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대한 믿음

세계에 대한 믿음

$17.00
Description
“저 영화적 순간에 잠시 빛을 발하고 이내 사라져버린
희망의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미지 세계와 그 텅 빈 어둠 속 존재들이 남긴 흔적에 대한
사회학자 김홍중의 에세이, 그리고 단상들

아피찻퐁, 타르콥스키, 지아장커, 켈리 레이카트…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계의 얼굴들

진정성에서 속물주의로의 ‘우리 사회의 마음’의 전환을 포착한 『마음의 사회학』으로부터 최신작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까지, 한국 사회의 집단 심리를 분석하고 마음을 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저서들을 발표하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사회학자 김홍중의 영화 에세이 『세계에 대한 믿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서울리뷰오브북스』 『뉴래디컬리뷰』 등에 연재했던 영화에 관한 7편의 에세이와 한편에 따로 적어두었던 단상들을 각 편의 “부기” 형식으로 엮은 것으로, 학술적인 분석의 도구와 언어를 내려놓고, 더 이상 어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오늘의 세계를 영화가 제공해준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김홍중은 이 부서진 세계를 살아가는 불안정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도구적인 용도로만 해석되어온 숱한 비인간 존재들, 그리고 우리의 이해 영역 너머에 있는 불가해한 순간들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었던 여러 감독들의 작품을 경유해, 이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의 희망일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텅 빈 어둠 속에서 주체의 자리를 비우고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영화적 보기의 경험이, 평소 보지 못하던 것을 바라보게끔 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이 책은 이러한 영화적 경험이 만들어내는 정동적 흔들림과 망막에 흔적처럼 남아 있는 이미지의 기억을 말로 재구축해 독자들과 공유해보려는 '시도(에세이essay)'이다.
저자

김홍중

저자:김홍중
서울대사회학과와같은대학원을졸업하고프랑스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10년부터서울대사회학과교수로재직하고있으며,전공은사회이론과문학/예술/문화사회학이다.저서로는『마음의사회학』(2009),『사회학적파상력』(2016),『은둔기계』(2020),『서바이벌리스트모더니티』(2024)가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침잠의미학:아피찻퐁위라세타쿤
2장세계에대한믿음:안드레이타르콥스키
3장번개,여자,타나토스:나루세미키오
4장리얼스스로말하게하라:지아장커
5장기관없는희망:켈리레이카트
6장유머의영성:코엔형제와아키카우리스마키
7장붕괴와추앙사이:박찬욱과박해영

에필로그
미주
출전

출판사 서평


“저영화적순간에잠시빛을발하고이내사라져버린
희망의기억을결코잊지못할것이다”

이미지세계와그텅빈어둠속존재들이남긴흔적에대한
사회학자김홍중의에세이,그리고단상들

아피찻퐁,타르콥스키,지아장커,켈리레이카트…
영화가우리에게제시하는세계의얼굴들

진정성에서속물주의로의‘우리사회의마음’의전환을포착한『마음의사회학』으로부터최신작『서바이벌리스트모더니티』까지,한국사회의집단심리를분석하고마음을사회학적으로재구성하는저서들을발표하며많은화제를불러일으킨바있는사회학자김홍중의영화에세이『세계에대한믿음』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이책은『서울리뷰오브북스』『뉴래디컬리뷰』등에연재했던영화에관한7편의에세이와한편에따로적어두었던단상들을각편의“부기”형식으로엮은것으로,학술적인분석의도구와언어를내려놓고,더이상어떤믿음을갖는다는것이불가능해보이는오늘의세계를영화가제공해준시선으로바라본기록이다.
김홍중은이부서진세계를살아가는불안정한사람들과,오랫동안도구적인용도로만해석되어온숱한비인간존재들,그리고우리의이해영역너머에있는불가해한순간들의빛과그림자를보여주었던여러감독들의작품을경유해,이시대에희망을갖는다는것이과연가능한지,가능하다면그것은어떤모습의희망일지를이야기한다.저자는텅빈어둠속에서주체의자리를비우고다른존재가들어올수있도록하는영화적보기의경험이,평소보지못하던것을바라보게끔함으로써세계에대한또다른이해를가능하게할수도있다고말한다.저자특유의강렬하면서도아름다운문체로쓰인이책은이러한영화적경험이만들어내는정동적흔들림과망막에흔적처럼남아있는이미지의기억을말로재구축해독자들과공유해보려는'시도(에세이essay)'이다.

영화를통해세계를믿는다는것은어떻게가능한가?

“우리에게다시세계에대한믿음을주는것,
이것이바로현대영화의힘이다.”_질들뢰즈

이책의제목『세계에대한믿음』은“영화는세계가아니라이세계에대한믿음을찍어야한다”라고말한들뢰즈책의문구에서빌려온것으로,이전의저작들에서도종종영화의사례를불러들여새로운사유의가능성을모색한바있던저자가본격적으로영화를중심에두고이야기하는첫책이다.아피찻퐁위라세타쿤에서시작해안드레이타르콥스키,지아장커,켈리레이카트,아키카우리스마키까지그가오랫동안깊은애정을갖고보아온여러감독의작품들이등장한다.
저자는,스스로를“영화를보러다니는평범한남자”라고칭하며영화를분석하는것을거부하고영화를본다는것자체,즉관객의영화적체험에관해질문을던진바있는프랑스의미술비평가장루이셰페르와마찬가지로,이책의목적이영화의의미를적극적으로해석하거나감독론을펼치는것이아님을분명히한다.그는스스로를비평가혹은영화애호가(시네필)가아니라일종의영화환자인“시네페이션트(cine-patient),”즉영화의바이러스에감염되어무언가변형이일어난사람,주체의자리를비우고영화가드러내는다른세계를수동적으로받아들이고그러한체험을기꺼이감수하는(patient)사람으로제시한다.그런데이러한수동성의강조는의례적인겸양의몸짓이아니다.저자가드러내놓고밝히지는않았지만,영화를통해세계에대한재인식의가능성을모색하는저자의시도는‘언어와논리로는설명되지않는것’‘미래를약속하는힘인상상력이아닌어떤미래도약속하지못하는파상력’‘순간적으로출몰하는이미지의힘(정치적인것과이미지의만남)’에대해관심을보여온그가견지하던사회학자로서의입장과모종의친연성이있다.

