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아시스

서울 오아시스

$16.00
Description
“나는 매일 계속되는 꿈이야.
그러면 어떤 것도 더는 꿈이 아니게 돼”
좋은 일의 반대말은 나쁜 일뿐일까
무방비하게 쏟아진 상실의 나날이 가져다준 단단한 희망

저자

김채원

저자:김채원
1992년서울에서태어났다.2022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단편소설「현관은수국뒤에있다」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현관은수국뒤에있다
빛가운데걷기
서울오아시스
쓸수있는대답
영원없이
럭키클로버
외출
다섯개의오렌지씨앗

해설|공백과무한·김미정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어떤사람은건강하지않아도오래살수있다”
빈자리주위를거닐며서로를지키는따뜻한유대

살아있다는게이렇게가볍고,고요하고,죽은듯이맹렬할수있구나.그맹렬함이여덟갈래로쪼개져여덟명의클로버병정이되었다.자영에게필요한자영의친구들,병정들에게필요한병정들의자영이,나에게필요한나의소설이었다.
─‘작가의말’에서(p.263)

표제작「서울오아시스」에는아프지않는법을몰라병원에입원해있는엄마,홀연히사라졌다가죽음을맞이한삼촌곁을배회하는화자가있다.슬플법도한데울거나무너질기색도없는‘나’는“봄에는딸기.여름에는복숭아.장미의행렬은남색대문”(p.87)을상상하고,“좋은날이야”“하지만계속될수는없는좋음이야”(p.99)라며담담한어조를이어간다.어쩌면과거삼촌에게들은이야기를토대로엄마와비밀암호를만들어둔것,그것을곱씹으며걷고또걷는행위가무력감을견디는데도움이되었을지모른다.이선명한기억과작은몸짓은잃어버리거나잃어버릴모든것,나아가이소설집에실린모든작품을튼튼하게연결해주며김채원식‘좋은날’들을선사하기때문이다.

『서울오아시스』를펼치면처음등장하는작품「현관은수국뒤에있다」는“친구를떠올리지않는방식으로애도하는일에대해”(『경향신문』인터뷰)씌어졌다.스스로세상을등진유림의부고를들은세사람이발길닿는대로걸어다니며만들어지는에피소드에서직접적으로유림을언급하거나슬픔을토로하고어쭙잖게애도하려는인물은없다.오히려누군가의죽음과는어울리지않는식사와시시콜콜한대화를주고받는데,그속에서“산산조각난파편을그러모아가며아직알려지지않은무언가를만들어가고있는누군가의뒷모습이”(김미정해설,p.253)감지되고,그들은함께유림의빈자리주변을맴돈다.

친구들이잃어버린유림이「쓸수있는대답」의주인공이다.“얼마전에자살하기를그만”(p.106)둔그는교통사고를당한후에도필요한만큼의합의금만제시한뒤더이상의연락을거부하는가하면약국에서계산도하지않은약을그대로들고나오기도한다.생(生)의모든전의를상실한유림은“날씨가이렇게뜨겁고,이렇게나해가오래떠있는데어째서어떤사람들의마음은온통어둠이기만한것인지”(p.116)알수없는채로자신이떠날수밖에없던이유들을담담하게보여주며,그의부재주위를배회하는친구들의뒷모습을바라보고이해하도록이끈다.

「럭키클로버」의여덟병정은자영의자두농장을지키는파수꾼이다.그들은농장을해치는무언가가없는지순찰하고,자영의고민을들어주거나곁에서잠들고,자영이일을시키면“우리가하고싶지않을때하지않게냅”(p.165)두라면서도자영을떠나지않는다.엄마가일구고돌보던것을홀로떠맡고돌아오지않는엄마의빈자리를바라만보는일을언제까지지속해야할지알수없어무력해진자영에게“번성하는여러개의생명력을”(p.166)가진클로버병정들은꼭필요한존재이다.「서울오아시스」에등장하는,“자신에게주어진행운을찾아모험을떠”나는극과동명인이소설은“그에게주어진행운이라는게무엇인지”영영알수없을지도모르지만“알아볼수있을거라”(pp.98~99)고믿는다.그믿음으로자영은클로버병정들과어두운밤길을걸어나간다.

