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폭풍

벌레 폭풍

$17.00
Description
만질 수 없어도 다다르고야 마는 사랑
존재의 마법 같은 결합을 그리는 일루셔니스트
이종산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시공간 너머 서로를 좇는 간절한 그리움
암흑을 뚫고 불을 밝히는 미래의 가족사

2012년 첫 장편소설로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심사위원 서영채·윤대녕·편혜영·권희철)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종산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벌레 폭풍』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수상 당시 “전혀 새로운 감각, 무심하지만 섬세하게 다듬어진 감성, 독특한 발성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던 작가는 데뷔 이래 소설집, 장편소설과 더불어 다수의 앤솔러지와 청소년 문학작품을 내놓으며 해를 거르지 않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벌레 폭풍』은 202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SF 단편 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의 수록작 「벌레 폭풍」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전 세계인의 전방위적인 일상에 변화를 불러왔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과 그로 인한 개인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고립의 문제에서 착안해 놀라운 상상력을 펼쳐 보였던 작가의 소설은, 장편으로 다듬어지면서 여러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각각에 대한 밀도 있는 서술이 더해져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벌레 떼로 인해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실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공간 너머 그리운 존재를 좇아 기어코 모험을 강행하는 이들의 용기는 우리 삶에서의 변치 않는 가치를 일깨워준다. 작가는 SF, 로맨스 판타지, 퀴어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오늘날 문학 시장의 큰 흐름이 된 장르소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경향신문』에 수년간 SF칼럼 〈장르를 읽다〉를 연재한 바 있다. 여러 장르를 융합해 독특한 개성을 획득한 소설가 이종산의 오래고 근원적인 주제 의식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저자

이종산

저자:이종산
2012년첫장편소설『코끼리는안녕,』으로제1회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빈쇼핑백에들어있는것』,장편소설『게으른삶』『커스터머』『머드』『도서부종이접기클럽』등이있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에필로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천재지변의불안을무너뜨리는사랑
결핍을함께견인하며성장하는공동체의역사

멀리서검은벌레떼가넘실거리는것이보였다.폭풍이몰려올조짐이었다.‘구름이아니라벌레떼때문에숲이어두운거였구나.예보에서는이틀뒤에나온다고했는데.’숲이벌레떼의그림자로어둡다는걸알게되니불안으로가슴이울렁거렸다.포포는얼른산책모드를끄고숲에서나와짐을싸기시작했다.(pp.33~34)

선물같은하루.맑고화창한날씨.잠에서깬주인공포포가아침을여는것으로소설은시작된다.그러나『벌레폭풍』에서인물들의생활은외부와단절되어있다.스크린윈도로내다보는바깥풍경은한없이아름답지만뉴스는곧다가올폭풍을예보한다.그것은비바람이아닌이미일상이되어버린벌레폭풍이다.세상을까맣게뒤덮은벌레들이전파하는병의위험성때문에통행을꺼리는사람들대신드론과자동차가거리를활보한다.가족과의산책이3차원시뮬레이션을통해이뤄지는것도익숙한현실이다.나무인형제작자인주인공포포는대학과정교육자인무이와의결혼을앞두고있으나두사람은한번도서로를직접대면한경험이없다.스크린윈도를통해서촘촘하게일상을공유하고,습관을관찰하고확인했을뿐이다.포포는‘스킨포비아’로타인과의실제접촉을꺼린다.무이와의결혼을결정하면서그가겪는두려움과불안은벌레폭풍의시대에보편적인증상으로설명된다.포포는결혼을앞두고무이와실제로만남을가질것인지,가정을꾸린후에두사람의공간을분리할것인지합칠것인지에관한고민에빠진다.반면무이는포포를실제로만나고접촉하고싶어하지만,약혼자의불안과걱정을이해하기에충분히배려하며합의하에생각할시간을갖기로한다.이렇듯이종산의소설에서인물들은환경의변화로인한생활상의여러제약을받아들이며각자의방식으로고유의생활을유지하는한편확장하려분투중이다.좋아하는일을놓지않고좋아하는사람을잃지않기위해그들은스스로의한계를지속적으로시험한다.가족일지라도연인일지라도모두다털어놓을수없는저마다의사연을지닌채.그러나궁극적으로그들이화합하는장소는사랑이약속된곳이다.밀애를속삭이던건물,사랑하는이가가꿔온성역과도같은생활공간.가치관과그에따른행동방식,표면적인말뒤의숨은의도까지,엇갈리기쉬운수많은미로를지나이종산소설속인물들은서로의마음깊은곳에천천히도달한다.

‘결혼’과‘양육’이라는생명의여정을둘러싼
자아의대범하고숭고한확장

“오늘이세상의마지막날이라면어떨것같아?”
포포가무이에게묻는다.
“상관없어.지금우리같이있잖아.그거면된거아냐?”
무이가책상의자에앉아서말한다.무이는그의자에서일어날생각이없어보인다.
“맞아.내생각도정확히똑같아.”(p.261)

소설속또하나의인물,포포의언니인민정은홀로아이를양육하며원가족내중재자를자처하고타인의상처와아픔을끌어안는다.목숨을잃을수도있는전염병에걸린애인을찾아곳곳을헤맨끝에결국만나지못하고발길을돌리지만,짧게주고받은메시지로부터‘사랑은이별을두려워한다’는믿음을확인하고새로운희망을길어올린다.도래하고야말헤어짐의순간을연기하며서로의곁을지키는것,인생의고락을최대한가까이에서수단을초월해나누는것.‘사랑’이라는두음절의단어가아쉽게압축해버린숱한사랑의장면을『벌레폭풍』은섬세하게그려낸다.
“미래에도사람은사랑을하고가족을필요로할것이라는답을냈습니다.[……]사람들은가까운존재를사랑하며살아가고,놀랍게도가까운존재만이아니라한번도본적없는먼존재들까지사랑할수있다는것”이라고‘작가의말’에서밝혔듯이종산은특유의편안하고자연스러운문체로,모두에게열린화법으로,‘사랑’이라는주제를새롭게탐색한다.친밀함은구체적이고물리적인현실을필요로하는가?접촉이담보되지않는세계에서인간의마음과마음은어떻게맞닿을수있는가?미래사회에서가족의결합이갖는의미는무엇인가?다양한질문을던지면서작가는또한발짝독자에게다가선다.소설가로서이종산이사랑해마지않는인물,민정이그러하듯“언제든불을나눠줄준비가된사람”의이야기,언제나“가슴속에하나씩살아있는불”(‘작가의말’)을꺼뜨리지않고타인을향해한걸음한걸음나아갈용기를간직한삶이여기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