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말코 (김언희 시집)

호랑말코 (김언희 시집)

$12.00
Description
“팝콘처럼 터져나갈 듯한 폭소는 포효의 대체물이다”

지상의 모순을 벗겨내 전시하는 호랑말코의 전언들
지옥을 전복하러 온 한국 시단의 메두사, 김언희의 일곱번째 시집
거침없는 에너지와 폭발하는 언어로 욕망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세태에 저항하며 올해로 시력(詩歷) 35년을 맞이한 김언희의 일곱번째 시집 『호랑말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10번으로 출간되었다. 1989년 등단 이후 일상적인 풍경에 노골적 시어, 비속어, 적나라한 성적 표현 등을 뒤섞어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은 발표하는 시집마다 문단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청마문학상, 박인환문학상, 이상시문학상, 시와사상문학상을 거머쥐는 등 한국 문단의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해왔다.
인간의 욕망을 기계로 치환해 고통과 쾌락이 육체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확인했던 첫 시집『트렁크』(세계사, 1995)에 이어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에서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거나 과민 체질인 사람’은 읽지 않기를 권할 정도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도발적인 언어를 펼쳐 보였던 시인은 이후 출간된 네 번의 시집을 거치는 동안 ‘끝 간 데 없’이 자극의 강도를 높이며 이번 시집 『호랑말코』에 도착했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시집의 제목처럼, 총 50편의 시 속에서 그는 “핸들러가/개”(「어질리티(Agility)」)인 유희적 언어를 통해 터질 듯한 고통 속 감각의 세계를 또 한번 선보인다.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가해져온 억압과 폭력의 역사가 김언희의 세계로 진입하면 고통과 동시에 폭발하는 에너지로 탈바꿈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불편하고 파격적이라면 우리가 속한 현실이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증거일 것이다. 시인은 천기누설이 숙명인 것처럼 그 고통과 에너지를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이렇게 다시, “인간의 삶과 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서 시적 구제(救濟)를 꾀한 에로와 그로테스크 미학”(시와사상문학상 심사평)의 새로운 문이 열린다.
저자

김언희

저자:김언희
시인김언희는1989년『현대시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트렁크』『말라죽은앵두나무아래잠자는저여자』『뜻밖의대답』『요즘우울하십니까?』『보고싶은오빠』『GG』등이있다.청마문학상,이상시문학상,박인환문학상,시와사상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어질리티(Agility)|녹취A-19|프랑켄후커|초량차이나타운|질문의양상|악어|팬패니스쿠스(Panpaniscus)|아비치(Avici)|그야말로|관시|밤의방파제|EndlessJazz7|지방도1018|여섯번째기도|밤의가두리에서|솔직히,

2부
천문(天問)-173|성(聖)금요일|봄밤|비커A|버퍼링|그방|웃는올빼미(Sceloglaux)|보허자(步虛子)|P.S.|렘|모지리|히포포타무스(Hippopotamus)|걷는사람|삭제하시겠습니까?|오시비엥침|통방|암혈도(暗穴道)

3부
호랑말코|그녀에게|정의의해부|카페메이지|그녀는코를골았다|각|녹취A-21|검은돛배|EndlessJazz69|지방도1021|에탕도네(Etantdonnes)|클럽양파주점에서|서있습니다|사우스림|예행|뜰앞의풍개나무|독락(獨樂)|시를쓰며인용한것들

해설
언데드의말,시(詩)·양효실

출판사 서평

“이슬한방울에도중력을행사하는치사한행성”
어그러진세계의중심에서적은해학의언어

우리가조물주의창조물일리가없다.배설물이라면모를까.우리를배설해서이황막한우주에영역표시를해둔거라면모를까.
[……]
대취해서거룩해진우주,게슴츠레한무화과의우주,뼈없는우주가말씀하신다.너희는달게빨아먹으라.이는내밑이니라.

대지의음핵을왕관처럼받들어쓰고있다.폭양속의맨드라미.
―「호랑말코」부분

표제작「호랑말코」는‘*’를동반한독립된연들이각각서로다른이미지를앞다퉈내세우며“대취해서거룩해진”화자의기세를내보인다.제멋대로인화자가사는곳에서는양쪽귀를손잡이삼으면얼굴이‘냄비’처럼보이고,“하나뿐인아들을씹도안하고낳았다고”우기면‘신’이된듯즐겁다.마치한량과고집불통사이를배회하는것만같지만사실그는“눈씹이라는말”에서“저속한어휘들속에담겨있는사고의무한한깊이”를들여다보는현자(賢者)이기도하다.시는‘의자’‘구름’‘의치’‘꼬리’‘맨드라미’‘유리창’과같은일상적인풍경을건네고,그사이사이에‘밑’‘음핵’‘즉사의현장’‘구멍’‘목줄’‘항문’‘도끼’등강렬하고자극적인이미지의단어가끼어든다.평범한일상과비극적사건들이범벅된이순간을향해“시인과도끼는침묵”하며“일격을노”린다.