“모든원인들,사실들.
기쁜소식이있어”
소진되어버린오늘에서발견한내일의오아시스

우리일상의생각지못한휴식같은풍경,접힌주름이펴지면서감춰졌던비밀이언뜻모습을드러낸순간,혹은불현듯나타나우리를당황스럽게하지만이내노곤하게만드는순간.지금이소설의화자는그런것에대해이야기하고있다.구원은바깥에있지않다.상실?부재의장소는오히려오아시스일수있고,형벌같은삶에도한조각의윤슬은감추어져있다.
─김미정,해설「공백과무한」에서(p.250)

상실과부재라는진원지에서에너지가완전히방전된상태로할수있는일은무엇일까.그럼에도남은생을포기할수없는이유가있다면임계점에서내일의문을찾아열고나아가는것이가능할까.김채원은죽고싶지만죽을수없는채로살아가야하는모든이를응원하듯그실험을용감하게수행한다.

「빛가운데걷기」의주인공은이름대신노인으로등장한다.그는세상을떠난딸을그리워할새도없이딸이남기고간초등학생손주를돌봐야한다.과거교사였던그는아이에게할수있는최선을다하지만학교에선아이를문제대상으로바라본다.이내아이가등교하지않으려는날이많아짐에도노인은“큰문제가되지않을것”(p.63)이라며아이를믿는다.그저오늘해야할일들을실천하며이따금씩주기율표를외우고,볕이좋은날“문이열려있는건물을찾아”(p.59)걸어간다.

「다섯개의오렌지씨앗」은“소설이마치하나의덩어리로존재했으면하는마음으로”(‘작가의말’,p.264)씌어진소설이다.마침표를생략한채연결되는문장들은마치머릿속에서꼬리에꼬리를무는의식의흐름을형상화한듯하다.주인공‘구아미’는이작품에서오렌지를먹으며등장하고상점에서오렌지를고르며끝맺는다.그는“너같은놈이죽어야지얘가왜죽어”(p.237)라거나“할머니는너무늙었어요할머니는금방죽을거예요”(p.213)라고생각하는등조금만건드려도폭발할것같이화가잔뜩난모양새다.하지만“작은오렌지씨앗에싹이나고그싹이무럭무럭자라는모습이눈에보여그것을지켜보는일은좋다좋고또기쁘다”(p.215)라고생각하며자신의혼잣말을들을수있는유일한존재인죽은친구‘오아름’을회상하는가하면,수영장청소아르바이트를하며염소냄새가지독하다고느낄땐“염소는원자번호17번,비소보다가벼운17번원소,불소보다는무겁다”(p.228)며주기율표를외운다.

「외출」에는“바람이부는방향으로한여름의햇빛냄새가옮겨가듯글자는가로방향으로적어야마땅히그의미를가질수있다”(p.180)는문장이초입에등장한다.이처럼태어났으니어떻게든살아가야한다면버티며계속걸어가는것또한삶의의미일지도모른다.‘나’는한번보고만진것은좀처럼잊지않는재주를가진사람이지만말을아주길게하는것은배우지못해서실천하지못한다.불면증을앓으며과거에보고들은것을회상하는나날속노인과엄마의장례식을치르던기억을통해「빛가운데걷기」와연결되어있음을알수있다.‘나’는상실과결핍으로얼룩진하루를견디기위해“기쁜소식이있어”(p.190)라는말과함께기쁜일들을적어내려간다.가끔은기쁘지않은소식을적지만결국그또한슬픔을버티는쪽으로환원되며반짝이는문장으로남는다.

기쁜소식이있어.
목이말랐는데식탁에물이있었어.
비가내릴거라고했는데정말로비가내려.
소포가왔어.
베개에서아직도구운과일냄새가나.
아침부터저녁까지개를따라다녔어.
큰장화를신고비옷을입은꿈을꿨어.
옆자리애를패버렸어.몸에는피가많아.
잘잤어.
같은꿈을오래꿨어.
아빠를실망시켰어.
웃었어.
물에빠져서심장소리를크게들었어(p.191)

“억지로꾸미지아니하여이상함이없이순리에맞고당연하게”(p.189)견디는날들.“즐거운것을생각하”려고하다가그것이무엇인지배우지않아모르겠으면“생각하고싶은것들을생각하”(p.199)는나날.그우연한일상이촘촘히쌓일때어둠은점점밀려나고빛으로나아갈힘을얻을수있다.그렇게“소설속장면뿐아니라소설집자체가하나의거대한몽타주를이루”(김미정해설,p.240)는김채원의유니버스는잃어버린모든것을기억하고단단하게연결되어우리곁에무한한이야기로이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