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를 맞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4

봄비를 맞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4

$12.00
Description
“이것 봐라. 죽은 나무가 산 잎을 내미네.
풍성하진 않지만 정갈한 잎을.
방금 눈앞에서
잎눈이 잎으로 풀리는 것도 있었어.
그래 맞다.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

바닥없는 열정과 응시로
삶의 처처에서 발견하는 환한 깨달음

“이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다.”
―「시인의 말」에서
저자

황동규

저자:황동규
1938년서울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영문과와같은과대학원을졸업했고,영국에든버러대학등에서수학했다.1958년『현대문학』추천으로작품활동을시작한이래『나는바퀴를보면굴리고싶어진다』『어떤개인날』『풍장』『악어를조심하라고?』『외계인』『버클리풍의사랑노래』『우연에기댈때도있었다』『꽃의고요』『겨울밤0시5분』『사는기쁨』『연옥의봄』『오늘하루만이라도』등의시집을펴냈다.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호암예술상등을수상하였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오색빛으로|히아신스|단사과|겨울나기|흩날리는눈발|봄비를맞다|이한생|마음기차게당긴곳|야트막한담장|사월어느날|불타는은행나무|터키에베소에서만난젊은이|시인삶의돌쩌귀|바가텔5|몰운대그나무

2부
여드레만에|참새의죽음|나갈까말까?|어떤9월|건성건성|옥상텃밭|코로나파편들|서달산문답|외롭다?|눈물|바닥을향하여|삼세번|2022년2월24일(목)|지문|해파랑길

3부
비바람친후|서울소식|담쟁이넝쿨|백나라다녀온후배|생각을멈추다|조각달|속되게즐기기|어떤동짓날|슬픈여우|까치|병원을노래하다|호야꽃|그리움을그리워말게|그날저녁

4부
홍천군내면펜션의하룻밤|태안큰노을|꽃울타리|해시계|흑갈색점하나|그바다|혼불|혼불2|묘비명|「나는자연인이다」|길잃은새|한밤에깨어|싸락눈|속이빈나무|뒤풀이자리에서

산문/사당3동별곡·황동규
해설/환한깨달음을향하여·장경렬

출판사 서평

“이것봐라.죽은나무가산잎을내미네.
풍성하진않지만정갈한잎을.
방금눈앞에서
잎눈이잎으로풀리는것도있었어.
그래맞다.이세상에
다써버린목숨같은건없다!”

바닥없는열정과응시로
삶의처처에서발견하는환한깨달음

“이시집의시태반이늙음의바닥을짚고일어나
다시링위에서는(다시눕혀진들어떠리!)한인간의기록이다.”
―「시인의말」에서

시인황동규의새시집『봄비를맞다』(문학과지성시인선604,2024)가출간되었다.1958년미당서정주의추천으로『현대문학』에「시월」「동백나무」「즐거운편지」를차례로발표하며등단한황동규는묶어낸시집마다특유의감수성과지성이함께숨쉬는시의진경은물론‘거듭남의미학’으로스스로의시적갱신을궁구하며한국서정시의새로운현재를증거해왔다.시집『봄비를맞다』는쉼없는시적자아와의긴장과대화속에서일궈낸삶의깨달음을시로형상화해온시력(詩歷)66년의그가미수(米壽)를두해앞두고펴낸열여덟번째시집이다.전례없는팬데믹의공포가엄습했던2020년가을의복판에전작『오늘하루만이라도』가선보였으니근4년만에다시새시집으로독자들을찾은셈이다.전작에이어이번시집역시그간꾸준히쓰고발표한시59편과함께시편편의주요한처소(處所)이자생의후반이십년가까이시인의발걸음과감각을붙잡아두고진한즐거움을안겨준공간에대한소회를담은산문(「사당3동별곡」)한편을더했다.
이번시집에서황동규는녹록지않은노년의삶을이어가는노정에도여전히시적자아와현실속자아가주고받는대화를포기하지않고생의의미와시의운명을함께묻고답하는데전력을다한다.“걸으리,/가다서다하는내걸음참고함께걷다/길이이제그만바닥을지울때까지”(「그날저녁」),“다시눕혀”지더라도“늙음의바닥을짚고일어나”(「시인의말」)이어가는것이자신의삶임을명료하게의식하는그의시는누구나열망하나쉬이넘볼수없는여유와온기와다감함역시잊지않는다.“끄트머리가확돋보이는시”(「사월어느날」)를향한한결같은열정과함께,삶에대한유쾌하면서도진지한긍정의진술이가닿는환한깨달음,“그렇다,지금을반기며사는것”(「겨울나기」)이란시인의다짐을거듭곱씹게되는이유다.

