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영혼 (김복희 시집)

보조 영혼 (김복희 시집)

$12.00
Description
지옥을 헤매며 꽃을 심는 사람들
천국에 닿을 듯 뻗어나가는 영혼의 물결
세상에 없는 노래로 희망을 수확하는 김복희의 네번째 시집
“네가 주머니에 새로운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달라지는 말들”


2015년 『한국일보』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천진하고 희귀한 시선으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김복희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 『스미기에 좋지』(봄날의책, 2022)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시인은 2024년, “ 나와 타자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과 사물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일상과 사회의 토대 위에 있어서 강한 현실감과 공감을 끌어낸다” “인간을 초과하는 목소리”(심사위원 김기택·임승유)라는 평을 받으며 제6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현대문학, 2023)에 수록된 수상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외 6편과 시인의 자선작 8편이 이번 시집에 포함되어 있다.
“김복희의 시(詩/時)공간은 새와 새 인간, 요정과 귀신, 사람과 기계, 어둠과 빛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문학평론가 홍성희)하다. 혼잣말인 듯 속삭임인 듯 이어지는 시인 특유의 입말과 리듬감이 생생하게 출렁인다. 네번째 시집인 『보조 영혼』에 이르러 시인은 자유자재로 주체와 객체의 위치를 옮겨가며 자장을 넓힌다.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존재의 숙명에 맞서, 육신에 갇혀 있던 아이, 이름, 날개, 박쥐, 요정, 바늘, 가죽, 비, 노을이 우르르 세상 밖으로 쏟아진다. 인간이기도 비인간이기도 한 존재들은 서로를 비추던 거울을 깨고 나와 마음껏 뒤섞여 삶을 보듬는 노래를 짓는다. 질박한 풍경 속에 흩어져 살아가는 허기진 영혼을 위로하며 끼어들기 좋은 목소리로 열려 있는 총 50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묶었다.

다음을 만드는 것은 다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다음을 향해 움직이려는 용기이며 움직임의 조건과 대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헤아리는 말들이다. 그런 언어는 영영 날카로울 것이고, 종종 뒤주 같을 것이며, 내내 더부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얹힌 기분으로부터 다시 무언가 꺼내어져 나올 것이다. 우리의 상자들이, 우리의 바늘들이.
-홍성희, 해설 「새 파일」에서
저자

김복희

저자:김복희
시인김복희는2015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내가사랑하는나의새인간』『희망은사랑을한다』『스미기에좋지』등이있다.2024년현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가변크기
보조영혼
내이름을부르는소리
지옥에간사람들은꽃을심어야한다
천국
서울
속삭이기
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
네가슴속에서일어나는일
가짜엄마
요정고기손질하기
부모주워오기
밭에갔어요
보따리
불지르기전에
비스듬한시선
사람의딸

2부
박쥐들은어디에살아요?
오려내는힘
수박사주세요
사람이하지않는일
요정의특징
날개는석상처럼
빗나가며명중하는
묶기
서쪽에서온나무
사람이하는일
무주지
요정의마당
지각하는이유
종의차이
노을

3부
바닥의시
술잔의시
바보
사람이많은장례식장
제단에바치는시
비상구만들기
진흙옷
유년
새마음
영혼만상
새입장
비가그친후
위문편지
기척
적당한비
너를사랑해
뜻대로
미래의시인에게

해설
새파일·홍성희

출판사 서평

다음을만드는것은다음이있기를바라는마음이고다음을향해움직이려는용기이며움직임의조건과대가와그럼에도불구하고희망을헤아리는말들이다.그런언어는영영날카로울것이고,종종뒤주같을것이며,내내더부룩할것이다.그리고그얹힌기분으로부터다시무언가꺼내어져나올것이다.우리의상자들이,우리의바늘들이.
―홍성희,해설「새파일」에서

육체에구속된영혼의날카로운외침
실패를무릅쓰고계속되는희망의속삭임

나?날개,
오직너를위한것
하지만너의몸도오직너를위한것
내가거칠게몸부림치고
너의뒷목을당길때너는아프지
너는나를알고있지

하지만너는내가모르는노래를아네
날개는새가아니네
―「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부분

1부의첫시「가변크기」에서화자는미술관,상자,책,공원,관등사물과공간의크기를가늠하며,세상에던져져무한한가능성으로돌입하는존재의‘삶’과,존재의밀도를간직한채휘발될수밖에없는‘죽음’을떠올린다.시간을자리에붙잡아두고기록된활자를소리내어읽음으로써얽히고어긋나는희미한마음,의심과의지가뒤엉킨흔적을가슴깊숙이들였다흘리는“낭독”처럼김복희의시는흐른다.육신을지닌한모든존재는소멸을겪지만새로운호흡으로영혼의모양과성질은달라질수있다고말하듯이.

