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없는 밤

우리에게 없는 밤

$15.43
저자

위수정

저자:위수정
2017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중편소설「무덤이조금씩」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은의세계』가있다.

목차


아무도
오후만있던일요일
제인의허밍
우리에게없는밤
몬스테라키우기
플로투,너의검은고양이
멜론
9

몸과빛

해설|눈만내리면평등한밤이_김형중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그곳에는지금눈이내리니?모든것을평등하게만드는눈이?
그러나여기에그런눈은내리지않을것이다”
저얼음처럼차가운취향의장벽앞에드러난폐허의자리

‘취향’은고작이별의이유나,존중하면그만인무엇이아니다.그것은강력한사회적기능을가지고있는데,계급을형성하고재생산하는일이취향의몫이다.아마도고전적인마르크스주의자라면계급이란취향이아니라생산수단의소유여부에따라결정된다고고집스레강변할지도모르겠다.그러나(그건댁들취향이고)작가위수정에게취향은그와다르다.위수정에따를때취향은넘어설수없는계급간경계를확정하고유지시킨다.
-김형중,해설「눈만내리면평등한밤이」(p.365)에서

이번소설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형중은위수정의소설에따르면금,은,흙세계의경계를획정하고유지시키는것은‘취향’이라고설파한다.이를테면이런식이다.「아무도」의희진과「오후만있던일요일」의원희,「제인의허밍」의규희와「우리에게없는밤」의라이온퀸그리고「몬스테라키우기」의민희에서보듯,적극적으로취향을드러내지는않지만이미풍요롭고안정적인삶을누리며다른이들이따라할수없는여유가몸에배어있는금의세계사람들은오히려다른세계를욕망하기까지하지만결코자신이가진것을과감히버리지는못한다.한편「제인의허밍」의한나와같은은의세계사람들은끝없는모방으로금의세계에다가가려하지만거대한취향의장벽앞에서좌절할수밖에없다.마지막으로궁핍한삶을살아내는일이무엇보다우선과제인흙의세계사람들에겐,비슷한취향을가졌으나결국은돈문제로헤어지고마는「플루토,너의검은고양이」속동거인들처럼취향이그다지문제가되지않거나,「우리에게없는밤」의지수와「집」의화자처럼자신의폐허를다시금확인하게해주는것일뿐이다.이제각각의작품속에서,작가가깊이들여다보고묘사하는이세계속의인물들을만나보자.

「아무도」

그런식으로내가점점더외롭고고통스러워진다는것을이미알고있었다.그러나나는생각을그대로두었다.이러려고집을나온거니까.(p.14)

희진은다른남자를마음에품고남편수형을떠나혼자의삶을시작한다.하지만그남자와함께하는삶은아니다.그는자신의아내와아이를사랑하고,가족을지키고자하는유부남이기때문이다.이러한상황에도그를향한욕망을버리지못하고,그로인해더욱고통스러운스스로를방치하는희진의곁에는이모든것을알고도한결같이다정하고따뜻한부모님과남편이있다.한편희진의욕망을욕하는사람,반대로그꿈처럼모호한현실을유지하길바라는사람역시아무도없기에,희진은결국자신이원래의자리로돌아갈것임을안다.

「오후만있던일요일」

원희는불협화음에매력을느끼지못했다.기승전결이있는고전적인곡들을선호했다.그런데고주완의공연이후로달라졌다.원희는이렇게단번에취향이다른쪽으로열리는경험을해본기억이없었다.(p.59)

여유롭고안정적인삶을살고있는육십대의원희는친구수임의권유로젊은피아니스트고주완의연주회에갔다가그에게빠진다.오랜시간잊고지낸감각이살아나면서원희는처음경험하는온라인팬카페활동에활력을느끼기도하고,지금껏매력을느끼지못했던불협화음으로이루어진곡들에관심을갖기시작한다.이러한즐거움도잠시,고주완의공연후젊은여성에게경멸어린말을듣게된원희는셋째를임신중인딸과치매를앓고있는시모를둔자신의현실을자각한다.매혹적인불협화음에서빠져나오고싶지않은욕망과현실사이의슬픈간극은원희에게고통스러운일이지만,어쩐지원희의미래는고급실버타운에있는듯보인다.

「제인의허밍」

한나는잠시후면제인이된다.거울을보며입꼬리를올려보았다.입만보면사람들은한나가미소짓는줄알것이다.얼굴을상상하겠지.자신의취향에맞는눈동자와콧대와이마와……(p.90)

한나는무선이어폰으로음악을들으며공부를하는방송인‘제인의허밍’을운영하는,20만구독자를가진인플루언서유튜버이다.간혹허밍으로노래를따라부르며고급한취향을자연스럽게노출하는한나의방송은그녀에게그전과는다른부를가져다주었지만,처음부터살아온세계가달랐던규희와의재회를통해한나는다시금자신이따라갈수없는거리를느낀다.자신의것이라고생각했던고급한취향이단지흉내일뿐이라는것을확인한규희와의만남이후,한나는방송에서더욱과감한모습을보여주며자신이동경하는제인버킨의모습에한걸음더다가가려하지만그것은불가능한일처럼보인다.

