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열기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7

폭포 열기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7

$12.00
Description
“완전하게 건축된 삶의 고독을 깊은 안전을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강바닥의 따뜻함을요”

수치심의 복원을 통해 껴안는 열기
천국의 바깥으로 내뻗는 눈부신 생명력
사랑의 입체를 조각하는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시적 질료를 채집해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 김연덕의 두번째 시집 『폭포 열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사랑에의 강력한 몰입과 이를 둘러싼 기표와 기의의 긴밀한 관계를 탐구한 기록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취인 첫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민음사, 2021)에 이어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폭포’라는 장대한 자연물을 주요 소재로 삼아 총 43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묶었다. 시인이 긴 시간 골몰해온 사랑의 형태는 평면적인 언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입체적인 골조를 드러낸다. 일상 세계에 공고히 활착한 언어의 바위와 뿌리를 휘감고, 곡선의 유연함으로 시적 공간을 자유로이 활공하는 사유의 실험을 읽을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 김연덕은 만드는 손과 부수는 손을 모두 가진 ‘양손잡이’다. [……] 이 사랑은 실패하지만 지지 않는다. 이미 지고 시작하는 사랑은 기껏해야 ‘조금 더’ 지거나 ‘조금 덜’ 질 뿐이다. 물론 그 ‘조금’에마저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인은 천국을 세우고 또다시 부수며 영원히 실패할 사랑을 기록할 것이다.
-하혁진, 해설 「천국을 부수는 손」에서
저자

김연덕

저자:김연덕
시인김연덕은서울에서태어나한국예술종합학교서사창작과를졸업했다.2018년대산대학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재와사랑의미래』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놀라지않는이사랑의삶
미지근한폭포
수정은아름답고,수정은정확하고,수정은승리한다
찬물처럼
생활속폭포

2부
gleamingtinyarea
여름독서
gleamingtinyarea
gleamingtinyarea
gleamingtinyarea
나의레리안
구식부끄러움
gleamingtinyarea
gleamingtinyarea

3부
폭포열기열기
gleamingtinyarea
이곳에더는나타나지않을아름다운사람을잊었다
쇠느낌이나는부분
목재느낌이나는부분
gleamingtinyarea
gleamingtinyarea
gleamingtinyarea

4부
그다지중요하지는않은한시기가뚜렷하고촌스럽게흐르는
평범하고차가운재료들로신축된가정집
무르고사적인나의방
공동빛
gleamingtinyarea
의자는
벽돌방뒤복도
잘못들
느린상처

5부
따뜻한폭포
도형이되고싶었던폭포
드라이브마이카
작은사랑의장소
未來山房
소라의성
공동거실
좋아하는생각
오케스트라

6부
폭포열기
청송얼음폭포
이구아수폭포

해설
천국을부수는손·하혁진

출판사 서평

사랑의파편이간직한광휘와생명력
천국의바깥에펼쳐진헝클어진아름다움

다시누런논밭을지나가는기차안에서그일에대해
생각하게되었다거대한
새와같았던그꽃을장식했던사람에게
쓸쓸한범죄를이해하는사람에게

나만의방식으로,섬광을일시적으로나마돌려줄수있을지모른다고
―「나의레리안」부분

시집의첫시「놀라지않는이사랑의삶」에는“관리만하고살기엔아직젊은내가”등장한다.시인이두번째시집을구상하며새롭게획득한시적장소일‘산장’을인수한‘나’,즉화자는“가만히//있어야한다는지침”을따르기엔‘젊다’.누구의명령도주문도받지않았지만,이것저것시도해보고싶은것이많은동시에결과에대한두려움역시크다.“당신의이야기가전부내것이되기엔/아직내가너무/젊지만”이라는말을덧붙임으로써“전부내것이되”지않을수도있다는,실패를염두에둔선언이눈에띈다.그렇다면이렇게질문할수있겠다.화자는왜“당신의이야기”를“내것”으로품으려는것일까?

이에대한단서처럼이어지는시들은‘수치심’에관한고백이다.모두가잠든밤,타인의눈이감긴밤에,화자는적당한밝기를구사하되의도가느껴지지않는,“고전적인/아픔을가두고있는”수정을“인공빛아래”작업대에서손본다.마치‘사랑’같아보이는것을세공하는것은“낮에는하지않는일”이다.수정을들여다보며“이런식으로나에게도거칠고아름답고/뜨거운부분이있다는것을”“노동이확인시켜주는순간이좋았”지만,“좋지만은않았”다는깨달음에화자는도달한다.스스로충분히통제할수있는전기의작동으로들어오는빛,자연이아닌인공의설정으로구현된그토록“새삼스럽고간편하”며환한공간아래에서그가느끼는감정은“현대적인아픔”이다.낮동안의수치를정교하게다듬고밀어내기위해골몰하는‘재연’의시간에살아나는감각.반면“고전적인/아픔”(「수정은아름답고,수정은정확하고,수정은승리한다」)은예측할수없으니통제가불가능하고,그어떤목적성에의해야기된것이아니며,자아에게가해진순간의충격이자습격에가깝다.본연의수정이가둔아픔이,화자를끊임없이압도하며질식시킨다.

