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지오 아사이

아다지오 아사이

$17.00
Description
무한의 오솔길이 눈물처럼 흘러간다
무한의 오솔길이 내장처럼 비틀거린다

삶과 죽음, 안과 밖, 참과 거짓, 언어와 침묵
그 사이의 무한한 슬픔과 사랑 속으로 아주 느리게 흐르는
남현정 첫 소설집
형체도 알아볼 수 없고 의미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아무것도 아닌 그것들이 갑자기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소설로 잘 발전되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남현정 × 양순모」(『소설 보다: 겨울 2021』)에서

“문학이, 소설이 불가능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그것이 시체 안치소에서 시트를 들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처럼 끔찍한 것이라 해도, 그럼에도 계속 쓰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때, 쓰겠다고 답하겠다는 내가 나는 두렵다.” 이처럼 인상적인 당선 소감을 밝히며 2021년 『세계일보』신춘문예로 데뷔한 남현정의 첫 소설집 『아다지오 아사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때 나는」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며 당시 『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들(김화영, 전경린, 서하진)은 “상상력을 발휘해 본질과 현상 사이의 중간 지대를 대담하게 펼쳐 보였다”는 평과 함께 “저변의 논리가 치밀하기에 자칫 언어유희처럼 비치는 문장들도 공허한 포즈가 아니라 그 안에 신뢰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을 발견했다. 남현정은 같은 해 여름, 〈문장웹진〉에 단편 「부용에서」를 발표했고, 이 작품은 그해 겨울,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어 『소설 보다 겨울 2021』에 다시 한번 실렸다. 이 작품에서 “목표를 잃은, 나아가서는 의미로부터 탈구된 화자의 언어가 평범하고 단조로운 부용의 풍경을 일순간 초현실적이고 섬뜩한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지점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사실”에 주목한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 ‘부용에서’ 시작될 언어에 대한, 소설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이 작가의 새로운 여행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는 말로 이후 남현정 작가의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렇게 데뷔 4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에는 데뷔작 「그때 나는」과 ‘이 계절의 소설 2021 겨울’ 선정작 「부용에서」를 포함하여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다. 특히 표제작인 「아다지오 아사이」는 다른 매체에 발표되지 않고 이번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이어서 특별함을 더한다.
저자

남현정

저자:남현정
2021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없는
부용에서
그때나는
나폴리
하나가아닌
경뫼
누구나똑같은마음을가졌던
아다지오아사이ADAGIOASSAI

해설|소설-불가능-이야기_양순모

출판사 서평

“마침내생은무한하게펼쳐진다.
그생에서너는예술가가될까?”
우울한세계에서맞닥뜨리는불안을홀로견뎌내고있는존재를향한
의심의시선과의지적소망

그의소설에는‘경험’이란당최존재할수가없을것만같다.그러나그가시체안치소의소설을확인한이후에도여전히소설을쓰고자하는그런소설가라한다면,얘기는조금달라질것이다.죽음과경험.남현정은조금다른소설쓰기를통해이를실현코자하는그런소설가로보이기때문이다.
―양순모,해설「소설-불가능-이야기」(p.299)에서

남현정에게소설은왜불가능의얼굴인가.그럼에도그불가능을마주하고계속해서쓰고자하는이소설가의사랑은어떤모습일까.이러한의문을품은독자라면『아다지오아사이』가그답이되어줄것이다.남현정은데뷔때부터밝혀온소설에대한자신의생각을첫소설집에고스란히담아내고있다.

남현정소설에서불가능의얼굴은우선공간으로나타난다.있지만동시에없는존재,그러한존재가있는공간은있는곳인가없는곳인가.소설집처음에놓인「없는」은제목에서부터남현정의소설세계에들어가기에더없이어울리는작품이다.마침표도없이독백으로이어지는이작품의화자는“이제막생겨나기시작한겨우덩어리에불과한존재”이다.그는“나는완성되지못한존재라서이렇게마음대로중얼거릴수있는거야이중얼거림이곧나야”라고말한다.자궁안태아를떠올리게하는이존재는끝내온전한인간으로세상의빛을보지못할것으로보인다.그렇다면그는‘있는’것일까,‘없는’것일까.태아를품은자궁,이곳은바로이러한불가능의얼굴이있는장소일지모른다.제목은‘없는’이라말하고있지만그의목소리를들은독자는‘있는’소설.바로남현정이시체안치소의시트를들치고바라본사랑하는사람의얼굴,불가능의얼굴이다.

