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걸 설탕 (송희지 시집)

잉걸 설탕 (송희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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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의 게이는 나를 어디까지 던질 수 있을까?”
소년이 소년을 사랑하고 세계가 깨지는 순간,
나는 이곳과 사랑하고 혀 섞을 수 있겠습니까? 합법입니까?
퀴어 노스탤지어의 미래, 송희지의 두번째 시집

굵은 털이 자라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몸은 숲이었어. [······]
나는 그 숲의 무엇도 쓸 수 없었고, 그것은 모두 나 밖의 일이었고, 내가 쓸 수 있는 거라곤 오직 나뿐이었어. 나의 불결함. 나의 외로움. 나의 부끄러움. 나의 화기(火氣). 그 숲속에서 나만이 내가 쥘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어.
―2024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소감에서

2019년 『시인동네』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송희지의 두번째 시집 『잉걸 설탕』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20번으로 출간되었다. 지난해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당시 “서정시의 새로운 혁신적 징후를 예감”(문학평론가 강동호)하게 만든다는 평과 함께 한국 시단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은 송희지는 이듬해인 202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탐조기(探鳥記)』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과 공연예술계의 떠오르는 신예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자퇴 이후 열여덟 살에 문단의 호명을 받았을 때부터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퀴어 문학을 창작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이번 시집에서 몸을 매개로 ‘나’라는 영원한 미지의 존재를 맹렬하게 탐구한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단단한 체념의 정서, 충분한 절정의 순간에 느끼게 되는 허망한 슬픔”(문학평론가 조연정)이 흘러넘치는 송희지 시의 “정념의 감각은 한번 접하고 나면 잊히기 힘든 것”(시인 하재연)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낯선 정서를 느끼게 만든다. 화톳불 위에 놓인 ‘잉걸불’이 얼핏 보기에는 활활 타오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화기(火氣)가 느껴지는 것처럼, 송희지의 시적 주체는 자신이 발화하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도구 삼아 과거의 상처를 헤집고 파고든다. 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 타인의 편견과 혐오를 다른 언어로 둔갑하지 않기에 그의 문장은 더욱 투명한 빛을 발한다. 정상성이란 이름으로 억압하는 세상에 반하여 외지인의 감각으로 접근하는 송희지가 지닌 아름다운 괴물성을 두고 이제부터 우리는 ‘퀴어 노스텔지어의 미래’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저자

송희지

저자:송희지
시인송희지는2019년『시인동네』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있다.문지문학상(2024)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일틱프로젝트|동창회|도서관귀신하기|일틱프로젝트|없음갖기|일틱프로젝트|가는기둥모양의아상블라주|내가모르는나들이|테디베어

2부
플레이리스트|공이라명할수있을때까지|플라세보이펙트|수몰푸가|플라세보이펙트|플라세보이펙트|클롭서클만들기|섀도

3부
우리는오래전에도착했고소도였다어두컴컴젖은레몬그라스들판과이따금허공으로솟구치는페어들|루주|오닉스|보드|금정포|금정포|금정포|음력설|Homeplus

4부
일기장|공작소의왕|농장|농장|억만노크|기억의습작|농장|미세하고단단한,광택이있는,바스라지거나휘발되지않는,오래오래보존되는|나의시의전경

5부
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그해,후쯔에서

해설
퀴어노스탤지어의미래강동호

출판사 서평

한낮의버려진시간속에서
슬픔을표백하는몸들의언어

하지제.희와지는파도풀이딸린별장에서그들사이의긴긴계약이끝나길느긋하게기다리고있었다.빛이수면을표백하는것을보면서.빛이손발을표백하는것을보면서.

무성하다.
일그러진
무성하다.

지는의심하고있었다.정말이곳에우리밖에없는거맞지?이따금뒤통수너머로사철나무가지가흔들릴때마다믿을수없을만큼공포에찬얼굴을했다.살갗을종종긁었다.비늘을자주뽑았다.어떤결손을들쥐로,어떤결손을신으로여기며젖은타일위에서말라가고있었다.

있기.
재생ː사랑모델
있기.

희는물속에있었다.가라앉아서,희는돌아가고싶다고생각했다.돌아가고싶다고생각했다.

