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리의 예술 : 역사, 미학, 시학

영화, 소리의 예술 : 역사, 미학,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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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발성영화 속에 언제나 무성영화가 있다.
이 무성의 영상은 절대 들리지 않는 소리로
진동하고 있다”
말과 침묵, 음악과 소음은 영상과 결합하여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소리의 관점에서 영화 이론을 집대성한 미셸 시옹의 결정적 작업

“미셸 시옹이 내디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영상과 소리 사이에 미리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조화는 없다는 인식이다.” 월터 머치(영화 편집자, 사운드 디자이너, 감독)

“영화의 사유에 대한 미셸 시옹의 기여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그의 작곡 작업과 이른바 구체음악에 대한 음악학자의 작업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 작곡가 경험에서 비롯된 청취 능력 덕분에 그는 소리의 각 요소를 영상과 맺는 관계에서 사유할 수 있었다.” 질 무엘릭(영화학·음악학 교수, 『영화음악』 저자)

작곡가, 음악학자,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위원이자, 영화 이론가로서 특히 영화에서 소리의 문제에 주목하며 독보적 이론을 펼쳐온 미셸 시옹의 대표작 『영화, 소리의 예술: 역사, 미학, 시학』(이윤영 옮김)이 번역 출간되었다. 『영화에서 목소리La Voix au cinéma』(1982)를 비롯해 영화를 ‘소리의 예술’로 분석하는 저서들이 영어, 독일어 등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저자 미셸 시옹은 2003년 이 책 『영화, 소리의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종합한다. 그는 이 책의 영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30년 이상 몰두한 주제, 즉 소리의 예술로서 영화에 대해 나 스스로 결정적인 책으로 간주하는 작업이다.”
130년 가까이 되는 세계 영화사에서 영화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든 혁명을 하나 꼽자면, 1927년 소리의 도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소리의 도입은 영화제작 방식부터 영화관 같은 영화 상영의 조건에 이르기까지 영화 산업을 재정립했을 뿐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수용하는 양상까지 크게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영상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일례로, 소리가 들어오면서 영화에 실제 시간이 도입되었다. 실제보다 약간 빠르거나 느린 화면이 관객의 눈에는 크게 거슬리지 않는 것과 달리, 관객의 귀는 왜곡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소리가 지닌 커다란 중요성에 비해 그에 관한 연구는 영상 연구보다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는데(“지금까지 영화 이론은 대체로 소리의 문제를 교묘하게 모면해왔다”), 소리에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한 시옹의 책들 가운데에서도 『영화, 소리의 예술』은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말과 음악, 소음이라는 소리의 서로 다른 세 양태는 각기 영상과 결합해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소리는 영상에, 영상은 소리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 영화의 소리에 관한 여러 주제를 제시하며 749편에 달하는 풍성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이 책은, 소리의 관점에서 영화사 전체를 다시 쓰는 광범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한편(1부 「역사」) 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의 문제나 목소리, 음향효과, 영화음악, 침묵까지 아우르는 소리의 차원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영화의 초상’을 그려낸다(2부 「미학과 시학」).


움직임의 기록에서 시간의 기록으로
영화의 일대 혁명, 소리의 문제에 대한 면밀한 탐구

〈새〉는 사실상 소리로 무정형의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탐색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간 영화 중 하나다. (10장 「〈새〉의 한 시퀀스를 중심으로: 덧쓰기 예술로서 발성영화」, 255쪽)

책 표지에 쓰인 이미지들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새〉(1963)에 등장하는 한 시퀀스로서, 이 책의 핵심 테제 중 하나인 ‘유성영화는 덧쓰기 예술art-palimpseste이다’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예시다. ‘덧쓰기 예술’이란 새로 기입된 것(유성영화)이 기존의 것(무성영화)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고, 기존의 것이 남아 있으면서 새로 기입된 것과 공명하는 예술을 뜻한다. 이 시퀀스를 보면, 학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멜러니(티피 헤드런 분) 뒤로 정글짐이 있다. 이 정글짐에 까마귀가 하나둘씩 내려앉는다. 영상은 멜러니와 정글짐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정글짐이 까마귀 떼로 뒤덮인 후에야 멜러니는 상황을 알아차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퀀스 내내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뿐 새들의 날갯짓 소리도, 새들을 보고 놀란 멜러니의 절규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영상에서 암시되는 날갯짓 소리와 절규를, 즉 “유성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소리, 사람들이 절대로 구체적으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이는 관객이 “영화가 암시하는 모든 소리를 꿈꾸고 이를 자기 안에서” 듣던 무성영화 시기의 관람 경험과 이어진다. 관객은 영화를 자기 방식대로 완성한다. 그저 소리를 암시하기만 했을 뿐인데도 실제로 ‘들었다’라고 여기며, 소리가 덧입힌 정보를 영상에 투사해 자신이 ‘보았다’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소리와 영상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유성영화의 효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우선 관찰하는 것이 청각예술로서의 영화를 재발견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보아야 하는 것과 들어야 하는 것의 관계에 […] 끊임없이 놀라고, 때로는 여기서 웃고, 아니면 단순하게 이를 다시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 타티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속한다. 그리고 관객, 연구자, 감독으로서 우리는 타티와 같아져야 한다. 어떤 것도 우리에게 진부하게 나타나서는 안 된다. (11장 「타티: 암소와 음매 소리」, 293쪽)

