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조시현 소설집)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조시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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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너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빚어온 몸이라면,
나는 어떤 몸으로 죽게 될까”
멸망하는 우주 속 사랑이라는 환상통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존재들

한국 문단의 새로운 스토리텔러
시인 조시현의 첫 소설집
멸망하는 세계에서 사랑을 발굴해내는 시인, 조시현의 첫번째 소설집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동양식 정원」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가 데뷔 이후 7년간 다수의 계간지와 웹진에 발표한 작품 중 여덟 편을 엄선해 엮은 것이다. 첫 시집 『아이들 타임』(문학과지성사, 2023)에서 하염없는 그리움 속에 놓인 미래의 ‘지구인간’과 가닿을 수 없는 존재 ‘엘리노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조시현은 이번 소설집에서 시와 소설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어뜨려 문학작품의 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이루어냈다. “글을 쓸 때 불과 뿔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그는 “보아야 할 것을 똑바로 보고 말해야 할 것을 분명히 말”(‘작가의 말’)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만의 문학적 궤적을 그려나가고 있다. 조시현의 소설은 “우주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p. 15)는 인간의 한계와 종말에 대해 말하면서도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존재가 남긴 ‘나사’를 손에 움켜쥔 채 사랑이야말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으로 희망이라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p. 32)이고,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조시현은 이 믿음을 빛줄기 삼아 환한 곳으로 나아간다.
저자

조시현

저자:조시현
2018년실천문학신인상에단편소설「동양식정원」이,이듬해현대시신인상에시「섬」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아이들타임』이있다.

목차


『월간코스모스』6월호,특집:외계문학
동양식정원
중국식테이블
어스
무덤속으로
파수破水
에코체임버
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

해설│우주역사를통틀어전대미문의사랑은·전승민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영혼은슈크림

달콤하다는뜻은아니다.노즐을통해규웃,하고주입될수있는형태라는의미.나는그렇게생각한다.적어도내영혼은그런형태일것이다.나를느껴보려고아주많은노력을기울인끝에내린결론.물론슈크림이라거나노즐을통해주입되는느낌이라는것도정확한표현은아니지만,흘러내리는슈크림의이미지는가장범박하면서도직관적이어서누군가묻는다면그렇게대답하기로오래전부터마음먹었다.
―「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p.311)에서

첫문장(“영혼은슈크림”)만으로독자를완전히다른시공간으로이동시켜버리는표제작「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은지구온난화와함께육체를잃어버린채영혼만남은인류의미래를그리고있다.지구에마지막으로남은40억인구는클라우드안에데이터로저장된채단열대밖에남지않은휴먼슈트에탑재하게된다.인간의영혼이마치갓구운슈안에노즐을통해주입되는크림처럼변해버린것이다.휴먼슈트를발명한안젤리카는인간의생존과노동그리고통증까지최대한의효율로관리할수있다며모든것을통제하고교육하려든다.하지만화자인‘나진’에게는오래전자신과연인‘마디’의몸이한데빚어졌다는기억이고스란히남아있고,이는사랑이시대에따라달라지는교육을통해습득할수있는기술이아닌서로의육체와정신에서서히새겨지면서체득되는것임을보여준다.다시금곱씹게만드는시적인문장들로아직도래하지않은미래사회를감각적으로그리고있는조시현은가장먼곳을배경으로지금의우리에게무엇이중요한지를묻고있다.당신의하루,당신의사랑,당신의영혼은무엇으로이루어져있는가.

“아주잘되던식당이었어요.
어느날손님이주방장의귀를물어뜯기전까진말입니다”