주어진현실을살아가던화자는끔찍한순간을목격하고충격적인경험들로혼돈속에놓인채나름의방식으로세상을이해하는듯하다.이것이코가단단해서자기마음대로엉뚱한사고와행동을하는사람처럼보일지라도계속“순간의경험에몰두”해일을벌일수밖에없는이유이자,머뭇거리지않고극단과전복의언어들을쏟아내는“호랑말코”의서막일것이다.시인의페르소나역할을톡톡히수행하는화자는여기서멈추지않고,“유리창에매달린빗방울”과같은,언제창문아래로떨어져고꾸라질지모르는위태로운존재들에게자신이발견한“피거품들이두리번거”리는“피웅덩이”를보여주며이렇게말한다.“뭐더볼게없나?”고통스러운잔상들로점철되어있는세계일지라도그것을적나라하게응시하고멋대로사유한뒤웃어넘길줄아는기개가우리를“북북우기는즐거움”으로이끈다.

“나의천박이나의금박임을잊지않게해주소서”
고요한몸속으로날카롭게파고든사건에대항하기

인간은개념이고시체는사물이다.인간은거죽이고시체는물질이다.인간은벗겨내야하는환영이고시체는벗겨진인간이다.그둘사이에서시인은눈의기능을잃어가면서,응시에사로잡힌채로목격하면서,아니시체로서살아가면서,그러므로이야기없는생을감각적사태라여기고오롯이겪으면서시가오면썼다.현장에대한시가아닌사건으로서의시.재현이아닌외상(外傷)으로서의시를.
―해설「언데드의말,시(詩)」부분

해설에서“재현이아닌외상(外傷)으로서의시”라고표현한것처럼시집에드러난무수한외압과폭력의정황은우리에게충격을먼저안겨준다.“나에겐[……]목을맬수조차없는/목줄”이(「관시(串?)」)있고,바람이“미친짐승처럼불어젖”혀“쉭쉭거릴때마다이파리들이살점처럼뜯겨져나”가는가하면,“날리는머리채를휘감아쥐고바람이여자를뽑아올리”(「지방도1018」)기도한다.대낮에“보리수그늘”아래서“늙은원숭이”가“나를,따먹”(「삭제하시겠습니까?」)고“번번이새끼를죽여서낳던개는/이나무아래서/맞아//죽”(「봄밤」)는이세계가“무슨짓을해도재주넘기가되고마는”(「여섯번째기도」)곳이라고시인은충고한다.

2011년,『경남신문』인터뷰에서시인은스스로를“똥퍼주는시인”이라소개했다.여기서시인이말하는‘똥’은거짓을모르는순수한진실,날것의언어그자체인듯하다.우리는진실되게말하고행동해야한다는걸알고있지만부조리한세계에서진실만을강력하게피력하기란어렵고,억압과폭력이“무서워서가아니라더러워서/피”하기일쑤다.“손에피를묻힐수는있어도손에똥을묻힐수는없”(「카페메이지」)다는의식이팽배한오늘날,“자살은매일해야하는거”고“더러한번으로는부족한날도있”는이황막한곳에서시인은“나는똥을먹는부류가아니오/내가똥이”(「녹취A-19」)라거나“난비옥한퇴비같은년이야/나만한거름도/없”(「성(聖)금요일」)다며진실한날것을자처한다.그끝에서생(生)의진실을과감하게열어젖히며부조리에결코순응하지않는통쾌한해방감을선사한다.

“시한편을쓸때마다뒤를대주는느낌”(「솔직히,」)이라는대목에서시인의고독과고뇌를엿볼수있다.하지만억압과고통속에놓인모든이에게닿기위해속세를비웃으며찢고깨부숴“죽을힘”(「악어」)으로진실을계속펼쳐보인다.“개가똥을/끊”을수없듯이“시를끊”(「솔직히」)을수없다는전언과함께,“당신이내게주는얼어붙은외로움”(「보허자(步虛子)」)을껴안고,그렇게『호랑말코』가우리곁으로왔다.“비몽과사몽의가두리에서//나를토막쳐/나의맞수/나의짝을”(「밤의가두리에서」)기다리는시,빨려들어갈듯매력적인“블랙홀의중력을가진”강력한“마침표”(‘시인의말’)를품은시.여전히어둡고불온한이곳에김언희의시는유효하다.

시인의말

마침내점하나,블랙홀의중력을가진마침표하나.

2024년11월
김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