한편 ‘덧쓰기 예술’ 테제는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테제인 ‘소리는 영상에 시간성을 부여한다’로도 이어진다. 무성영화에서는 연이어 나오는 숏들의 선후 관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이 숏들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시간과 무관하게 나열되거나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소리는 이 숏들 사이에 시간적 선후 관계를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무성영화의 모호한 관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는다. 즉 숏과 숏이 동시에 일어난다고도, 하나가 다른 하나 뒤에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는 모호한 예술, 한편으로 이 모호함을 특성으로 삼는 덧쓰기 예술이 유성영화라는 흥미로운 역설을 펼쳐 보인다.


영화에서 소리를 재발견하기

이 책의 논의는 특정 미학 이론이나 정신분석 같은 추상적 논리에서 연역되기보다는, 영화사를 이루는 영화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 사례들을 포괄하는 적절한 이론적 성찰로 도출된다. 저자는 이 책의 영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처음부터 내 방법은 관찰이었다. […] 이 책에 나온 어떤 아이디어도 엄청난 양의 예를 놓고 검토하지 않은 것은 없다.” 더구나 여기서 다루는 영화들의 긴 목록은 기존 영화 이론들이 ‘걸작’으로 간주해온 작가감독들의 작품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청각의 풍부한 작용을 보여주는 상업영화의 창의적 성과도 마찬가지로 주목하는 이 책은, 영화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두텁게 검토할 뿐 아니라 소리를 중심으로 다시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뒷부분에 수록된 「용어 해설집」에는 110개에 달하는 용어가 소개된다. 대다수는 저자가 새로 제안한 용어들로서, 영화의 소리 연구가 그간 영화 연구에서 부차적으로 여겨져 이를 충분하게 기술하는 용어나 개념이 부족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또한 유성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감독과 작품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논하는 일곱 개의 장─채플린(2장), 비고(4장), 타티(11장), 히치콕(17장), 웰스(19장), 타르콥스키(22장), 오퓔스(25장)─에서는 소리의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들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저자

미셸시옹

저자:미셸시옹
작곡가,음악학자,영화비평가,영화이론가.프랑스크레유에서태어났으며베르사유음악원과파리음악원에서음악교육을받았다.프랑스국영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ORTF내에서피에르셰페르가이끌던‘음악적탐색그룹’에참여하면서작곡가로활동하는한편,100편에이르는음악비평을발표했다.1981년부터『카이에뒤시네마』를통해영화비평을시작했다.『카이에뒤시네마』의편집위원(1982~87),파리3대학(소르본누벨)영화학과교수(1994~2012)등을역임했다.
구체음악작곡가로서「소리의수인」「성앙투안의유혹」「땅의미사」「계시」등을작곡했고,음악학자로서『피에르앙리』『낭만주의시기의교향곡:베토벤에서말러까지』『소리를내는대상들안내서』등의책을펴냈다.『카이에뒤시네마』『브레프』『포지티프』등의영화전문잡지에350편가량의영화비평을발표하고,탁월한작가감독을다룬책『자크타티』『데이비드린치』『스탠리큐브릭』『안드레이타르콥스키』등을썼다.특히소리의예술로서영화에접근하는『영화에서목소리』『영화에서소리』『오디오-비전:영화에서소리와영상』『영화에서음악』등을통해국제적인명성을획득했다.

역자:이윤영
영화학자.연세대학교커뮤니케이션대학원영화전공교수.「덧쓰기예술,몽타주,멜랑콜리:장-뤽고다르의〈영화의역사(들)〉」등의논문을썼다.옮긴책으로로베르브레송의『시네마토그라프에대한노트』,크리스마커의『환송대』,자크오몽과미셸마리의『영화작품분석의전개(1934~2019)』등이,엮고옮긴책으로『사유속의영화』가있으며,지은책으로『우리를읽은책들』(공저)등이있다.