조시현의소설은명확한기승전결의서사구조를따르기보단과감한장면생략과비현실적인상황배치로작품전반에그로테스크하고기묘한분위기를형성한다.여행지에서길을잃은채로도착한기와집에서기모노를입은여자와연못에사는길이2미터의검은물고기를마주하거나(「동양식정원」)아무도먹지않는잉어를“효자음식”이라고자꾸만잡아오는시부때문에잉어사체를욕조에쌓아두다가버리는(「중국식테이블」)등원치않는상황에놓인인물들은문제를적극적으로해결하지못한채로타의에의해점점더극적인상황에놓이게된다.인물의불안정한심리는소설에서반복적으로등장하는‘귀’의훼손으로도이어진다.중고가게에서가족화합과번영의상징인중국식테이블을구매하면서들었던꺼림칙한‘귀’이야기(주인이손님의귀를물어뜯었다)와화장실변기통에서누군가의‘귀’를발견하는(「파수破水」)장면은가족,친구,직장동료등타인과소통할수없는인물의상황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중국식테이블」의남편이수험생시절시부가잡아온잉어로즙을달여먹은이후로몽유병에시달리게되는것과그녀의남동생역시같은몽유병을앓고있다는설정은‘아버지-배우자-남동생’으로이어지는가부장제의세습과폭력성을나타내고,「파수破水」에서눈앞에있는것은무엇이든먹어치우는대식가인할머니와화자인‘나’가조금도살이붙지않게억압했던엄마,다른사람들앞에서식사하는것을극도로불편해하는‘나’를통해‘할머니-어머니-나’에게로이어지는모계혈통의억압과불안을드러낸다고볼수있다.유년의상처와트라우마는끝끝내봉합되지못한채청소아주머니의미스터리한죽음과화장실변기통안에서발견되는귀의형상을통해앞으로의일어날사건과불길한상황등을암시하며끝맺는다.

“안나가내뺨을쓸었다.그런식으로말하는건비겁했다.
그건나를위한거야,너를위한거야?”

자신의문학관을담아낸메타소설에서“작가는역시사랑을발굴하는직업”(「『월간코스모스』6월호,특집:외계문학」)이라말한조시현은모든것을기계가대체하게된미래를배경으로다양한‘사랑’의형태를보여준다.더는지구인을위한터전이없는땅에서사람들은사랑하는이의죽음마저도존중받지못하는상황에놓이게된다.해가바뀔때마다기계로신체일부를교체해야만하는여동생‘주연’의임신소식을듣고우주납골당의묘지기를자처해떠난‘성연’(「무덤속으로」)과썩지않는인간을매장하는게불법이라는걸알면서도자신을묻어달라는연인‘안나’의유언을들어주고자하는‘여리’(「어스」)의몸부림은아름답고도처연하다.아무것도남지않은세상에서사랑하는이의마지막존엄을지키려는시도는불법이되고인간의몸은그형태에따라철저히계급화된다.이는비단미래세계,SF소설에서만상상할수있는광경이아니다.노스트라다무스의지구종말론이예언한1999년대에도사랑과계급은분리되지못했고,사회초년생때겪은모멸감으로가족들의냉대와함께성적지향을숨긴채음소거상태로살아가는청년(「에코체임버」)들은우리주변에무수히많다.그럼에도조시현의소설은사랑은‘계급’이아닌‘책임’이라힘주어말한다.성연은우주로떠나기전동생주연의몸에서‘나사’하나를훔친다.그리고그작은나사는사랑하는동생을영영만날수없게만든다.이렇듯우리의사랑은한사람을죽음에이르게만들기도하고,또다시살아가게만드는원동력이되기도한다.분명한건죽음이결코사랑의끝,혹은결과가될수없다는것이다.사람과사랑에대해오래인내하고사유해온조시현의소설은마침내자신이생각하는사랑을발굴해냈다.조시현의첫소설집『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은그의글이시나소설로한정될수없는,읽는행위만으로도누군가의어둔일상에빛을밝히는“사랑의기록”이라는것을알게될것이다.

『크림의무게를재는방법』은기어이사랑을발굴해낸우주역사의기록이며,우주에는시작과끝이정해져있지않으므로복수의가능세계는무한히발생한다.우리는조시현의빛과어둠에따라결국,시란소설적이며소설이란시적이라는겸허하고도단출한하나의진실을손에쥐고만다.지나치게밝은빛들이명멸하며눈앞을어지럽게하는우리시대에,조시현의어둠은우리를미래없음으로부터구출하여지평선너머로나아가게한다._전승민(문학평론가)

저자의말

이제낮에쓴것과밤에쓴것을한데묶는다.

혼자였으면불가능했을일들.곁을지켜준친구들에게,가족들에게,동료들에게책이나오기까지깊은마음과노고를기울여주신윤소진편집자님과문학과지성사의여러선생님께,해설을써주신전승민평론가님께감사드린다.

다른여러말을나누기도듣기도하지만글을쓸때나는불과뿔의이미지를떠올린다.

보아야할것을똑바로보고말해야할것을분명히말할것.

건너야할낮과밤이길다.
다시,끝까지하겠다.
2025년3월
조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