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뒷면에게

다시, 뒷면에게

$15.00
Description
〈문지 에크리〉는 1975년 창립 이래 ‘문학과지성 산문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국내외 유수한 작가들의 산문을 꾸준히 발간해온 문학과지성사가 2019년 여름, 자신만의 문체로 특유의 스타일을 일궈낸 문학 작가들의 사유를 동시대 독자의 취향에 맞게 구성·기획한 새 산문 시리즈이다. 문학평론가 김현과 이광호, 시인 김혜순과 김소연의 산문으로 첫 선을 보인 〈문지 에크리〉는 이어 시인 신해욱, 하재연, 시와 소설을 쓰는 이장욱과 소설가 백민석 그리고 한강까지 문학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에크리’란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그/그녀가 무엇을) ‘쓰다’라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쓰는 행위를 강조한 이 시리즈는 작가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최대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문지 에크리〉는 무엇, 그러니까 목적어의 자리를 빈칸으로 남겨놓는다. 작가는 마음껏 그 빈칸을 채운다. 어떤 대상도 주제도 될 수 있는 친애하는 관심사에 대해 ‘쓴다’. 이렇게 태어난 글은 장르적 경계를 슬쩍 넘어서고 어느새 독자와 작가를 잇게 된다.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으로만 접해 속내를 알기 힘들었던 작가들과 좀더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임솔아

저자:임솔아
시집『괴괴한날씨와착한사람들』『겟패킹』,소설집『눈과사람과눈사람』『아무것도아니라고잘라말하기』,중편소설『짐승처럼』,장편소설『최선의삶』『나는지금도거기있어』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내눈동자에서모니터에이르기까지의공간
내가쉬지못하는것
내눈동자에서모니터에이르기까지의공간
희고둥근부분의부분

2부비단처럼부드러운그무엇인가가
스물셋
너무맛있는빵
“ㄴr솔oLoF”
잠시중지된
또무엇이우리를기다리고있을까
비단처럼부드러운그무엇인가가
첩의손녀

3부위하는일
나누지못했을이야기
나눠본적없는대화는어떻게나눌수있을까
선배의생일을축하하러갔다
언니와나는동네친구였다
열아홉살때나는다이미(大味)라는가게에서아르바이트를했다
그녀는40킬로그램
위하는일

4부창작메모
다른냄새
물음표는떼어버려도그만
매일밤운동장
나자로여나오너라
닿을수없음에다가가기
할머니가읊은아주긴시
창작메모1
창작메모2
창작메모3
겨누는글쓰기
눈동자

에필로그:다시,뒷면에게

출판사 서평


가만히뒷면을들여다보는일,
그속에깃든삶의조용한진실에대해

그러나차마할수없었던말들이벽속에숨어사는개미들처럼그편지뒷장에빼곡하게숨어있었다는것을.(「에필로그:다시,뒷면에게」에서)

깊고단단한문장을건네는작가,임솔아의첫번째산문집이문지에크리열번째책으로출간되었다.첫산문을기대하는독자들의기다림에부응하듯,『다시,뒷면에게』에는저자가아주오랫동안응시하고차분히매만진글들로가득하다.제목의표현처럼,책에는“뒷모습을보려면제가보던시선의정반대방향으로가야만”함을아는자의태도가,지나간기억을가만히쓸어주는손길이녹아있다.뒷모습에대해말하기위해서는자연히한시절을공유한가족들과의일상,유년시절의기억에서시작될수밖에없다.어린시절텅빈운동장에혼자남겨졌을때의막막함,세상을떠난사람의결코잊히지않는눈동자,아픈강아지의마지막발걸음,“아무도돌보지않은것들.아름답지도않은것들.끝까지혼자인것들”의뒷모습을가만히지켜보는일이“내가기다려온무언가라는것을알”게되었다고고백한다.

저자는한인터뷰에서“어느날소설을쓰다가그인물에게뒷모습이없다는걸알았어요”라고밝힌적이있다.이말을열쇠말삼아본다면,이번산문에서뒷모습을가만히지켜보는일화들은아직씌어지지않은면을상상하고그려내는작가로서의태도에가까울지도모르겠다.그런의미에서『다시,뒷면에게』는한인물이나사물의뒷모습까지놓치지않고응시하며,문학이다가갈수있는깊이와섬세함에대해고민하는일종의문학론,작가론으로읽어볼수도있을것이다.