다시돌아와서,시집전체의프롤로그격인첫시의시간적배경인‘낮’은환하다.모두의눈이깨어있는시간이다.‘수치심’이사회적맥락에서발생하는감정이라는점을고려할때낮은화자의불안을고조시키고감정을자극하는,편치않은시간대일것이다.그럼에도화자는이제조심스레진심을털어놓는다.“사실은이런낮이마음에들어”.화자는자신이인수한산장에“시공업자들”을“한데모은”다.김연덕의시에서흔하게출몰하는시적질료일그들은“어깨가넓”고“손목과손끝이특히/단단”하다는묘사에서보듯뚜렷한질감과부피를지닌채움직인다.“(안전한)서랍을놀라게하는자연이/반쯤열린삶으로/(시공업자들이착용한)오래된디자인의작업복과어깨로//내려앉”는다.안전한밤과인공의세계를떠나산장에도착한시인과산자락의자연적인작업현장에‘동의’한“시공업자들”을통해독자는새로운시적서사가도래할것임을예상할수있다.

시인은“바닥없고/사회성없는폭포이미지가”주는“이상한위안”을받아들여,자연물인‘폭포’의메커니즘을시적으로재구상한다.강물이수직으로급강하하며연출하는장관.대자연의풍경을뚫고돌연솟아난폭포의드라마틱한풍경은시집의중심에놓인다.김연덕시의화자는진짜폭포가아닌“차갑지도뜨겁지도”않은“인쇄된폭포”(「미지근한폭포」)를유심히관찰하는데에서출발해생활속여러장소를떠돌며“한낮의/현실가운데”서서“느리게흘러가는모든나의수치스러운/장면들”을목도한다.때때로진짜를가린아름다움에습관처럼걸음을멈추고매료되지만“나의피부에서부터며칠전잊었던열기”가“되살아나는것을느”(「나의레리안」)낀다.“가짜가힛힛웃으며나를/치고갔다는기분”(「폭포열기열기」)을힘껏견딘다.

김연덕은세월을품고퇴적과침식으로일어선폭포의물보라에몸을적신채,“하나쯤//몰입하고싶은//죽어서도잊고싶은것”을“하나쯤잊고싶은//죽어서도몰입하고싶은것”(「수정은아름답고,수정은정확하고,수정은승리한다」)으로치환한다.완전무결할수는없겠으나“가벼운수치심으로만움직이는장소”를찾아,“자연에기댄거짓말로느껴지지않는말들”(「gleamingtinyarea」,p.86)을찾아감행한모험.시인은안전한천국바깥으로나아가곳곳에흩어진사랑의빛을좇기로결심한다.수치심너머사랑의세계에닿기위해,“당신의이야기”를“내것”으로만들기위해.

절대적인타자성으로뛰어드는새로운자아
실패를감수하고변화를기도하는애틋한몸부림

따뜻하고
머리아픈젊은장면들

수증기와무지개가번갈아펼쳐진폭포끝까지
빛과물을뒤집어쓰며현실감
느껴지는적당한광채에나의전체를빼앗기며다른말은할필요도없어아름답게
침묵하며미친듯이
웃으며함께다다랐던느낌.거의완성될뻔한그런느낌이빠져나간

뼈.
─「폭포열기열기」부분

이번시집에는같은제목을단열한편의연작「gleamingtinyarea」가실렸다.김연덕은과거『재와사랑의미래』에서선보였듯,시집을구성하는데있어탁월한기획자이기도하다.기념품점을나와흘러흘러투명엘리베이터에탑승하기까지,연작시만을따로읽었을때화자의동선을따라가보는묘미가있다.

시인은수치심의복원을통해더멀리드넓게내뻗는눈부신생명력으로,모두를향해새롭게출현한다.그리하여단정할수없는미래의가능성에기대어본다.“나의자긍심은/때문에언제나아직오지않은미래에있다.”화자가응시하는“미래에서/조금지친채어둡고자연스러운색으로낡아가는”물건은선물받은것도,덤으로받은것도아니며,주워온것도아니다.“모든/것들인동시에”“모든것들이아니며”손에쥘때에“무언가괴롭고/정성스러운나날들이만져지는//나를향해있지는않지만이것을만든이의,누군가의세계를향한슬프고기쁜/병들고/건강한/열망의반복이흘러드는느낌”을지닌것이다.그것은고독과맞서시인이어렵게쏟아낸사랑,실체화되어손으로만져지는진실일것이다.스스로의힘으로구한이물건은“창밖으로쏟아지는어두운폭포를”보고“원하는자리에서/원하는속도로삭아”갈것이다.폭포의그림자에묻혀일순간존재가삼켜진것처럼보이기도영영사라진것으로착각되기도하겠지만,중요한것은“따뜻하”고“그리운채깨어있는”(생활속폭포」)물건의느낌이다.

“나는의도성이짙은사람”(「미지근한폭포」)이라는젊은시인의성찰에우리는깊이사로잡힐수밖에없다.“적의도/호의도없는”“이야기가없고/고통이없는”(「그다지중요하지는않은한시기가뚜렷하고촌스럽게흐르는」)외로운시간을지나그는타자의의도가충만한세계에몸을내맡긴다.“되돌아오지않는물길들을잊을수도키스를멈출수도없어”(「미지근한폭포」)시작한여행은‘놀라움’의연속이다.시인은스스로설계한안전한천국을떠나,이미지에갇힌거대한폭포를맴돌며열기를껴안는다.“미지근한온도로사랑을박제하고있다는”(해설「천국을부수는손」)생각,수치심을딛고김연덕의시는새로이솟구치고흐른다.진정한사랑에대한질문은절대적인타자성의영역으로나아간다.물과땀에젖은영혼은점점투명해지고다친손에는맑고흉한,“추하고너그러운”(「잘못들」)사랑이고인다.천국을버린대가로돌려받은“광휘와생명력”으로통증은시작되지만,해설을맡은하혁진의말처럼“사랑이천성인시인에게그것은차라리구원이다”.

시인의말

나를구하지도
버리지도않는

나의수치심

2024년가을
김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