-「일틱프로젝트」전문


시집을열면버려진수영장사진이있고그아래에는“S에게”라고씌어져있다.독자들은S의정체에대해알수없지만,그가이미오래전에이곳을떠났다는사실만은짐작할수있다.맨몸으로살갗이부딪히는행위만으로다양한감각이촉발되는수영장은남성동성애자들의성애와삶을그린앨런홀링허스트의장편소설『수영장도서관』(1988)이나데이비드호크니의수영장시리즈에서게이예술가들의주요한장소로등장하며사랑을숨기지않아도되는자유와해방의장소로여겨져왔다.그렇다면이번시집의구심점역할을하는송희지의수영장은어떠한가.시인이시집의도입부에제시하는수영장은방치되고버려진공간으로그어떤실천도시도도이루어지지않는무용한장소이다.1년중낮의길이가가장긴하지의뜨거운태양아래“정말이곳에우리밖에없는거맞지?”라고묻는시의화자는이미지나간시간을,돌이킬수없는과거를자연히표백할뿐이다.자기존재의기원을들여다보는프로젝트와도같은이번시집에서시인의고백적어조는우리가겪지못한과거를떠올리게만드는아련함이깃들어있다.“끝이각진무쇠스쿠프들고/나의소년들이//나를퍼먹는데열중”(「플라세보이펙트─리플렉션」)하는모습을지켜보며“사람들은왜우리가두렵다고할까”(「수몰푸가─목격자」)라고물으면서도그어떠한해답도제시하지않는시편들은오로지질문과질문으로만이어진다.타인이규정한질서와사회적억압으로부터자유롭게발화하기위해혀를두갈래로자르고꼭“죽어도죽지않”은채로주어진상황에따라변화하는“변온동물”(「동창회」)이되어버린화자에게는삶의해답을찾기보단사랑이라는과정을찾아나아가는과정이더욱중요하기때문이다.자기존재의근원에대해찾아헤매다가도“사랑을하겠습니다.그것은내아명(兒名)이기도합니다”(「내가모르는나들이」)라고쏟아내는고백에는“영원을믿어서아름다움에기대서”(「가는기둥모양의아상블라주」)“현상으로서의나사랑하고싶었”(「도서관귀신하기」)다는결의가느껴지기도한다.그렇다면물속으로가라앉는순간까지도화자가그토록돌아가고싶었던순간은언제였을까.모든상처와아픔을껴안고서라도반드시되찾아야만했던사람은누구였을까.“이틈으로되돌아가려는유토피아적갈망속에서송희지의퀴어노스탤지어는‘과거현재미래’라는연대기적질서로는포착될수없는,이상하고도낯선미래의풍경을펼쳐내는중이다(─강동호,해설「퀴어노스탤지어의미래」,p.185).

단한번도가닿지못한장소에서만
매듭지을수있는사랑의미래

이상하지.
우리는사실금정포에간적없는데.
돌아온적없는데.
금정포는우리를시진(視診)하는늙은의사의이름이고
우리는그를증오하여
밤마다인간의말을수군거릴따름인데.

이상하지.
형아.
그런데도허구가.
우리가.
시가되다니.
노래가되다니.
-「금정포」전문


“그때나와형은금정포에있었다”(「금정포」,p.76)라는진술은송희지의시가눈앞에보이는사실이아닌지금껏우리가보지못했던진실에대해털어놓을것을암시한다.‘나’와‘형’은금정포에머물기를,자신들이금정포와같은냄새를풍기기를갈망하지만이러한바람도외지인의허영에서비롯된것임을깨닫는다.3부의주배경인“금정포”와5부의연작시「그해,후쯔에서」에서의“후쯔”는실제존재하는장소가아닌시에서의상징적인지표로이번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강동호의말을빌리자면“가까이있는듯보이지만다가갈수록한없이멀어지고,잘아는듯보이지만어느새미지의공간처럼낯설게느껴지는모호한장소들.이렇게일상과일탈,과거와현재,꿈과현실,실재와허구가교차하는경계에위치”하면서“역설적으로그들이그곳에영원히머물수없다는사실때문”에더아름답게느껴진다.“나는내가꾸민세계를보여줄요량으로형을이곳에데리고왔”고그곳에는“나의명백한형”이모든것을삼킬“화마”속에서(「우리는오래전에도착했고소도였다어두컴컴젖은레몬그라스들판과이따금허공으로솟구치는페어들」)“말하자면풍경의배설물”(「루주」)처럼남아있는것이다.존재하지않는순간까지도생생하게기록하는송희지의서정성은이해의불가능으로부터탈피해그어디에도귀속되지않은채로자신의사랑을실천해나간다.“아주느린꿈”(「오닉스」)을꾸는기분으로가본적도돌아온적도없는장소에서“허구가”“우리가”“시가”“노래가”되는과정에는끈적끈적하고달짝지근한마음들이남아있고시인은“이곳이나의안쪽이라면,피없는형제라면,나는이곳과사랑하고혀섞을수있겠습니까?합법입니까?”(p.126)라고묻는다.“그러나그것은아직미래의일”(「그해,후쯔에서」,p.136)로“내가없더라도눈앞의풍경은푸를것”이며“푸름을쥐고기어이놓지않을것”(「그해,후쯔에서」,p.140)이라말하는송희지의시는우리가모르는세계에서미지의그곳에서지금도계속되고있다.

강조하고싶은것은,나와나의공작소는계속된다는사실이다.
그건나의의사와무관한일이다.자연한일이다.그건특정한목적만을위해날아가는화살이아니며유행에의한순간의발화는더더욱아니다.나와나의공작소,어느하나가전소하지않는이상우리의만드는일은거듭될것이다.그것은시도라기보다체험에,삶이라고총칭되는어떤불가피한체험에가깝기때문이다.
-‘시작노트’(『시보다2024』,문학과지성사,2024,pp.53~5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