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전위적작가이자예술가로,20세기후반문학과예술의경계를흔들며강렬한존재감을남긴캐시애커KathyAcker(1947~1997)의장편소설『무의미의제국EmpireoftheSenseless』이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
외국문학독자들사이에서입소문은났으나,정작편히한국어로읽을수없었던『무의미의제국』(1988).“포스트페미니스트적ㆍ노마드적글쓰기혹은아방가르드펑크문학의전사캐시애커”가처음으로한국에소개되는것이다.기존문학형식을전면적으로거부하고,주류사회에서배제되거나경시되는요소들을적극적으로차용한이작품은출간당시에는“「시계태엽오렌지」가밋밋해보이게만드는종말론적이야기”(『퍼블리셔스위클리』)라는평을받을만큼과격한성적,폭력적묘사로논란의중심에섰었으나오늘날영미권에서는정전正典의반열에올랐다.폭력과억압,성과언어,인간정체성에대한질문을거침없는목소리로던지는이작품은많은독자들에게강렬한충격과깊은울림을남겼으며애커의작품세계는여전히학문적연구와예술적영감의원천이되고있다.
선입견을버려라.이해를멈춰라.지금,읽어라
진정우리에게낯선세계는반갑게맞이할수있는세계가아니다.
그것은공포와충격,불쾌와당혹을동반해도착한다.[…]
언어의장막,제도의장막,세계의장막.나는페이지를넘기며그것들을하나씩걷어냈다._서이제(소설가)
혁명과질병으로황폐해진근미래의파리.연인관계인반인반로봇업호르와해적티바이,이두사람,혹은두존재는함께,때로는따로따로혼란스러운도시를누비며미친의사ㆍ죄수ㆍ폭주족ㆍ선원ㆍ타투이스트ㆍ테러리스트ㆍ매춘부들을상대한다.알제리혁명가들이도시를장악하자CIA는이혼란을전략적으로이용하며음모를꾸민다.
1947년에태어나1997년세상을떠날때까지캐시애커는서른편에달하는소설이외에도시,대본,에세이등다양한작품을집필했다.『무의미의제국』은애커의후기대표작으로,표면적으로는SF라는장르를내세우고있지만,애커의대부분의작품이그러하듯장르의문법을무자비하게파괴하며,자전적이고현실사회적인맥락을느슨하게반영하면서도,개연성에얽매이지않는전개,파편적인인물구성,난무하는비속어,그리고적나라한성과폭력묘사등,애커소설의단골요소들이고스란히담겨있다.언어형식에서도꼬리에꼬리를물고이어지는종속절과불완전한문장,매우거칠고황당한언어유희가겹쳐있어한국독자들에겐낯선,어쩌면거북한작품이다.형식실험이나정치성의측면에서새지평을연이작품은반사회적인내용으로독자를불편하게하기도하지만,현대서구자본주의세계의허상을억눌린존재들의강렬한목소리로폭로했다는평을받는다.
문학이감히말하지않았던것들을폭로하고,
문학이될수없다고여겨진것들을문학으로만든다
자,이‘물건’을쉬어빠진‘아버지’의논리와시각으로이해하려들지말것
_이연숙(평론가,작가)
1970~80년대미국언더그라운드예술계를달군캐시애커는기존형식을거부하고,주류사회에서배제되거나경시된요소들을적극적으로차용한펑크문화에많은부분을빚지고있다.애커는당시(백인)중산층교양인독자층이가치있는문학이라고여길요소를모조리전복시킨다.가독성,명료함,생동감을추구하는‘문학적언어’를무너뜨리고그자리를욕설,저속한폭력과성행위묘사,직접그린그림(보통타투도안),문장부호,동어반복과‘아무말대잔치’로대신하고,『뉴로맨서』『허클베리핀의모험』,사드,바타유등다양한글을표절ㆍ해체ㆍ짜깁기함으로써,서구제도권예술의가장중요한미덕인개인의독창성이라는개념에냉소를날린다.이는단지스타일이나소재의문제가아니라,당시주류저항운동이지향했던가치관과이념에깃든친제도권적인요소에대한철저한부정이기도하다.
