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17.00
Description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헤엄치는지 모르는 채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미더운 마음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으로 일궈낸 이야기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공현진의 첫 소설집!
멸망에 가까워지는 세상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말하는 작가, 공현진의 첫번째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당시 “이 시대의 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모순과 아픔을 극복할 방법을 성찰케 하려”하는 “쉽게 보기 힘든 문제작”(심사위원 오정희·성석제)이란 호평을 받은 공현진은 그 믿음에 보답하듯 데뷔 이후 우리가 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공현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의 기대와 이웃의 냉대 그리고 사회의 몰이해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남겨진 사람들’로 더 인간다운 삶, 이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한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이제 더는 소속 집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까지. 공현진은 자신의 첫 소설집에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정확한 문장과 촘촘한 서술 방식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대상을 향한 가없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담아냈다.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동아일보 등단작 「녹」은 결혼이주여성 ‘녹’과 대학 시간강사인 화자를 병치시켜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과 아이를 맡겨야만 했던 엄마의 죄책감을 각각의 층위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고유한 주제 의식은 “누군가를 현실에서 지우는 소설을 쓰지 말자”(『동아일보』 당선소감)는 다짐을 줄곧 지켜온 공현진의 굳센 소신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면서도 내가 아닌 타인의 안위를 빌어주는 인물들의 미더움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쟁, 재난, 기후 위기,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남은 한 줄기 희망은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있는 힘껏,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공현진의 소설은 보여준다. 그의 첫 작품은 독자들이 문학작품에 기대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과 위로를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선사해줄 것이다.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갈망 없이도,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p. 54)에서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이자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 이의 죽음을 목격한 ‘희주’와 ‘주호’가 수영 강습 초급반에서 만나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구 멸망에 대해 말하면서도 더 건강하고 이롭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자아내며 한국 문단에 공현진이라는 작가의 등장을 각인시켰다. 야간작업에서 만난 카샤가 사출성형기에 끼어 죽은 이후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p. 45)라고 되묻는 주호의 독백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무력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주호가 난생처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p. 54)리게 된 것 역시 자신이 아닌 동료의 삶과 꿈에 대해 돌아본 이후라는 점에서, 소설은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결코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소의 말을 빌려오자면 “공현진의 소설은 이 세계에 냉소와 포기만 남을 거라고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이곳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질감과 온기를 부여”한다. 타인을 향한 선한 관심과 온정으로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이 말은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살자고, 하는 말과도 같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공현진의 소설은 무기력한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공현진

저자:공현진
2023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제15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어차피세상은멸망할텐데
돌아가는마음
이름을짓기직전
선자씨의기적의공부법
권능
우리는숲
모두가사라진이후에─3인칭의세계

해설│어차피의세계에서·이소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는또다시서로를잘안다고오해하고
작은오해만으로도관계는허물어지고만다

공현진의소설에서원가족은언제든지돌아갈수있는보금자리가아닌개인을더욱불안하게만드는기폭제로작용한다.서로믿음이나신뢰를쌓으려는어떠한노력도없이오직종교로써결속되기를꾀하는가족공동체는개인을소외시키고집요하고잔인하게옭아맨다.집을나간지5년만에돌아온언니가대뜸결혼을선언하자엄마가가장먼저“믿는사람이지?”(「돌아가는마음」,p.78)라고묻거나딸을잃은초희이모가조카인‘나’의모든것을사사건건간섭하고신앙생활에집착하는(「권능」)모습은매일신께기도하지만서로소통은하지않는비정상적인가족을상징한다.그렇다고언니와이모가처음부터가족으로부터구제불능취급을받았던것은아니다.‘언니’는집을나가기전까지만해도부모와형제들의자랑이었고,‘초희이모’는바쁜엄마를대신해화자를악몽에서꺼내주는유일한사람이었다.각각의화자는한몸과도같았던혈육이원가족안으로안착하길바라면서도그들이결코다시평화로운일상으로돌아올수없다는것을직감하고불안해하며소설은끝맺는다.「우리는숲」에서가족서사의큰줄기는앞서두작품과연결되지만원가족이붕괴되고새로운가족이탄생한다는점에서확연한차이를보인다.부모의자살로단둘만남게된자매에게는이들을보호할어른이없다.이웃들은부모의죽음을쉬쉬하고해남에서부터자매를찾아오는이모는보호자의역할을하지못한채자취를감춘다.동생‘미영’은하루가다르게점점말라가고자매는끊임없이말을거는사물들에게시달리기까지한다.하지만그누구에게도보호를받지못한어린자매는쓰레기로가득찬집안에서무럭무럭자라오래도록염원하던만두가게를열게된다.이로써어린시절친구에게서훔쳤던폴리포켓도,쓸데없는감상에젖게만들던알전구도그리고죽은부모의흔적도모두으깨어져따뜻하고부드럽게빚어져과거로남게된다.두사람은서로의보호자가되어혈연으로이뤄진자매가아닌새로운형태의가족이되어단단한결속력을가지게되는것이다.오늘날가족의형태와의미에대해묻는공현진의소설은서로를잘알고있다는헛된믿음이한개인을어떻게파멸로끌어내리는지에대해보여주며우리에게삶에서진정중요한관계가무엇인지에대해묻는다.