예기치못한순간출몰하는이미지의힘
“영화는우리에게시선을제공한다”

이책은예를들어,<웬디와루시><믹의지름길>등성장하고진보하는대신붕괴하는세계를살아가는21세기미국민중의빈곤하고불안정한삶을주로그려온켈리레이카트감독의작품들을보았던체험을되짚으며,우리가영화에서희망을찾을수있다면,그것은확실한메시지나사상이아니라마치우연히카메라에찍힌듯이덧없이나타났다사라지는어떤이미지들이주는희미한감응의형태를띤다고말한다.저자는이를들뢰즈와과타리의‘기관없는신체’개념을변형하여‘기관없는희망’이라부르는데,그것은희망의통상적기능인미래의전망이나계획,약속이결여된역설적희망,다시말해유토피아적상상력이보장하는세계를결코그려내지못하는희망이다.그러나이러한이미지들은우리의세계에대한강력한증인이되어,예기치못한순간에떠올라결정적인힘을발휘하게될수도있다.

“가령웬디가알래스카로떠나기전에주차장을지키는늙은경비원이소녀의손에쥐여주는,꼬깃꼬깃구겨진지폐두장.이유도대가도없이베풀어진허름한선물.저6달러로는웬디의인생에서아무것도바꿀수없다.그럼에도저증여가일어나는세계와그런일이결코일어나지않는세계는결코동일한세계가아니다.”_162쪽

저자가갖고있던문제의식은지아장커의작품들을경유해영화의리얼리즘에대해질문하는글에서도드러난다.이책은,영화의리얼리즘에서중요한것은영화가현실을얼마나사실적으로묘사했는가가아니라,작품에포획된실재의함량은얼마인가혹은영화속에서실재가얼마나강력하게꿈틀거리고,생동하고,말하고있는가를물어야한다고강변한다.지아장커는동시대중국현실을규정하거나설명하려들지않고,“수많은이야기와정동을함축한장소와시간,인물과도시,사물과건물,의복과음식을그것들의물성그자체로영화에불러내그것들스스로말하도록만들었다.”저자에따르면,영화에서실재란그것을본이전과이후를단절시키는힘의이름이다.

“<스틸라이프>의마지막장면에서우리는지아장커인민주의,지아장커리얼리즘의탁월한상징을만난다.펑제를빠져나가는한싼밍의머리뒤로마치환각처럼외줄을타는사내가허공을걸어가고있다.고공에서외줄을타는사람,발을헛디디면떨어져죽는사람,그러나그줄을밟고살아나가는사람이있다.이영화는감독이인민에게바치는헌사다.협소한줄처럼위태로운곳을걸어가는생존주의자.생존의협곡을헤쳐가는자.그것이삼협이건,지하갱도건,공장이건,혹은거리건,인민은그렇게살아나가는것이다.”_129쪽

이책에서다루는감독들의영화에서공통적인것은그들의영화가평소에는잘드러나지않던존재들을포착하고있다는사실이다.아피찻퐁의영화에는귀신,동물,퀴어,그리고남방부처의기묘하게불안한미소를띤태국민중의얼굴이등장하며,타르콥스키의영화에는중력에속절없이패배하는인간들,일종의‘러시아적백치(유로지비)’들이등장한다.또한나루세미키오의영화에는도주하고숨는존재들,저자의표현을따르자면“존재=도망인존재들”이,레이카트의영화에는사회적연결망이모두끊어진외로운낙오자들이등장한다.저자는초창기부터영화가사회정치적삶에서주변화되고망각된민중의삶을카메라에담아왔다고말한다.영화의등장과더불어민중적생명의세부들이사회의집합기억에등록되기시작했다.인민의얼굴은영화적진리가서리는특권적장소가된다.더나아가,영화는불시에나타났다사라지는검은개,무성히자라는식물,폐수가흐르는개울물처럼인간이아닌존재들,비생명까지세계의증언자로호출한다.영화를본다는것이주체를비우고,그빈자리를다른세계에내주는경험이라고했을때그자리를채우는것은바로이들이다.순간,굳게닫혀있던세계의틈이드러나어디로향하는지알수없는도주로가열린다.어둠속환영이지배하는단몇시간속에서우리는이고통스러운세계에대한믿음을다시회복하게될지도모른다.

“좋은영화를보았을때나는들뢰즈가말하는‘세계에대한믿음’이조금더해진기쁨을느낀다.세계에대한믿음이생기려면,자기가삭감되어야한다.자기가덜어내지고,자기의중심성이흐트러지고,자기가사라져야한다.그사라진빈자리만큼세상이나타난다.그세계의주인은내가아닌타인들이다.”_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