강렬한캐릭터와다양한역할에자신을밀어넣어연기해온그의경험은종이라는무대위에도고스란히녹아있다.그시편들에는아무도주목하지않는배역을맡은존재들의기저를관찰하는시선이있다.

「그는프롤로그이며에필로그이고」에서‘그’는군중이자자전거를타는사람이며구두이기도하고수선공이기도하고늙은소년이기도하다.또한“아무것도훔치지않고생각에잠기는느린소매치기”이다.이낯선듯익숙한이는“엉망이고/더럽고/사랑스럽고/자유로우며/잔혹”한측면이있는데,여러얼굴과특징이혼재하는‘그’를두고시인은“인간의모든걸갖추었다”고말한다.「소설인간」에는주자창,자정을넘긴운동장,싸구려초상화가즐비한가을나무아래와같이대체로무해하게비스듬히서있는‘당신’이등장한다.그는작가의의도대로“심드렁하고/유식하고/반발심”을품고움직이는소설속인물이지만엄연히자아가있어서“용납할수없는”이야기를연기하는중에도“인간을모방하고/인간을이룩하며/무수한자를살해하고/복잡한자를요약하며/만화인간의커다란눈을/증오한다”.이시집에서자주등장하는모습중하나는의사와환자혹은내담자와의대화이다.내담자는“신이내게천국을보여준것”이라며자신이본세계에대해말하는데생각해보니“주님은아마도마일리지일가능성이있지만/나는그녀의기도를믿어의심치않”는다.악몽의연속에서이따금열리는천국을“정말갔다온사람이있”(「상담사와의추억」)다는내담자의말을헛소리로치부하지않는가하면“우린참못생겼지/그런데/신도참/잣같이생겼더군[……]어서일어나/집으로가”(「아픈사람」)라며위로한다.

자주언급되는또다른화자는‘개’이다.「겁먹은개」에서는비스듬히놓인단추그림과해독할수없는짧은언어가공포에사로잡힌개의심정을대변하고「개헤엄」에서는“물에던져진개”가“물을껴안고물을할퀴고온갖욕설과사랑을퍼부으며힘을뺀다”.「신경」에서‘개’는“인간의구역질에두드려맞”는존재로“내가살아있는한나의주인은/인간답게살지못할것이며/인간답게죽지못할것이”라고저주를퍼붓는다.“악마야/나랑놀자/우리는무직이니까”로시작해직업이나배경을아예포기하고“중대하고심오한비극”(「악마는시를읽는다」)을꿈꾸기도한다.

이밖에도『순진한삶』에는“철없는레지스탕스당원”(「화해」),주인행세를하지만주인에게서벗어날수없는모자(「안타까운헛소리」),아마추어여성영화감독(「침대선생님」),굶어죽은소년(「글로리아」),농부이자아무도주목하지않는예술가(「농부혹은바울드기너」)와같은가지각색의배역이등장한다.그리고시인은그화자들이표현하는다양한모습들에얽힌세계의“비밀을폭로하”는일을멈추지않는다.

“그는즐겼다희망없음을
그리고끝나지않을이야기를계속썼다”─사랑이라는이름의아름다운형벌을실험하기

주인공의볼품없는몸이훤히드러난그장면에서너는계급과인종에대해잠시생각했지만결국엔파도가아름답다고느꼈고,그파도만보게되었다.파도파도미도단순한멜로디를즉흥적으로흥얼거리며너는주먹을쥔채파도를이끌고가는여인의모습을보았다.―「순진한삶」부분

사랑과죽음은장수진의시세계에서가장많이등장하는단어이자빼놓을수없는관념이다.특히시인은열렬한사랑이진행되다가막다른골목에서끝을마주했을때“도처에서생태계가저물어가는징후”(해설)를예리하게포착한다.「도망쳐」에서화자는“사랑을멈출수없”고“지옥이쏟아”지는것을피할궁리없이받아들이다가다음에배치된시「보호와교육」에서“리본에목을졸”리고“속이쪼그라지도록뜨거운우유를마시며”“음악이아닌울음”을토해낸다.그럼에도다시희망을꿈꾸듯순수한얼굴로“성실한삶”과“미래를연습”한다.“물건으로둘러싸인거실을운운하는것이사랑이라면/저언덕을흘러내려도/더무서워도나는좋”(「사랑은거실의것」)다는고백은마치순진해서용감하고성실한사랑의독백처럼들린다.

여린마음으로꿈꾸던영원이사실상허상임을깨닫게되는순간,죽음을생각하는쪽으로시선을돌린다.“죽음이뭐지?/우리만나,죽어서?/사랑과영혼?/고스트?/오마이러브유어터치!”(「단순한공놀이」)라고장난스럽게떠올리는가하면“우리,소설처럼죽을수있겠니”(「카페‘편집’」)하고질문을던지기도한다.사랑의끝에떠오른죽음은‘나’를가리키는것일수도,‘당신’을향한것일수도,‘사랑’의끝임을목도한것이거나이모든것일수도있다.그무엇이든“악의도적의도없이/죽을때까지/죽일뿐”(「매」)이다.

『순진한삶』의화자들이죽음을떠올린다고해서“비탄과고통과오욕에절어”(「솔리스트」)있을것이라생각하기쉽지만“저게그뭐야,고통……이라는건가?”(「화해」)와같은무사태평한태도와혼재되어있다.「호시절」에서는“우리생에가장좋았던시절은전쟁중이었”다고말하고「작별」에서는“날아가는새에게뒤는없다”“안녕,모르는이여”라며고통의시간을추억처럼회상한다.좌절도슬픔은커녕오히려“모두가죽음에고정된채감미로운질병으로존재”(「안락의자아래놓인발목」)할뿐이다.그리고죄수는말라죽어가는수감자들틈에서“죽음의순서”를기다리는동시에“자유를느”(「구오의일기」)낀다.
「낮의소년에게서이어지는밤」속화자의꿈은“낮에는소년이었다가/어스름한밤이오면재규어가”되는것이다.다정하고순진한소년과그것을물어죽일수있는재규어를오가는이시편에는“사바?꼬망사바?위,위,농”이라는시구가등장한다.‘괜찮아?잘지내?응,응,아니’로번역되는화자의말속에서시인이“펜을쥘수없게사방으로뒤엉킨손가락들”(「솔리스트」)로써내려갔을무수한밤을상상할수있다.뜨거운낮과서늘한밤사이에서치열하게고민했던사랑이끝을앞에두고비로소완성되는삶.앞으로도시인은그오롯이“순진한삶”을아름다움으로전환하는데주저하지않을것이다.

시인의말

당신은나중에
태어날거예요
불가해한영혼을지닌채
바다로뛰어드는
마지막인간을
보기위해

홀로남은당신은
아름다운신의머리칼속에서
스스로움직이는
해변을본적있죠

2024년3월
장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