과거시인이호명해온“새인간”“기계인간”“인조노동자”“귀신”처럼,낯설고그로테스크하면서도,현실에사로잡힌맹목을뒤집는자기분열적대상의일종으로이번시집에불러낸것은“보조영혼”이다.일상의틈바구니에끼어들어“이렇게하라고/저렇게하라고”일러주는보조영혼은‘나’에게도“친구들옆에도”있다.그들은모여웃으며“보람차고/사무치고사”나운삶의애환을늘어놓고,‘섬기는이이자주인님’이없는자리에서입방아를찧기도한다.‘나’는보조영혼이이끄는대로,고통을감내하며“열매를매만지”는삶을이어나간다.그렇게보조영혼의“아름다운꿈을이해하며계속상처받는다”(「보조영혼」).이어지는시편들은지옥과천국,지상의광경을차례로보여준다.지옥에는부지런히“꽃을심”(「지옥에간사람들은꽃을심어야한다」)는사람들이있다.“저기요./저예요들리나요저좀보세요”라고천국을향해말을거는사람들.“마음을훔칠만한것이라면환히”보이는천국에서“꽃머리들이호수의잔물결처럼/일렁”이는광경은아름다울것이다.그매혹에이끌려“함께/꽃을심으러가고”말았기에“천국에는아무도없다”(「천국」).천사는저도모르게어느덧“휘청,/서울까지따라”(「서울」)와있다.

그간김복희시의새로운시적주체들이화자의호기심과접근에의해정체성을부여받았다면,보조영혼을비롯한‘나’에게서분화된존재들은보다적극적으로삶을간섭하는존재다.보살핌받는대상에머물지않고화자가된그들이관찰한‘나’는때로미숙함을드러낸다.“날개”가있음을감지하면서도“날지는못”한채서글픈가정법의노래(“이몸이새라면/이몸이새라면”,「죽음이우리를갈라놓을때」)를부르는‘나’에게“날개”는궁극적으로몸의부속에지나지않는자신의위상을밝히며‘날기’의주체로서‘나’의잠재력을강하게환기시킨다.그러나자유로이날개를펴‘날기’에도달하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

연작처럼읽히는두편의시를보자.“기찻길옆밭”에는머리가담긴항아리가있다.목에얹으면“내게딱맞는온전”한“자유로운머리”머리를찾아몸들이달려간다.항아리에서“줄줄이딸려나”오는머리를발견한몸들은이것저것잴틈이없어아무것이나붙잡고자리에서일어선다.그러자이제는“부끄러운줄도모르고/몸이어떻고마음이어떻고”해대는“머리들이몸을달라고/굴러온다”(「밭에갔어요」).살아가는동안“무덤”(죽음)대신들고다니는머리,“누구보다자유로”운머리와달리머리를“보따리처럼”들고다니는‘나’는“머리의종처럼”굴며“안타까운시선을받거나”“무시당”한다.그러나“결핍처럼”“잉여처럼도보”이는머리를허벅지에얹은채“앉아쉬”면서,“몸이있는곳으로”“자꾸가려”는머리를내치지않고“살살쓰다듬으며어”(「보따리」)른다.이로부터독자는지상을활보할수있지만수많은장애물과충돌할수밖에없는‘몸’의처지를읽게된다.몸을얻음으로써더큰자유를,한계없는자유를정신(“머리”)은원하지만그일은현실에서불가능에가깝다.자유로운정신을획득하고나면삶은순순히자유로워지는가.머리와날개는,구속당하는몸없이움직일수있는가.시인은날카로운질문을던지며더깊은시세계로독자를이끈다.

‘너’의두손에흘려주는꽉찬꿈
인간과비인간을아우르는순교적사랑

비밀은별건아니고,
네가슴속에서이런저런일이있었어……하고
사진을찍은다음
네가슴속에놓아두는거야그위에옷더미와휴지와먼지가또쌓이겠지
그게네가슴이고
그게내가기꺼이살고싶은네가슴이고
그게내가몰래쓴시고……
나는어쩐지속이얹힌것같아차가워진손을살살주물러본다
―「네가슴속에서일어나는일」부분

김복희의시에는영혼의해방을바라며“이런건삶이아니라고/불지르기전에”라고말하는화자가있다.“살점을베려면피를흘려야하듯이”“세상을이해해야”(「불지르기전에」)한다고속삭이며“이몸을어떻게하면좋겠느냐고”“나를돕지않을신에게기도”(「사람의딸」)하는화자가있다.그러나2부에들어서,“지옥을다태워도/천국이되지않는다”는서러운깨달음은“한그루의나무”에영혼을단단히묶으려는의지로귀결된다.필연적으로도래할죽음,그로인한육체의소실을인정하면서도다만상상해볼뿐인천국을품고눈물을자아내는삶을“유유히유영하기”(「묶기」)위해시인은“나무를심”는다.신에게선택받은‘사람의아들’이아닌“사람의딸”로서스스로의의지로사람들이쉴“나무그늘”(「서쪽에서온나무」)을만든다.그것만이공포를불식시키고오늘을일으키는희망인것처럼.