당신에대해잘알지못하기에
더있는힘껏믿고,의지하고또응원할수있는마음

서로를잘안다고믿었던가족들에게받은상처는타인을향한조건없는미더운응원으로다시치유되기도한다.「이름을짓기직전」에서석주의아버지는석주가“취직도하지않고,남자답지않고,군대도미루고,채식을해서,마음에드는구석이도무지없어서”(p.100)폭력을일삼는다.석주와달리고기를먹고여행사의비정규직텔레마케터로일하는‘나’는스스로만든아마추어밴드에서마저도잘린석주를이해하지못한다.화자가이해하지못하는것은석주뿐만이아니다.팬데믹이후모든업무가멈춘회사앞에서서핑크색조끼를입고시위를하는과장님이나대학기업화에반대하는학생들의삭발시위까지.아무것도변하지않을것같은상황에도자신이옳다고믿는일앞에서망설이지않고행동하는사람들을화자는이해하지못한다.하지만“진심도자격이있어야가질수있어?”(p.131)라는석주의무구한물음에석주의모든행보에더는이유를덧붙일필요없이온전히응원만해야겠다고생각하게된다.「이름을짓기직전」의화자가이해할수없는친구를좋아하는마음만으로응원했다면「선자씨의기적의공부법」은잘모르는타인일지라도서로를진심으로응원하고지지할수있다는것을보여준다.요양보호사자격증준비반에서만난‘선자씨’와‘진아’는서로다른세계에살던이들이지만함께공부하고생활을나누며서로를순한마음으로응원하고돕는다.각각아버지와남편을부양해야하는두사람은서로의일상을살뜰하게살피며각자의부족한부분들을채워주는친구가된다.한밤중‘진아’의집에서수도계량기가동파되자마자가장먼저달려온사람도선자씨이고,선자씨혼자만보호사자격증에붙었을때도‘진아’는자신이“누군가의행복을바라고기원할만한상황인가,그런처지인가”하고되물으면서도“마음껏,진심으로선자씨의안녕”(p.171)을바라고또응원하며더밝은내일로나아간다.

마지막수록작「모두가사라진이후에─3인칭의세계」는인류의마지막순간과유일하게남은‘하나’라는인물을통해인류의멸망에대해그리면서도인간삶의찬란하리만치아름다운순간을보여준다.더는회복할수없는상황을마주한인류에대해그리면서도“어떻게하면끝을알고도세계를사랑할수있는지,어떻게세계의멸망을받아들이면서도다른이의소멸에무심하지않을수있는지,어떻게달라진세계를부정하지않으면서도냉소하지않을수있는지와같은질문들”(이소,해설「어차피의세계에서」,p.291)을건네는공현진의이야기는우리가사라지는그순간까지도나자신1인칭의세계가아닌더넓은범주에서의3인칭의세계를돌아봐야할것이라고말한다.아름다움은거울밖세상에자리하고우리는무수히많은타인과함께살아가고있기에공현진의소설은아직우리에게들려줄이야기가너무도많다.물속에깊이가라앉는순간까지도온마음을다해사랑과용기를전하려하는신인작가의행보가더욱미덥게느껴지는까닭이다.

저자의말

내가쓴소설의인물들처럼,나도수영초급반맨뒷줄에서수영을배웠다.수영장뒤에선채로,나는앞으로나아가는사람들을보고있었다.소설집의제목이된‘어차피세상은멸망할텐데’라는문장이,갑자기나를찾아왔다.수영장의소음속에서.그런문장이불쑥튀어오른후에이상하게왠지기분이좋아졌다.무서움과겁이(조금)사라지고,용기가(약간)생겨났다.고백하자면어릴적나는‘앞’에나서는걸좋아하는애였다.그런데지금은가능하면뒤에있는것에안심하는어른으로자라고말았다.뒤쪽도괜찮았다.친구들도사귀었다.

‘우리’라는말을섣불리내뱉는것을경계하고미워하던때가있다.당신과내가어떻게우리인가,왜우리인가,함부로우리인가.덥석나의손을잡은누군가를향해그런모난마음을숨기고집으로돌아가곤했다.그러나결국돌고돌아서,나는우리라는말을건네고야만다.손쉬운말이어도별수없다여기며.다른말을찾지못한채.
내가살아가고있음이시리게선득하고다행이어서무서운순간이있다.나아닌누군가에게도그런마음을건네며,우리라고부르고싶다.오만할수도있다는,내가두른겹겹의장벽을내려놓고.그냥,허물어진경계로누군가의손을붙들고싶다.붙든손으로말하고싶다.어차피멸망할세계라면,우리함께멸망하자고.이말은내게함께살아가자고,살자고,하는말과도같다.

첫소설집을묶는다.내내즐겁게쓴소설도,아프게쓴소설도있다.소설을묶으며이것들을한데묶는것이가능한가,하는물음으로스스로를괴롭히기도했다.하지만모두‘나’와가까운마음을지나간소설들이다.소설들을내보일수있어기쁘다.불안과두려움도크지만,힘껏기쁜마음을내세워보려한다.감사한사람들이많다.다정하고세밀한눈으로소설을다듬어준윤소진편집자님께,멋진해설을써주신이소평론가님께깊은감사를전한다.

가능한만큼,나는뒤쪽에서헤엄칠작정이다.갈수있는만큼가다가,우리가만났으면좋겠다.
읽어주어서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