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어두운 부분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

초록의 어두운 부분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

$12.00
Description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나를 열어 당신을 맞이하는 포즈
높고 낮고 넓고 깊은 색의 끝에 다다른 하나의 색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 조용미의 여덟번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번으로 출간되었다. 고통 속에서 길어낸 상처의 미학을 선보인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2020)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1990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30여 년의 세월 동안 부지런히 쓰고 발표해온 그의 초록빛 언어는 여전히 싱그러우며 그 시간만큼 웅숭깊다. 이번 시집에서 조용미는 지극한 눈길로 무언가를 오래 바라본 자만이 그려낼 법한 생의 정취를 빚어낸다. “불을 끄고 누”워 “낮에 본 작고 반짝이는 것들”(「산책자의 밤」)을 생각하고 “꽃 진 살구나무 대신/살구나무 그림자를 유심히 본다”(「봄의 정신」). 그리하여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색에 깃든 신비함을 볼 수 있다면 더 깊은 어둠을 통과할 수 있다”(「물야저수지」)는 성찰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이윽고 스러지는 존재의 나약함 대신, “그러니/조금만 더 존재하자”(「관해」)고 다짐하는 삶의 의지가 있다.

짧고 무의미하지만 두고두고 환기되는 어떤 미적 체험의 순간이 있다. 그래서 그 무의미함이 무의미를 뛰어넘는 심미적 경험이 되는 신비한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 빈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어둠 속 폐사지의 삼층석탑, 차창으로 지나치며 얼핏 바라본 과수원의 과일을 감싸고 있던 누런 종이들이 내뿜는 기운, 그런 것들에 나는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몸서리치곤 했다. _‘뒤표지 글’ 부분
저자

조용미

저자:조용미
1990년『한길문학』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불안은영혼을잠식한다』『일만마리물고기가山을날아오르다』『삼베옷을입은자화상』『나의별서에핀앵두나무는』『기억의행성』『나의다른이름들』『당신의아름다움』,산문집『섬에서보낸백년』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분홍의경첩|초록의어두운부분|봄의정신|노란색에대한실감|다른장소|금몽암|검은맛|여름의저녁은수국의빛으로어두워지기에|격벽|붉은대나무|식물의기분|매화서(書)

2부
작약의본생담|붉은백합|연두의습관|물야저수지|작약을보러간다|서망(西望)|무화과가익어가는순간|산책자의밤|칼|봄의책력|불의숲|침묵사제|나의뒷모습

3부
파초잎에숨다|롱샹성당|매핵기(梅核氣)|숭어|초록의성분|분홍의감정|테라스의포석들|카보베르데|귀|나선형계단|초록색의자|린네의식물원|거위의수명

4부
꽃다발|은행잎이머리위로떨어질때|사막의형식|찔레꽃이데려갔다|관해|구체적인삶|달리아의붉음|모슬포|자하문밖|별의자리|북위60도|십일월|색채감

해설
색채의존재론―시적인몸에대하여·박동억

출판사 서평

나를열어당신을맞이하는포즈
세상모든색의심연끝에다다른하나의색

어둠속에서더선명해지는아름다움을노래하는시인조용미의여덟번째시집『초록의어두운부분』이문학과지성시인선602번으로출간되었다.고통의심연에서길어낸상처의미학을선보인『당신의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2020)이후4년만의신작이다.30여년간부지런히시를쓰고발표해온그의초록빛언어는여전히싱그럽고동시에웅숭깊다.오랫동안지극한눈길로무언가를바라본자만이빚어낼법한생의풍경이이번시집곳곳에도저하다.

시인의시선은근본적으로존재의색(色)을향한것이아니다.색은세상과얽히고세상을견디면서쌓이는총천연색의관계성을함축한다.그리고어쩌면시인이바라는것은그러한색채의세계를넘어서획득하는투명한몸,몸에구속되지않는몸이아닐까.그렇기에“슬픔도기쁨도아닌봄이라면이젠퍽멀리온것이다”(「분홍의감정」)라는진술은가능하다.그가떠나기를바라는장소는자신의마음이고,도착하기를바라는먼곳은슬픔도기쁨도존재하지않는무채색의마음이다.“세상의모든굉음은/고요로향하는노선을달리고있다”(「십일월」).시인이홀연히떠나닿기를바라는장소는다채로운존재의색채너머에있는투명함,즉고요이다._박동억(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