겹쳐지고포개지며
돌보고위하는날들

그러나저자는자신의뒷모습을바라보는일에서그치지않고,여성,작가,프리랜서로서마주하는정체모를곤경과곤란을해석하는데로나아간다.글을쓰는집필노동자이자프리랜서로서쉬이이행되기어려운휴식에대해“쉼이야말로그명명에대한이데올로기들의전장”이라고말하거나페미니즘리부트시기를거치면서논의된의제들에대해서는“대안까지도자신의먹이로흡수해버리는소비주의와성과주의의먹성”이라고지적하며,논의와답변이과포화되는현상을예리하게통찰한다.1부와2부를거쳐3부‘위하는일’에이르면,저자는앞선뾰족한해찰을넘어자신이경험했던돌보고위하는관계들을풀어놓는다.한때좋아했던연예인을회상하는언니의모습에서“자신의어린날을옹호하는다부짐”을읽어내고,‘문단내성폭력해시태그운동’에서만난t를통해,일어난일이아니라일어난일을해석하는삶의저력과그힘을북돋아주는관계들에대해이야기한다.이처럼저자의시선은단일한면을응시하는데머무르지않고겹쳐지고포개진삶들위에놓여있다.보이지않는이들의손길과서로를돌보는연대의순간들이,작가로살아가는오늘을더욱단단하게만든다.

나와가까운곳에선배가있다는것은내시야에는보이지않지만선배처럼살고있는여성들이있음을명심하도록만든다.안보이는사람.자신을드러내지않는사람.그렇지만여성의미래를위해더나은길을만들고있는사람.(「선배의생일을축하하러갔다」에서)

보이지않는뒷면을응시하는깊고섬세한시선,그리고서로에게더좋은미래를선사하기위해차분히앞으로나아가는여성들을응원하는글들을읽다보면삶을입체적으로조망하는통찰은물론용기와위로를얻게된다.문예지와앤솔러지는물론이고,전시도록과메일링서비스에이르기까지다양한지면에발표한산문들을한데모은이책은,?“누구에게도보낼수없는편지들이문학이되었다”라는?작가의고백처럼,독자들로하여금쉽게발신하지못했던사사로운편지들을떠올리게하며,각자의내밀한시간을마주할용기를건넨다.그리하여이책은읽는일은지나간시간들을겹눈으로바라보며,기억의결을섬세히읽어내는경험이될것이다.

책속에서

오르골안에는색소폰을든피에로와공위에서서묘기를부리는개가있었다.태엽을돌리면오르골속세상이돌아가고,음악이나왔다.내가감은태엽을직선으로펼친다면개는공을굴리며어디로걸어갈까.운동장에서원을그리며돌았던그걸음들을직선으로펼쳐본다면어디까지나아가게될까.지구가태양주변을돌며지나왔던시간들을직선으로펼쳐본다면우주의끝까지도도달할수있을까.오르골을보고있으면감춰놓은외부를보는것같다.오르골의태엽을자주감아준다.(「프롤로그」)
??
할머니의영정앞에서나는눈물이나지않았다.나는할머니를사랑하지않았다.할머니도나를사랑하지않았다.사실이었다.사실인채로끝나버린사실이다.끝나버린다는것은영원히그자리에그대로남아있게된다는것이다.할머니와나는감정에너무솔직했다.진심을함부로배설하는태도가우리의가능성을차단했다.할머니와내가조금만노력했더라면,사실바깥으로손을뻗으려애썼더라면,그랬더라면,더좋았을텐데.(「첩의손녀」)

함께일한요리사들과다른아르바이트생이아니라나에게전화를건이유가있다고했다.“너랑나랑은대화를많이했잖니.”나는또이모의말투대로“우리가뭘그렇게대화를많이했느냐”며퉁명스럽게대꾸했다.“같은책을읽었잖아.그게대화한거지.”(「열아홉살때나는다이미(大味)라는가게에서아르바이트를했다」)

어째서‘원영’이냐고,물어본적이있다.“원영을거꾸로읽어봐.영원.영원이되잖아.”발그레웃으며엄마는답했다.그게원영의비밀이라고했다.엄청난비밀을알려주는듯한표정이었다.나는영원이라는단어를좋아해본적은없었지만,영원이라는단어를자신의이름으로선택한엄마의마음은좋아했다.(「창작메모3」)

단한번도햇볕을쬐지못한너의뒷면이이악몽에서나를구해준다고,너의뒷면을사랑한다고,그게정말너라고,뒷면에만자라나는솜털에젖은몸을부비고말리며,우리는그렇게만났다.(「에필로그:다시,뒷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