펑크와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이격렬하게충돌하고교차하던시기,애커는급진적글쓰기로‘문학은무엇을감히말할수있는가/없는가’라는질문을끝까지밀어붙인다.그리고문학이감히말하지않았던것을폭로하고,문학이될수없다고여겨진것을문학으로만든다.애커의텍스트는거칠고불협화음으로가득하지만,그안에서독자는기존질서가붕괴된자리에새로이등장하는언어를마주하게된다.
“코드체계에서금지된것을말하는것이바로이코드를허문다.”
실험문학과정치성
선을독점한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부장제의악을폭로하려고
범죄자아이의위치에서악을행하는/쓰는전략.
헤게모니적언어를파괴하려는범죄와자유의언어를재구축하려는시적문장…
_양효실(미학자,비평가)
애커의글쓰기는단순한형식실험이아니라정치적실천이다.1980년대레이건시대의불안과분노,주류저항운동에대한회의,문학형식에대한전면적인도전이한데폭발한이작품은언어와정체성,섹슈얼리티,권력에대한날것의탐구다.국가폭력,경찰,전쟁,인종주의,성차별,자본주의의억압장치를전방위로비판하며,주인공업호르와티바이의여정은억압적질서로부터탈주하려는존재들의몸부림을상징한다.
애커는언어가“사회적그리고역사적인약속,즉코드체계로이루어져있”음을인식하고,이를해체하기위해코드체계에서“금지된언어”를전략적으로선택한다.외설과폭력,욕설과표절,문법에서벗어난문장은터부를손쉽게소비하는자극이아니라억압구조를드러내는,이에맞서는저항의방식이다.애커는주류페미니즘이꺼린‘외설’의언어를적극사용함으러써가부장제ㆍ제국주의ㆍ자본주의가여성과소수자에게가하는현실의폭력을드러내고,더나아가여성을비롯한약자를향한적나라한욕설과폭력의묘사조차기성권위에저항하는언어모색에역이용될수있음을주장한다.
번역자장한길은이같은맥락을고려해충격적인표현을순화하지않고원문이주는정서적타격을그대로살려옮겼다.『무의미의제국』은‘아버지’가상징하는기존의질서가어떻게‘딸’이라는존재를억압해왔는지를드러내는불온한창조이자,억압된주체가어떻게말하고,기록하고,사랑하고,복수할수있는지를묻는여성적글쓰기의전위다.
“누구의언어가허락되는가?”
지금여기,캐시애커
『무의미의제국』은단순한문제작이나스캔들이아니다.애커는문학과예술,성과정치에대한기존의경계를해체하며,억압의언어를찢어낸다.오늘날에도여전히유효한이작품은우리에게묻는다.무엇이문학이고,누가그것을말할수있는가?누구의언어가허락되는가?애커는여성이자작가,이단아로서이질문을자신의몸과언어로던졌고,이작품은그투쟁의기록이다.불편하고낯선이책은,바로그점에서강력한문학적경험이된다.
『무의미의제국』의한국어번역은그저하나의정전을‘이식’하거나‘수입’하는행위가아니다.이미정전正典의반열에오른영미권담론내에서형성된논의와맥락을한국의그대로흡수할필요는없으나,비판적인관점이적나라한성적비하표현이나(특히여성에대한)성행위ㆍ폭력묘사에만매몰된다면그것또한아쉬운일이다.지금여기에서애커를읽는것은한국사회에서여전히억압받는몸들,삭제된서사들,금지된언어들이문학안에서발화될수있는가능성을다시묻는일이기도하다.지금여기에서억압의체계를공고히유지하는언어에대해다시생각해보게하고,이를전복하며새로운언어를모색하는창작과논의의계기를만드는것이다.금기의경계를넘나드는언어실험,문학이도달한최전선,바로그곳에애커와『무의미의제국』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