「우리에게없는밤」

견고하고단단한,얼음으로만든벽앞에서있는기분이었다.그런건실제로본적도없는데.실수로손이라도닿으면얼음에손이붙어버려뗄수없는,억지로떼었다가는살갗이찢어져피를볼것이분명한.지수의내부에서빨간불이깜박였다.위험하다고.(pp.134~35)

지수는고등학교때부터재미혹은스트레스해소용으로‘조건만남’을가져왔지만,대학교2학년인지금은필요에의해일주일에한두번정도아르바이트로이일을계속하고있다.진심으로고양이들을돌보는친구은선과함께하며경제적인도움을주고있는지수는은선이그리는미래에자신이빠진것이못내서운하다.어느날라이온퀸이라는아이디로연락해온여성과고급호텔에서인상적인시간을보낸지수는은선과자신에게는평등한밤이오지않으리라는것을확신하며폐허뿐인현실의자리를확인한다.

「몬스테라키우기」

습관이라고했다.발소리를내지않고걷는것.문을세게여닫지않는것.보육원원장은정이많았으나예절교육에엄격한편이었다고했다.민희는보육원출신이라는말을누군가의입에서실제로들어본적이처음이었다.(p.168)

마약중독치료후요양을겸해해안도시의고급아파트에혼자살고있는민희는보육원출신의지역대학생한재순을룸메이트로들인다.민희는경제적인부분을책임지고,재순은집안살림을꾸리면서민희를돌보며둘은점차가까워진다.한편재순이박재희란이름으로민희의집과그외에누리고있는모든것이원래자신의것인양가장하여인스타그램에올리는것을알게된민희는처음에는그것을흥미로워하지만,어느날잠든자신의발사진과함께올라온“자본주의의개년.왜사는걸까”라는문구를본뒤알수없는배신감으로재순에게선을긋는다.박재희는인스타그램에서그문구를오타였다고정정하지만한번멀어진민희의마음은회복되지못하고,결국민희는재순을집에서내보낸다.

「플루토,너의검은고양이」

싫다……아,이것은억울함이아니라싫은감정이구나.혐오구나.(p.211)

서로를연인이라생각하지않지만생활을공유하는두사람.취향이비슷했고,어떤점에선조금어긋나도크게문제될일이없었던두사람이지만,작고검은새끼고양이를만난이후조금씩달라지기시작한다.인터넷으로주문한고양이물품이채도착하기도전에고양이는엄청난병원비를남기고떠났고,둘사이엔허공의냉기만이남았다.평소와다름없는대화끝에결국감정이격해진두사람은결국돈이야기를끝으로헤어지고만다.

「멜론」

나는숙주가된기분이야.남편의얼굴에서웃음기가사라졌다.그런말이어딨어.아니,무슨기분인줄은알겠는데그말은좀심하다.축복아,방금말은못들은걸로하자.(p.241)

마흔이넘어1년남짓의연애를한뒤새로운관계에대한호기심으로결혼을한‘나’와남편지운.함께사는생활에점점익숙해지면서결혼1주년기념여행을계획하던이부부에게사십대중반의나이에는불가능할거라생각했던자연임신이라는사건이일어난다.이일을‘축복’이라여기며모든생활을배속아이중심으로생각하게된남편과달리,‘나’는전혀예상하지못한신체적·정신적변화에큰혼란을느끼며남편에대한분노를쌓아간다.

「9」

혜신은그날자신의마음을사로잡았던그것이무엇인지되물었다.돈때문이었을까.정말로,돈때문에?(p.252)

지인들과함께놀러간스키장에서카지노에첫발을들인혜신은자신이알던세상과는동떨어진,낯선장소라느꼈던그곳에서빠져나오지못하게된다.잃은돈을되찾아본래의자리로돌아가기위한혜신의분투는절박하게발버둥칠수록그녀를더욱추락시킬뿐이다.늘잃기만하다가오랜만에돈을따는운이좋은날이찾아와도혜신은쉽사리집으로돌아갈마음을먹지못한다.

「집」

우리는너무오래한곳에만있었어.다녀오면좋을거야.달라질거야.(p.297)

빌라전세사기로집이경매에넘어간진과부모가진빚을갚는데지친‘나’는나란히회사를그만두고먼곳으로여행을떠난다.‘나’가다니던은행에서빼돌린돈으로두사람은도시와국경을옮기며여행을이어가지만,얼마지나지않아진은집에남겨진것들을걱정하며돌아가고싶어한다.‘나’는진에게돈을보냈다며곰팡이가피지않고죽은사람이없는집을얻으라고말하고,좋은집을구해놓으라는메모를남긴뒤떠난다.비행기를타고추운나라로떠난‘나’는얼어붙은호수에누워얼음아래,물속에있을것만같은자신의집으로가라앉기를기다린다.

「몸과빛」

이런순간이모두에게공평히찾아오는것은아니다.충만한삶을사는이들은좀처럼접하지못하는순간이다.(p.330)

1톤트럭에치여도로를피로적시며죽은자신의죽음을보는‘나’의모습으로소설은시작한다.유령이된‘나’는육신과기억이점점희미해지는것을느끼며,자신을친배달노동운전자의이후시간을따라간다.궁핍한삶을살던운전자는처음엔사고를낸충격으로제대로정신을차리지못하다가이내합의금에대한걱정에괴로워하고종내자신이여자를죽였다는죄책감에고통스러워한다.그모습을지켜보는것외에아무것도해줄수없는무력감에‘나’는쓸쓸히그를떠나고,빛속에몸을잃고사라진다.

계급의장벽앞에서저마다다른모양의고통을감각하며자신만의폐허를확인하는인물들의세계는다름아닌우리가살고있는바로이곳이다.작가는지금,여기,우리의밤을들여다본.모든것을평등하게만드는눈은내리지않을것이고,폐허를고스란히드러내며남의흉내일뿐인허밍만읊조리는밤을.그밤의한가운데에서내뱉는사랑한다는말은모르는단어처럼멀게느껴지겠지만,어쩌면그것이위수정식의위로일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