‘아름다움’에가닿기위한치열한투쟁속에서불연속적으로등장하는“열매”-“사과”이미지는시집을관통하는묵직한메타포로작용한다.1부의“열매”와달리3부의「제단에바치는시」에서“나무가죽어도” “인간이다썩어도”죽지않는한알의“사과”는“태양의작은자식같”다.제단위에놓인“사과는요구한다”.“손가락”“목소리”“외로움”,‘진짜인간’이줄수없는것을.이렇듯선명한이미지를통해,우상에게바쳐진제물로서의목소리는진짜가아닌가짜라는것그리하여우상의명령은그자체로허상이라는것을시인은꼬집고있다.

데뷔이후시인이줄곧보여준발칙한상상력을고려해볼때성경의몇구절을살짝비틀어읽는것이시집을읽는작은힌트가되어줄지도모른다.“이동산에있는나무열매는무엇이든지”따먹어도좋지만선악과를먹으면“너는반드시죽는다”는야훼의경고.아담이이를어기자“혼자있는것이좋지않으니,그의일을거들짝을만들어주”겠다말한야훼의뜻.“진흙으로빚어만”든“들짐승과공중의새를”인간에게데려다주고“그가무슨이름을붙이는가”를바라보는신을우리는안다.“흙에서나왔으니흙으로돌아갈때까지얼굴에땀을흘”리고“살아움직이는모든것”을“너와그들의양식이되게하”(『창세기』1~9장)라는약간의자비를기억한다.그러나이러한신의뜻을뒤집어김복희의시는인간의목소리로질문을거듭하면서죽음이라는비극을딛고일어선다.매혹에이끌려시험에빠진인간의운명을받아들이고“띄어올리려는무거운손에저항하여”보조영혼과“요정”을스스로의힘으로불러낸다.“갈수있다”(「사람이하는일」)는믿음으로,그들은‘나’의품에서이름과숨을얻어살뿐만아니라“안겨있으면서/날살”리는새로운길을닦는다.‘나’의발견에의해비로소그들의몸을뒤덮었던“진흙은다씻겨내려”(「진흙옷」)간다.시인은“사람들을헤아”리고헤아리다사랑한끝에“혼자먹기아까”(「요정고기손질하기」)운희망을지어일용할양식으로내준다.죽음을마주하고“파랗게내려앉은얼굴을”조용히살피며“밥이사라지는걸구경”(「사람이많은장례식장」)하면서“공평하게나눠먹는이야기”(「위문편지」)를쓴다.“다시내리는”“새롭게낯선비”(「유년」)를기억에서건져와슬픔을씻기는그는“그만두라고말할때까지/멈추지않는”,“다시비가오길바라는사람”(「비가그친후」)이므로.

간절한희구를담은질문으로출발한첫시「가변크기」에서고통을뒤집은예지로번뜩이는마지막시「미래의시인에게」에이르기까지『보조영혼』은풍부한서사적흐름을지닌다.이어지는시가앞서읽은시를열어주는열쇠가되면서시세계의저변은점점드넓어지고단단해진다.그렇게김복희의시는우리가“삶에서떠내려가지않”을“밟고있는땅”이자“하나하나다건드리고가는/바람”(「오려내는힘」)이된다.여기,누군가“반드시알아듣게하려고”(「새입장」)시인이꾹꾹눌러쓴것들이있다―끝내닿지않을천국처럼“가장깊은주머니”를꾸리고“새로운손을집어넣”어“달라지는말들”(「미래의시인에게」)을만져보기.계속되는질문속에서“죽음처럼강해”진희망으로“같이/달라지”(「노을」)기.시집의해설을맡은홍성희의말처럼,“그것은언어의용기이기도하고,언어를떠날수없으면서동시에언어에대해물음을던져야하는시의용기이”다.온몸을던지는용기와신화적상상력으로무장한김복희의시는지옥의문을지키는케르베로스(「머리가셋달린개」,『희망은사랑을한다』,문학동네,2020)처럼지옥의문앞에서영영살아있는사람들의출입을굳게막아설것이다.때로천사의날개를펴사람들이있는곳으로가부지런히나무를심고열매를기다릴것이다.우리를사랑하는신이가호하는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