“집콕의극치는역시혼자있음.
그있음에외로움하나라도빠뜨리면/혼자없음.”
─코로나파편들의시간,막다른골목에서존재의의미를찾다

일상의이완이자또다른시와의만남을예비하는시간으로부지런히여행을챙겨온시인에게4년남짓코로나거리두기가낳은‘집콕의일상’은그끝을짐작못할긴겨울처럼예사롭지않은일격이었을터다.“[혼자]있음이[혼자]없음보다한참비좁고불편하다”(「코로나파편들」)는생각이고여가는나날,“아침이가고저녁이”와도“끊임없이이어지는무음의둔주곡”처럼“소리도빛도땜질자국도없”이“건성건성”살줄알았건만(「건성건성」)웬걸,“걷잡을수없이헝클어”(「흩날리는눈발」)지기십상인노년의삶은마스크를꺼내쓰고몇걸음집밖행보를그리는순간부터주저와응전을오가는치열함과맞닥뜨린다.그렇게나선눈길외출에서새삼바닥의맨홀뚜껑이나참새는물론이고,숱한망설임을뒤로하고집을나선시인자신을(「여드레만에집을나서며」),또떨어진꽃잎하나가물길을절묘하게막아선모습을감탄하는데서(“계속버티네!하긴버팀만으로도/이코로나세상에남아있을격갖춘게아니겠나,”)우리는황동규시의여전한생기와활력을본다.

“이런일다집어치우고싶지만/봄비가속삭이듯불러내자/
미처못나간것들이마저나가는데/어떻게막겠나?”
─술렁이는발코니의시간,바빠지는감각들,다시고르는호흡들

영하의겨울,아파트발코니에사이좋게세를든소철과알로에,문주란의바랜색과빛을우두커니바라보며적적해하던심중도잠시,붉게움튼제라늄몇송이와고사할줄로만알았던고무나무가석양을향해번쩍쳐든잎들의광경에서시인은“지금을반기며사는”삶의태도(「겨울나기」),그아름답고도절실한생의의미를환기한다.어디그뿐인가.봄가을,벚꽃과은행나무가마치불길처럼번져환하게메운덕분에“발코니에서홀린듯내다”보게되는(「마음기차게당긴곳」)오래된아파트단지는시인에게세상어느곳부럽지않은,“멍기차게때리는공간”이다.동시에“남은내삶에도혹시불길이댕긴다면”분노와섭섭함으로“헝클어진마음을정신없이태워”끝내“마음텅”(「불타는은행나무」)비우고픈희망을키우는곳이자,애당초미움이나섭섭함을고이게두지않는편이낫다는명쾌한현실인식을외면하지않는장소이다.

“뵈든안뵈든묵묵히기는몸하나하나가
오색빛새로두르게노래하시게.”
─우연이겹쳐드는산책길의시간,삶의경이로움은계속된다

“허리부실에코로나겹쳐막다른골목다된이삶”(「눈물」),“시력청력계속줄고/기억력,감탄,섬뜩하게졸았지만”(「삼세번」),끝끝내포기할수없는시인의일상이있다.거의모든집이야트막한담장과잘가꾼꽃밭을가졌던사당3동,(이제자주오르지는못해도)서달산을낀채현충원까지오고가는산책로에서보고듣고만져본아기자기한즐거움과수시로마주하는반가움이그것이다.시인의후반생과시작(詩作)둘다의중요한동력으로역할해왔음을이번시집에수록된숱한시편이생생하게증명한다.“시는시인자신의삶을형상화하는것”이며,시를완성하는과정에서“시적자아의윤리적이고미학적인면은사용하되내가삶과부딪히며생긴구체적인면을살려가는것이중요하다”(2016년호암예술상수상기념초청강연에서)말해온황동규의시론을자연스럽게떠올리게된다.“살아있는어떤것하나라도대면할수있어야/마음붙이지.//[…]조그만만남이라도산것과마주치면/생짜삶이화끈하게달려든다.”(「속되게즐기기」)
이번시집의서시로자리한「오색빛으로」는시집을통틀어서유일한미발표작이다.시인이공들여벼린가장최신의작품으로전복껍데기의이미지와운명에빗댄시(인)론으로도읽히는바,그시적사유와삶의통찰이깊고눈부시기만하다.“더낭비할것이사라진순간/몸있던자리훤히트이고/뵈지않던삶의속내도드러나겠지./[…]/뵈든안뵈든묵묵히기는몸하나하나가/오색빛새로두르게노래하시게.”

“늙음은온갖불편의집합이다.마지막으로정리할게무엇인가생각할때가되었다.
그러나지금도아침에해가뜨고아파트발코니에선꽃들이피고지고있다.
보고싶은사람들이있다.그리고시,물빛으로환한시간이.”
―「뒤표지글」에서

세월을거스를수없는시인의‘육체’는“‘휙휙돌아가는계절의회전무대나/갑작스런봄비속을/제집처럼드나들던때는벌써지났”을지모른다.그에반해시인의’정신‘은지난가을고사한줄만알았던나무가빗속에서연두색잎을터뜨리는순간을놀라움섞인반가움으로환대한다.그렇게“이세상에/다써버린목숨같은건없다!”(「봄비를맞다」)고,“지금을반기며사는것”(「겨울나기」)이야말로이한생(生),“미련없이우연을제대로누리는삶”(산문「사당3동별곡」)으로거듭나게할거라며우리마음에불을지핀다.황동규시특유의극서정시(劇抒情詩)는고목의속삭임으로도그진면모를드러낸다.“‘이런일다집어치우고싶지만/봄비가속삭이듯불러내자/미처못나간것들이마저나가는데/어떻게막겠나?’”그렇다.별것아닌사소한삶의전경은살아숨쉬는시(인)의열정으로,삶의경이(驚異)로이어진다.맞다.“늙음의바닥을짚고일어나다시링위에서는(다시눕혀진들어떠리!)한인간의기록이”(「시인의말」)숭고하지않을이유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