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 (윤해서 소설집)

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 (윤해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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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연통을 통과하는 기체는 연통을 울려.
당신을 통과하는 언어는 기체도 액체도 아니지만.
당신을 울리지.”
무언의 진동을 기록하며
강렬한 문장으로 불러들이는 무수한 목소리
윤해서의 소설을 얼핏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혹은 현실적인 것들에 반하는 배경과 사건과 인물을 통해서 씌어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반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구성의 조건들이 결국에는 지금 여기, 독자의 현실에 관한 가장 노골적인 질문이 된다.
―김나영 해설, 「다른 서사」에서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이 있다. 인물은 안개에 가려진 듯 모호하고, 뚜렷한 사건 없이 이야기가 흐르고,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소설. 어떤 내용인지 선뜻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심연에서 여러 길을 내어 흐르는,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가 귀가 아닌 마음에서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데뷔 15년을 넘긴 윤해서의 소설이 그러하다.
저자

윤해서

2010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코러스크로노스』,중편소설『암송』『그』,장편소설『0인칭의자리』『움푹한』등이있다.2021년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차례

재현과현시
8분의9박드로잉―무화하는무로서
리듬
가장오래된포털
두발움직이면세발따라붙는
우리의눈이마주친다면
변성

해설|다른서사_김나영
발문|가억과망각사이를떠도는존재를‘읻는’문장들_이제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시적인문체와깊은사유를요하는소설적실험으로한국문학의새로운가능성을열어가는작가윤해서의두번째소설집『물은끓고,영원에가까워진다』가문학과지성사에서출간되었다.데뷔하고7년만에“엄청난독립성이느껴지는”첫소설집『코러스크로노스』를출간한이후,다시8년이흘러독자들앞에선보이는두번째소설집이라는점에서더욱기대를일으키는이책에는총일곱편의작품이실렸다.500페이지에육박했던첫소설집과달리200페이지중반으로가벼워진분량은그간의작품을고심하여덜어낸결과이다.‘미지의어둠’이라는뜻의「테포케레케레」를시간의순서를바꿔들어가는문과나가는문처럼책의처음과끝에배치하여마치“다른시간대에서동시에불리는미지의합창”과도같았던첫소설집『코러스크로노스』에비해,얇아진분량만큼윤해서의작품세계로진입하는벽이조금낮아진듯보이기도한다.하지만첫책에싣지않았던,첫책출간전발표했던두작품을이번책에서시간적거리감없이만날수있다는점에서여전히흔들림없는윤해서만의독보적인스타일을새삼확인할수있다.씌어진지10년안팎의두작품「8분의9박드로잉―무화無化하는무無로서」와「우리의눈이마주친다면」은비교적최근에씌어진작품들과나란히놓여도시간의격차가느껴지지않기도하거니와작가가얼마나공들여,한권의책을치밀하게구성하는지보여주는증거이기도하다.소설집출간에유독시간을더들이는이유가여기에있을것이다.

첫소설집출간이후두번째소설집이나오기까지,두권의중편소설과두권의장편소설을출간하며성실하게작품을써온작가는15년이라는시간이무색하게여전히낯설고새로운세계를펼쳐놓는다.그것은또한15년동안변치않고지켜온윤해서만의소설쓰기방식이기도하다.더이상‘난해함’이나‘어려움’으로표현할수없는,‘깊이’와‘울림’의세계가다시한번독자들을향해문을연다.

“그곳에서우리는망각속에서도여전히살아남으려는언어의심연을,
그리고언어를넘어서는생의울림을만나게된다.”

책을덮은뒤에도,그의문장은우리안에서모종의질문으로부풀어오른다.아직오지않은미래가이미지나간듯스며들고,이미잊힌과거가다시되살아나며,현재는늘의심스러운얼굴로우리를응시한다.윤해서의소설은그날카로운응시의시선으로현재의균열을끝내외면하지못하게만드는문학이다.
―이제니발문,「기억과망각사이를떠도는존재를‘읻는’문장들」에서

이번소설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나영은윤해서소설속배경과인물과사건들이어딘가닮아있다고지적하며첫소설집에서보여주었던인물들의움직임이중요한모티프가되어두번째소설집에서도드러나고있다고설파한다.그리고그중심에데뷔작「최초의자살」이있다.출근길에느닷없이미지의시공간으로이동한세사람은살아남기위해계속해서한방향으로움직이고,본능적인욕구에만충실한사람들이있는태초의세계에닿지만,가던방향으로계속걷는다.이렇게‘한방향’으로어떤힘이나운동을계속작용시키면서끝까지가보는것은이후윤해서소설의중요한모티프가되었고,지금여기에서벗어나고자하는이러한움직임의과정에서독자에게깊은사유를요하는질문을던지는것이윤해서소설의역할이며,『물은끓고,영원에가까워진다』에이르러이질문은삶과죽음에필요한조건에관한것으로좀더확장된다.그렇게이번소설집의수록작에서“말과글과비언어적형식으로떠도는삶과죽음에대해구체적으로묻고답해보려는시도를발견할때마나윤해서소설속에서‘최초의자살’은여전히살아있는형식이라는점을확인하게된다”는것이다.
이번소설집에서이러한움직임은반복되는행위를통해드러난다.그것은삶을유지하기위해반복할수밖에없는‘끼니’로나타나기도하고(「8분의9박드로잉―무화無化하는무無로서」),풀을베고자루에담는묘관리원들의반복되는노동으로드러나기도한다(「변성」).또한넛이라는가상의대상을계속해서부수는일과도겹쳐지며(「재현과현시」),행위가아닌정체를알수없는소리의반복으로그려지기도한다(「리듬」).한편「두발움직이면세발따라붙는」에서는매일비슷한일과를반복하는행위와거듭들려오는소리가함께반복되기도한다.이러한반복은윤해서의소설에서무의미와허무를낳는데,작가는소설속에서거듭하여반복을드러내며경계를무화시키고허무와무의미를길어올리면서역설적으로허무와무의미의존재이유에대한질문을던지고있는듯하다.여기없는존재를기억으로불러들여그의미를확인하는것처럼(「우리의눈이마주친다면」).

여기서더나아가,이번책의발문을쓴시인이제니는이번소설집이윤해서문학의근원적물음을다시불러낸다고보았다.“잊는것과잇는것사이에서언어와존재는어떻게드러날수있는가”라는질문이그것이다.“윤해서의문장은기존의언어에기대지않고,의미의결락을품어안는말들을고안해냄으로써기억과상실,존재와부재의경계를뒤흔든다”고설파한이제니는“윤해서는언어의경계에서생성되는의미의파편을더듬고,시간과감각속에남겨진삶의불확실한층위를탐색한다.그렇게‘잊는것과잇는것’사이의불완전한간극을자기만의문체로재구성한다”는말로작가가근원적물음에다가가고있음을역설한다.

강렬하게끓는물은보이지않는수증기가되어연통을통과하며연통을울린다.그리고『물은끓고,영원에가까워진다』에서윤해서의강렬한언어는독자들의심연에서무수한목소리로질문을남기며마음을울린다.그것은영원에가까운진동으로저마다의마음속에남을것이다.