목차


서문

1부역사
1장영화가듣지못했을때(1895~1927)
2장채플린:발성으로가는세걸음
3장발성영화의탄생인가,유성영화의탄생인가?(1927~1935)
4장비고:질료와이상
5장‘텍스트-왕’의지배(1935~1950)
6장바벨탑
7장시간이견고해지는데는시간이얼마만큼필요할까?(1950~1975)
8장감각적인것의귀환(1975~1990)
9장스피커의침묵(1990~2003)
10장〈새〉의한시퀀스를중심으로:덧쓰기예술로서발성영화

2부미학과시학
11장타티:암소와음매소리
12장실망한,요람주변의요정들
13장분리
14장실재와그려내기
15장세가지경계
16장시청각적프레이징
17장히치콕:보기와듣기
18장열두개의귀
19장웰스:목소리와집
20장말하는기계
21장얼굴과목소리
22장타르콥스키:언어와세계
23장다섯개의권력
24장신은디스크자키다
25장오퓔스:음악,소음,말
26장빗속의눈물처럼

용어해설집
간략한참고문헌
사진설명글
옮긴이해제
찾아보기(인명)
찾아보기(영화명)

출판사 서평

움직임의기록에서시간의기록으로
영화의일대혁명,소리의문제에대한면밀한탐구

〈새〉는사실상소리로무정형의것을표현하고자하는탐색을가장멀리까지밀고간영화중하나다.(10장「〈새〉의한시퀀스를중심으로:덧쓰기예술로서발성영화」,255쪽)

책표지에쓰인이미지들은앨프리드히치콕의영화〈새〉(1963)에등장하는한시퀀스로서,이책의핵심테제중하나인‘유성영화는덧쓰기예술art-palimpseste이다’를뒷받침하는중요한예시다.‘덧쓰기예술’이란새로기입된것(유성영화)이기존의것(무성영화)을완전히대체하지않고,기존의것이남아있으면서새로기입된것과공명하는예술을뜻한다.이시퀀스를보면,학교놀이터벤치에앉아있는멜러니(티피헤드런분)뒤로정글짐이있다.이정글짐에까마귀가하나둘씩내려앉는다.영상은멜러니와정글짐을번갈아보여주는데,정글짐이까마귀떼로뒤덮인후에야멜러니는상황을알아차린다.

흥미로운점은,이시퀀스내내학교에서흘러나오는아이들의노랫소리가들려올뿐새들의날갯짓소리도,새들을보고놀란멜러니의절규도들리지않는다는것이다.그렇지만사람들은영상에서암시되는날갯짓소리와절규를,즉“유성영화에서나오지않는소리,사람들이절대로구체적으로들을수없는소리를듣는다.”이는관객이“영화가암시하는모든소리를꿈꾸고이를자기안에서”듣던무성영화시기의관람경험과이어진다.관객은영화를자기방식대로완성한다.그저소리를암시하기만했을뿐인데도실제로‘들었다’라고여기며,소리가덧입힌정보를영상에투사해자신이‘보았다’라고여긴다.그렇다면소리와영상이결합해만들어지는유성영화의효과를당연한것으로받아들이지않고,거기서무엇이일어나는지를우선관찰하는것이청각예술로서의영화를재발견하는출발점이라할수있다.

보아야하는것과들어야하는것의관계에[…]끊임없이놀라고,때로는여기서웃고,아니면단순하게이를다시발견하는사람들이있다.[…]타티는바로이런사람들에속한다.그리고관객,연구자,감독으로서우리는타티와같아져야한다.어떤것도우리에게진부하게나타나서는안된다.(11장「타티:암소와음매소리」,293쪽)

한편‘덧쓰기예술’테제는이책의또다른핵심테제인‘소리는영상에시간성을부여한다’로도이어진다.무성영화에서는연이어나오는숏들의선후관계가모호한경우가많아서,이숏들은연속적이라기보다는시간과무관하게나열되거나‘동시에’일어나는것으로이해될수있다.소리는이숏들사이에시간적선후관계를만들어내지만,그렇다고무성영화의모호한관계를완전히대체하지는않는다.즉숏과숏이동시에일어난다고도,하나가다른하나뒤에일어난다고도할수있는모호한예술,한편으로이모호함을특성으로삼는덧쓰기예술이유성영화라는흥미로운역설을펼쳐보인다.

영화에서소리를재발견하기

이책의논의는특정미학이론이나정신분석같은추상적논리에서연역되기보다는,영화사를이루는영화들을구체적으로검토하고이사례들을포괄하는적절한이론적성찰로도출된다.저자는이책의영어판「서문」에서다음과같이쓴다.“처음부터내방법은관찰이었다.[…]이책에나온어떤아이디어도엄청난양의예를놓고검토하지않은것은없다.”더구나여기서다루는영화들의긴목록은기존영화이론들이‘걸작’으로간주해온작가감독들의작품들에국한되지않는다.시청각의풍부한작용을보여주는상업영화의창의적성과도마찬가지로주목하는이책은,영화사가어떻게흘러왔는지를두텁게검토할뿐아니라소리를중심으로다시사고할수있게해준다.

뒷부분에수록된「용어해설집」에는110개에달하는용어가소개된다.대다수는저자가새로제안한용어들로서,영화의소리연구가그간영화연구에서부차적으로여겨져이를충분하게기술하는용어나개념이부족했다는문제의식에서만들어졌다.또한유성영화의진수를보여주는감독과작품을선별해집중적으로논하는일곱개의장─채플린(2장),비고(4장),타티(11장),히치콕(17장),웰스(19장),타르콥스키(22장),오퓔스(25장)─에서는소리의차원에서주목할만한지점들을한층더깊이있게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