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보다 2024
Description
'시 보다'라는 행위는
더 고요하고 격렬한 시의 세계를 열어준다.
한국 현대 시의 흐름을 전하는 특별 기획, 『시 보다 2024』가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사는 새로운 감각으로 시적 언어의 현재성을 가늠하고 젊은 시인들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기 위해, 2021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을 신설했다. 〈시 보다〉는 문지문학상[시] 후보작을 묶어 해마다 한 권씩 출간하는 시리즈로, 올해 네번째를 맞이했다.
시인(오은, 이수명, 하재연)과 문학평론가(강동호, 조연정, 홍성희)로 이루어진 심사위원은 2023년 5월부터 2024년 4월까지 발표된 시들을 면밀히 검토해 데뷔 10년 이하 여덟 시인의 작품을 가려 뽑았다. 올해 후보작은 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가나다순)의 작품들이다. 『시 보다 2024』에는 기발표작 4편과 신작 시 1편으로 시 세계 바깥의 이야기를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또한 선정위원의 '추천의 말'을 각 시인의 작품과 '시작 노트' 뒤에 배치해 시가 낯선 독자들도 접근하기 쉽도록 구성했다. 이번 책 표지는 자연의 식물을 피사체로 삼아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 독일의 사진작가이자 조각가인 칼 브로스펠트(Karl Blossfeldt)의 작품으로 「Sanguisorba Canadensis」(1928)를 앞에 「Bryonia alba」(1928)를 뒤에 배치했다. 본인이 촬영을 위해 개발한 카메라 렌즈로 식물을 30배로 확대해 작업한 그만의 독특한 작업은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들의 작업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자와 시인 사이를 잇기 위한 여러 노력을 모은 이 책을 통해 시인마다 다르게 빛나는 시적 에너지를 기쁘게 만나보길 바란다.

저자

박지일,송희지,신이인,양안다,여세실,임유영,조시현,차현준

저자:박지일
2020년『경향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립싱크하이웨이』가있다.

저자:송희지
2019년『시인동네』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있다.

저자:신이인
2021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검은머리짐승사전』이있다.

저자:양안다
2014년『현대문학』신인추천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작은미래의책』『백야의소문으로영원히』『세계의끝에서우리는』『숲의소실점을향해』『천사를거부하는우울한연인에게』『몽상과거울』이있다.

저자:여세실
2021년『현대문학』신인추천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휴일에하는용서』가있다.

저자:임유영
2020년문학동네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오믈렛』이있다.

저자:조시현
2019년현대시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아이들타임』이있다.

저자:차현준
2022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박지일
물보라
물보라
물보라
물보라
물보라

시작노트|물보라에부쳐
추천의말

송희지
루주rouge
금정포
금정포
플라시보이펙트―해병캠프
억만노크

시작노트|나,시작
추천의말

신이인
실낙원

꿈의기계
외게인의시
꿈의경계

시작노트|시작노트를폐기하는상상
추천의말

양안다
다음미래
델피니움꽃말
네가너에게너의얼굴을마음을
Queenofcups
서정

시작노트|더많은나
추천의말

여세실
방학숙제
나원래바이킹잘타
회전무대
이웃집에토끼가산다
솔의눈

시작노트|두루미의식탁여우의물잔
추천의말

임유영
연해주
담자균문
예언
묘향산
그빛

시작노트|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
추천의말

조시현
캠프파이어
듀플리케이티드
뮤리엘의일기Ⅰ―토폴로지
RGB
이집의가풍을커스텀하십시오

시작노트|접시쌓기
추천의말

차현준
붙여놓기
얼마간흘려보내보기
DDP
1인식건식사우나
왕가위

시작노트|가른밑줄너머로
추천의말

출판사 서평

〈시보다〉기획의말

시의시대가사라져버린것같던시간속에서젊은시인들과그들의낯선감각을다시읽어준독자들이출현했다는것은기적이아니다.모든헛된풍문을뚫고한국문학의심층에서는본적없는시쓰기와시읽기가끊임없이시도되고있었다.〈시보다〉는시쓰기의극점에있는젊은시언어의운동에너지만을주목하고자한다.1년에한번이루어지는이작은축제는선별의작업이아니라,한국시를둘러싼예감을함께나누는문학적우정의자리이다.우리가체험하는것은젊은시인들의이름너머에서꿈틀거리는‘시’라는사건자체이다.시인은동시대가소유한이름이아니라,동시대의감각을발명하는존재이다.시는도래할언어의순간에먼저도착해무심한표정으로우리를기다리고있다.지금‘시보다’라는행위는시‘보다’더고요하고격렬한세계를열어준다.
선정위원강동호오은이수명조연정하재연홍성희

박지일,「물보라」외

아침에일어나니날은저물었고,차조기잎만을여전히찧는엄마,못떠다니는금붕어만여전히구경하는엄마,여전히뒷짐만으로중얼거리는엄마.셀수없는엄마.너는자갈을굴리며네내장을돌아다니고,너는너를쓰면서,너를쓸수있는것은너밖에없다고착각하면서,물보라.
―「물보라」

“언어의내적파동을통해존재의떨림이라고부를수있는사건을형상화”(강동호)하는박지일의시는이번「물보라」연작을통해“시에스며있는근원적비애와에너지를동시적으로형성”(하재연)한다.당장에부딪힐것을알면서도암벽에자신을내던지는물방울처럼그의시는삶과삶아닌것의경계사이에서끊임없이물보라를일으킨다.