「부용에서」는한번도본적이없는외삼촌을만나러와달라는연락을받고‘부용’이라는낯선곳에도착한화자가본래의목적을상실한채무질서한여행을하는이야기이다.결국“목적없이계속걷다보니어느때부터나는머릿속에있는공허한미로한가운데던져져이리저리표류하고있는듯한착각이들었는데이런터무니없는생각와중에갑자기눈앞에나타난것이바로이용부대피소였다”라고말하는화자는그곳이세상으로부터격리되어“대피소일리없었고차라리감옥이자무덤”이라고생각하게된다.2021년‘이계절의소설’인터뷰에서양순모는‘용부대피소’가‘없는자리’를주제화·형상화한것이하고질문을던졌다.이에남현정은자신의소설에서‘없는’이란말을포기하지않았던이유를먼저설명했다.“그럼에도‘없는’이란말을포기하지않았던것은자신의패배적상황을‘나’가비극적으로인지하고있음을드러내기위함이었던것같아요.만들었음에도여전히‘없는자리’라면‘나’가처한패배적상항이달라지는일은없을테고,이를‘나’가스스로인지하고있다는것은그것자체로아픈일이니까요.‘용부대피소’는대피소라는말에이끌려상상해본공간이었는데요.말씀을듣고보니,그곳에서맞닥뜨리는광경은‘나’가처한패배적상황이형상화된것일수도있겠다는생각이듭니다.그광경은그곳을대피소가아닌‘나’의감옥이자무덤으로전환시켰고제발로자신의감옥이자무덤속으로들어간‘나’는이런패배적상황에서어떻게든벗어나고싶어해요.벗어날수만있다면정신이나가더라도상관없다는식지요.”
한편작가는“잘씌어진이야기보다잘씌어진정확한문장하나에더이끌리는편”이라고이야기한바있는데,그의작품이아포리즘으로이루어져마치긴시를읽는것처럼흘러가는것은그런이유일것이다.특히「나폴리」는‘나는나폴리로간다’와‘있는그대로나폴리를받아들여야했다’라는두문장에서비롯된소설이라는것이작가의설명이다.실패한자의예술과죽음과생에대해말하는이작품은“너는예술가가될까?”라는거듭된자문속에의심의마음과의지적소망을드러낸다.여기서나폴리는도저히버틸수없는상황에서유령처럼‘나’에게다가온존재.구원이될지더큰시련을줄지알수없지만,부디실패를딛고‘나’가일어설수있기를작가는바라는듯하다.이어지는작품「하나가아닌」「경뫼」도이와유사한흐름으로나아간다.태어나지못한아이의상실이후“타협할수없는불행,통제될수없는슬픔”에빠진화자이야기를담은「하나가아닌」에는거대한타자‘거티’가등장한다.‘나’의삶과정신을무너뜨리는,도저히감당할수없고공존하기어려운타자이지만결국‘나’는그타자와의도주,삶을버리고사랑을선택하기에이른다.이러한과정은마치예술가가되는(소설가가되는)길로비쳐지기도한다.‘경뫼’의뼛가루를호주머니에담아혼자갈산에도착한‘이자’의이야기「경뫼」에서역시‘거티’와비슷한타자로‘벨라콰’가등장한다.그러나‘벨라콰’는앞서‘나폴리’와‘거티’와는다르다.“이자의눈물을닦아주”고“울고있는사람옆에서가만히있기만하는것도전혀어색하지않”는,“대신오래슬퍼”하고“이자의고통에아주오랫동안함께슬퍼”하는존재이다.이렇게작품속에서소설에대한오롯한긍정과옹호를보여주기시작한작가는「누구나똑같은마음을가졌던」에이르러타자와서로갈등하지않고함께세상과싸우는모습을보여준다.각작품속에나타난타자들은남현정에게불가능의얼굴이자사랑하는이의얼굴,바로소설을가리키고있는듯하다.

표제작이자이번소설집에서처음독자와만나는작품「아다지오아사이」는샌디와그의연인로부르그리고샌디의동생자곤이검은캐리어를끌고다니는여정을담고있다.매우느리게연주하라는뜻의제목처럼,한편의긴서사가작품에인물로서드러나지않는목소리로천천히진행된다.그목소리는앞선소설들에등장하는‘거티’‘벨라콰’‘아니’(「누구나똑같은마음을가졌던」)의것처럼느껴지기도하는데,안과밖그사이의슬픔과사랑을오롯이경험하며무한한우울의세계로나아가는샌디와로부르,자곤의이처럼느린여정이남현정의공들인문장과만나더없이아름답게펼쳐진다.

책장을덮고나면,『아다지오아사이』속작품들은기억에서사라질지도모른다.어떤이야기였더라,기억속을헤매다길을잃을지도모른다.뚜렷한사건없이하나의이야기로정리되지않기때문이다.줄거리로요약할수없는소설이기때문이다.하지만독자는자신의사유속에깊이잠길것이다.삶과죽음,안과밖,참과거짓,언어와침묵속의무한한슬픔과사랑에대해서생각하게될것이다.나에게필요한타자는어떤모습일지그려보고,그것을있는그대로받아들일수있을지고민하게될것이다.그리고다시책장을펴면거기새로운『아다지오아사이』가흐를것이다.그때와다른언어가,울림이다른문장이또다른당신을기다리고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