송희지,「루주rouge」외

형은왜정육점의고기가아닌가.
그런생각이들만큼.형은풍경속의정물혹은동물어느것도아니었고말하자면풍경의배설물같았다.
―「루주rouge」

“감각적이지만전복적이고,어떠한방향도없이자유로운활주를하지만기민한구성”(이수명)을보여주는송희지의시는독자로하여금“한번도경험하지못한과거를향한이상한노스탤지어에젖어”들게만든다.짧지만분명한서사,리드미컬한문장구조,현실과상상을전복시키는시적감수성은“우리에게알려지지않은미지의새로운서정의출현을예감”(강동호)하게만든다.

신이인,「실낙원」외

얘들아,못돼처먹은을사랑해줘
못돼처먹은은변하지않을거다
나는이아이를너희와함께둘거야
무해함을위하여
글자들이손잡는다
―「실낙원」

“솔직하고발칙하게세상을날것그대로노래하는시선의특별한매력으로가득”(강동호)한신이인시의“기이하고신비로우며어딘가천연덕스러운이야기의내부”를따라가다보면“사랑의윤리를실천해가는방법론”(하재연)을발견할수있다.자신이목도한세상과시시각각변화하는대상들을더정확하게이해하기위해일상과비일상의경계를허물어뜨리고무해한마음으로더넓은시세계를유영한다.

양안다,「다음미래」외

열차가지나간다.꿈이질주한다.선로는뜨거워진다.선로는차가워진다.열차가선로를이탈한다.꿈이주인을뒤흔든다.아이들이와르르쏟아진다.
―「다음미래」

“미시적이면서도거시적인시선이동시에스며들어”시의지평이“우리가알고있는것보다더넓고무한할수있음을보여주는”(이수명)양안다의시는“세계를멀리서바라보는자의시선으로씌어”진다.그는“인간과신,삶과죽음,어둠과빛,육체와영혼등아득한시공간을압축해바라보는자의혜안을증명할수있는관념”(조연정)들에천착해인간내면의고독을들여다보고어지러이펼쳐져있는시적아름다움이얽혀있는그물망을삶가까이끌어올린다.

여세실,「방학숙제」외

내가지어부르는노래에도바람이불어
음표가우수수떨어져내리고

옆집지붕에걸린구름의흰빛과
앞집옥상을지나는구름의흰빛의차이를구분하는게이번방학숙제
―「방학숙제」

“하얀색비둘기를넣었는데일곱빛깔롤리팝사탕이튀어나오는마술상자를선물받은것처럼,시의세계에서만가능한꿈의놀이”(하재연)를가능하게하는여세실의시는특유의천진한태도와투명하게비치는언어로독자로하여금“매일오늘의나와한움큼씩이별하고내일로나아가”(조연정)는에너지를부여한다.시읽기의즐거움과새로움뒤에찾아오는쓸쓸함까지그의시는뚜벅뚜벅상처없는선한마음으로나아간다.

임유영,「연해주」외

나의빈자루는이보다더빌수없고터진곳도구멍도많지만.나의소중한자루,꽃도빵도없지만.자루속에작은것을넣을수는없다.예컨대밀가루나곡식이나소금을넣을수는없다.큰것은넣을수있다.이를테면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라시아,유라시아대륙.그리고이글이글타오르는한마리의이구아나.
―「연해주」

“다채로운장면들을돌발적으로연결하며우리가보지못했던것들을색다른방식으로펼쳐놓는”(조연정)임유영의시는“모두가공유하는그능청을능청스럽게가리키고,거기에자신의진실을더”(홍성희)함으로써시적대상이마치우리손에닿을수있을것만같은착각을불러일으키며독특한위트를형성한다.담대하게자신만의시세계를펼쳐나가는그는커다란자루에세상모든것을담아탁월한시편들을만들어낸다.

조시현,「캠프파이어」외

사람들은마지막의마지막까지거짓말을해보기로했다멸망을속여넘길정도로그럴싸한거짓말로전부농담이될때까지

들키는사람부터뛰어들기로
―「캠프파이어」

“온마음을다해화내고울고사랑하기위해‘바깥에서보는’방법을고안”(홍성희)하는조시현의시는“멸망을향해전속력으로달음질하는현대문명을떠올리게하면서도,시를다읽고나서드는감정은기이한안도감”(오은)이다.가장먼우주에서지구를내다보며접시처럼깨지기쉬운인간의마음에온정성을다하는그의시와사랑에는어떠한한계점도존재하지않는다.

차현준,「붙여놓기」외

9999번버스를타고있었다.내릴문과가까운좌석을확보한뒤로,나는서사창작수업의지침에따라이것을짜증이아니라무슨감정으로여겨야하는건지적당한말로출력해내려던참이었다.
―「붙여놓기」

“날렵하고기민하고유연하고탄력이있”는차현준의시는“다른수사나장치보다도언어그자체에주목하게만드는것이그의힘”을가지고있다.그의시를읽는것은“엉뚱함을마주하는일이다.전혀다름,지나침,관계없음등의속성을선선히받아들이는일”(오은)인것이다.끊임없이입출력되는언어들은입력값을도출해내기위해끊임없이수다하면서도팽팽한긴장감을놓치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